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담아내다

방진태展 / BANGJINTAE / 龐珍泰 / painting   2016_0907 ▶ 2016_0912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130.3×162.2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1002g | 방진태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인사아트센터 GANA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용필로 승화된 산길에서 마주하는 기억과 감정의 표현 ●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단 한 순간의 멈춤도 없듯이 화가는 쉼 없는 변화의 도정 속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대부분은 고통으로, 그리고 매우 드문 찰라의 순간에는 희열을 맛보리라. 창작의 고통과 희열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반비례의 곡선을 그린다. 그럼에도 그들이 '작가'라는 이름으로 '새로움'을 향한 생각과 몸짓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강렬한 자극이어서 라기보다 더디고 더딘 시간의 축적이 시각 경험으로 전환되기 때문이 아닐까?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30×150cm_2016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50×50cm_2016

몇 년 전 작가 방진태의 작품에 대한 평론을 쓴 적이 있다. 한여름 태양이 맹렬하게 타오르듯, 한국화에서는 다소 익숙하지 않던 '감정표현'이라는 개념을 들이대며 패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맹렬하게 떠들던 20대의 젊은 작가는 약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견디며 가을 들판의 곡식처럼 묵직해진 듯하다. 먹의 농담만을 고집하던 그의 화면 속에는 어느새 색이 들어와 있고, 익명의 도시들은 산수에 젖어들었으며, 거친 붓질과 산만하게 흩뿌려진 먹점은 겹과 결을 이루면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티셔츠와 음료수병과 도시 풍경처럼 급변하는 '일상(日常)'를 쫓던 다급한 시선은 어느새 산(山)으로 옮겨와 있다. 그렇지만 '산수-담아내다'라는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산수는 눈에 보이는 사물의 구현에 머물러 있지 않다.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90.9×72.7cm_2016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65.1×90.9cm_2016

일반적인 산수화가 산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그의 산수는 필점(筆點)이나 필선(筆線) 뒤로 자신의 형세를 숨긴 채 얼핏 얼핏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서리 낀 유리창 너머 아스라이 드러나는 형상을 보기 위해 손으로 쓱쓱 문댄 것처럼 작가가 종이에 붓을 대는 순간 그 위로 산의 일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점이 모여 선을 이루듯 붓이 지나간 자취는 길이 되고,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길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때로는 큰 덩이를 이루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꿈틀대는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이들 덩이와 흐름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112.1×775.6cm_2016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60.6×72.7cm_2016

작가의 그림은 산에 오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먼 데서 보는 산은 제각각의 고유한 모습을 지니지만 산 안에 들어서면 그곳에는 바위와 나무와 풀, 그리고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물길이 있을 뿐이다. 이들 바위와 나무와 풀과 물웅덩이와 폭포에 대한 체험이 각각의 산에 대한 하나의 기억으로 축적되고, 그것이 화면 위에서 용필(用筆)을 이루고 있다. 그에게 용필은 단순한 붓의 운용이 아니라 그가 마주한 산의 형세이자 기운이다. 눈을 감고 산길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모든 산길은 누군가의 한 발 한 발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발자국 위에 자신의 것을 더하면서 산길을 간다. 때로는 한곳을 맴돌기도 하고, 정처없는 발걸음이 하염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곳을 걸을 때 우리의 의식은 그 산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추억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슬픔이나 기쁨에, 때로는 어떤 사건에 침잠하곤 한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산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산길을 걸으며 우리의 의식과 몸, 그리고 우리 자신과 산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 듯, 이러한 산길과의 만남은 작가가 체험한 산의 '기운'(氣運)이며, 그것이 그림 안에서 '용필'로 승화되면서 산의 형세를 대신하는 꼴이다. 이것이 작가가 산수를 대하는 현상학적 태도이다. 산의 객관적 형상에 매몰 되지 않고, 주관적 경험 안으로 침전하지도 않으면서, 산과 의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 둘을 자각하는 것, 그 안에서 자신과 세상 사이의 길을 찾으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방진태가 산수를 그리는 이유이다.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70×162.2cm_2015

그래서일까? 산 자체에 매료되었을 때에는 넓고 고른 필선이 겹겹이 쌓이면서 화면 가득 산을 드러내고, 생각이나 추억에 빠져 걸었을 때에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필선 위에서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단색의 색점이 빼곡하게 들어찬 산등성이들이 빽빽하게 필선 위를 채우고 있다.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바위와 폭포, 작은 옹달샘과 가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 돌탑과 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커다란 이야기 속에 작은 에피소드가 무수히 들어 있듯, 산에서 만난 수많은 기억의 파편이 곳곳에 담겨있다. 산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필선 아래에서 엷은 먹빛으로 흐르고 있다. 산길을 걷는 시간의 흐름이 단색의 필선을 따라 가로획으로 표현되었다면, 작가의 감정은 흐린 담묵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린다. 초기의 '감정표현'이 사물에 대한 자신의 느낌 표현에 머무르면서 사물과 무관하게 흩뿌려져 있었다면, '산수-담아내다'에서는 산의 기운과 그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교차하면서 흐르고 있다. 가늘고 여린 물줄기가 많은 산등성이를 지나면서 큰 물길이 되어 넘쳐 흐르듯 단색의 필선 밖으로 흘러내린다.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매 순간 변화하는 자연처럼, 그의 그림 속 산수에는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이 교차하고 있다. 색상이 아닌 농담으로 환원된 색, 갈필의 채색과 묽은 담묵의 흘러내림, 굵은 필선과 짧게 끊어 찍은 색점, 거대한 산과 가늘고 여린 물줄기처럼 강한 대비를 이루는 요소들이 정교하고 세밀한 움직임과 함께 용필의 포진 속에 녹아들면서 역동적이면서도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방진태_산수-담아내다_한지에 채묵_91×130.3cm_2016

자신이 걸어온 산만을 그린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에게 산수는 거대하게 다가오는 자연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몸짓이자 세상에 길을 묻는 하나의 여정이다. 그래서 작가는 거대한 산의 형상보다 그 안에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품고 있는 산의 속살과 마주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그가 끊임없이 산길을 걷는 까닭이자 '용필'에 주목하는 이유이며, 쉼없는 용필 가운데서 자신만의 '골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근거이다. 골법용필이라는 산수화의 오랜 개념을 산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라는 '원(遠)의 자각'과 연결지으며 자신의 삶과 작업으로 연장하고 있는 작가의 진지함이 그의 작품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 변청자

Vol.20160907e | 방진태展 / BANGJINTAE / 龐珍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