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락지 Submerged Land

이세준展 / LEESEJUN / 李世準 / painting   2016_0906 ▶ 2016_0925 / 월요일, 추석 당일 휴관

이세준_포락지 Submerged Land展_케이크갤러리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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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906_화요일_06:00pm

기획 / 박지아 디자인 / 물질과 비물질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추석 당일 휴관

케이크갤러리 Cake gallery 서울 중구 마장로3길 28(황학동 59번지) 솔로몬빌딩 6층 Tel. +82.2.2233.7317 www.cakegallery.kr

포락지에서1) ● "'만약'으로 시작되는 일들을, ..., 이 우주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어떻게 해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불가능한 일들을 나는 계속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양자론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 계속, 나는 쉬지 않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우주에서 사는 나를 위해서... 그 가능성을 위해서."2) 작가는 지난 몇 달간 중국에 머무르며, 낯설고 황량한 동네를 걷고 또 걸었다. 그는 그곳에서 여느 때처럼 이미지를 수집한다. 폐기물과 폐건물, 영원성을 꿈꾸며 만들어졌을 조각작품의 부산물, 사회 속에서 이름 없이 존재하는 거지, 빗물에 씻겨 금세 사라질 것 같은 길가의 무덤 등 그의 시선이 멈춘 자리에는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것들이 있다. 한 때는 의미였던 것들이자, 아직 의미화되지 않고 일상을 부유하는 나머지들 속에서 이세준은 꿈틀거리는 상상을 시작한다. 이번 전시 『포락지』는 '이미 일어난 것의 아직 일어나지 않음 Noch-Nicht des Schon'3)의 공간으로, 정지된 장면 속에 함축된 현존을 해방시키는 '만약'의 이미지들을 호출한다.

이세준_비명소리를 따라서 Along the sound of screams_캔버스에 유채_130×100cm_2016
이세준_그 곳에 입맞추지 마세요 Do not kiss it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16
이세준_물고기 The fish_캔버스에 유채_50×75cm_2016

폐트럭이 있던 자리에는 비명소리를 따라서 가라앉고 있는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버려진 조형물이 있던 자리에는 추격씬이 벌어지고 있다. 속을 내보이며 찢어진 쇼파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있고, 대야 안의 물고기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도마뱀으로 인해 시선을 빼앗긴다. 위기에 처한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것처럼 이세준은 회화를 보는 시선이 흩어지도록 일종의 '덫'을 놓는다. 여기에는 도마뱀을 비롯해 해골의 모습, 절단된 얼굴(혹은 부유하는 시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 욕망의 자리에서 떼어온 기호들이 등장한다. 타자의 침입은 화면의 정상적인 균형을 깨고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서 어디까지 실재하는 풍경이고 환상의 풍경인지, 어디가 중심이고 주변인지, 이 모호한 그림을 추적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는 그림의 안과 밖을 모호하게 만드는 회화적 '덫'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피어오르는 채도 높은 색, 흩뿌려지고 흘러내리는 붓 자국, 빈 구멍, 잘려지고 부유하는 배경 등 이질적이고 불손한 색감과 질감은 정지된 화면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세준_포락지 Submerged Land展_케이크갤러리_2016

작가는 앞서 언급한 '덫'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는 작가 스스로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그는 회화 안에 출현하고 뿌려지는 표현들을 통해 고정된 하나의 '언어', '의미'를 '순화'시킨다. 이미지의 감염은 곧 순화인 것이다. 감염된 곳은 깨끗하게 씻어내고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세준의 회화는 감염을 통해 비로소 순화된 이미지를 획득한다. '덫'으로 채워진 자리에는 하나의 의미 연관 속에 묶이지 않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공전 궤도를 이탈한 채 부유하는 포락지에서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징후들을 발견할 뿐이다. 죽음이 오로지 삶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 이미-사라진 것 속이 아니라 아직-사라지지 않은 것 속에서, 그 긴장 속에서, 이세준은 자신이 인식한 세계의 구조와 관계를 회화 안에 담아낸다.

이세준_단어의 사이로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16

감염이 끝나는 지점, 그러니까 '완성'이라고 판단해 붓을 내려놓는 것은 불안하고 두려운 순간일 것이다. 작가는 그 두려움을 계속해서 미루는 충동의 그리기를 통해 욕망의 자리를 대신한다. 일상의 사건부터 우주 이론에 이르기까지 호기심 가득한 관찰자이자 수집가인 그는 자신이 이해하려고 애쓰는 여기-세계를 화면 안에 온전히 담아내는 것을 번번이 실패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은 끝끝내 멈출 수 없는 붓질로 나아간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결여가 생기는 공간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채우려는 발화이다. 이렇게 의미를 유보하는 붓질은 이세준의 회화를 계속 미끄러지게 하고, '드물게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결국 그림 앞에서 온전히 가능한 일은 명확한 의미도, 이야기도, 교훈도, 아닌 그저 우리 앞에 놓인 회화 그대로를 따라 상상하는 것 뿐이다. ● 그동안 이세준은 큰 화면 가득 직렬적으로 연결된 복잡한 회화의 구조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화면의 구조와 관계를 조금 내려두고, 미시적 화면 안의 조형성을 실험한 병렬적인 회화를 느슨하게 선보인다. 신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형식은 페인팅이지만, 마음은 드로잉에 가깝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완성된 그림을 선보이지만, 아직 미완의 그림일 수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장면들은 유기적인 회화 안에서 작은 액자소설로 등장하거나,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 지 모른다. 타자의 침입과 감염으로 잠겨버린 포락지에서 이세준은 잠시 쉼표를 찍고 또 다른 출발을 준비한다. ■ 박지아

1) '포락지'는 강물이나 냇물에 의해 가라앉아 기존의 소유권과 사용가치를 잃어버린 땅을 뜻하는 부동산 용어이다. 이 땅은 매개되는 환경에 따라 새로운 생태계의 터전이 되기도, 다시 수면 위의 땅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제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공전궤도를 이탈한 채 떠다나는 '포락지'의 의미를 환유한다. 2) 김연수. 『원더보이』, 문학동네, 2012, p.122. 3) 한병철, 김태환 옮김, 『시간의 향기』, 문학과지성사, 2013, p. 27.

Vol.20160912g | 이세준展 / LEESEJUN / 李世準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