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과 기억을 통한 사유

방인희展 / BANGINHEE / 方寅姬 / printing   2016_0921 ▶ 2016_0927

방인희_흔적과 기억을 통한 사유展_갤러리 그림손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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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희 홈페이지_www.banginhee.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발췌된 장면 ● 방인희는 옷과 기억을 병치시킨 이미지를 통하여 여성의 삶과 욕망을 '기록'한다. 그녀에게 옷은 삶의 연장(instrument)이자 확장(extension)이다. 문명사회에서 옷은 몸의 보호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자 수단이다. 모더니즘 미술은 사물을 매개체로 이용해 현실을 예술이라는 낯선 장소와 상황 속으로 잠입하게 했다. 이미 꼴라주, 아상블라주 그리고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통하여 아방가르드 미술은 이상향을 재현하던 관습과 결별을 원했다. 오늘날 작가 개인의 기억, 흔적, 경험이 창작의 소재, 질료,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새로운 발견은 아니다. 한편 방인희의 초기작에서 쉽게 포착되는 옷과 관련된 기억, 몸과 옷의 관계, 옷에 묻은 얼룩과 주름 등은 오랫동안 사용된 사물에 기입된 흔적으로 감정의 변화를 유발시킨다. 당시 작가는 낡고 늘어난 스웨터와 자신을 동일시했다고 전한다.

방인희_스트라이프 셔츠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75×112cm_2016
방인희_드레스16-2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70×112cm_2016
방인희_그린셔츠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65×110cm_2016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물을 통하여 존재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하이데거는 고흐가 그린 구두를 미적 체험으로 바라보는 대신 "진리"를 찾고자 했다. 그런데 고전 미학에 따르면 미가 곧 진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탐구하는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경험, 즉 실존이다. 고전 미학은 시각적 결과의 완결성만을 진리의 규준으로 삼는다면, 실존이란 결국 더 이상 축소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존재를 나타내는 단위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기 전에 삶으로 내던져진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삶의 경험이 전제되어야 한다. 고흐가 그린 구두는 패션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오로지 기능을 위하여 제작된 도구이다. 방인희가 말한 평범한 삶을 그대로 반영한 옷과 고흐의 구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방인희는 삶의 그림자 위에 아직은 가려진 욕망의 잔상을 덧붙인다. 그녀는 사물을 매개로 실존은 재현하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어떤 세계, 시대, 상태로의 비행을 꿈꾸었다.

방인희_드레스16-2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70×110cm_2016
방인희_드레스16-1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75×110cm_2016

서서히 심연에 가라앉은 욕망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작업의 방향은 자신이 소유한 옷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여배우의 드레스(Black Dress, 2010)를 차용하면서부터 변곡점을 만난다. 오늘날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는 누구의 소유랄 것도 없이 가장 지배적인 시각문화의 현상이다. 방인희는 세속적인 욕망의 표상인 여배우의 드레스를 훔친 후 여배우를 도려내어 드레스만을 이미지로 사용한다. 그것은 가상적이나마 욕망의 공격성을 드러낸 과정이었다. 예술은 이처럼 허구가 갖는 힘임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일상을 위한 의복은 사회적 조건과 생존의 가치에 방점을 둔다면, (특히 동시대 한국 문화권에서) 여배우의 드레스는 상류사회를 표상하고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이자 페티시와 다름없다. 만약에 예술이 페티시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만을 재현하는 데에 몰두한다면, 그것이 예술로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를 질문해보자. 물론 이분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나누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예술로서의 가치는 사회문화적 조건 안에서 생산된다는 점이다. 유독 두께가 느껴지는 검정색의 겹으로 채워진 드레스의 모습은 백조의 알터에고인 흑조를 연상시킨다. 방인희는 한동안 드레스 훔치기에 몰두했다. 많은 문제들이 나타났다. 작가가 스스로의 욕망을 마주보는 순간이 누적되었을 터이고, 자신의 것이 아닌 이미지를 훔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도 포함되었다. 여배우의 드레스는 앞서 설명했듯이 실존하지만 결국 삶의 경험이 부재하는 '순수한 이미지'로서의 사물이기에 "Black Dress"는 결국 이미지의 중첩으로 완성된 욕망의 검은 그림자가 되었다.

방인희_그녀의 기억16-3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85×110cm_2016
방인희_그녀의 기억 16-4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85×112cm_2016
방인희_그녀의 기억 16-1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70×112cm_2016

이후 그녀가 발견한 대상은 고전회화 속 여신과 관련된 형상들이다. 작가는 이 형상들을 도상학적 의미로 재해석하기보다 가장 찬란한 순간의 빛과 공기의 흐름을 포착하는 듯하다. 이러한 느낌은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과 몸의 동세를 나타낸 흥미로운 주름들에 의하여 증폭된다. 그녀가 발췌한 명화의 장면은 순풍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여신(보티첼리), 신고전주의 양식을 계승한 프랑스 화가 부게로(A. Bouguereau)의 관습화된 여인의 형상, 푸시케에게 납치되는 여인에 관한 신화적 장면 등은 시대착오적인 양식의 이미지들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발췌된 장면들이 그대로 화면 위에 프린트된 것은 아니다. 방인희 작업의 핵심 중 하나는 여성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여성과 관련된 이미지를 동시대적 판화로 완성하는 데에 있다. 후자를 위해서는 각 이미지에 부합하는 종이를 선택해야만 한다. 종이의 두께, 질감, 강도 등은 이미지 뒤에 숨은 판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또한 그녀의 작업이 갖는 특정적 성격은 무엇보다 여성의 시선에 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여성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여성을 대표하는 표상인 의복과 그것의 이미지를 사용해 가깝게는 자신의 어머니의 기억부터 고전미술까지를 가로질러간다.

방인희_검은 드레스10_디지털 프린트에 콜라그래피_185×112cm_2010

「그녀의 기억」 연작(2016)은 초기작이 품었던 실존의 가치와 발췌된 장면을 병치하여 개인의 기억이라는 바탕 위에 초월적 세계를 겹친 작업이다. 사실 현재는 점차 가상적으로 변하는 중이고 허구가 현실을 이끄는 주체처럼 보인다. 방인희는 동시대 판화에 관하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조형적 실험을 통하여 그 확장 가능성을 묻고 있다. 발췌의 미학은 포스트모던 미술의 실험이 현실의 흔적(다소 추상적인)과 가상(허구)에서 발췌한 이미지 그리고 다양한 관계를 지시하는 네트의 관계를 다루는 혼합적 형식과 그 궤를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설치에 있어서 직각으로 굴절된 프레임과 이에 따라 대상의 일부를 다시 한 번 '발췌'함으로써 발생한 틈새는 또 다른 프레임을 생성시켜 작업 간의 관계는 물론이고 보는 방식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이 같은 설치 유형은 시점, 프레임의 형태, 전시 장소의 조건과 상황을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태로 변주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 같다. ■ 정현

Vol.20160920g | 방인희展 / BANGINHEE / 方寅姬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