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

이재정_이종현_Thomas John Humphries_Matthew Anderson展   2016_0903 ▶ 2016_0914

이재정_Feast 2015_종이에 혼합재료_50.5×73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청림갤러리 CHEONGRIM GALLERY 경기도 광명시 철산로 36 알렉스타워 9층 Tel. +82.2.2687.0003 www.gcr.kr

작업은 시들거리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눈과 심성을 가다듬고 내가 아는 사람들, 내가 가진 사랑을 보다듬는 안식과 같은 것이다. 그 채워지지 않는 빈 여백은 내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신부님이며, 그래서 내 작업은 내가 속 태우고 미안해하고 절실한... 가슴 한 켠에 먹먹하고 슬픈 일들로... 그러나 다신 돌아가지 않을 그 사적 감정과 감성들로 꽉 차 있다. 의자처럼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가구는 없다. 그런 연유로 의자는 그 의자 주인의 감성, 취향, 사회적인 지위 등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내 작업 안에서 의자라는 오브제는 부재-떠남인 동시에 채움의 공간이고, 다시 돌아 갈수 있는 고향이며.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자아, 타인이 알고 있는 나의 자아와 내가 모르는 자아를 상징한다. 하루키는 그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자아를 그림자로 표현하면서 이 그림자는 스스로 죽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아인 그림자를 스스로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숲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난, 내가 안고 있는 그 세가지의 자아가 어떤 색채를 안고 있는 자아든 죽이지 않고 끝까지 짊어지고 다루어야할 원죄, 그리고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무로 만든 자그마한 의자를 하나하나 완성할 때마다 고해성사로 인해 입 밖으로 내놓은 한움큼의 추스림들이 여백을 채워가고 이전 그 오랫동안의 떠난 길 위에서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시간 까지 들려준 사랑과 그리움들을 먹물을 이용해 펜촉으로 옮기고 덧씌우는 수작업의 타이포그래픽적인 수법으로 표현했다. 가슴 언저리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평생 소화될 것 같지 않은 파편들은 내 의자가 가진 내 공간이 가진 촉각과 시각의 통합체이다. 그래서 그 의자는 안식인 동시에 또한 평생인 아픔이다. 그래서 내 의자는 시각적으로 제멋대로의 형태이고 찔리면 상채기나는 가시와 같은 촉각을 가지고 있다. ■ 이재정

이재정_Feast 2015_종이에 혼합재료_53×65cm_2014
이종현_Gander power_설치_35×45×45cm_2008
이종현_Decentralization of the power_설치_100×45×45cm_2008
Thomas John Humphries_Untitled 1_캔버스에 전사, 목탄, 아크릴채색_162×130cm_2016
Thomas John Humphries_Untitled 6_수채화용지에 전사, 아크릴채색, 오일파스텔_52.5×38cm_2016
Matthew Anderson_untitled 2_캔버스에 유채_93×75cm_2016

인간이 인간으로서 사회를 구성하면서 만들어낸 제도와 장치 그리고 결속은 늘 나를 혼돈스럽게 한다. 인간으로 혹은 자연 속에서 야만의 상태로 살아가느냐는 이분법적 생각은 접고라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은 늘 나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몇 번이고 시도했던 나와의 이별 (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지만)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와의 화해를 생각한다. 나와 내 자신의 공존은 분명 아름다운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항시 나를 감시하고 또 다른 이별을 언제든지 하려는 마음을 아직 내 자신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사회, 사회는 면도칼과 같아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자르는 냉철한 의사이다. 나는 늘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고, 그러다 잠에서 깨어난다. 야만인으로 살기에 나의 주위에는 하루 종일 뒹굴 거칠은 자연이 없고, 사회인으로 살기에는 선택할 울타리가 너무 좁아 갑갑하다. 온전히 지구위에 살기 위해서는 제도와 장치들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내 자신과 화해 한 것처럼 그것들과 화해하고 싶지는 않다. 오랜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인간의 "절대양심"이다. 내가 나의 길을 씩씩하게 가되, 그것들과 공존하는 길은 '절대양심'이다. 나의 작업은 사회적 '절대양심' 속에서 스스로 나와 사회에 대하여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내게 분양된 공간을 겸손히 양보 하는 것 그리고 절대양심 속에서 나의 이상향을 향해 고독하고 묵묵히 항해하는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늘상 사소한 것을 사랑하라고 부드럽게 말한다. 내 주위의 모든 사소한 것들은 거대한 우주의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내게 비밀스런 작업의 노하우를 제공하고, 나는 감사히 그것들을 수용하려고 한다. ■ 이종현

Vol.20160903a | 4인 4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