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E;그래, 꽃보다 좋은 것도 없지

강예신展 / KANGYEHSINE / 姜叡伸 / painting.drawing   2016_0924 ▶ 2016_1103 / 월요일 휴관

강예신_꽃만 말고 이 마음도..._종이에 펜, 수채_23×19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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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0924_토요일_02: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더트리니티&메트로 갤러리 THE TRINITY & METRO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옥인동 19-53번지) 1층 Tel. +82.2.721.9870 www.trinityseoul.com

시집 사이에 꽃씨를 심었더니 싹이 자라나 마침내 꽃을 피운다. 책이 화분이 된 것이다. 게다가 화분이 된 책에 따라 각기 다른 꽃이 핀다. 9월 24일부터 더트리니티&메트로갤러리(약칭 TTM갤러리)는 강예신 작가의 신비로운 경험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되는 'FLORE ; 그래, 꽃보다 좋은 것도 없지'전을 개최 한다. 강예신은 토끼를 소재로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공감의 세계를 펼쳐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페인팅, 드로잉, 책장시리즈 2016년 신작 25여점을 11월 3일까지 35일간 선보인다. 높고 청명해진 가을과 잘 어울리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성과 휴식이 담긴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현대 미술과의 거리를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서고 호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더트리니티&메트로갤러리

강예신_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 #1,#2,#3_종이에 천, 펜, 수채_19×14cm×3_2016
강예신_엄마의 꽃놀이-좋아서..._캔버스에 유채_지름 60cm_2016

나는 분명 녹아내리고 있었다. 사막의 아이스크림처럼 몸속 당분을 길 위로 뚝뚝 떨어뜨리며 이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현기증 나는 더위에 오지 않은 버스에 하얗게 타고 있는 지구의 표면으로 나의 구성 물질이 하나씩 귀의하고 있었다. 자잘한 꽃무늬의 낡은 보자기를 움켜진 할머니가 옆으로 바짝 붙으며 길을 물어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증발했을 텐데 말이다. 할머니의 목적지는 낯선 곳이었지만 아주 스마트한 녀석 덕에 환승할 곳까지 쉬이 일러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다시 수줍게 웃으시고는 손에 쥔 내 핸드폰을 바라보며 전화를 걸어 달라 부탁 하셨다. 하아~ 이런! 그녀가 통화하는 동안 내가 타야할 버스는 더욱 뜨거운 열기를 남기고 나를 지나가 버렸다. 짜증이 났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을 맞은 나는 할머니를 태우고 가는 버스를 보며, 괜스레 황량해진 정류장에 홀로 남겨졌다. 정체모를 종이 뭉치와 함께... 나는 멍하니 손바닥 위의 그 실체와 잠시 동안 마주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다정히 고맙다 인사를 하며 쥐어 주신 것이었다. 그 누렇게 빛바랜 종이는 오래전 가루약을 싸던 것처럼 접혀있었고 안에는 딱딱하고 넙적한 씨앗 7개가 들어있었다. 원래는 할머니가 회장님이라 큰 회사에 취직이 된다거나, 혹은 씨앗을 심으면 박이 열려야 되는 게 아닐까 순간 맹랑한 생각을 하다 더위가 사람을 허황되게도 만드는 구나 피식 웃고 말았다. ● 무언가를 키운다는 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책임이 포함되는지 잘 아는 게으른 내가 그것을 기른다는 것은...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씨앗은 몇 달 전부터 머리맡을 어슬렁거리는 책 사이에 버려지듯 봉인 되었다.

강예신_license - 나에게로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6
강예신_세상의 목소리-피고 지고 오고 가는 그러한...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6

다시 그 씨앗과 마주한 건 한참 뒤 아주 이상한 경험을 한 후였다. 어느 날 자다가 진한 향기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방안이 온통 무지막지한 꽃무늬로 덮여 있었고 그것들은 둥둥, 온 사물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꿈꾸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이상한 공간에 가 있는 자각몽이라 여겼다. 홀로그램처럼 선명한 무늬들의 뒤로 나의 사물들이, 책상이, 벽들이 그대로 있었기에 그 환영이 현실인가 잠시 착각했지만 나는 기를 쓰고 이성적이길 희망하며 온통 몽실몽실하게 피어난 꽃무늬를 살피다 알 수없는 노곤함과 기분 좋은 향기 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남아 있는 향기와 방안 구석에 희미하게 알록거리는 꽃무늬의 일부 때문에 나는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할머니의 씨앗, 나는 책 사이에 넣어둔 씨앗을 살폈다. 종이 속에는 6개의 씨앗이 남았고, 종이 겉면에는 꽃씨 심는 법이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화분이 되는 책에 따라 각기 다른 꽃이 피고 잘 기르면 꽃씨를 받을 수도 있다니! 나는 약간의 의구심을 섞어 꽃씨 하나를 오래된 시집 사이에 심었다. 그리고 창가에 두고 씨앗이 자랄 때까지 여전히 확신 할 수 없는 환영을 기다렸다. 일주일 뒤 정말로 책 사이에 조그만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그것은 꽃망울을 틔웠고 곧 꽃이 되었다. 꽃이 피어있는 하루 동안, 정확히는 반나절 동안 다시 내 방에는 알록달록 꽃무늬들이 넘실거렸다. 알 것도 같은 기분 좋은 향기와 함께 꽃무늬들이 느리게 춤을 추었다.

강예신_별은 무르익어 한낮에도 수를 놓지_나무, 종이, 드로잉_120×160×5cm_2016
강예신_별 아래 꾸는 꿈_나무, 종이, 드로잉_90×69×5cm_2016
강예신_기다리면 마법처럼 피어나는 세상_나무, 종이, 드로잉_2016_부분

그렇게 싹트지 못한 꽃씨 하나와 세 번의 꽃, 그리고 2개의 꽃씨를 남겨두고 나는 기억해 냈다. 그 알록한 꽃무늬들 중 한번은 아주 오래전 나의 이불 무늬와 같고 또 하나는 여름날 내 머리맡을 부채질 하시던 할머니의 요란한 치마 자락의 꽃과 같음을... 또렷하지 않으나 낯익은 기억의 꽃들이 피어났던 것을 그래서 그 꽃무늬가 피던 날은 나를 따라다니던 불면이나 이미 터를 잡은 불안한 생각들도 없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믿지 않는 멀리 사는 유일한 친구는 술을 끊을 것과 제시간에 잠잘 것을 권유하지만,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이 기이한 현상을 설명할 길도, 기를 쓰고 증명할 의지도 없는 나는 절반의 두근거림과 절반의 아쉬움으로 이제 남은 씨앗 2개를 들여다 볼 뿐이다.

강예신_FLORE;그래, 꽃보다 좋은 것도 없지展_더트리니티&메트로 갤러리_2016
강예신_FLORE;그래, 꽃보다 좋은 것도 없지展_더트리니티&메트로 갤러리_2016

매일 생겨나는 오만 가지 감정과 그 순환들이 나는 언제나 버겁다. 그 넘치는 것들을 작업이란 것에 접어두어 보지만, 여전한 감정의 잔재를 나는 아직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언제나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것이다.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나 자신을 옮겨 놓는 것, 그것이 대롱대롱 매달린 감정의 하중을 회피하는 제일 쉬운 방법이기에 나는 때때로 이야기 속으로 숨어 버린다. 감정의 잉여나 현실의 결핍 사이에 자라는 동요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 혹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일 때가 더 많다. 따뜻한 말 한마디, 나뉘어 준 마음 한 조각,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이 전하는 시각의 환기. 그런 것들은 기억 속에서 느끼던 애정의 씨실과 만나면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감정의 심해에서 나를 안전하게 건져 올려 진다. ● 씨앗이 싹이 되고 꽃이 되기까지의 보이지 않은 치열함이 더욱 고운 꽃을 피우는 것처럼, 그래서 그 한 송이가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사소한 것이 건네는 식물의 인사가 감사하다. 내게 꽃이란 식물은 기억의 문양이다. 어린 시절 줄곧 몸을 비비대던 이불에 핀 여린 꽃, 엄마들의 작업복에 새겨진 어마 무시 한 전사 같던 꽃, 할머니의 치마 자락에 덕지덕지 붙어 다니던 그리운 꽃, 따뜻했던 방안 벽을 감싸던 촌스럽게 아련하게 흔들리던 낡은 꽃. 그런 꽃들이 생각 날 때면 잠시 이상적 생각을 한다. 새삼 꽃보다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고... ■ 강예신

Vol.20160924e | 강예신展 / KANGYEHSINE / 姜叡伸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