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파랑展 / PARANG / painting   2016_0831 ▶︎ 2016_0918 / 9월15일 휴관

파랑_천년동안에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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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83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9월15일 휴관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1전시장(3층) Tel. +82.2.733.8877 www.gallerymeme.com

갤러리밈은 동시대 미술의 가치를 탐구하며 자유로운 실험의 영역에서 그 실천을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합니다. 파랑 개인전은 역량 있는 신진작가의 전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영큐브 프로젝트'(Young Cube Project) 전시로 개최됩니다. ■ 갤러리밈

파랑_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_캔버스에 유채_182×117cm_2015

나는 예술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이 싫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즉각적이고 단순하며 이성보다는 직감 또는 무의식적 잠재의식에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 미술은 주술에서 비롯되었다. 미술사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라스코(Lascaux)의 동굴 벽화와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 일 것이다. 들소 사냥과 관련된 이 동굴 벽화는 주술적 상징이다. 현실에 대한 마음속 이미지를 모방해 현실의 이미지로 바꾸고 그 이미지와의 교감을 통해 현실을 바꾸는 것. 주술은 이러한 관념을 모태로 출발하고, 주술에서 태어난 미술은 이미지를 현실로 바꿔주는 매개장치인 동시에 현실을 바꾸는 부적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미술은 점점 아우라와 주술적 힘를 걷어냈다. 남은 것은 물감이라는 물질적 안료이고, 내용은 사라졌고 형식만이 남았다. 개념 미술은 물질보다 개념이 더 앞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미지는 사라지고 텍스트만 남았다.

파랑_고요히 고요히(DMZ)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5

난 이미지의 힘을 믿는다. ● 단순히 세계와 자연을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힘이 이미지에 있다고 믿는다. 사진은 오직 사실 만을 기록하고 보여준다. 카메라 렌즈에 잡히지 않는 것은 사진으로 볼 수 가 없다. 내가 회화에 집중하는 까닭이 이것에 있다. 오직 회화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은 형상을 통해 신성한 무언가와 소통한다는 의미이다.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초월적인 부분은 엄밀히 말해 감각적인 요소들로 분석될 수 없으므로 감각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런 이유로 이미지를 이미지일 뿐이라고, 현실과는 무관한 사라져가는 감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예술적 형상을 그저 가상에 불과 한 것, 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할 때 예술은 취미와 즐거움을 주는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미지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상징적 환기력을 소외시키고 있다.

파랑_장항습지-1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6
파랑_장항습지-2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6

오늘날의 과학적 실증주의는 형상에 대한 지나친 합리적인 태도로 인해 비합리적인 힘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과 형태에 대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즉물적인 감정, 직접 지각한 것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쉽게 치부해버리는 태도는 선과 색과 형태들을 마치 아무런 상징성도 지니지 않은 물리적 최소 단위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해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인간의 수고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작품들, 기계적 복제를 통해 생산된 물품들이 예술의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인간이 형상에 대해 취하는 즉물적인 태도는 이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것이 되었다. 심지어 작가들까지도 이미지 보다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며, 회화가 지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파랑_그립다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5

작가는 일정 부분 무당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현현하는 매개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에 좀 더 원초적이고 본질적이며 본능적인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2015년 이전에는 인간 내적인 면, 쉽게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솔직하고 진실 된 감정들, 그것이 어둡고 기괴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일 지라도, 무의식 속에 늘 감추고 억누르고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감정들... 그것을 끄집어내어 잊고 있던 인간의 또 다른 이면을, 불편한 인간의 본모습들을 대면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재된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알게 될수록 그들로 인해 아픔을 겪는 존재(동물, 자연)들로 관심이 돌아가게 되었고, 결국 그러한 모든 것들이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작업 방향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파랑_이제 우리 헤어질 때가 되었다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5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혼의 움직임, 내면의 비전을 담고 있다. ●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지고, 해체되는 모든 자연 안에는 성스러운 영혼이 존재한다. 인간에 의해 사육되고 결국 인간의 먹이로 도살되는 모든 동물들에게도 성스러운 영혼이 있다. 인간에 의해 존재되어지고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모든 영혼들과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마주하면서 살아가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 특히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질 모든 존재하는 영혼들에 대한 사죄의 마을을 담아 그들의 감정과 아픔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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