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hole Gravity of Painting, Summoned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   2016_0924 ▶ 2016_1204 / 화요일 휴관

유근택_Growing room_한지에 먹, 호분_240×20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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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홈페이지_www.geuntaek.com  인스타그램_@yoogeuntaek

강연회 / 2016_0924_토요일_02:00pm_B1

협력 / gallery21yo-j 후원 /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화요일 휴관

타마미술대학미술관 多摩美術大学美術館 Tama Art University Museum 東京都多摩市落合1-33-1 Tel. +81.42.357.1251 www.tamabi.ac.jp/museum

시간의 창을 통해서 자아와 만물은 호흡을 나눈다 ● 우리 미술관이 아직 51세의 현역 화가로, 그것도 일본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외국인 화가를 위해서 모든 전시실을 개방하고 개인전을 갖는 것은 말 그대로 이례적인 일이다. ● 특수한 사정이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16년 전, 아직 미술관 일에 관여하지 않은 필자와 이미 베테랑 학예원이었던 고바야시 히로미치군은 각각 독자적인 여정에서 찾은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에서 한 젊은 화가의 작품을 깊이 기억에 새겼으며,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이 화가의 놀라운 전개를 쫓아 왔다. 두 사람이 가슴 속에 깊이 숨기고 있었던 화가의 이름이 사실은 똑같은 유근택이었음을 알고 놀란 것은,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에서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한 것 또한 우연히 3년 전에 나눈 대화에서였다. 「유근택 개인전」의 구상은 그 시점에서 사실상 시작된 것이다.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면, 이것이 유일한 특수 사정이라 할 수 있다.

유근택_Old Giant_한지에 먹, 호분, 템페라_140×130cm_2012_collection Kim Tae Sic

유명하기 때문도, 시대의 동향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도,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배려 때문도 아니고, 또 가장 먼저 고려했을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라는 관점마저도 결국에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그저 오늘 날의 사말(些末)해지고 쇠약해가는 세계 예술계에 있어서 이만큼 전폭적인 에너지와 정신력으로 회화의 영야(領野)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대기(大器)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일본 미술계에 알리고 싶다는 그 일념으로 이 개인전이 기획된 것이다. 그 진정(眞情)에 화가도 진실하게 응해 주었다. 우리들의 큰 기쁨이며, 자랑이다.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소환(召喚)되는 회화의 전량(全量)」이라는 조금 분발한 느낌을 주는 서브타이틀이다. ● 물론 회화의 전량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찾아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전량」이라는 레토릭(rhetoric)이 의미를 갖는다. 구구한 양식, 기법, 주제, 사회적 관심 등등 어느것에 특화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또한 인류가 경험한 회화의 모든 국면과 아직 보이지 않는 영역과도 내적 필요에 응하고 결단력있게 불러들이겠다고 의욕(意欲)하고 멈추지 않는 자세, 그런 자세를 가진 매우 드문 사람만이 「회화의 전량」이라는 불가능한 일에 마음을 열고 있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유근택_Beginning of the World_한지에 먹, 호분_200×212cm_2009

유근택은 서울의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배웠다. 동양화는 중국 유래의 필묵의 기술을 기본으로 하는 그림이며 한국에서는 「국화(國畵)」로 정착되어 왔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보면 기법상으로도 주제 선택의 면에서도 서양화와 다른 전통적인 분야이며, 나쁘게 말하면 수구파의 분야로도 평가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피상적인 일반론을 버리고 유근택의 작품을 직시한다면, 유근택은 동양화과에서 배우고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17세기 수묵 화가들에게 깊은 공감을 갖고 있는 것이 그의 가장 현대적인 양식의 작품에 얼마만큼이나 힘차게 밑 받쳐 주고 있는지 알 것이다. 그 것만으로도, 유근택의 경력은 근본없이 떠돌기 쉬운 동아시아의 예술가들에게 귀중한 교훈이 되겠지만, 그의 진짜 대단한 점은 그 이후에 있었다. ● 어떤 화가도 「회화」라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이끌려 커리어(career)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은 어린 시절의 환경 속에서 익힌 로컬(local)한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성장과 함께 다양한 언어의 존재와 그 배경의 이문화에 식견을 넓혀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화라는 언어도 출발점은 반드시 로컬한 환경에 있다. 그러나 그 앞으로 나아가서 다양한 이질적인 회화 방식과 회화 사상이 지리적·역사적인 저변 속에 존재하고, 유혹을 멈추지 않는 것을 알려고 하는 여부는 개별 화가들의 도량(度量)에 따른다. 동양화라고 하는 로컬한 언어에서 출발한 유근택이 화업(畵業)을 전개하면서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그러한 도량의 매우 드문 크기였다.

유근택_Floor-another Garden_한지에 먹, 호분, 과슈_148×547cm_2004

서양화의 데생이 그리는 대상에 따르는 것에 대해서, 동양화의 붓 놀림은 오히려 화가의 신체와 호흡에 충실하려고 한다. 유근택이 동양화에서 익힌 것은 무엇을 그리더라도 붓과 대상과의 사이에서 같이 나누어야 하는 호흡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원칙이며, 예술 사상과 세계관의 근간에까지 미치는 이 원리를 그는 그 뒤에도 결코 잃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양적 사상을 중시하는 화가들이 대체로 손 재주와 주관(主觀)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과는 달리, 그는 어떤 서양화계의 사실주의 화가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탐욕과 호기심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붓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원칙성 없이 대상에 의존하고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화가의 호흡에 맞는 것, 맞지 않는(어지럽히는)것, 고양시키는 것, 위화감을 가져오는 것 등이 시각의 다양한 유열(愉悅), 모순, 이상함의 형상이 되어 그를 유혹했을 것이다. 동양화의 전통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아니 서양화 계열의 현대 회화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엄청난 사물과 기묘한 구상이 평범과 이상과 모순을 동시에 내포하고 화면에 몰려들어왔다. 방의 안과 밖, 어둠과 빛, 움직이고 멈추지 않는 것과 순간의 충격, 생(生)의 증거와 소멸의 울림, 비극의 전조(前兆)와 우주적 무관심, 극소(極小) 또는 극대(極大)의 사물과 일상의 스케일, 정립(定立)하는 것과 도립(倒立)한 상 등등, 열거하면 한이 없다. 그는 그것들의 모든 것에 주의 깊게 응시하고 거기에 숨어 있는 유열(愉悅), 모순, 이상함의 형상에 회화적인 표현을 주기 위해서, 동서고금의 회화의 선례(先例)를 슬며시 참조하고, 생각지도 못한 해법을 제시한다. 당연히, 화면은 하나뿐인 현실의 모습으로 통일되지 않고 모순되는 사상(事象)의 혼재(混在), 혹은 다른 공간적 현실의 중첩(다층적 현실)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다중 현실이 혼재하는 그의 그림을 처음 본 사람은 곤혹(困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이 모종의 엄청난 원리와 법칙이 깊이 스며든 불합리하면서도 합리적인 광경을 펼치고 있는 것에 놀라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많은 요소를 끌어안고, 다른 현실이나 묘법의 혼재, 중층하는 그의 작품이라도 단순한 혼돈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없다. 반드시 바람이 지나다니는 것 같은 경쾌함, 투명감(透明感)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근택_Speaking Wall_한지에 먹, 호분, 템페라_148×209cm_2014

불합리하면서 합리적인 광경. 그러나 이 말에서 쉬르레알리즘(surrealism)의 작법(作法)을 연상해서는 안될 것이다. 쉬르레알리스트에게는 놀라운 광경은 어디까지나 객관화된 광경이었다. 유근택의 그림은 그런 객관시(客觀視)를 허용하지 않는다. 모순되는 현실의 혼재와 다중성은 한개의 객체(客體)가 되어 모순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동일한 필법으로 엮이어 있음이 쉽게 감지됨으로써 모순을 넘어선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사물과 이미지의 객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을 꼬아 맞출 수 있도록 훈련된 붓의 작용이 하나의 회화적 현실로서 보는 사람의 지각을 흔들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유근택이 젊은 나이에 동양화에서 하나의 어법(語法)으로 붓을 습득하고 숙달하였기 때문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동양화가 아니더라도 마티스(Henri Matisse)와 데・키리코(Giorgio de Chirico) 등 괜찮은 서양 근대 화가는 모두 그 같은 붓의 힘을 그들의 문화권에서 익히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붓을 가볍게 여기는 오늘날의 아시아 화가들과 달리 유근택은 동양화의 근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유럽의 근대 화가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회화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근택_Subway_한지에 먹, 호분, 과슈_180×143cm_1998

하나의 로컬에서 유니버셜한 다원(多元)의 세계로. 유근택의 이러한 이치에 맞는 전개는 다른 국면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 일찍부터 그는 엄청나게 많은 자화상을 그려 왔다. 그보다, 이 화가에게 있어서 거울 속의 자기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강박 관념이며 일상적인 의식 같은 것인지 새로운 제작(작화)을 시작할 때마다 꼭 거울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나르시시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중에 한두번도 아닌, 자기 혐오 때문인지 자기 상실감 때문인지 분노에 사로잡혀, 그것이 자화상에 광폭한 필치와 강렬한 채색을 가져왔으니. 그렇다고 어느 시기까지 개인전의 카탈로그 표지에 그는 그런 종류의 「반자화상(反自畵像)」을 내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생각하건대, 그는 항상 「자기(自己)」의 위치를 재려고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객체화할 수 있는 자기의 외형이 아니라, 또 심연(深淵)에 가라앉은 불가측(不可測)한 자아(自我)의 절대성도 아니고, 그 때와 그 자리에서, 즉 시간과 공간의 현실 한복판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자기의 바로 그 호흡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율동을 느끼려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을 하지 못하면 사물 세계와 자아의 사이에 호흡을 통하게 하는 것 같은 그림은 한 장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회화 사상의 근본에 있었기 때문에.

유근택_Some Library_한지에 먹, 호분, 템페라_200×212cm_2016

옛 동양 화가는 그런 귀찮은 사전 운동을 하지 않았다. 자화상을 그리지 않아도 자연의 경물을 배치 붓질 속에 저절로 피아(彼我)의 호흡이 서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근택도 어느 시기부터는(아마도 2000년 전후부터) 그 경지에 이른 것같다. 그것은 또한 그가 동양화의 전통을 깨고 「신변(身邊)의 어떤 상황이나 사소한 단편적인 사상(事象)에도 흥미를 가지고, 그리기 시작한」사태와 같은 시기였던 것 같다. 전통적인 동양화는 귀찮은 자아를 불문에 부치는 것으로 산수와의 교제를 즐길 수 있었지만, 그 만큼 신변의 모순된 사상이나 생사의 어둠으로 부터 회화를 멀리하고 말았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피아의 호흡의 왕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알고 있던 유근택은, 그러나 그 호흡의 근본을 이루는 자아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위치 측정(실존의 파악)에 고생하였기 때문에 결국은 풍요한 신변 세계, 모순된 만물만상(萬物萬象)의 표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승리감에 의한 것인가, 2009년 사비나미술관(서울)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그는 「만유사생 (萬有寫生, Depiction of Universe) 」이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실로 로컬에서 출발하여 유니버설한 다원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을 선언한 것이다. ● 흥미롭게도 유근택은 종종 자기 방의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광경을 그렸고 시리즈로 제작하기를 좋아했다. 바깥 세상은 시간과 함께 변화하고, 그의 화면도 변용(變容)을 멈추지 않는다. 마치, 창이란 입을 통해서 밖과 안, 세계와 자아, 낮과 밤, 삶과 죽음이 호흡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호흡하는 창문을 포회(抱懷)하는 유근택의 회화는 우리들에게 훌륭한 하이쿠(俳句) 작품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안 되게 한다. 기고(季語)라는 창문을 통해서 자아와 만상(萬象)을 연결하고 호흡하는 하이쿠의 마술을 ― ―.

유근택_Some dinner_한지에 먹, 호분, 과슈_240×489cm_2009

마지막으로 유근택 작가는 물론, 이번 전시의 실현에 많은 협력을 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린다. 특히 유근택 예술의 본령(本領)을 보여주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작품을 빌려 주신 소장가 여러분, 카탈로그에 경발(警拔)한 서문을 써 주시고 한국의 미술 평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신 북서울미술관의 기혜경 관장, 그리고 오랫동안 유근택 작품을 일본에 소개해 온 유일한 거점으로서 진력해 온 구로다 유코 씨에게 각별한 감사와 경의를 전하고 싶다. 내가 유근택에 대한 최초의 에세이를 쓴 것은 구로다 씨가 개최한 두번째 개인전(2005년) 때였다. 그 때의 문장과, 2014년 서울 OCI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 쓴 졸문(拙文)은 지금까지 일본어로 쓰여진 유일한 유근택론(論)이기에 자료로서 카탈로그에 첨부했다. ■ 미네무라 도시아키(번역_박영신)

유근택_Self portrate_한지에 먹, 과슈_180×143cm_1999

時の窓を介して我と万象は呼吸を交わす ● 私たちの美術館がまだ51歳の現役の画家に、しかも日本でほとんど知られていな外国人の画家のために全室を開放して個展を催すのは、文字どおり異例のことである。 ● 特殊な事情や思惑があってのことではない。16年前、まだ美術館の仕事に関わっていなかった私とすでにベテラン館員であった小林宏道君は、それぞれ独自の旅程で訪れたソウル国立現代美術館の企画展で、一人の若い画家の作品を深く記憶に刻み、以来、機会あるごとにこの画家の驚くべき展開を追尾してきた。両人のいわば胸中の玉ともいうべき画家の名が実は同じ柳根澤(ユ・グンテク)であったことを知って驚いたのは、そしてその作品に対する高い評価でも一致していることを確認し合ったのは、これまた偶然3年前に交わした会話からであった。「柳根澤個展」の構想は、その時点で事実上始動したのである。特殊な事情があったとすれば、これが唯一特殊な事情と言えようか。 ● 名が大きいからでも、時代の動向を代弁しているからでも、隣国との関係を良くしたいという慮りからでもなく、また真っ先に考慮したはずの学生への教育的効果という観点さえも結局は副次的になって、ただただ、今日の些末化し衰弱してゆく世界の芸術界にあってこれだけ全幅のエネルギーと精神力で絵画の領野を耕しつづけている大器の存在があることを日本の美術界に知ってもらいたい、その一心でこの個展は企画されたわけである。その真情に、画家もまっすぐ応えてくれた。私たちの大きな喜びであり、誇りである。その気持ちを率直に表現したのが、「召喚される絵画の全量」といういささか気張った感じのサブタイトルにほかならない。 ● むろん、絵画の全量なるものは誰も知らないし、掘り当てたと豪語することもできない。できないからこそ、「全量」というレトリックが意味を持つ。区々たる様式、技法、主題、社会的関心等々のどれかに特化専心するのではなく、それらのいずれにも目を開きつつ、なお人類が経験した絵画の全局面と未だ不可視の領域とを内的必要に応じて果断に呼び寄せようと意欲して止まない姿勢。そのような姿勢のまれな持ち主だけが「絵画の全量」という不可能事に心を開いていると見なされるのである。 ● 柳根澤はソウルの弘益大学校で東洋画を学んだ。東洋画とは中国由来の筆墨の技を基本とする絵画であって、韓国では「国画」とも位置付けられてきたから、表面的に見れば、技法の上でも主題選択の上でも、西洋画と異なる伝統的、悪く言えば守旧派の分野とひとくくりにされかねない。けれど、皮相な一般視を捨てて柳根澤の作品を直視するならば、柳が東洋画科で学び、いまなお韓国の17世紀の水墨画家たちに深い共感を寄せていることが、彼の最も現代的な様式の作品にどれだけ力強い足腰を与えているかが分かるはずである。そのことだけでも、柳の経歴は根無し草になりがちな東アジアの芸術家にとって貴重な教訓となるだろう。だが、柳の本当のすごさはその先にあった。 ● どんな画家も、「絵画」という一般的・抽象的な概念に導かれてキャリアを始めるわけではない。私たちの喋り言葉が幼少時の環境の中で身に付けたローカルな一言語を習得することから始まって、成長とともに多様な言語の存在とその背景の異文化に知見を開いてゆくのと同じで、絵画という言語も、出発点は必ずローカルな環境にある。しかし、その先に進んで、さまざまな異質の絵画手法・絵画思想が地理的・歴史的な広がりの中に存在し、いざなって止まないことを知ろうとするかしないかは、個々の画家の度量による。東洋画というローカルな言語から出発した柳根澤が画業の進展につれていち早く示したのは、そのような度量のまれな大きさであった。 ● 西洋画のデッサンが描画対象に仕えるのに対して、東洋画の筆使いはむしろ画家の身体と呼吸に忠実であろうとする。柳が東洋画で身に付けたのは、何を描こうとも筆と対象との間で交わされるべき呼吸こそが大切なのだという原則であって、芸術思想と世界観の根幹にまで及ぶこの原理を、彼はその後もけっして見失うことがなかった。ところが、驚くべきことに、東洋的思想を重んじる画家たちがとかく手わざと主観のみに閉じこもってしまいがちなのと違って、柳はどんな西洋画系の写実画家も及ばないほどの貪欲さ、好奇心をもって、目に見えるあらゆる事象に筆を及ぼし始めたのである。むろん、無原則に対象に寄り添ったわけではあるまい。おそらくは、画家の呼吸に適うもの、適わない(乱す)もの、高揚させるもの、違和感をもたらすもの等が、視覚のさまざまな愉悦・矛盾・可笑しさの相となって彼をいざなったのであろう。東洋画の伝統からは考えられないような、いや、西洋画系の現代絵画でもめったに見られないような、おびただしい事物と奇妙な構想が、平凡と異常と矛盾を同時に孕んで画面になだれ込んできた。部屋の内と外、暗がりと光、動いて止まないものと瞬間の衝撃、生のしるしと消滅の響き、悲劇の予兆と宇宙的無関心、極小ないし極大の事物と日常のスケール、正立するものと倒立の像等々、数え上げれば切りがない。柳はそれらのすべてに注意深く目を凝らし、そこに潜む愉悦・矛盾・可笑しさの相に絵画的な表現を与えるため、古今東西の絵画の先例にそれとなく参照して、思いもかけない解法を提示する。必然、画面は一つだけの現実の相で統一されることはなく、矛盾し合う事象の混在、あるいは異なる空間的現実の重ね合わせ(多層的現実)といった結果を招来する。けれど、こうした多重現実の混在する彼の絵を初めて見た人は、困惑するどころか、むしろそれらがある種の計り知れない理法に浸透された不合理にして合理的な光景を催していることに驚かされるのではあるまいか。どんなに多くの要素を抱え込み、異なった現実や描法の混在・重層する彼の作品でも、ただの混沌に終始していることはけっしてない。必ず、風が通うような軽やかさ、透明感を湛えているのである。 ● 不合理にして合理的な光景。しかし、この言葉からシュルレアリスムの作法を連想してはなるまい。シュルレアリストにとって、驚異の光景はあくまでも客観化された光景であった。柳の絵はそのような客観視を許さない。矛盾する現実の混在や多重性は一個の客体となって矛盾を忘れさせるのではなく、それらが同一の筆法で編み上げられていることが容易に感知されることによって、矛盾を越えるものとなっているのである。物やイメージの客観的なあらわれではなく、主観と客観を綯え合わせるべく訓練された筆の働きが、一つの絵画的現実として見る者の知覚を揺り動かすのである。そんなことが可能なのは、柳が若年から東洋画で一つの語法として筆に習熟していたからである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東洋画でなくとも、マティスやデ・キリコなど、まともな西洋近代画家はみんなそのような筆の力を彼らの文化圏で身に付けていた。逆説的にも、筆を軽んじる今日のアジアの画家たちと違って、柳根澤は東洋画の根っこから立ち上がったからこそ、ヨーロッパの近代画家たちと比肩しうる絵画を開く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 一つのローカルからユニヴァーサルな多元の世界へ。柳根澤のこのような理に適った展開は、別の局面においても観察することができる。 早い時期から、柳はおびただしい数の自画像を描いてきた。というより、この画家にとって鏡の中の自分自身と向き合うことは、強迫観念であり日々の儀式のごときものであったのか、新しい仕事(作画)に取り掛かるたび、どうしても鏡の前に立たざるを得なかったと言う。ナルシシズムからとは思えない。鏡の中の自分を見つめるうちに、一再ならず自己嫌悪からか、自己喪失感からか、激しい怒りに駆られ、それが自画像に狂暴なまでの筆致と激しい彩色をもたらしたのだから。それでいて、ある時期までの個展のカタログの表紙に彼はその種の「反自画像」を掲げることを止めなかった。 ● 思うに、柳はつねに「自己」の位置を測ろうとしていたのであろう。客体化できる自己の外形ではなく、また深淵に沈む不可測な自我の絶対性でもなく、その時とその場所で、つまり時間と空間の現実のさなかで、それらと呼吸し合う自己の、まさにその呼吸の姿を見つめ、その律動を聞き取ろうとしていたのではないか。それが果たせなければ、事物世界と我との間に呼吸を通わせるような絵は一枚として制作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のが彼の絵画思想の根本であったがゆえに。 ● 昔の東洋画家はそのような面倒な事前体操をしなかった。自画像を描かなくても、自然の景物を描く筆づかいの内に、おのずから我と彼の呼吸が通い合っていたからだ。おそらく、柳根澤もある時期からは(おそらく2000年前後から)その境地に達したのだろう。それはまた、彼が東洋画の伝統を破って「身辺のどんな状況や些末な断片的事象にも興味を抱き、描き始めた」事態と重なっていたようである。伝統的な東洋画は厄介な自我を不問に付すことで山水との交わりを享受しえたのだが、その分だけ、身辺の矛盾する事象や生死の暗闇から絵画を遠ざけてしまった。彼らと同じように我と彼の間の呼吸の通いを大切にすることを知っていた柳根澤は、しかしその呼吸の元をなす自我の時間と空間に関わる位置測定(実存の把握)に苦労したがゆえに、ついには豊饒な身辺世界、矛盾する万物万象のあらわれに出会うことができた。その勝利感からであろう、2009年のSAVINA美術館(ソウル)での個展に彼は「万有写生」(Depiction of Universe)というタイトルを掲げた。まさに、ローカルから発してユニヴァーサルな多元世界に踏み込んだことを宣言したわけである。 ● いみじくも、柳はしばしば自室の小窓から見える外の光景を描き、シリーズ制作することを好んだ。外の世界は時とともに変化し、彼の画面も変容して止まない。あたかも、窓という口を通して、外と内、世界と我、昼と夜、生と死が呼吸して止まないかのごとく。このような呼吸する窓を抱懐する柳の絵画は、私たちに優れた俳句作品を思い起こさせずにおくまい。季語という窓を介して我と万象を結び呼吸させる俳句の魔術を――。 ■ 峯村敏明

유근택_Grandmother_한지에 먹_43×35cm_1995

Through the Window of Time, All Things in the Universe and I Exchange Breaths ● It is literally unusual for our museum to give a museum-wide solo exhibition to a 51-year-old non-Japanese painter who is virtually unknown in our country. ● There is no special consideration or circumstance. Sixteen years ago, before my appointment to the museum's position, I was in Seoul and saw a special exhibition at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in nearby Gwacheon. At this group exhibition, the work of a young painter was inextricably etched into my memory. Since then, from occasion to occasion, I have followed his amazing progress. Separately from me, Kobayashi Hiromichi, the museum's curator who was already a seasoned professional then, also visited the same exhibition and identified a promising talent whose development he since followed. Our discoveries in Seoul sixteen years ago were our respective secret treasures. We were stunned to later learn that our secret treasures were the one and same Yoo Geun-Taek, whom we both held in high regard. This reckoning took place in our off-hand conversation three years ago. Truth be told, it was then that the preparation for the present solo exhibition of Yoo was launched. Perhaps, such a backstory makes this exhibition special. ● Not because he is a big name. Not because he represents a current trend. Not because we want to improve our relationship with our neighboring country. Not because we prioritize our students and their education—supposedly our foremost concern, which in fact became secondary over the course of our deliberation. But simply because we want to demonstrate to Japan's art audiences that in today's world of art suffering from triviality and decline there still exists such an immense talent who continues to till the realm of painting with all his energies, spiritual and otherwise. With this single goal in mind, we have planned this exhibition. The painter, too, has responded to our sincere desire in a straightforward manner, which has delighted us and made us proud. The exhibition's subtitle, which some may find rather preposterous, frankly expresses our sentiments: The Whole Gravity of Painting, Summoned. ● Needless to say, nobody knows what the "whole gravity" of painting is, and we cannot boast that we managed to find out about it. All the more, because we cannot, the rhetoric of "whole gravity" has a meaning. Without narrowing it down to a style, a technique, a theme, or a social concern, the painter gazes at all of them, yet dares to summon all phases of painting that humankind has experienced and all realms that still remain unknown. Only an artist equipped with such a strong will can be characterized as being engaged in the impossibility that is the "whole gravity of painting." ● Yoo Geun-Taek studied Eastern painting at Hongik University in Seoul. Eastern painting deploys an art of ink and brush informed by the tradition of Chinese painting. Long touted as the "national painting" of Korea, Eastern painting is, on surface, regarded as the opposite of Western painting in terms of techniques and subject matter. Worse, it is often bundled together with the conservative academic practices. Yet, if we look at Yoo's work without such a superficial preconception, we can understand how meaningfully he has learned from Eastern painting, how deeply he feels for 17th-century Korean ink painters even now, and how much their work has informed and fortified his contemporary style. This fact alone can be a valuable lesson for East Asian artists who tend to lose sight of the legacies they inherit from their predecessors. But we can see far more than that in Yoo's work. ● No painter begins his career upholding the abstract concept of "painting." We acquire our spoken language as infants in our local environment; as we get older, we begin to open our eyes to the existence of diverse languages and different cultures behind them. Likewise, at his starting point, the painter begins by learning a language that is painting within a local environment. As he progresses, depending on his capacity, he may or may not take in a historical and geographical expanse of various painting theories and practices. In the case of Yoo, he began with the local language of Eastern painting and quickly demonstrated a rare capacity of learning beyond it. ● In Western painting, drawing (dessin) serves the object being portrayed, while in Eastern painting, brushwork stays faithful to the painter's body and breath. From Eastern painting, Yoo learned a principle that what matters most is the breaths exchanged between the brush and an object, no matter what the object is. Yoo has never lost sight of this principle, which underscores both his artistic vision and his worldview. However, to our surprise, while those painters who prioritize Eastern thought tend to withdraw to the cocoon of handcraft and subjectivity, Yoo began to exercise his brush over all kinds of objects he could see, with an extraordinary curiosity and appetite that far exceeded any realist painters working in the Western style. Not that he indiscriminately adopted any objects he saw. Some objects must have fit his breathing, some others disturbed it; some must have boosted it, some others unsettled it. And he perhaps accepted their invitations as he saw in them pleasure, contradiction, or humor of vision. All sort of things and ideas—that were unthinkable in Eastern painting, that were rarely seen even in Western contemporary painting—entered his painting, while at once embracing the commonplace, anomaly, and contradiction. Inside and outside the room. Darkness and light. That which constantly moves and instant shock. Signs of life and echoes of vanishing. Premonition of tragedy and indifference on the part of the cosmos. Minimal and maximal objects and everyday scales. Upright images and inverted images. Examples are countless. Yoo paid very close attention to all of them and made casual references to preceding paintings, East and West, old and new, in order to give pictorial expression to their pleasurable, contradictory, and humorous phases. The solutions he came up with were unexpected. As a matter of course, they are not governed by a single phase of reality. Instead, they reveal the coexistence of contradictory phenomena or contain overlayered spatial realities (multilayered realities). Yet, when the viewer sees his painting marked by multiple realities, he may be far from being perplexed; rather, he will be stunned to find a sight simultaneously irrational and rational permeated by a certain unknowable law. No matter how many elements Yoo's painting may hold, no matter how many realities and techniques coexist and overlap in his painting, it never degenerates into a mere chaos. It always shows a breezy lightness, transparency. ● I have just characterized Yoo's painting as a sight at once irrational and rational. But we must not infer a Surrealist strategy from his work. For Surrealists, wondrous sights constituted objectified scenes. Yoo does not allow such objectification. In his work, the multiplicity or mixture of contradictory realities does not constitute an object that allows the viewer to forget the contradiction; rather his painting transcends the contradiction by letting the viewer easily comprehend a single style of brushwork that portrays and combines the contradictory realities. His brushwork does not represent an objective phase of things or images. Trained to entwine subjectivity and objectivity, his brushwork shakes up the viewer's perception through a painterly reality it creates. This becomes possible precisely because Yoo in his youth mastered brushwork as part of the grammar of Eastern painting. In the Western cultural sphere, too, such great masters as Matisse and de Chirico all mastered similar brushworks within their own cultures. It may sound contradictory, but unlike today's Asian painters who slight brushwork, Yoo could create a new horizon in painting comparable to European modernists because he was trained in the fundamentals of Eastern painting. ● Starting with a local language and creating a universal world of multiplicity—this logical development can also be observed in a different aspect of Yoo Geun-Taek's painting. ● Since very early on, Yoo has painted numerous self-portraits. For him, confronting himself in the mirror may have been an obsession or daily ritual of sorts. In one of his interviews, he once stated that every time he began a new work, he felt compelled to stand in front of the mirror. But his is no narcissist act. As he gazes at himself in the mirror, he is time and again struck by such an intense anger that he renders his likeness with a fierce brushwork and a violent palette. Yet, up to a certain time, he used this kind of "anti-self-portrait" to illustrate the covers of his solo exhibition catalogues. ● In retrospect, Yoo was likely trying to probe the position of "self." What he strained to find was neither its external, objectifiable form, nor its absolute core hidden in unfathomable depths. What he aspired to see must be the self that breathes at that moment at that place—that is, the self that exchanges breaths with the reality of time and space—and their rhythms. Because if he failed, he would be unable to create a single painting that bridges breaths between us and the phenomenal world. Because such was the foundation of his painting philosophy. ● Eastern painters in the past did not need such a cumbersome preparatory exercise. Without painting a self-portrait, they could exchange breaths with the phenomenal world right in their brushworks portraying things in nature. Perhaps, Yoo himself reached such a state (around the year 2000). It coincided with the moment he broke away from the tradition of Eastern painting and "became interested in everyday detail around me and began to paint it, capturing its most trivial fragments." In traditional Eastern painting, the painter enjoyed communing with nature by eschewing the self that was nothing but nuisance. In doing so, they dissociated painting from the contradictory phenomena around them and the abyss of life and death. Like them, Yoo knew the importance of exchanging breaths with nature, but had difficulty in measuring the position within the space and time of self—the originator of such breaths—that is tantamount to capturing the being of self. That is why he could eventually encounter the fertile everyday world in which contradictory things and phenomena manifest themselves. He articulated his sense of triumph as "Depiction of Universe," which became the subtitle of his solo exhibition at SAVINA Museum in Seoul in 2009. In other words, he declared that having begun as a local being, he had finally entered a universal world of multiplicity. ● Not coincidentally, Yoo often painted a series of works based on exterior scenes seen from a small window of his room. The external world changes as time passes by, and his painting, too, keeps transforming itself, as though exterior and interior, the world and self, day and night, life and death exchange their breaths through the opening of his window. Yoo's painting encompasses such a breathing window within, reminding us of superb haiku—the magic of this poetry form that enables us to exchange breaths with all things in the universe through the window that is kigo (season word). ● I would like to end my essay by expressing my gratitude for the artist Yoo Geun-Taek and many others who generously helped us make this exhibition possible. Especially, I am grateful for the collectors who have loaned Yoo's works indispensable to understanding the essence of his art. Ki Hey-Kyung, Managing Director of SeMA, Buk-Seoul Museum of Art, contributed a brilliant preface to the catalogue and demonstrated an accomplished standard of art criticism in Korea. Kuroda Yūko, who has long single-handedly presented Yoo's work in Japan, asked me to write an essay on the artist for the second solo exhibition she organized for him in 2005. I have humbly reprinted that essay, along with my catalogue essay for his solo exhibition at OCI Museum of Art in Seoul in 2014, for they are the only two writings on him in the Japanese language. ■ Minemura Toshiaki(Translated by Reiko Tomii)

Vol.20160924c | 유근택展 / YOOGEUNTAEK / 柳根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