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가장자리

The Edge of Night展   2016_0901 ▶ 2016_1022 / 일,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908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구현모_김기철_김미경_김윤수 도윤희_박진아_서동욱_이해민선

작가와의 대화(진행_이우성 시인) 2016_0928_수요일_07:00pm 2016_1015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프랑스의 예술철학자 발딘 생 지롱(Baldine St. Girons)은 저서『밤의 가장자리(Les Marges de la nuit)』에서 밤으로부터 출발하는 '또 다른 회화사(繪畫史)'를 쓴다. 밤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한다거나, 낮의 부재 라거라, 그림 속의 일화(逸話)에나 잠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지 않느냐는 것이 내용이었다. 밤의 여백은 무척이나 넓고 깊어서, 조형성과 원근법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거기에는 무한한 사상(思想)을 담을 수 있고, 실제와 가상을 아우르는 형이상학이 가능하며, 개별적이면서 공통적인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또 우연히 조우할 것이라는 논지가 책 속에서 펼쳐졌다.

구현모_달_골드폼, 각재_240×240×130cm_2016

실제로 시각적인 수용은 빛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밤은 여러 미술가에게 영향을 주어왔다. 중국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촉음(燭陰)이라는 산신이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깜깜한 밤이 된다고 하였다. 밤을 맞이하는 일은 무엇보다 눈앞에 내리는 어둠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밤이 무섭다고 보채는 어린아이의 머리맡에 작은 램프를 놓아주며 이제는 괜찮다고,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도닥여주는 것은, 아직은 이 어둠이 익숙치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곧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그런 위로일 것이다. 하지만 밤이면 어두운 것이 다 같은 검은색이 아니라는 것을, 밤이 깊을수록 또렷해지는 형상이 있다는 것을, 심지어 '근거-없는-이미지들이-출현하는-순간' 이 온다는 것을, 예민한 작가들이 가만히 지나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밤에는 실제와 환영을 마주하는 시선이 뒤틀리고 날카로워지고는 하는데, 작가들을 창작욕으로 꿈틀거리게 하는 이 시선은 저마다 벼려온 감각의 날인 동시에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밤이기에 분명해지고 단단해지는, 밤이라는 시점이 그려내는 윤곽선이기도 하다.

김미경_Polaris_리넨에 혼합재료_60.3×73cm_2013

그리하여 이 전시에서는 우리 미술 속에서 만나는 밤을 이야기해보자 하였다. 대단한 담론도, 보도기사 같은 시사성도 말고, 그저 흔한 밤.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 밤이 오겠지, 어떤 사람은 마실을 나갈 것이고, 어느 이는 또 홀로 고독하겠지, 나의 밤이 당신의 밤과 같을 리 없지만 그래도 밤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내릴 테지, 이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그래도 각자 다 다른 사연들. 남들 다 똑같은 상황인데 꼭 다르게 받아들이는 누군가가 작가들 아니던가. 평범한 소재인 밤을 말하며, 결국은 작가마다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시선의 끝을 따라가보고자 하였다.

박진아_문탠 01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07_Artist Pension Trust 소장
서동욱_밤-한강유원지-양화지구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1

전시의 첫 장은 '범속한 밤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해가 저문 시각, 도시의 밤, 거리로 나선 발걸음. 어디서 본 듯한 풍경, 나도 한 번쯤 해봤던 것 같은 밤 산책의 장면을 마치 영화의 스틸컷처럼 담았다. 서동욱의 그림은 한강 유원지나 집 앞 골목을 배회하며 마주칠 법한 인물과 거리의 모습이다. 밤이면 촉촉이 살아나는, 그리고 해가 뜨면 피로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바스락거릴 것 같은 사람들이 꼼꼼한 붓터치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비하여 박진아의 「Moontan」 연작은 속필로 애써 비워내려고 한 듯한 그림이다. 분명 색이 다 칠해져 있는데도 도통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밤이다. 공원을 배경으로 그려진 네 점의 작품에는 서로 겹쳐지고 또 슬쩍 비껴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 퍼즐 조각을 찾다 보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그때의 순간성이 강하게 스쳐지나간다.

도윤희_Untitled(Night Blossom)_캔버스에 유채_250×195cm_2016
김기철_Antipode_만화경, 빔프로젝터, 커스텀 소프트웨어_가변크기_2016 (프로그래밍_변지훈)

두 번째 장에서는 밤을 물리적인 시간에서 나아가 '인식이 열리는 문'으로서 고찰한다. 명상적이며 시(詩)적인 작품으로 구성하였는데, 그 중 도윤희의 세 작품은 밤이 슬며시 찾아들어와(「밤은 낮을 지운다」, 2004), 환하게 피어나고(「Night Blossom」, 2016), 다시금 새벽을 맞이하는(「허공을 향하여 문이 열리는 시간」, 2007-08) 시간을 담아낸다. 분명 밤에 대한 작업이지만, 이 '밤'은 공간과 시간, 빛 등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을 묻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한편, 소리조각가 김기철의 「Antipode」은 밤과 낮을 잇는 커다란 만화경이다. 우리나라와 지리상 대척점에 있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라디오 소리를 시각적으로 전환하여, 밤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구체적인 형상을 입혔다. 밤은 곧 낮을 떠올리게 하고, 밤과 낮이 모여 하루를 이룬다. 김미경의 작업은 매일매일의 사색을 담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수많은 생각을 차분하고 꾸준히 쌓아 올린 미니멀한 그림으로, 속에서부터 은근히 색이 배어 나온다. 「Polaris」나 「Yoon Dongju's Sky」 등의 작품명을 보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찾게 되지만, 이 관념 속 하늘이 실제로 보일 리 없으며, 밤 역시 그러할 것이다. 김윤수의 「그 밤들」은 '잊혀지지 않는 마음'이 모여 별자리를 이룬 것이다. 다른 이의 마음을 받아, 울트라 마린 색상으로 그리거나 자수를 놓으며 저마다의 별을 새긴 후, 이 밤들을 모아 전시장에 띄웠다. 2011년부터 시작한 이 작업은 전시 기간 중 미술관을 찾아온 관람객의 마음을 모아 훗날 또 다른 별자리로 나타날 것이다.

김윤수_그 밤_캔버스에 울트라마린 색상 파스텔_27.5×22cm_2015

세 번째 장은 현실을 '낮'이라고 보고, 실제 이면의 것을 '밤'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여 '꿈, 부유의 흔적'을 모았다. 현실의 파편들로 구축되는, 그러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끄집어낸 듯한 이미지들이다. 구현모의 작업은 예측할 수 없는 사물의 조합이 빚어내는 공간이다. "불가능한 것은 사물들의 근접이 아니라, 사물들이 인접할 수 있을 장소이다." 던 푸코의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처럼 조형물들이 뒤얽히고, 엉뚱하고, 이상하게 관계를 맺으며, 뜻밖의 의미구조를 만들어낸다. 이해민선은 '드로잉-설치'를 통하여 무생물의 생태계를 만든다. 그 속에서는 버려진 스티로품 한 조각, 철근 몇 토막 등 결코 주인공이 될 리 없는 변방의 것들이, 마치 늘 이렇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듯, 하잘것없으나 온전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해민선_무생물 주어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6

밤은 지구의 자전으로 생겨난 물리적 운동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더없이 사랑하는 연인일지라도 밤잠을 들 때에는 "내 꿈꿔."라고 속삭이며 돌아누울 수밖에 없으며, 누구도 그 시간의 '홀로 됨'을 대신해 줄 수 없다. 하나의 밤이지만, 모두 다른 밤이다. 이태백과 두보, 노발리스와 보들레르 등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이토록 오래되고, 특수와 보편을 아우를 수 있는 메타포가 달리 있을까. 어쩌면 밤은 태고 적부터 그저 텅 비어있을 뿐, 우리의 경험과 감정, 의식의 이미지로 그 어둠을 오롯이 채워나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이에 밤을 바라보는 시선은 독창성이 아니라 개성이다. 유일할 수가 없는, 열이면 열마다 다 다를 밤이다. 그 밤이 무엇일지, 어디까지일지 참여작가 여덟 명의 손끝에서 저마다의 가장자리를 그려나간다. ■ 김소라

Vol.20160904c | 밤의 가장자리 The Edge of Nigh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