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인천 영아티스트 Incheon Young Artist 2016

류주현_성지연_임현준_정진욱_정혜윤_한규원展   2016_0928 ▶ 2016_1031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류주현_Composition-Space#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멘토 / 권경환_김홍기_박동삼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인천신세계갤러리 INCHEON SHINSEGAE GALLERY 인천시 남구 연남로 35(관교동 15번지) 신세계백화점 5층 Tel. +82.32.430.1158 shinsegae.com

멘토링 과정을 선행한 인천 신진 작가 지원전시로 영아티스트 6人의 회화, 설치 등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이다. ● 『인천 영아티스트』는 인천지역의 젊은 작가들을 지원함으로써 미술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일환으로 시작되어, 2011년 재개관 이래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전시이다. 올해는 6명의 영아티스트 류주현, 성지연, 임현준, 정진욱, 정혜윤, 한규원이 선정되었으며, 이들 영아티스트는 미술계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3人의 멘토들과 매칭되어,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전시 수개월전부터 멘토링 작업을 선행하였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동안 고민했던 작업의 결과물을 선보인다. 인천을 주요 근거지로 작업해가면서 지원 시스템이 열악한 상황에서 큐레이터와 더불어 3人의 멘토(권경환, 김홍기, 박동삼)와 작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한 이번 전시는 그 과정으로도 의미가 있다. ●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영아티스트들의 작품 중 류주현의 작품은 현실의 풍경인 듯 하지만, 기하학적인 형태, 색면들로 추상화되거나 이상화된 풍경이다. 다 채워지지 않은 정혜윤의 작품 속 여백은 작가의 기억과 감정을 우리의 그것과 대화하기를 시도한다. 이 일상의 풍경이 우리 모두를 위안하는 경험이 된다. 영아티스트 성지연의 작품은 SNS상에 우리가 보여주는 사진과 같은 이미지지만, 그것을 해체하는 선들과 점들로 그것이 진짜가 아닌 허구일 수 있는 가면 같은 역할을 하듯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에 있기도 하다. 한규원의 작업 역시 꿈이 반영하는 일상의 불안과 공포를 재현하면서, 현실의 풍경과 악몽 속 이미지를 혼돈시킨다. 「무얼 먹고 사나」라는 윤동주의 시와 함께 「별이고 싶었던 별들에게」란 설치를 보여준 정진욱은 별이라 칭해지는 꿈꾸는 사람들로 젊은 작가들을 빗대며 그들의 현실과 꿈을 드러낸다. 한편, 임현준 작가는 거대화된 햄버거, 도너츠 등 패스트푸드의 형상을 통해 우리의 식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이와 묘하게 맞닿아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성욕을 드러낸다. ● 『인천 영아티스트』 전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열정적인 탐구와 실험으로 탄생한 새롭고 흥미진진한 작품 세계를 체험하시기 바란다. 이들 영아티스트들이 앞으로 미술계에서 펼칠 행보를 기대한다. ■ 인천신세계갤러리

류주현_Bird's Eye Vie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2×162.2cm_2015

영아티스트 류주현에 대하여 - 현실과 이상이 맞닿은 도시 풍경 ● 한국의 오래된 다닥다닥한 주택들, 일본 나오시마의 녹색 가득한 농촌 풍경, 샌프란시스코의 꽤나 규칙적인 거리 풍경, 프랑스 파리의 전형적인 주상복합건물들이 캔버스에 가득하다. 어쩐지 낯익으면서도 어느 동네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도시의 풍경들이다. 이처럼 류주현의 회화는 주로 도시의 풍경, 간혹 촌락의 풍경을 묘사하는 일종의 구상화이다.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면 판단이 달라지기도 한다. 캔버스를 채우고 있는 요소들이 선과 면으로 한정되어 있을 뿐더러 그 선은 모두 직선들이며 그 면은 명암의 효과와 상관없이 각각 균질한 색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색들은 실제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그것들과는 매우 다르다. 고로 그의 회화는 다채로운 색면들을 구성해서 만들어낸 일종의 추상화이다. ● 요컨대 류주현은 현대인의 삶의 터전을 소재로 삼아 반추상 또는 반구상 회화를 구사하는 작가다. 그는 자신이 방문한 공간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장소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그 장면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캔버스에 옮긴다. 일종의 조감도(Bird's-Eye View), 즉 새의 눈으로 관조한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다. 새가 자유롭게 도시의 대기를 활공하듯이 그의 시선은 창공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볼 때도 있고 지평선과 맞닿아 수평에 가까울 때도 있다. ● 시점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그가 새처럼 날아 올라 도시를 조감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욕망이 그가 도시 풍경을 추상화시키는 첫 번째 원동력이다. 높은 곳에서 새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는 디테일이 사라지고 선과 면의 기하학적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두 번째 원동력은 화가로서 류주현이 지닌 색채에 대한 고유한 감각일 것이다. 현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색면의 구성을 시도해 보려는 욕망이 그의 풍경화를 추상으로 이끈다. 이렇게 그려진 도시의 조감도는 현실의 도시를 연상시키지만 매우 이상적인 풍경이다. 이곳은 매우 익숙한 도시지만 마치 장시간 노출한 카메라에 담긴 사진처럼 모든 행인들이 소거되어 있고, 마스킹테이프를 덧대어 그린 선들은 매우 기하학적이지만 현실적 풍경과의 유사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구상과 추상,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도시의 풍경이 류주현의 회화를 오래도록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 김홍기

정혜윤_아이들의 시간_캔버스에 유채_130.3×193.3cm_2016

영아티스트 정혜윤에 대하여 - 기억과 감정을 주고받는 회화 ● 정혜윤은 그리는 만큼이나 그리지 않는다. 화가는 무언가를 그리겠다는 결단과 행위의 주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언가를 그리지 않겠다는 무위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화면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화면을 비워두는 것도 화가의 고유한 행위인 것이다. 정혜윤은 이 이중적 행위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사실 그는 한동안 채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화면은 형상과 색채로 가득 차 있었고, 혹여 여백이 생기게 되면 다소 해체된 텍스트가 그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채움이 비움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는 화면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비움을 동반하는 회화를 그려내고 있다. (중략) 채색이 일종의 말하기라면 여백은 듣기에 해당될 것이다. 정혜윤의 회화에 채색뿐만 아니라 여백이 들어섰다는 것은 그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만큼 관객의 말을 듣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 말을 나눈다는 것은 말에 담긴 기억과 감정을 나누는 행위이다. 회화의 여백을 틈타 관객은 작가의 기억 속으로 슬쩍 들어와 자신의 기억을 덧칠해 볼 수 있게 된다. 나의 일상과 너의 일상,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이 서로 교집합을 형성해 나갈 때,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선물이 되는 기적은 '나'와 '너'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안하는 경험이 된다. 정혜윤이 작품으로 말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눈부신 경험일 것이다. ■ 김홍기

임현준_Untitled_캔버스에 유채, 트립틱_193.9×130.3cm×3_2016

영아티스트 임현준에 대하여 - 욕망을 관조하다 ●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다양하고 끝도 없지만 임현준 작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욕과 식욕이다. 이번 전시작품에서는 그동안 성욕을 내용으로 한 작업은 배제하고 화려하고 탐욕스러운 정크푸드의 이미지를 주제로 하여 인간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욕구를 보여주고 있다. ● 요즘 대중매체에서는 먹방이란 말을 흔하게 들을 만큼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그것을 소비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비주얼과 리액션을 원하고 있으며 먹방을 보면서 자신이 음식을 먹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임현준 작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Food Porn'이라는 새로운 단어와 연결시켰는데 이는 식욕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으로 야한 동영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욕이라는 주제에서 음식으로 변화를 주면서 성욕과 식욕은 묘하게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성욕은 보다 감춰야 하는 욕망이었고 식욕은 인간의 생명에 직결되는 부분으로 보다 사회에서 합리화할 수 있는 욕망이었다. 하지만 임현준 작가의 작품을 보면 식욕 또한 인간이 탐하고 탐하는 욕망임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주로 정크푸드를 보여주고 있지만 정크푸드가 건강에 나쁘다거나 인간의 욕구에 부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음식을 통해 조용히 관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표현하겠다. (후략) ■ 박동삼

정진욱_별이고 싶었던 별들에게_나무, 박스, 비닐, 포장지, 일반수지, 나무 파렛트, 조명_가변크기_2016

영아티스트 정진욱에 대하여 - 완벽한 어떤 것 ● (전략) 정진욱은 '별'이 가진 사회적 통념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가치와 욕망에 대해 질문한다. 정진욱의 이러한 시선은 은유적인 별을 완성해가는 개인의 욕망으로 해석되고, 별들을 양산하는 모습을 한 거푸집 조각으로 연결된다. 또 「별이고 싶었던 별들에게」와 윤동주의 시 「무얼 먹고 사나」를 함께 보여주면서, 최면에 걸린 것처럼 모두 같은 이상을 좇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개인의 정체성 없는 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양은 냄비에 생수를 끊임없이 끓이는 작업「냄비 근성」과 파라핀을 조각한 「완벽한」이라는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완벽한」은 파라핀을 조각하는 도구를 참여자에게 주고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게 주문한 후 그 결과물을 전시한 작업이다. 이것은 완벽한 어떤 것을 제작한 사람들의 시각 차이를 보여주면서,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완벽함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이처럼 정진욱의 작업에서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 가치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그가 만들어낸 작품의 의미와 예술의 위치를 사회와 연결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이 작업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러한 고민은 정진욱이 바라보는 사회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자신의 이야기로 연결될 것이다. 그 이유는 정진욱이 뒤틀어진 가치와 모순들을 지속적으로 짚어내고 관찰하기 때문이다. ● 나는 작가의 작업 제목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작업을 이해하기 쉽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확장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정진욱의 작업 제목을 다시 보고, 그의 고민을 이해해보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 「누군가」,「사람이 사람이기 위해」,「긴장과 불안 혹은 기대」,「집 알 수 없는 집」,「일반적」,「올바른 말」,「위대한 것」,「자연스럽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비의도적 폭력」,「냄비 근성」,「완벽한」,「별의 틀」,「별이고 싶었던 별들에게」. ■ 권경환

성지연_이대역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16

영아티스트 성지연에 대하여 - '우리'는 '진짜'인가?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을 정하기 위해서 고민할 것이란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예견했을까? 좀 더 멋진 자신만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에 경고를 하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멋진 풍경 사진, 좀 더 날씬해 보이고 얼굴 선이 예뻐 보이는 사진 등을 찍는 방법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진에 사로잡혀 SNS에 올리는 걸까? 올라오는 사진은 매우 다양하지만 많은 사진들은 모두 "나 이런 사람이야"를 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 속의 인물은 나를 중심으로 찍혔으나(강아지를 찍어도 내가 키우는 강아지, 풍경이라도 내가 본 풍경이다!) 사진은 남을 향하고 있다. ● 성지연 작가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던졌다. 내가 찍고 SNS에 올리는 사진이 가면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전 작업에서는 얼굴을 조각내어 가면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찍는 사진이 가면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이 찍은 풍경 사진을 고찰하고 그 속에서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이미지, 그리고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풍경이나 작가가 개인적으로 자주 찍는 신발 사진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아름다운 사진은 아니다. 오히려 성지연 작가의 의도나 생각을 더 궁금하게 만드는, 그래서 가면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에는 사진이 물리적으로 담고 있는 실체 외에 그것을 해체하는 선들이 그어져 있다. 풍경이나 신발이 완전히 조각나 있지는 않으면서 물리적 실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보이지 않는 흔들림은 진정한 자신과 허구의 자신을 구분하려고 하는 작가의 움직임으로 보인다. (후략) ■ 박동삼

한규원_지하_캔버스에 유채_73×91cm_2016

영아티스트 한규원에 대하여 - 어떤 현실 ● 한규원은 '창작의 원천으로서의 꿈'이라는 말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꿈'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악몽'이나 '길몽' 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매일같이 꾸게 되는 그 꿈들이 잠이 깬 현실에서도 자신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꿈에 대한 궁금함, 혹은 그 해석으로 자신의 꿈을 그리거나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두가 그렇듯이 잠이 깬 이후에 찝찝함을 지울 수 없는 꿈은 대부분이 '악몽'이다. 그 때문인지 한규원의 작업에서 주로 보이는 이미지들은 악몽에 가깝다. 좀비 영화에나 나올 법한 흘러내린 얼굴을 그린 「심연」이나 「공간 속」, 「불안 속」시리즈 역시 암울하고 뒤틀린 대상과 공간을 묘사함으로써 더욱 '악몽'스럽다. 그러한 한규원의 악몽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 속에 등장하는 현실의 사물들이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가정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가스통을 그린 「LPG」, 버려진 지하방을 연상시키는 「부르스타」, 무덤처럼 만들어진 창고의 입구를 그린 「지하」, 어둠 속에서 슬며시 보이는 건물의 모습인 「로비」, 불길한 색감으로 그려낸 「컨테이너」와 「인터폰」은 그가 바라보는 일상 속의 '악몽'을 보여준다. 이것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사회 비판적 태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선택한 사물들은 현실의 불안과 두려움을 응축하여 보게 한다. 때문에 작업은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불안을 드러내는 대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한규원의 작업은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거대 사건들을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꾼 꿈이 그의 삶에 영향을 주고, 동시에 그 꿈이 반영하는 일상의 불안과 공포가 다시 회화로 재현된 것이다. 그래서 한규원의 작업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의 그림은 도시에 남겨진 이데올로기의 악몽이자 실패한 성장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후략) ■ 권경환

Vol.20160928j | 2016 인천 영아티스트 Incheon Young Artist 2016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