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 VENERATUS

김진열展 / KIMJINYUL / 金振烈 / painting   2016_0902 ▶︎ 2016_1012

김진열_뿌리와 더불어 Things upon roots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09×78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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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902_금요일_05:00pm_춘천미술관          2016_0928_수요일_05:00pm_나무화랑

2016_0902 ▶︎ 2016_0908 관람시간 / 10:00am~06:00pm

춘천미술관 CHUN CHEON GALLERY 강원도 춘천시 서부대성로 71(옥천동 73-2번지) Tel. +82.33.241.1856 cafe.daum.net/CCART

2016_0928 ▶︎ 2016_1012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요일 휴관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격정(激情)에서 경건(敬虔)으로-김진열의 회화 ● 2014년 11월 2일은 『뼈 속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정복수(丁卜洙)의 개인전이 끝나기 하루 전날이었다. 필자는 인사동 나무화랑에 그 전시를 보러 나갔다가 화랑 대표인 김진하, 전시 주인공인 정복수 화백 내외와 더불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던 김진열 화백을 처음으로 면대하게 되었다. 초면이었기에 필자는 그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2012년 『존엄』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김진열이라는 작가의 개인전이 근래 몇 년간 이 화랑에서 보았던 전시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무심히 던졌는데, 나무화랑 김진하 대표가 '바로 이 분이 김진열 화백'이라며 내게 인사를 시켜 주셨다. 그 날 헤어지면서 그가 '언제 시간이 나면 꼭 강원도 원주에 있는 내 화실을 한 번 들러 달라'고 하시기에, 기억하고 있다가 이듬해인 2015년 2월 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 김진열 화백의 작업실은 1군사령부와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2009년에 신도심 지역인 단계동으로 옮겨간 - 인근 구도심 외곽에 위치한 우산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곳은 군사도시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자욱하게 드리워진, 도시 안에 있음에도 어쩐지 세상의 경계(border)나 변방(margin)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는 황막하고 쓸쓸한 지역이었다. 어느 건물(웨스포센터-원주시근로자종합복지관) 5층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니, 바닥에는 다 녹이 슬어 삭아진 냉장고의 부속철판들과, 시뻘겋게 녹물을 드러낸 함석판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었다. 이것은 그의 작업 전반에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자아내도록 만드는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질료들이었다. 그는 이러한 재료들을 전남 여수에 있는 연도(鳶島)라는 섬에서 구해온다고 했는데, 이 곳 바다에 떠돌던 폐자재들이 바람과 파도를 맞으며 수년 동안 소금기에 그 몸을 절이게 되면, 자연스레 이런 진한 붉은 색깔의 녹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랬다. 그 헐고 구겨진 쇠판에 새겨진, 썩어 문드러진 창상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진액과 고름 같은 시뻘건 녹물이야말로 피폐하고 쇠락한 자연스러움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렬한 호소력을 제 안에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버려지고 내쳐진 질료적 내재감이 바로 이 시대의 가장 변방에서 이 시대의 부조리함에 가장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처연한 기층민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지는 느낌을 필자로서는 도무지 떨쳐내어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회화의 재료 그 자체만으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들의 거의 절반 이상이 이미 설명되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거기에서 필자는 질료와 형상, 형식과 내용의 절묘한 교차와 일치를 비로소 감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진열_숨겨진 숨길 Veiled breath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09×156cm_2016

필자는 작업실에 놓여 있는 그의 작품 몇 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일순(一瞬) 그와 같은 강원도 사내, 그의 지역 선배인 박수근(朴壽根)의 그림을 뇌리에 떠올렸다. 박수근은 6.25 이후 1950년대 초,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를 중심으로 가장 활발하게 작업했던, 당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였다. 그런데 바로 그 10여 년의 세월이야말로 해방 후 우리 민족이 가장 쓰라린 아픔을 겪었던 고난과 형극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화강암의 석질을 연상케 하는 거칠고 푸근한 바탕 위에 헐벗은 나목과 노상에서 장사하는 여인들의 가장 존재감 없는 모습을 마애불이나 성모자상을 연상케 하는 성화(聖畵)처럼 거룩하게 그려냈다. 그 박수근이 기세(棄世)한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고도성장의 시대를 구가해 나갔다. 우리는 잘 살게 되었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그 시대에는 미술도 서구의 문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 시대의 아젠다(agenda)였기 때문이다. 앵포르멜, 모노크롬, 극사실화, 개념미술 등이 풍미했던 배경에는 서구적 취향과 기준에 대한 추종이 그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야수처럼 남을 집어삼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먼저 찾아내 그것을 확실히 베껴내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풍토에서, 미술인들이라 한들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결국에는 드러나게 될, 그 성장의 시대에 드리워진 깊은 그늘의 맹아는 이미 그 때부터 은연히 배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누구에게나 주어질 것 같았던 균등한 기회의 문이 닫히고, 가난과 부는 양극으로 나뉘면서, 다시는 그것들이 서로 오갈 수 없도록 경제구조가 철통 같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끝없을 것만 같았던 개발과 풍요의 시기가 지난 다음, 이제 우리들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 황폐함이란 6.25 직후에 우리 민족이 느꼈던 그 당시의 심정과 어떤 방불함이 있음을 직관하게 된 것이다.

김진열_휘어진 듯 곧게 Being bent makes a being upright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16.5×91cm_2016

이 시대 서민들의 모습과 마음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다시 그 이전 시대와 같은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그 시대에 박수근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이들의 모습과 마음을 다시 알리고 증언해주어야 하는 어떤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김진열이 그린 서민의 상(像), 즉 가장 선량하고 가장 순박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벼랑 끝에 내몰리는, 그러면서도 그러한 자신들의 삶을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순명(順命)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진실을 그는 다시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김진열이 서 있는 회화가로서의 실존적 위상인 것이다. 이 포인트에서 그의 작업을 보아야 우리는 비로소 김진열의 그림이 품고 있는, 한국 미술의 사적(史的) 맥락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 과거 6.25 이후 시대에 살았던 우리 전(前)세대들에게 박수근이 주었던 메시지가 지금 외환위기의 이후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다시 던져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에게 겹겹이 쌓아올린 무채색의 마티에르가 있었다면, 김진열에게는 녹슨 철판과 함석판의 절단과 조합이 있다. 또한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을 서로 분유(分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둘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수근의 화면에는 그 바탕에 광막하고 양양(洋洋)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 어쩌면 그의 그림에서 배어나오는 격조란 단지 나무와 여인의 형상에만 빚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바탕의 적요에 기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일러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의 소(素) 같은 것이라 할까? 그래서 혹 김진열의 화면에도 한줌의 유적(悠寂)함이 있으면 어떨까하고 잠시 생각해보다가 곧 그만두어 버렸다. 어쩌겠는가? 둔탁하고 묵직한 격정이야말로 버릴 수 없는 그의 체질이기 때문이다. 묵내뢰(黙內雷). 그가 그리는 것이 설혹 바위덩이처럼 말없이 침묵하는 물상이라 할지라도, 기실 그 안에는 우레와도 같은 굉음을 함묵(緘黙)하고 있다. 그는 체질적으로 정적(靜寂)의 화가가 아니라 격정(激情)의 화가이다.

김진열_땅과 하늘을 이어가니 Trees between Blue and Land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16.5×91cm_2016

그러나 그의 작업이 이러한 재료적 속성만으로 전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법적 속성 중의 하나는 바로 '분절성'의 도입이다. 그가 구사하는 인체의 부분들은 조각조각 잘려져 있고, 그 각각의 잘린 조각들이 다시 결합되는 과정을 통해 전체 인체의 양상이 완결된다. ● 1973년에 그가 제작한 몇몇 종이 작업들을 보면, 전체적으로는 당시 모노크롬이나 백색계열 회화의 영향 또는 개념적 경향이나 색채 등이 묻어 있으면서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전체 덩어리를 각각의 단위로 분할한 다음, 적절하게 이를 구도에 맞게 다시 배치하는 작가 나름의 방식이 관찰되고 있다. 이것은 회화가 담고 있는 '내용'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미 그에게 체질적 요소로서의 자르고 재구성하고 붙이는 '양식'들이 작가 활동의 시발로부터 나타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1981년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에 선보였던 '자르기' 작업의 경우, 분절성을 형식 실험한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자신의 체질적 분절성의 요소를 치열하게 형식화한 측면이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예리한 리듬감에서 오는 경쾌함은 물론, 재료를 붙이는 과정 및 목판과 헝겊의 겹침에서 발생하는 중후한 누적감 등의 프로세스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이 당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기까지의 작업들은 상당한 수위의 추상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후 작업들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양식의 구성이 내용의 형상성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미술적 독자성을 이루어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조망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재료의 누적 효과는 이후 녹슨 철판이나 함석판 위에 두껍게 물감을 겹쳐 올리는 과정으로의 진화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김진열_불휘 깊은 Deeply rooted and broad minded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16.5×91cm_2015

이후 1983년경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현재의 작업과 비교한다면 훨씬 더 격렬한 표현적 방식으로 형상들을 구축해 나가면서, 내면에서 정제되거나 소화되지 않은 요소들을 토하듯이 뿜어내는, 일련의 야성적 성향의 회화로 그 성격을 규정해 볼 수도 있다. 터프하게 그어 댄 붓질들과 용출하는 질료들의 일렁임에서는 절박한 삶의 시공에서 울부짖고 있는 날것으로서의 인간적 체험들이 가감 없이 표출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이러한 특성들은 그 시대를 공유하며 함께 작업을 진행했던 여러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들이 당대의 시대적 열기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으나, 조형적 완결성에의 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좀 더 섬세한 정련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미완의 프로세스일 수도 있다. ● 이후 1992년 전후를 기점으로 하여 다시 작가 작업의 방향이 바뀌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그 이전에는 형상에 있어 일그러지고 터질 듯한 얼굴의 모습과 표정으로 고통을 대면하고 있는 어떤 보편한 인간상들을 다소 관념적으로 그려내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버스에 탄 사람(1992)', '봄나물(1993)', '생선장수 할머니(1993)', '해녀(1993)', '닭(1993)', '귀가(1993)', '줍는 사람(1995)' 등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 실제 현장 속의 구체적 인물들이 화면 속에 속속 등장하게 된다. 점점 감정의 과잉이 절제되면서, 인간 내면의 깊이가 형상으로 응축된 개별적 인간상들이 1980년대 작품 속 보편한 인간상들을 서서히 대체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원주시외버스터미널 안에서 서성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지역 안에 정주하지 못하고 각처로 뿔뿔이 흩어지고 떠나가는 인물들의 특징들이 사실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묘파되고 있다. 잠시 그 곳에 머물렀다 어디론가 떠나가는 인물들의 어정쩡한 움직임과 몸이 짓고 있는 독특한 자세 등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거나 변화하지 못하는 그들의 현존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의 비루한 정체성 그리고 그 대상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까지를 깊고도 진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당시의 작업들은 김진열의 작가정신과 아이덴티티의 근간을 보여주는, 자기 고유의 시각과 세계를 가장 곡진하게 드러내는 현장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화적 표현이 어떻게 인간의 진실과 맞닿게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그 결과물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도록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진실함과 열렬함이 가지는 순정한 생명력이 거기에서 제대로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진열_눈맞춤 Eye contact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84.5×93cm_2015

필자는 2012년 나무화랑에서의 전시 출품작들을 전시장에서 직접 보았는데, 당시 작업들에서는 거칠음과 부드러움이 적절하게 조화되는 지점, 그러나 거친 느낌과 부드러운 느낌 중에 어느 것도 다른 것에 의해 손상 받지 않는 절묘한 지점을 읽어볼 수 있었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은 두 요소의 경계가 절묘하게 조화되는 회화의 세계는 단순히 이전보다 그의 작업이 순화되었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작가로서의 원숙감과 깊게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빈손(2011)', '훈수(2011)', '가오리 손질(2011)', '모성(2011)', '만삭(2011)', '출발선(2011)', '노숙인(2011)' 등의 녹슨 철판 작업들의 경우, 자르기나 붙이기 등에서 유래하는 기법적 대범함은 물론, 유채 안료의 끈끈하고 눅진한 붓질과 철판 자체의 녹이 서로서로 어우러지면서 화면 전체에서 강렬하게 육박해 들어오는 통쾌한 박진감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세부에 구애받지 않는 굵직굵직한 조형적 언술로 상처받았지만 더 크게 회복하는 이 시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진실로 이 세계를 지탱하는 위대한 인간의 정신을 선명하고도 애틋하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것들은 거짓이 없는 참된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주고 있었다.

김진열_멈춤 Holding up and waiting_혼합재료, 아크릴채색_120×55cm_2015

필자는 그의 작업실 입구에서 아버지가 등에 업고 있는 아들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눈맞춤'이라는 제목의 작품 한 점을 발견했다. 자신과 자신의 큰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만든 것이라 했다. 세파에 부대껴서일까?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다소간 삐뚤거리는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 형상과 안색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기에는 조금치의 부족도, 아쉬움도 없었다. 환하게 웃음 짓는 어린 아들의 때 묻지 않은 싱싱한 표정에서 우리는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의 놀라운 희열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같은 아름다움으로만 채워진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한 표정에서 우리는 다시 회복해야 할 아름다움을 만난다. 그 아름다움의 본질은 그저 예쁜 것, 그저 꾸며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그리고 고난과 아픔이 숙성되고 발효되어 그 안에서 피어나는 깊은 인간적 체취를 포함하는 차원 높은 서정성과 약동하는 생명력인 것이다. 충동적 분노감을 애정으로, 지나친 예민함을 넉넉함으로 감싸면서 이 시대의 지독한 무표정과 플라스틱 같은 무정함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적 대안으로 그의 작업은 이제 우뚝 솟아 있음을 느낀다. 예술에서 감동이 사라지고 개념이 그 자리를 대체한 이 시대에 예술에 있어 아직도 그 감동의 세계가 유효함을 보여주는, 실로 보기 드문 미덕을 지니고 있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그의 예술이 이 시대에 부여하는 중요한 뜻이 있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이성적 사유를 근대적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체주의(deconstructivism)가 풍미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로 접어들자, 이내 로고스중심주의(logocentrism)가 회의의 벽에 부딪히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본질은 이성이 아닌 감성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대두되지 않았는가? 그의 예술은 이성이나 사유가 아닌 본질적 감성의 촉수를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김진열의 작품은 인간이라면 그들이 비록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인간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깊이 존중받아야 하는 사랑의 대상임을 새삼 일깨우는, 이 시대의 거룩한 성화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회화의 출발점은 격정이었지만, 그 종착지는 경건이었다. 필자는 그의 작품에서 밀레(Jean François Millet)의 '만종(晩鐘)'이나 박수근의 '좌부(坐婦)'를 보며 느꼈던 경견함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느낀다. ■ 김동화

Vol.20160902e | 김진열展 / KIMJINYUL / 金振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