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ccato

허상욱展 / HUHSANGWOOK / 許庠旭 / ceramic   2016_0909 ▶ 2016_1108 / 주말,공휴일 휴관

허상욱_staccato_적점토, 화장토, 물레성형_2016

초대일시 / 2016_0920_화요일_05:00pm

후원 / 한국예탁결제원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 주말,공휴일 사전 예약시 관람 가능

KSD갤러리 KSD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4길 23 한국예탁결제원 1층 Tel. +82.2.3774.3314 www.ksdgallery.kr

스타카토, 감각의 변주 ● 기억은 심상으로 남는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상(像)이다. 한번 저장된 기억이 마음속에서 재생을 거듭하다보면 조금씩 깎여 나가거나, 이내 다른 기억이 덧씌워져 흐릿해지기도, 새로운 기억들과 뒤섞여 변질되기도 한다. 더 이상 지각을 통해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기억은 이전에 감각한 것들의 흔적에 가깝다. 때로는 이전에 경험한 것과 동일한 자극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서 기억된 감각이 또렷하게 환기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음악이 그 때 그 장소의 공기와 햇살의 감촉을 되살린다거나, 거리에서 지나친 낯선 이의 향기가 갑자기 몸 속 깊이 내장을 저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파편화된 감각흔(感覺痕)이 순간적으로 소생된 것으로, 어디까지나 실체적이지는 않다. 허상욱의 분청은 이러한 감각흔을 사물이나 현상, 즉 실체를 가진 것으로 되살려 낸다. 작가 개인의 기억과 분청이라는 형식의 원형을 참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중첩된 감각 경험에 몸을 만들어 준다. 작업실 앞에 활짝 핀 모란, 언젠가 눈이 마주친 물고기, 매일 다른 공기,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벗과 나눈 차, 조선시대 사기장이 분청의 마티에르와 주고받았던 대화들, 흙 속을 헤매던 손끝의 감촉.. 이런 것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오롯이 살아나는 것이다.

허상욱_Staccato_적점토, 화장토, 타렴성형_55×44×48cm_2016

감각의 흔적 ● 박지(剝地)는 허상욱의 분청 작업을 표상하는 조형 언어다. 긁고, 덮고, 다시 깎고, 또 바르고, 다시 긁어내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회청빛 태토 위로 겹겹이 쌓인 흔적은 특유의 깊은 질감과 비정형 패턴을 만들어 낸다. 중첩의 손놀림과 그 자취들은 미리 설정한 궤도의 결과도, 어떤 대상의 시각적 재현물도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고유한 경험 속에 저장된 내밀한 감각(들)을 작동시켜 찾아낸 리듬이다. ● 이러한 작용은 리처드 세넷(R. Sennett)의 "손가락 끝에 있는 진실성" 논의에 기대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현악기로 바른 음을 내기 위해서는 눈으로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위치를 손끝으로 정확히 짚어내야 한다. 현악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우리는 손가락으로 현을 더듬어 가며 내는 소리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고, 소리는 현과 닿은 손끝의 촉감과 연동해서 기억된다. 손끝의 감각이 정확한 촉지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1) ● 마찬가지로, 긁어내는 동작이 일어날 때 손끝에 닿는 느낌, 압력과 깊이, 그 리듬감은 다음 순간의 손놀림, 즉 이어지는 박지의 형질을 규정하고, 그 형질 속에는 작가의 손끝 감각이 저장된다. 현 위에 닿은 "손끝의 촉감이 소리를 좌우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이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작가는 흙이나 화장토와 계속해서 감각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이 과정에서 작품의 표면은 때로는 규칙적인, 때로는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빼곡히 채워지게 된다. 그렇게 작가의 감각흔은 작품의 질감, 형태, 두께, 분위기를 통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허상욱_정물_적점토, 화장토, 도판성형_43×43×6cm_2016
허상욱_정물_적점토, 화장토, 도판성형_43×43×6cm_2016
허상욱_정물_적점토, 화장토, 도판성형_43×43×6cm_2016

스타카토 ● 허상욱의 작업에서 기억은 두 가지 층위로 구체화된다. 기억의 대상은 경험한 내용을 표상하는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 구체화되는 한편, 물성과의 대화를 기억하는 주체로서 감각, 즉 손의 기억은 반복, 중첩, 짧은 움직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몸을 얻는다. 「스타카토」는 이 형식적 층위를 잘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스타카토」 연작은 박지의 흔적들이 서로 중첩하며 만들어 내는 리듬을 공통분모로 한다. 15세기 조선시대에 제작된 분청인화원권문장군(粉靑印花圓圈文장군)2)에 대한 오마주로, 작가는 원본 유물의 특징인 인화문으로 새긴 작은 동그라미 띠 문양을 인화 대신 박지기법으로 촘촘히 줄지어 긁어내 표현했다. 이 때 작은 패턴을 조밀하게 긁어내기 위한 손놀림은 반복적이지만 연속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작가는 스타카토를 연주한다. ● '스타카토(staccato)'는 "떨어져 있는(detached)" 또는 "분리하다(separate)"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우리에게는 '한 음 한 음씩 또렷하게 끊어 연주하라'는 음악 용어로 익숙하다. 악보에서는 음표 위에 점 모양의 기호로 표시된다. 넓은 면이나 드로잉을 박지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 평소 작업과 달리 화장토를 점처럼 끊어 긁어낸 이번 작업은, 박지 패턴의 시각 형식(결과), 긁어내는 동작과 손끝 감각 사이의 리듬(과정), 이에 덧붙이자면 화장토를 긁어낼 때 나는 실제 소리까지 전부, 스타카토로 표상할 수 있다. ● 피아노 연주에서 스타카토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손가락으로만 음을 짧고 날카롭게 튕겨낼 수도 있고, 손목이나 팔 전체의 운동으로 좀 더 눌러 치듯이 무게감을 표현하거나, 어깨부터 팔 전체의 힘을 빼고 건반의 반동을 살려 힘 있게 연주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방식을 섞어서, 즉 손가락, 손목, 팔, 어깨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조절하며 보다 섬세한 리듬과 풍부한 질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스타카토」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종류의 질감과 리듬이 포개어진다. 긁어낸 태토의 표면 위로 바른 뽀얀 화장토, 거칠게 긁어낸 자국, 그것의 어렴풋한 흔적만 남기고 또 다시 표면을 덮는 텁텁한 화장토, 이따금씩 더해지는 안료, 다시 날카롭게 긁어낸 문양, 그 사이로 살짝 비치는 태토 등, 각각의 마티에르와 손놀림의 흔적은 하나의 겹으로 병합되는 대신, 안단테(andante)로 알레그로(allegro)로, 각기 돌출하고 스며들며 변주한다. 손끝이 이끄는 대로 생성된 즉흥 패턴에서 기하학 문양, 텍스처 그 자체, 정물의 희미한 흔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손끝을 떠난 감각의 상들은 오브제의 표면에 남아 서로 조응한다.

허상욱_迹(적)_적점토, 화장토, 물레성형_2016

정물(情物)의 정물(靜物) ● 한편, 허상욱의 분청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요소인 박지 드로잉은 작가가 기억하는 대상들을 담아낸다. 드로잉 작업에서 작가는 손끝보다는 눈으로 포착한 '정물(情物)'을 작품에 영사하는데, 감각의 기억이 물리적 형질과 조응하며 작품 그 자체가 된 「스타카토」와는 달리 '정물' 이미지는 작가가 경험한 것에 대한 기억, 곧 기억의 내용으로서 실체를 갖게 된다. 제비꽃, 연꽃, 모란, 동백꽃, 차꽃, 수선화, 솜방망이꽃, 작약으로 가득한 정원의 연못에서는 물고기가 노닐고, 그 뒤로는 큼지막한 모란꽃이 만개해 있다. 작가에게 모란은 분청 작업의 원형이자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궁극의 존재로, 대표적 모티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정물'은 애착을 갖거나 특별한 의미를 두는 대상을 집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처럼 주로 들꽃, 물고기, 바람, 반쯤 열린 창문 밖의 풍경처럼 작가가 평소 생활에서 접하고 느끼는 풍경이나 자연물을 '정물'로 삼아오다가,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작업실 풍경 속 사물들을 원형 프레임 안에 배치한 「정물(靜物)」 연작을 새롭게 선보인다. 다기가 놓인 테이블, 꽃병, 백자 항아리 등의 기물은 메멘토 모리가 아니라 살림, 즉 살게 하는 것들이다.3) 이들은 작가의 삶 속에서 그러했듯, 화장토 위에서, 동그란 접시 속에서, 누군가의 삶 속에서 생명력을 품은 채, '언제까지나' 살아 있게 된다. ● 벽에 걸 수 있는 접시, 거실이나 정원에 놓고 감상하거나 걸터앉아 쉴 수 있는 스툴형 오브제, 소중한 이와 나누는 시간에 온기를 더해 줄 찻잔, 모란의 짙은 생명의 기운을 전달해 줄 도벽(陶甓). 손 안에 감싸 쥘 수 있는 식기부터 공간의 에너지를 지배하는 오브제에 이르는 다양한 스케일의 작품에 둘러싸여, 우리는 온몸의 감각을 열고 작가의 기억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간다. ■ 문유진

1) 세넷은 "현을 잡고 만지는 행위에서 손끝은, 손끝에 닿는 촉감을 기점으로 손놀림 방법을 거꾸로 찾아가는 동작을 주도"하는데, 이 원리는 "결과(소리)로부터 원인(촉감)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소리를 통해 기억한 촉지의 감각이 정확한 손놀림을 가능하게 하고, 그 결과로 난 정확한 소리는 또다시 손끝의 감각으로 기억되는 순환이 일어나는 셈이다. 리처드 세넷, 김홍식 역, 『장인』(21세기북스, 2010), pp. 253-262 참조. 2) 보물 제1423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3) 프랑스어로 정물은 '죽은 자연 nature morte', 영어로는 '움직이지 않는 생명 still-life'이다. 유럽의 정물화 전통에서 정물은 문자 그대로 죽음의 의미를 내포하며, 정물화는 일반적으로 인생무상(vanitas)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반면, 진기한 옛 그릇과 과일이나 꽃 등을 함께 그리는 중국과 조선의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는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길상의 성격을 지녔다. 「정물」 연작에 등장하는 다기나 꽃병 같은 '정물情物'들은 편안하고 즐거운 순간을 표상하는 기물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존재들이다.

Vol.20160909f | 허상욱展 / HUHSANGWOOK / 許庠旭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