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2016_0928 ▶ 2016_1021 / 월요일 휴관

거울아, 거울아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6

초대일시 / 2016_0928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고석민_감성원_정보영_정정엽_표영실_허보리_거울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풍년로 162 제1전시장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3전시장 Tel. +82.43.236.6622 www.spacemom.org

감성원 '현실의 거울' ● 감성원은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작가다. 회화를 전공한 그는 언제나 해석을 요구하고 상징을 내포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현대미술에 의구심을 품었고, 사람들과 더 쉽고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소재를 고민하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심취하게 되었다. 흔히 종교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작가는 이것 역시 확고히 회화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유리가 캔버스를 대체하고 빛이 물감처럼 색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 우리네 삶의 모호함이 스며있다.

감성원_Untitled_Fused & enameled glass_Φ22×70.8cm_2016 감성원_Untitled_Fused & enameled glass_Φ13.7×71cm_2016 감성원_Wearing a skirt_Fused & enameled glass, objet_가변크기_2010 감성원_Untitled_fused &enameled float glass, objet_가변크기_2016
거울아, 거울아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6_부분

예술의 어려움과 소통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처럼 작가는 현실과 이미지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이미지는 존재한다는 데에서 실제이지만 재현이라는 데에서 허상이다. 작가는 스테인드글라스에 쓰이는 유리를 통해 그 이미지의 이중성을 재발견했다. 유리는 단단하면서 부서지기 쉽고 투명하면서도 빛을 반사하는 신기한 재주를 부린다. 가령 대상을 반투명한 유리 사이, 혹은 바깥에 배치함으로써 실제와 이미지 사이에서 부유하게 했다. 빛이 투과하면 그 대상은 그림자로 투영되기도 하며 실제와 허상, 대상과 그림자, 이미지와 현실, 그 모든 것들이 불투명해진다. 그의 유도대로 다중적인 공간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 작가는 "주와 종이 꿈인 듯 현실인 듯한 곳에서 공존하는 유리 위의 세상은 우리의 삶을 닮았다. 색을 머금은 그림자와 이미지가 만든 낯선 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꿈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라고 첨언한다. '우리를 닮아 달콤한 허언(虛言)의 세계'라고 명명한 작가의 공간에서 우리는 유리와 빛이 조율하는 또 다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감성원_Via Butterfly_Fused & enameled glass on canvas_52×112×28cm_2007_부분

고석민 '내면의 거울' ● 고석민 작가는 바다와 강물, 숲 같은 자연, 그리고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와 공연장 등 인공적인 장소에 거대한 거울을 배치하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에서도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에 거울이 놓여 있다. 거울은 풍경에 교묘하게 녹아들어 얼핏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 거울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관객은 숨바꼭질에 빠져들고 만다. 작가가 작품에 거울을 사용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 "어느 날, 방에 혼자 멍하니 있다가 벽에 붙어 있는 사각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모습이 내가 있는 방과는 다른 또 하나의 공간처럼 보였다. 그리고 거울이 마치 영화 스타게이트의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처럼 느껴졌다. 거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도 하게 되었다."

고석민_The Square00_리미티드 에디션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5.3×132.4cm_2011
고석민_The square02_리미티드 에디션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5.3×132.4cm_2010 정정엽_그 날 이후_깨진 거울에 리본, 펜_63.5×35cm_2016

'또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것, 혹은 '다른 차원을 열어준'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작가 내면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는 유년시절 함께 놀던 꼬마가 기차에 치이는 사건을 겪은 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사건은 늘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피하고 스스로를 감출 정도로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거울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을 숨길 적당한 장소를 찾았던 셈이다. ● 결국 '다른 차원을 열어준다'는 거울은 다른 차원으로의 도피를 가능케 한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거울 양쪽에 보이는 손을 통해 우리는 거울 뒤에 숨어있는 작가를 발견한다. 작가는 "스쳐가는 서로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그 시선 속에서 수많은 감정을 일어나고 집단적인 사고들이 서로를 옭아매기 시작합니다. 그 시선으로부터 피해 나의 존재는 공간 속에 숨어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거울 뒤에 숨는 행위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위장과 공간의 위조라는 기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거울아, 거울아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6

정보영의 '탈(脫)-거울' ● 정보영의 신작 「블루아워(Blue hour)」는 언뜻 시대착오적인 회화로 보인다. 이를테면 그녀의 그림은 마치 거울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풍경을 재현한 그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한 발짝 다가가 그녀의 그림을 본다면, 그녀의 그림이 현실세계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현의 허구를 폭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영의 그림은 일종의 '차도살인지화(借刀殺人之畵)'란 말인가? '차도살인지화? 그것은 '남의 칼을 빌어 상대를 공격하는 계략'을 뜻하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에서 '계략'을 '그림'으로 전이시킨 것이다. 따라서 정보영의 그림은 재현을 빌어 재현을 해체시키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정보영 왈, "본인의 작품에서 '거울'이라는 상징적 장치를 찾아 볼 수 있는 지점은 시선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이라는 것은 바라봄과 동시에 보여짐, 시선과 응시가 동시에 일어나는 장소이다. 이러한 보여짐으로의 탈바꿈은 '시간'이라는 차원이 개입한 결과물로서, 이 사건은 모든 것이 불분명해지는 시간, 해가 뜨기 전인지 진 후인지 모를 'Blue hour'에 녹아들게 된다. 즉, 「Blue hour」는 시선과 응시의 치환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시간이다."

정보영_Blue hour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6
정보영_Looking through windows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6 정보영_Blue hour_캔버스에 유채_181.8×227cm_2016

정보영의 「블루아워」는 일출 전인지 아니면 일몰 후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미묘한 순간을 그린 풍경화이다. 어둡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어 매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경을 세심하게 바라보면 낯익은 풍경이 낯선 풍경으로 보이게 된다. 건물의 크기에 비해 과도하게 크게 표현된 빈 의자, 창문을 통해 실내에서 비추어진 빈 의자의 어긋난 그림자, 창문에 반사된 실외의 낯 풍경, 창문을 통해 출현한 촛불의 무의미/무기능, 실내 인공의 빛으로 생긴 출입문의 그림자는 시간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빛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들의 중첩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그렇다면 정보영의 「블루아워」는 재구성을 통해 텅 빔, 즉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정보영_Transparent shadow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6

정정엽 '그리움의 거울' ● 여성의 삶과 생명의 문제를 끈질기게 다루는 정정엽 작가는 이번 전시에 7개의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오래된 거울 위에 십대의 불안과 20대의 열정을 거쳐 점점 죽음에 다가가는 70대까지의 세월을 담았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작가가 그동안 즐겨 다루었던 소재들, 이를테면 녹두와 벌레, 진주 그리고 아기자기한 스티커 등이 덧입혀졌다. 또한 "공중에 떠가는 따스한 입김 하나가 너를 그리워 마요"라는 시 한 구절도 보인다. 작업 노트에 작가는 시 한 편을 전해 왔다. ● 늘 지금은 잡히지 않는다 / 오래된 거울 / 이미 무엇이 있다 / 그 많은 것을 비추고 사라졌을 자국들 / 거울 저 너머에 건너온 시간들 / 본다는 것은 그리움 / 안녕! good! / 그 앞에서 품었던 씨앗들 / 대면했던 낮과 밤 / 길을 잃었던 표지판 / 홀로 춤추던 그림자 / 무엇을 그리워하게 될까 / 마요(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 / good death / ...그리워마요

정정엽_마요(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_거울에 아크릴채색_40×21.8cm_2016

화가는 '본다는 것은 그리움'이라고 전하며 또한 '무엇을 그리워하게 될까'라며 자문한다. 오래된 거울을 보면서 화가는 지나간 모습을 보려고 애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수한 시간들 속에 흘러가버린 무수한 '나'를 보는 것이 작가에게는 그리움이었고, 거울을 자신의 그리움으로 덮었다. 거울은 더 이상 세상을 비추지 않게 되었지만, 작가는 이제 거울을 보기 위해 세상에 등을 돌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자화상으로 읽어도 된다면, 우리는 일곱 번의 중얼거림 속에서 삶과 죽음의 거울을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정엽_진주. 배꼽. 녹두_거울에 구슬, 아크릴채색_35.6×35.6×2cm_2016 정정엽_good death_거울에 아크릴채색_19.6×14.6cm_2016 정정엽_가을에 한 짓_거울에 책갈피_19.3×13.2cm_2016
거울아, 거울아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6 정정엽_환한 밤_거울에 아크릴채색_90×60.3cm_2016

표영실의 '감정-거울' ● 표영실의 그림들은 모호하다. 왜냐하면 그녀의 그림들이 로맨틱하면서 동시에 우울하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의 그림들은 관객을 유혹하지만 한편으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표영실의 「없는 얼굴」은 제목 그대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짙은 보라색에 빨려 들어간 듯 보이지 않는다. 와이? 왜 우리의 눈으로 그/녀의 얼굴표정을 볼 수 없는 것일까? 혹 그/녀의 머리 뒤편에서 강한 빛이 비추어 '없는 얼굴'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 표영실 왈, "그림을 그리는-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혹은 적어도 나에겐. 그 중에서도 나는 찰나적이지만 끈질기게 주변에서 부유하는 인간의 섬약하고 예민한 감정들과 형태 없는 사념들을 이미지로 고착시키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움직이는 법을 잊은 몸뚱이이거나 눈동자의 존재여부가 사라진 둥근 원처럼, 텅 비었지만 가볍지 않은 이 그리기가, 무수히 많은 감정의 덩어리를 품고 있는 느닷없이 느끼는 짧은 호흡처럼, 감정의 앙금처럼, 섬세하고 미묘한 정서의 파편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표영실_외면하는.외면당하는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2 표영실_막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6 정보영_Blue hour_캔버스에 유채_45.5×60.6cm_2016

표영실은 얇은 붓질을 여러 번 쌓아 올려 마치 보듬듯, 쓰다듬듯 감정을 그려낸다. 하지만 그녀가 그려낸 '없는 얼굴'에서 우리는 감정을 보지 못한다. 와이? 왜 우리는 그녀의 '없는 얼굴'에서 감정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감정은 시각적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각적 눈으로 볼 수 없는 감정을 상상케 하도록 마치 신비한 암호처럼 그려낸다. 따라서 그녀에게 감정은 재현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화면에 스며있는 내밀한 그녀의 고백을 상상하라고 귓가에 속삭인다.

표영실_drawing두 가지 형태_종이에 목탄, 연필_25.5×28.5cm_2010 표영실_drawing거리_종이에 파스텔_25.5×28.5cm_2014
표영실_경계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15 정보영_Transparent shadow_캔버스에 유채_91×65.1cm_2015

허보리의 '풍자-거울' ● 고기 덩어리 하나가 유리 액자 안에 넣어져 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등심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리 액자에 넣어진 그 등심은 하나도 변색되지 않고 싱싱해 보인다. 궁금한 나머지 한 걸음 다가가 본다. 오잉? 붉은 고기 부위는 붉은색 실크 넥타이들로 바느질한 것이고, 대리석 무늬의 지방들은 와이셔츠로 수를 놓은 것이 아닌가. 그 가짜 등심을 허보리는 「채끝살 바느질 드로잉」으로 명명했다. 채끝은 등심에서 이어지는 허리 부분의 고기로 안심 위의 부분을 뜻한다. 채끝살은 육질이 연하고 향기가 좋고, 특히 풍미가 좋아 스테이크나 생고기 구이, 샤브샤브 등에 이용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맛도 좋다. 그러나 허보리의 '채끝살'은 '그림의 떡'이다.

허보리_채끝살 바느질 드로잉_붉은 넥타이에 자수, 와이셔츠, 솜_33×50cm_2016
허보리_부드러운_정물_Versus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6
허보리_채끝살 니들 드로잉_붉은 넥타이에 자수, 와이셔츠, 솜_33×50cm_2016 허보리_4인 삽탁_나무, 삽, 못_70×150×8cm_2016

허보리 왈, "흘러가는 삶속에서 나와 내 주변인물들이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것을 본다. 그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서 인간은 은유적으로 다른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음식이나 일상적인 사물들이 갖고 있는 조형적인 특징과 기능에 사람의 감정을 빗대어 그 사람을 대신하는 상태로 만든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장면, 그러나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오히려 사진이나 극사실의 회화보다 더 구체화된 상황을 연출하고자 했다." ● 그렇다면 허보리의 거울에 비친 붉은 고기 덩어리가 인간의 본래 모습이란 말인가? 문득 '고기'를 사냥하던 원시인이 떠오른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 역시 '고기'를 얻기 위해 일터로 나간다는 점에서 원시인의 사냥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허보리는 고기 덩어리를 인간의 감정을 빗댄 것이라고 말한다. 고기 덩어리가 인간의 어떤 감정을 빗댄 것일까? 혹 그것은 '승자독식'이나 '잔인함' '포악함'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배신이나 살인 그리고 증오와 같은 감정을 은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허보리의 거을은 열려진 '풍자-거울'이 아닌가? ■ 류병학

Vol.20160928i | 거울아, 거울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