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수展 / PAEKYOUNGSU / 白榮洙 / painting   2016_0923 ▶ 2016_1023 / 월,공휴일 휴관

백영수_말 Horse_상자, 라벨, 종이 꼴라주_75×95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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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923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6길 15(통의동 33번지)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놀이정신이 깃든 무심(無心)의 경지 ● 백영수(1922- )는 한국 미술계의 산 증인이다. 올해 95세인 그는 한묵(1914- ), 김병기(1916- ), 장리석(1916- ) 등과 함께 백세를 바라보는 최고령 미술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백영수가 차지하는 위상은 신사실파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 1947년에 창립한 이 그룹은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규상, 이중섭, 장욱진 등등의 회원으로 이루어졌으며, '새로운 사실을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해방 후 최초로 추상적 경향의 화풍을 추구해 나갔다. 이 그룹은 같은 해에 화신화랑에서 창립전을, 1949년에 동화화랑에서 2회전을, 그리고 6. 25 전쟁 중인 1952년에 부산 광복동에 위치한 국립박물관 화랑에서 3회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회원들의 전체적인 화풍은 유영국과 이규상을 제외하고 완전한 추상이라기보다는 반추상적인 형태를 보여, 완전한 추상이 나타나는 1950년대 후반의 앵포르멜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격정적인 화풍을 지닌 앵포르멜과는 달리 대체로 서정적인 추상의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한국 추상회화에 형성과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 이 신사실파 그룹의 회원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세대이다. 이는 전후 앵포르멜 세대가 1950년대 후반에 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받아들여 토착화한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념을 지닌 전위그룹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감수성의 결집체적 성격이 짙었다.

백영수_모로코 풍경 Landscape of Morocco_상자 꼴라주_55.5×77.5cm_2016
백영수_남과 여 Man and woman_보드에 스틱, 펜, 색종이_18×18cm_2016
백영수_나르는 모자 Flying mother and child_보드에 색종이, 펜_18×18cm_2016

백영수는 1922년에 수원에서 태어나 1940년에 일본 오사카미술학교에 입학, 사이토요리 선생에게 유화를 배웠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어머니와 함께 귀국, 목포고등여학교와 목포중학교의 미술교사로 근무하는가 하면, 1946년 약관 25세의 나이에 조선대학교 총장으로부터 미술과 창설을 의뢰받는 등 남도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러나 이 무렵의 화단활동은 타인들의 질시를 받아 젊은 나이에 삶에 대한 좌절과 회의를 느낀 위기감으로 점철되었다고 한다. ● 백영수가 쓴 회고록을 읽다보면 해방공간에서 6. 25동란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이 땅의 문화예술인들이 겪지 않으면 안 됐던 고뇌가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6. 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민족의 분열을 가져온 좌우 이념의 대립과 경제적 궁핍, 전쟁시기의 혼란과 이로 인한 삶과 죽음 등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둘러싼 투쟁이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과 궁핍, 실존적 고뇌 속에서도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낭만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삶에 대한 뜨거운 긍정이 있었다. ● 하루 뒤의 운명을 점칠 수 없는 전쟁 상황에서도 명동에 모인 예술인들은 ‘동방살롱’을 비롯한 다방과 주점을 오가며 예술을 논하고 철학을 이야기했다. 그 무렵의 다방은 화가를 비롯하여 소설가, 시인, 연극인, 무용가, 음악가, 언론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보여 교류를 하고 서로 일거리를 알선해 주는 집합장이었다. 미술의 경우 여기서 신문 삽화와 잡지의 표지화 등이 의뢰되었으며, 그것은 작가로서 삶을 영위하는 주된 수입원이기도 했다. 백영수는 이 시기에 김환기, 이중섭 등과 함께 삽화를 그리는 일을 많이 했는데, 삽화가로서 이러한 그의 재능은 60년대 동화책의 삽화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영수_가족 Family_캔버스에 유채_89×116cm_1984
백영수_창가의 모자 Mother and child by the window_캔버스에 유채_73×60cm_1988

백영수는 광주의 생활을 끝내고 1947년 서울로 입성한 후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거장으로 이름을 남긴 많은 작가들과 교분을 쌓았다. 이응로, 남관, 이쾌대,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장욱진, 윤효중 등과의 교유가 그것이다. 특히 1950년에 『백영수 미술개론』을 저술하는 등 미술교육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47년에는 약관 26세에 도상봉, 박영선, 이응로, 박고석, 김환기, 이마동, 이상범 등과 함께 제1회 국전인 조선미술전의 심사를 맡는 등 주류 미술계의 일원으로서 많은 활동을 보여주었다. ● 당시 명동을 중심으로 교유한 문화예술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백영수는 소년과 같은 용모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작가 본인의 진술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즉 외향적이라기보다는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사색적이며 명상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 호앙 미로와 조르쥬 브라크의 영향을 받은 백영수는 70여년에 걸친 작품활동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담백한 필치와 절제된 구도, 단순화된 화면에 담아왔다. 어머니에 대한 향수 내지는 여성에 대한 찬미는 여성친화적인 백영수의 회화세계를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거기에 동심의 세계가 곁들여진다. 광포(狂暴)하고 무례한 것에 대한 극심한 혐오는 그 반대급부로서 섬세하고 연약한 미감을 낳은 주요인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인물상의 특징은 가로로 비스듬히 기울인 얼굴인데, 이는 전쟁 중에 본 한 어린이의 모습에서 받은 깊은 인상에서 기인한 것이다. ● 그의 회고에 의하면, 6. 25 전쟁 중 낙동강 하류지역으로 피난을 갔는데, 한 초가집 앞에서 예닐곱 살 된 어린이가 힘에 겨워 고개를 기울이고 벽에 기댄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모습이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것이 바로 계란 모양의 갸름한 얼굴인 것이다. 지체(肢體)가 없거나, 아니면 기형일 정도로 단순화된 인물상은 단색조의 배경을 바탕으로 마치 동화의 세계처럼 천진무구한 분위기를 낳는데 일조하고 있다. 타원형의 얼굴에 가는 선만으로 표현된 눈, 코, 입은 역시 단순하게 표현된 집, 나무, 새와 어울려 절제되고 단순한 화면효과를 낳고 있다.

백영수_나르는 모자 Flying mother and child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1998
백영수_귀로 Way back home_캔버스에 유채_200×360cm_2008

70년대에 어머니와 아이를 소재로 그린 백영수의 그림들에서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눈에 띄어 흥미롭다.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에 연결된 어머니의 긴 목과 몸통이 마치 동네 한 복판을 관통하는 길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화면에는 마을을 상징하는 집과 나무, 해 등이 간략한 선으로 단순하게 표현돼 있어 평화롭고 안정된 느낌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 무렵은 백영수가 가족과 함께 도불(1977)을 결심, 파리의 요미우리아트센터에 전속작가가 된 시점이었다. 갖은 난관 끝에 세계 미술의 중심에서 성공을 거둔 백영수는 100여 회에 이르는 전시경력이 말해주듯이,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나,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와 질병으로 인해 참담한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매사에 낙관적인 그의 성격은 이러한 온갖 고통과 난관을 극복하고 천수를 누리며 오늘도 그림에 정진하고 있다.

백영수_정물이 있는 모자 Mother and child with still life_캔버스에 유채_33×41cm_2011
백영수_정오 Midday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2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에 백영수는 마치 어린이처럼 더욱 천진난만한 세계에 빠져있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그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초월한 경지를 보여준다. 한 마디로 놀이의 세계에 푹 빠져 이해를 초월한 탈속의 세계에 도달한 듯 하다. 종이박스를 펼쳐 놓고 영수증과 같은 일상적 사물을 콜라주 하는가 하면, 얇은 나무 막대를 잘라 서 있는 남자상을 만들기도 한다. 화면은 아주 단순해져 미니멀한 추상을 연상시키는 것도 있고 검정색 종이에 흰 펜으로 끄적여 게 한 마리를 그려놓기도 한다. 이제는 거칠 것 없이 붓 가는 대로 그리면 무심한 드로잉이 탄생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빨강, 파랑, 노랑, 녹색 등 몇 가지의 색 펜으로 사각형 가장자리를 뺑 둘러 점을 찍은 작품은 여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무심의 경지는 아마 그처럼 인생 경륜의 극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면 얻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무심의 경지야 말로 백영수가 70여 년의 화업을 통해 체득한 달관과 체념의 결과일 것이다. ■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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