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픽스

Twin Peaks展   2016_0930 ▶ 2016_1210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0929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하나_문성식_박광수_박미례_박세진 박정혜_박진아_백경호_손현선_이세준 이우성_이제_이현우_이호인_임자혁 전병구_최은경_한주희

주최 / 하이트문화재단 후원 / 하이트진로주식회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하이트컬렉션 HITE Collection 서울 강남구 청담동 영동대로 714(청담동 132-12번지) 하이트진로 청담본사 B1~2층 Tel. +82.2.3219.0271 hitecollection.com

두 개의 봉우리 ● 회화는 모든 시대에 있다. 그러나 『트윈 픽스』展은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 즉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가까웠으나 꽤 상반됐던 시대와 지금에 초점을 맞춘다. 전시는 노스탤지어와 어떤 약간의 희망으로 시작됐다. 전자는 2000년대 중반 미술 현장을 목도했던 기억이며, 후자는 2010년대 중반 다시 미술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긍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다.

김하나_무제 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6
문성식_늙은 정치인 Old Politician_종이에 아크릴채색_111.7×76cm_2016
박광수_좀 더 흐린 숲 속 A Bit Vaguer Forest_종이에 아크릴채색_100×70cm_2014
박미례_바닷가 할아버지로 부터 Passed down from Grandfather_캔버스에 유채_162.3×237cm×3_2016

전시의 제목은 아메리칸 컬트의 레전드인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에서 그대로 가져왔는데,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이라는 타임 라인의 두 시기를 나란히 마주보게 하고자, 둘 또는 나란히 라는 느낌을 담을 방법, 그리고 (소소한 언어유희를 통해) 회화 전시라는 것을 염두하고 제목으로 결정했다. 트윈 픽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언덕의 지명이기도 한데, 그다지 높지 않지만 도시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두 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봉우리라 칭한 것은 약간의 고도만으로도 꽤 많은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회화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법과 관점이 있겠지만, 이 전시는 근래의 회화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중반의 타임 라인에 있는 봉우리에 오르고자 한다.

박세진_날파리_성미산 2010 Flies_Seongmisan Mt.2010_캔버스에 유채_130×162.3cm_2011~6
박정혜_Ms.Mos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6
박진아_노란 바닥 02 Yellow Floor 02_캔버스에 유채_170×205cm_2015
백경호_Clint Eastwood_캔버스에 유채, 목탄, 스프레이_120×140cm, 지름 55cm_2016

타임 라인에 솟아 있는 두 개의 봉우리. 이것을 그럴싸한 말로는 시대적 지형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가리키는 걸 좋아하겠지만 기억과 경험은 주관적이므로 『트윈 픽스』전의 두 개의 봉우리는 우선은 일개 기획자의 시선에서 보는 타임 라인의 봉우리들임을 밝힌다. 18명의 참여작가들이 대체로 기획자의 동선 반경 내에 있었던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들 중 몇몇은 기획자가 학창 시절부터 작업을 봐왔던 이들이고, 몇몇은 2006년경부터 작업을 알게 되었다. 2010년대 이후 활약하는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최근 2-3년 사이 벌어진 전시들을 통해서 주목하게 되었는데 졸업 전시에서 우연히 본 작가도 있다. 약간의 시차가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트윈 픽스』전의 타임 라인은 작가들의 연령보다는 경력의 시작에 기준을 두는데, 2000년대 중후반 활동을 시작한 문성식, 박미례, 박세진, 박진아, 이제, 이호인, 임자혁, 최은경, 한주희를 타임 라인의 첫 번째 봉우리로, 2010년대 이후 활동을 시작한 김하나, 박광수, 박정혜, 백경호, 손현선, 이세준, 이우성, 이현우, 전병구를 두 번째 봉우리로 위치시키고자 한다.

손현선_도는 사이 While revolving around_종이에 유채_31×41cm_2015
이세준_바이 바이 보이저 Bye Bye Voyager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3_개인소장
이우성_This Pathway_선에 수성 페인트_210×210cm_2016
이제_마지막 날_The Last Day_캔버스에 유채_215×272cm_2010

첫 번째 봉우리에 대한 간략한 기억은 이렇다. 문성식과 박세진은 2005년 20대의 나이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가했다. 최은경은 2004년에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에서 전시장 지하1층 입구인 그리팅 자리에 있는 「발축전-거울」은 그의 2003년작이다. 박진아, 임자혁은 2000년대 중후반 금호 영아티스트, 에르메스 미술상, 아트 스펙트럼 등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호인은 2007년 몽인아트센터 개관 후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 현재 합정지구 운영을 병행하고 있는 이제는 2001, 2002년 대안공간 풀에서의 단체전 참여 이후 풀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박미례와 한주희는 기획자가 학창 시절부터 보아온 작가들이다. 이 아홉 명의 화가들 중에는 (적어도 외견상)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큰 기복 없이 버텨온 이들도 있고 안팎의 사정으로 인하여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 이들도 있다. 지나온 시간이 어떻든 간에 현재 이들은 모두 새롭게 부상한 더 젊은 화가들과 섞이는 중이다.

이현우_셔터-2층 Shutter-Second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6 이현우_셔터-1층 Shutter-Ground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6
이호인_516도로의 밤 Night of 516 Road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3
임자혁_먼 산 The Distant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16

2010년 이후, 특히 최근 2-3년 사이 등장한 화가들에 대한 기획자의 관심은 작년 하이트컬렉션의 회화전 『두렵지만 황홀한』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전시는 동시대 젊은 화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이었지만, 가능하다면 여러 세대의 회화 하는 사람들을 모이게 해보자 라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젊은 화가들과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기획자가 회화전 기획이 처음이었던 탓이 제일 컸고, 중견 화가들이 자신들의 회화를 설명/대변할 어휘를 충분히 획득했다고 한다면, 반면 젊은 화가들은 그들의 그림이 어떤 과정을 형성하는 중이기도 해서 그에 따른 언어의 시행착오가 수반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몇몇은 굳이 기성 세대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들은 이전 시대 작가들에게 발판이 되어준 기성 제도에 의지하기보다는 재현의 공간을 스스로 조직하는 방법론을 택하는 세대들이기도 하다. 즉 2014년 전후로 등장한 신생공간들과 활동이 맞물려 있는 젊은 화가들이 꽤 되는데, 이번 전시의 두 번째 봉우리에 해당하는 김하나, 박광수, 박정혜, 백경호, 손현선, 이세준, 이우성, 이현우, 전병구, 이들 아홉 명 중 두어 명을 제외하면 2014년 ⟪오늘의 살롱⟫전을 거친 공통된 이력이 있다. 이들 아홉 명은 느슨하게나마 첫 번째 봉우리의 아홉 명과 대응이 가능하도록 선정되었다(거꾸로, 이들에게 대응시킬 수 있는 2000년대 중반 작가들을 찾으려고도 했다). 예컨대 박진아와 전병구, 문성식과 박광수, 이제와 이우성과 같은 식이다.

전병구_혼자만의 것 My Own Thing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6
최은경_발축전-거울 Mirror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3
한주희_붉은 마음 Red Heart_캔버스에 색연필, 종이에 연필, 컬러파우더_60.6×72.7cm, 110×78cm_2011

이리하여 놓고, 어떤 전시가 되면 좋을지 하는 고민은 기획의 초기 단계보다 오히려 작품 설치를 끝내고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해 자잘한 마무리를 하는 시점에 미진한 부분들을 깨닫게 되면서 더더욱 머리 속을 괴롭힌다. 자책은 자체적으로 하기로 하고, 바램이 있다면 근래에는 전시는 논문이 아니라는 것. 또 하나의 소스라는 것. 적어도 이 전시는 또 하나의 소스가 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11월 중으로 발간될 카탈로그에는 세 명의 필진(구나연, 권시우, 권혁빈)이 각자의 관점으로 이 전시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이들에게는 출품작을 실견한 후에 글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존 버거는 "시각적인 것은 그 자체가 말로 고스란히 번역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the visual never allows itself to be translated intact into the verbal)"(John Berger, Keeping a rendezvous, New York: Vintage Books, 1991, Kindle edition.)고 하였다. 필진들의 역할이 회화를 언어로 번역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지난 몇 편의 전시에서 기획자는 말과 미술의 어긋남을 계속 경험했다. 우리는 언어의 안내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지나친 말의 상찬은 오히려 작품을 가로막는다. 회화는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물질이며 작가의 몸이 지나간 흔적이므로 실견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개념의 증거로만 존재하기에 회화에는 너무나 많은 우연이 발생한다. 시각적인 것이 말로 고스란히 옮겨질 수 없듯이, 개념/말 또한 시각적인 것으로 고스란히 옮겨지지 않는다. ■ 이성휘

Vol.20160930g | 트윈 픽스 Twin Peak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