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걷다

L'heure entre chien et loup: Time Between Dog and Wolf展   2016_0831 ▶︎ 2016_0913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831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민정_김연지_김진경_박소현_박승희 박지선_이민하_이승희_이은영_황성규 유카리 분야_시모무라 치세이

주최 / 구로문화재단 후원 / 구로구 기획 / 이승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구루지 GALLERY GURUJI 서울 구로구 가마산로25길 21 구로구민회관 1층 Tel. +82.2.2029.1700 www.guroartsvalley.or.kr

어스름 붉은 빛과 컴컴한 어둠이 교차하는 찰나, 가시적인 존재들이 불분명한 형태가 되는 하늘과 대지의 접경지대. 'L'heure entre chien et loup: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처럼 시간들과 장소들의 경계에 나타난 실루엣이 나에게 위협적인 늑대인지 우호적인 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 『경계를 걷다』 전시에 참여한 12인의 작가는 다양한 의미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 은유하는 경계들에 위치하고 있다. 먼저 이립(而立)도, 불혹(不惑)도 아닌 30대 중반의 나이로 구성된 작가들은 명백히 생물학적 접경선에 놓여있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이들은 홀로 서는 법을 깨우친 단계에서 주변의 미혹을 뿌리칠 단계로 성장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결혼, 육아, 생계 등의 현실과 예술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앞으로 전진하기란 쉽지 않다. 후자의 길을 택한다고 해도 그들은 신진작가라고 하기엔 어딘가 성숙하고 중견작가라고 하기엔 아직 미숙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작가들은 소위 '낀 세대'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서 각 영역 간의 괴리를 마주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경계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 한데 엄밀히 말해서 이들은 그곳에서 멈추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가로질러 '걷고' 있다. 작금에 대해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정체성이 모호한 객체이자 개와 늑대를 분별할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변화한다. 걷고 '있다'는 현재 진행형의 상태는 그 유동적 성질에 시간의 차원을 덧입히는 것이다.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은 이처럼 영역들의 바깥, 경계들의 안에서 걸음을 옮기는 작가들의 실재하는 목소리다.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의 작업은 일종의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로 모든 장소들에 속하지 않는 반(反)공간이자 지금 여기에 있는 유토피아다. 현대에 들어서 헤테로토피아의 주체가 위기에 처한 개인들에서 규범을 벗어나려는 개인들로 교체되었다는 푸코의 주장은 전시에서 의미를 가진다. 작가들은 자신이 속한 경계를 역이용하거나 또 다른 경계들에 눈길을 줌으로써, 즉 기존하는 것으로부터 이탈되는 부분들을 주시함으로써 제3의 공간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삶과 예술은 대립항이자 서로의 원천이며, 둘 간의 모호한 경계는 미술에 있어서 꾸준히 다루어져 왔다. 박승희도 그 틈을 유희의 소재로 삼는 작가다. '스포츠'라고 명명된 그녀의 작업에서는 박수, 미소 짓기, 아무것도 안 하기 등 일상의 행동들이 특정한 규율 아래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즉 삶의 무의미한 활동이 단련을 위한 행위와 맞대어지면서 의미가 발생하는 것인데, 그 경계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판단하는 일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한편 일기라는 일상적 기록은 박지선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드로잉, 문자 등으로 기호화된 작가의 사적 영역과 갤러리라는 공적 장소의 만남은 그야말로 삶과 예술의 접경을 상기시킨다.

박승희_10 minutes clapping_단채널 영상_00:10:29_2016
박지선_몰래 그린 그림_종이에 수채_21×15cm×2_2013

단시간 내에 장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80년대생에게 익숙한 경험이 되었다. 반복된 이주를 겪어온 황성규는 언어 및 문화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부재를 부유하는 구름과 늘어진 사지의 결합으로 형상화했다. 사춘기 시절 이민 경험이 있는 김민정은 서로 다른 맥락들이 중첩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주에 있어 남겨진 공간과 선택된 공간은 일종의 '사이_공간'을 형성하는데, 작가는 이를 투명하면서도 불투명한 겹들을 포개어 표현했다. 이와 같은 중층 구조의 틈새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황성규_Clouds_아카이벌 지클레이 프린트_48×26cm_2013
김민정_Boundary Layer-1_혼합재료_21×29cm_2016

굳이 이동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발 담그고 있는 현대 사회는 그 자체로 다양한 경계들이 혼재하는 혼종적 공간이다. 정비, 재건축 등으로 시간의 역사가 지워진 도시 공간의 틈바구니에는 잡초, 이름 모를 꽃들이 자생한다. 과거와 단절된 것과 이어진 것, 죽은 것과 생명력 있는 것이 병존하는 것인데 김진경의 인공적인 자연공간, '헤테로-에코피아'는 이의 축소판이다. 한편 타인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현대 사회에서 '동감'은 내가 살아있음을 인지하게 하는 하나의 키워드다. 박소현은 길을 걷다 뜻하지 않게 마주한, 마음을 동하게 하는 편린들을 드로잉으로 기록한다. 출품작은 이를 회화로 다시 그린 것인데, 이로써 작가는 외재적 경험을 이중적으로 내재화했다. 허나 현대에 진심을 움직일 대상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도 매스미디어 이미지는 의미 없는 기표로서, 인간의 일시적 감정만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이승희는 이러한 광고의 표피들을 LED 박스에 구겨 넣음으로써 비판한다. 이는 낯익은 상징들을 '낯설게 보기'라는 방식으로 주목하는 것으로, 동시대적 징후를 고찰함과 동시에 그 통제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하는 것이다.

김진경_Landscape#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3cm_2012
박소현_"Two" An Endless longing Drawing Series_종이에 연필, 목탄, 유채_160×150cm_2016
이승희_5kg of money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6

한편 동시대 미술에서 장르 간의 경계 해체는 하나의 전략이 되었다. 이은영의 작업은 구상과 추상 사이를 오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구상 회화의 오랜 모티프인 꽃은 그녀의 작업에서 육중한 마티에르와 결합하며 추상적으로 변모했다. 작가에게 붓질을 중첩하는 행위는 꽃의 피어나는 아름다움과 시든 후의 추함을 동시에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로써 작업은 미와 추, 희망과 절망이라는 추상적 개념들, 그리고 그 경계들을 내포하게 된다. 김연지의 작업은 회화와 조각의 사이를 넘나든다. 공간에 드로잉 하듯 철선으로 휘갈겨진 회화적 조각은 그 자체로 돌연변이적이다. 이는 폭력과 연민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제3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편 시모무라 치세는 거울 설치 작업의 유동성을 사진을 통해 고정시켰다. 작가는 거울에 보이는 이미지와 거울의 틈새로 보이는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써 후경과 전경의 불분명한 경계를 정지된 상으로 표현해낸다.

이은영_White tulips #2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6
김연지_검은 짐승 모양을 한 밤_혼합재료_90×40×70cm, 가변설치_2016
시모무라 치세_border-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26cm_2015

마지막으로 미술과 미술의 경계에서 나아가 그것과 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들이 있다. 본디 음악을 전공했던 분야 유카리는 이와 같은 경계해체성의 폭발적 에너지를 소유하는 작가다. 오선지에 수 놓인 음표, 또는 전위음악 지휘자의 손짓처럼 그녀의 선은 한 곳으로 수렴하다가도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산산이 조각난다. 이민하는 문화인류학을 미술의 영역에 개입시키는 작가다. 그녀의 소재인 필사(筆寫)는 손으로 읊는 기도로서 정신적·육체적 활동이 고정불변한 기록으로 번역된 것이다. 작업은 이를 회화의 표면 위에 다시 옮긴 것인데, 수행과 필사, 예술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러한 메타 번역의 중심이 된다. ● 이처럼 『경계를 걷다』의 작가들은 접경지대를 가로지르면서 복수적이고 입체적인 신어(新語)들을 양산하고 있다. 어쩌면 이는 그들의 운명이자 전술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동이 트기 전까지 흐리터분한 상황을 벗어나야 하는 숙명적 시간이면서도 어떠한 의미도 특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순간이므로. ■ 장예란

분야 유카리_looking at the vacant scenery_종이에 잉크_27.4×27.4cm_2016
이민하_손으로 읊는 기도 reciting scripture by hand_유지에 낙인, LED 조명 패널_65×48cm×2_2016

The moment where sunset crosses with darkness, where the visible becomes obscure, caught between the sky and the ground. "L'heure entre chien et loup : the hour between dog and wolf" refers to when a silhouette appearing at the edge of time and place cannot be distinguished between a hostile wolf or a friendly dog. ● In many ways the 12 artists in the "L'heure entre chien et loup" exhibition find themselves at the crossings that the "the hour between dog and wolf" refers to. To start, they are all in their thirties, which places them at a biological borderland – no longer considered youth, yet not quite settled down in the mid life. According to Confucius, they are to move on from having learned to stand on their own feet to being able to reject infatuations from their surroundings. However, moving forward within the art world while facing realities of like such as marriage, childrearing, and making a living is no easy task. Even when talking strictly about Art, they are no longer considered newcomers, yet still a ways from being labeled "established." These artists are placed in between generations, facing the gap they're placed in while not belonging anywhere. Strictly speaking however, they are not stranded in that gap, but rather 'traveling' through it. Not resigning to the times, but rather taking an active stance against it. It is through this stance that they transform from an ambiguous being to an artist with the authority to differentiate between the dog and the wolf. The works presented in the exhibition are the voices of these artists 'traveling' through and within these boundaries and dimensions. ● To paraphrase Michel Foucault (1926-1984), these artists' works are a kind of Heterotopia, an anti-space, not belonging to any specific location; a Utopia in the present. Foucault's argument that the principle agent of Heterotopia has changed from the troubled individuals to individuals longing to escape the social norm rings especially true in reference to this exhibition. These artists are relieving their anxieties of not belonging anywhere by creating their own spaces through taking advantage of the borders they're placed in or even observing other such borders and crossings. ● Life and Art are a contradiction of each other while at the same time being a source of one another, and this ambiguous border has been a constant subject in artistic practice. Seunghee Park is an artist that plays with this subject. In her work labeled "Sports," mundane behaviors like clapping, smiling, doing nothing is mechanically reproduced within a specified rule. In essence, meaning is derived from the clash between meaningless activities and training regiments, but the interpretation of these meanings are left solely to the viewers. For Jisun Park, the act of keeping records in the form of a diary fuels her artistic endeavors. The artist's private domain marked with drawings and writings is crossed with the public domain through the gallery space; a fitting symbolism of border between Life and Art. As long-distance movement within a short period of time became possible, crossing the borders between countries also became a familiar experience for those born in the 1980s. Kyu Hwang, who has repeated experience of migration, gave shape to the absence of communication arising from the differences in language and culture, by the combination of the floating clouds and the drooping limbs. Min Jung Kim, who has experienced emigration to another country in her adolescence, focuses on the phenomenon of overlapping disparate contexts. In migration, the space left and the space chosen form a kind of 'in-between space.' The artist expressed this by piling up transparent and from a different angle, opaque layers. The crack in such a multi-layered structure leaves room for interpretation. ● Even if we do not move to somewhere else, contemporary society we are in itself is a hybrid space in which diverse boundaries are mixed with one another. Redevelopment and reconstruction projects wipe out the history of time in a city; yet in the crack grow grasses and unknown flowers. It is coexistence of things cut off from the past and things continued from the past, of things dead and things vital. The artificial space of nature depicted by Jin Kyung Kim, 'hetero-ecopia,' is a miniature of the coexistence. In contemporary society where one cannot but reveal oneself through networking with others, 'sympathy' is a key word that makes one aware that he/she is alive. Sohyun Park records in drawing the fragments that she happened to encounter and that caught her eyes while walking on the street. The works in display are translations of the drawings into paintings, which are a kind of double internalization of the external experiences. However, it is very rare in this age to meet objects that would move one's heart. ● Above all things, images in mass media are signifiers with no meaning, which have ceaselessly stimulated temporary feelings of humans. Seung Hee Lee criticizes the surfaces of these advertisements by crumpling and putting them into LED boxes. This is a kind of seeing familiar things in an 'unfamiliar' way, which is an exploration of the signs of the age and at the same time an attempt to break from its control. ● Meanwhile, deconstruction of the boundaries between genres in contemporary art has become a strategy. The work of Eun Young Lee draws our attention because it shows 'shuttling' between the figurative and the abstract. Flower, which is an old motif in figurative painting, has combined with the ponderous impasto in her work and turned abstract. The act of piling up brush strokes for a painter is an attempt to represent the blooming beauty of flowers and the ugliness after withering away at the same time. With this, the work comes to involve abstract concepts of beauty and ugliness, hope and despair as well as their boundaries. The pieces of Youn Ji cross the boundary between painting and sculpture. The painting-like sculpture that was 'scribbled down' in a space with iron wire is in itself something of a mutation. It is also a third space that arouses ambivalent feelings of violence and pity. On the other hand, Chise Shimomura fixed the mobility of installation work of mirrors by means of photography. By juxtaposing the image reflected in the mirror with the image seen through the crack of the mirror, the artist expresses the unclear boundary between the background and the foreground in the form of a still image. ● Lastly, there are artists who go further from the boundaries between different genres of art to pull down the boundaries between art genres and various other genres. Yukari Bunya, initially a music major, is an artist who has the explosive energy of dismantling the boundaries. Like the notes on manuscript paper, or like the gesture of a conductor of avant-garde music, her lines converge on a spot at one time; yet at another time they spatter everywhere and shatter into pieces. Minha Lee brings cultural anthropology into the territory of art. Transcribing, which is her method, is an attempt for recording by hand and a translation of mental and physical activities into a fixed record. Her work is a kind of 're-transcription' of this into the surface of painting, and what is taking place between performance, transcription, and art becomes the center of the meta-translation. ● The artists in 『L'heure entre chien et loup : the hour between dog and wolf』 go across the borderlands and produce plural and three-dimensional coinages. Perhaps this is their fate and strategy, because their "the hour between of dogs and wolves" is a fateful time when they have to get out of an obscure situation before the dawn, and at the same time a time of infinite possibility with no specific meaning. ■ JANG, YERAN

Vol.20160831f | 경계를 걷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