유영 游泳

이지유展 / LEEJIYU / 李誌洧 / painting.video   2016_0831 ▶︎ 2016_0921

이지유_silence_종이에 수채_290×19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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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16_0903_토요일_02:00pm

본 행사에 따른 경비는 제주문화예술육성사업지원금의 일부를 지원받았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9:00pm

비아아트 대동호텔 아트센터 VIAART DAEDONG HOTEL ART CENTER 제주 제주시 관덕로15길 6 (일도1동 1323-1번지) Tel. +82.64.723.2600

이지유가 그려내는 구체적 추상으로서의 인간 ● 이지유의 작업 방식은 더디고 더디다. 그는 종이나 천의 표면에 색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뒤로부터 색이 '배어나오게' 하는 특이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몇 달 전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의, 뒷면을 앞에 두고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지지 않을) 작품의 뒷면에는 대상이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었지만 앞면은 색이 덜 배어나와 다소 얼룩덜룩한 상태였다.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종이를 염색시키는 것 같은 이러한 작업방식을 채택한 것은 영국에 잠시 체류하던 2013년부터였다고 한다. ● 종이의 두께에 의해 그가 뒷면에 또렷하게 그려놓은 형상은 어슴프레하게 흐려져 있다. 광대가 도드라져 억세 보이는 여인의 얼굴, 어딘가를 향해 손을 흔드는 남자와 여자, 늘어서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 무지개빛 대기 속에서 출항하는 배... 번지고 얼룩진 가운데서도 분명한 형상들이 종이의 표면으로 두드러져 나와 있다. 그려진 것들은 막연한 인물상이 아니라 초상이 분명한 얼굴들, 애매한 풍경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존재했던 사물들이라고 인식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이미지들은 '해녀 양씨'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채집한 것들이다.

이지유_유영_종이에 수채_12×17cm_2016

'해녀 양씨'는 제주 출신으로 일본에서 생을 마감한 양씨 할머니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에서 태어나 소녀 시절부터 해녀 일을 하다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본의 해안으로 건너가서 일을 계속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이했지만 4·3사건 등의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다시 어린 딸을 떼놓고 일본으로 밀항을 선택했으며, 그곳에서 조총련계 남성과 재혼을 해서 자식들을 낳았지만 여전히 생계를 떠안았던 여성. 다큐멘터리 속에서 이 여성의 삶의 굴곡은 끝이 없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하면 산 너머 산의 고난이 펼쳐진다. 조총련계 교사였던 남편 때문에 몇 명의 아들을 북한으로 보내게 되었고, 당초의 장밋빛 약속과는 달리 결과는 자식들과 생이별의 수순을 밟았으며, 그마나 아들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북한의 국적을 유지해야했고 같은 이유로 남한에 남아있던 딸과는 오랜 시간 동안 만날 수 없었다. 금방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았던 딸은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도망 나와 신산한 삶의 과정을 거쳤고, 어머니와 딸이 실제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남한 정부의 한시적인 허락이 있고 난 후, 어리고 풋풋했던 소녀가 오십대 아주머니 모습이 되고 난 뒤였다. 북에 사는 아들, 남에 사는 딸, 일본에 사는 아들, 그들의 어머니인 해녀 양씨의 이야기는 두 시간여의 영상에 담겨 있다.

이지유_흩어진 몸_종이에 수채_112×145cm_2016
이지유_흩어진 몸_종이에 수채_53×65cm_2016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끝나지 않는 곡절의 연속,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삶 전체를 뒤흔들어버리는 시대적 고통이 가득 담긴 이 영상의 주인공 양씨가 이번 이지유 개인전의 소재인 것이다. 작품 가운데 눈을 가늘게 뜬 커다란 얼굴의 주인공은 해녀 양씨이며, 안타깝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은 북으로 향하는 아들들을 향해서이며, 단발머리에 순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는 남한에 남겨두고 온 딸의 모습이다.

이지유_흩어진 몸_종이에 수채_53×65cm_2016
이지유_흩어진 몸_종이에 수채_53×65cm_2016

이지유는 이번 전시 이전에도 제주의 역사에 관한 문제의식을 보여 왔다. 제주는 그에게 있어서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고 현재 살고 있는 장소,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 현재의 자신을 성찰케 하는 화두이다. 그간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장소의 과거와 현재, 그곳에서는 모두 알고 있지만 말해지지 않는 것들, 숨겨지거나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것들이 그의 작품 속에 담겨져 왔다. 좁은 한반도에서도 철저히 국외지와 같은 취급을 당하는, 가장 타자화된 지역인 제주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관광지로서의 해변이 아니라 해녀들이 출근하는 바다길로서의 해변으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동문로터리의 오벨리스크형 해병탑으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필요에 의해 제작된 제주 인물들의 사진들이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해녀 양씨'의 삶에 시선을 돌린 것은 자신이 발 디딘 장소인 제주의 역사에 대한 지속적 관심의 연장이자 구체화라고 볼 수 있다.

이지유_출가_종이에 수채_145×130cm_2016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이미지의 출처가 분명한 만큼 서사적인 면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의 관심이 늘 타자이면서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제주의 역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견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담았던 지난 시대의 민중미술과의 연계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서사성이 특정한 방향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쉬운 해석을 비껴가는 것은 지난 십여년간 그가 보여 왔던 지속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 해녀 양씨의 신산한 삶에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그것이 지난 백년간 우리 역사가 겪은 시대적 혼란의 압축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쉬운 결론이다. 두시간의 영상에 담긴 그녀의 삶은 그 모든 곡절이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지유는 해녀 양씨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 간다.

이지유_강철 무지개_종이에 수채_91×116cm_2016

이지유는 해녀들이 바다 속에서 누리는 자유의 순간들, 인간으로 태어나 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영상 작업 「새의 눈」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마치 공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새가 하늘을 날며 육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연상시키는데, 전시 작품들의 맥락 속에서 그것은 바닷 속 해녀의 시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고통받는 인간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과 바다이다. 이지유의 작품 속에서 땅 위에서 겪는 인간적 고통과 대비되는 생명의 자유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인간 형상을 그린 「유영」 연작에서 인간을 감싸는 바다는 무지개빛이며, 「강철무지개」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출항하는 배의 배경이 되는 하늘 역시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이지유_해로 海路_영상_00:05:00_2016
이지유_유영展_비아아트 대동호텔 아트센터_2016

이지유의 관심은 이렇게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추상적인 것에서 다시 구체적인 것으로 이동한다. 이지유의 작품 속에서 양씨의 구체적인 삶은 그 개인적 성격을 떠나 시대적 보편성을 얻었고, 해녀로서의 그녀가 살아냈던 순간들은 빛나는 생명력으로 재현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서로 대립되지 않고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특수한 작업 방식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는 생각이다. 물감이 뒤로부터 배어나오게 하는 그의 방식은 구체적인 이미지에 거리감을 부여하여 더 넓고 추상적인 세계를 열어주는 것이다. 외피에 덕지덕지 껍질을 올린 화면이 아니라 푹 젖은 그의 화면은, 딱딱한 표면 너머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러한 화면 속에서 개인과 시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거친 결투는 비로소 하나의 세계로 향하는 출구를 찾게 되는 것이다. ■ 이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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