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Relation

박현주展 / PARKHYUNJOO / 朴昡姝 / installation   2016_0930 ▶︎ 2016_1203 / 일~목요일 휴관

박현주_Light Monad-nirvana4p_나무에 아크릴채색, 금박_각 12×80×1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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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홈페이지_www.hyunjoopark.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금~토요일_11:00am~18:00pm / 일~목요일 휴관

HRD fine art ファインアート 494-1 Kamigoryo-tatemachi, Kamigyo-ku, Kyoto-shi, Kyoto 602-0896 Japan www.hrdfineart.com www.facebook.com/pages/HRD-Fine-Art/163171260379156

내면의 빛, 내면의 공간 ● 박현주의 작업은 빛이 주제다. 그 빛은 육안으로 감지되는 장소 속의 빛이 아니라 심안(心眼)으로 인식되는 공간 속의 빛이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내관(內觀 introspection)의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진 건 호모사피엔스에 와서다. 눈을 감으면 현상으로 존재하던 장소(place)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대신 마음속에 무한한 공간(space)이 떠오른다. 공간은 내관이 발견하고 깨친 무한대의 영역이다. 장소는 몸의 감각이 지각하는 범위 즉, 눈을 뜨고서 가장 멀리 보이는 소실점까지다. 소실점 바깥의 무한한 세계, 즉 공간의 세계는 지각을 넘어선 인식의 영역이다. 인식은 눈을 감고서 지각을 닫아야 비로소 열리는 능력이다. 박현주의 작업은 이런 인식의 영역과 관련이 꽤 있어 보인다. ● 어둠이라는 극도의 불리함 속에서 감상자의 지각능력을 향상시켜 보는 미술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금박 후스마에(襖絵)를 들 수가 있다. 박현주는 동경예대에서 유학을 했다. 이때 학부생들의 연례행사인 고비켄(古美硏)이라 불리던 2주일간의 여행을 따라갔다. 교토와 나라의 오래된 사찰들을 둘러보며 고미술을 연구하는 여행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약한 밝음 혹은 어둠 속에서도 감상이 가능한 금박의 후스마에(襖絵)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마침 동경예대 유화기법재료연구실에서 프라 안젤리코의 황금배경 성모상을 모사하며 템페라화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금박 템페라화와 금박의 후스마에(襖絵)에는 당연히 금박이라는 재료가 들어간다. 금박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재료다. 어둠 속에서 우리를 성스러운 밝음의 상태로 끌고 간다. ● 원래 일본의 건축에는 집 전체가 곧 하나의 방이었다. 여기에 후스마(襖)라고 하는 칸막이가 더해져 여러 개의 방이 생긴 건 후대의 일이다. 후스마가 늘어날수록 음예(陰翳)는 깊어진다. 후스마는 수직의 칸막이다. 문이자 동시에 벽이다. 칸막이가 많아지면 질수록 화이트 큐브 속의 벽면처럼 그림 등 조형을 위한 장치는 늘어난다. 그림이 걸릴 확률은 높아졌는데 내부는 대신 어두워졌다. 전기조명이 없던 시절,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금박 후스마에는 이런 장소성에 적절하고 유효한 양식이었다.

박현주_Light Monad(S)01_스테인레스 스틸, 아크릴채색_각 18×60×18cm_2015
박현주_Light Monad-nirvana3p_나무에 아크릴채색, 금박_각 15×35×15cm_2015

한편 칸막이는 또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방이 곧 집이던 시절, 집과 방은 커다란 장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집이 균질적으로 분할되면서 장소에는 균질성과 질서를 가진 공간의 개입이 시작되었다. 수직의 칸막이는 자연과 장소에는 없는 인공적이고 공간적인 개념이다. 칸막이는 장소의 끝인 소실점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차단함으로써 공간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장소를 향한 지각이 차단되면 바깥으로 향하던 사람의 육안 대신 심안이 작동하면서 공간을 향한 인식이 돋아난다. 눈을 떴을 때 장소가 나타나고 눈을 감았을 떄 공간이 열리듯이 후스마라는 칸막이가 열렸을 때 장소로 향하는 시선이 열리고, 후스마가 닫혔을 때는 내관이 열려 의식을 공간으로 향하게 한다. ● 칸막이를 통해 장소가 좁아지고 음예가 깊어질수록 공간에 대한 인식은 늘어난다. 그 인식의 크기만큼 내관(內觀)이 점유하는 공간은 늘어난다. 일본건축 속의 음예공간은 이러한 의식상태 속에서 성립한다. 다시 말해 후스마는 음예를 더함으로써 육안의 민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장소성을 강조하는 한편 동시에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공간을 향해 내관(內觀)을 작동시키는 이중의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 후스마에(襖絵)는 음예공간이란 환경 속에서 발전한 미술양식이다. 그러나 후스마에는 극단적으로 무한대의 공간을 향해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림이라고 하는 또 다른 가상의 유한한 장소를 제시했을 뿐이다. 프라 안젤리코의 황금배경 성모상 역시 종교화이기는 하나 무한한 공간을 특징적인 조형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 박현주가 템페라화와 후스마에에서 우선 주목한 건 금박이라고 하는 재료의 측면이었다. 금박이 섬세하게 광도의 변화를 일으키는 한 장소성의 기미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공간을 향하려고 한다. 여기서 공간은 전후좌우 사방이 통으로 하나인 균질공간(universal space)을 말한다. 내관으로만 가늠이 되는 무한공간을 일컫는다. 균질(uni-verse)이란 하나의 방향(verse)만을 가진 명확한 로직을 지닌 인식의 세계다. 분명한 로직의 텍스트 혹은 인식의 내부에서만 상정되는 원이나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인 형태가 그것이다. 모든 사물과 사태가 심플한 형태로 환원되어 엄정하고 강직(solid)한 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다. 박현주의 작업이 주로 원이나 사각형만으로 이루어진 건 이처럼 초월적인 균질공간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 공간과 달리 장소는 다양한 방향성(di-verse)을 가졌다. 공간과 장소, 이 둘은 결코 만날 수가 없는 별개의 층위다. 전자는 인식의 세계이고 후자는 지각의 세계다. 어둠의 장소 속에서 후스마에는 빛과 신체의 방향(verse)에 따라 민감하고 다양하게 반응한다. 다양한 방향성을 지닌 장소 속에서는 모든 게 액상(liquid)처럼 변화무쌍하다. 형체, 각도, 분위기는 방향(verse)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 데카르트가 정의한대로 소실점까지의 무한한 거리를 초월하여 즉, 장소를 넘어서서 공간을 상정하는 게 아니라 후스마는 가까운 거리에서 시각의 차단을 통해서 겨우 공간을 끌어들인다. 그러기에 원래의 장소성은 유효하다. 후스마는 공간을 향한 입구일 뿐이다. 공간을 끌어들이되 장소를 포기하지 않는다. 장소가 유효함은 여전히 현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박현주_Light/Relation展_HRD fine art_2016
박현주_Light/Relation展_HRD fine art_2016

공간과 장소를 동시에 다루는 작가로, 미니멀 아티스트 도널드 저드와 함께 활동을 했던 뉴욕의 구와야마 다다아키(桑山忠明)가 있다. 그는 일본화를 전공했고 박현주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금박작업을 하였다. 박현주와 구와야마의 공통점은 기하학적인 조형성, 금박(박현주)과 티타니움(구와야마)이라는 메탈감각 그리고 설치미술적인 작품배치에 있다. 관람자의 신체의 방향에 따라 반입체인 작품의 형태와 표면은 민감하게 변화를 보인다. 균질공간의 구조적 형태를 취하면서도 장소성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은 결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구와야마의 입장은 박현주에게도 유효하다. ● 박현주에게는 생이지지(生而知之)로서의 성리학이 있다. 서양의 절대적 공백성(空白性)과는 다른 공간의식이지만 동북아의 주류인 시간성의 철학과는 달리 성리학에는 신체를 비우거나 반복적으로 희박화시켜 공간으로 향하려는 수신(修身)의 공간철학이 있다. 자신을 비워내어야만 하는 수신은 개인의 개성 대신 우주적인 질서를 따르려는 기하학적 조형의 엄격함과 연계가 되기 쉽다. 성리학적 공간의식과 수신은 박현주의 작품에서 기하학적인 그리드의 반복으로 나타난다. ● 성리학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도널드 저드가 애정을 보였던 병산서원(屛山書院)의 만대루(晩對樓)가 있다. 매우 단순한 구조의 반복과 함께 열림의 질서로 공간을 향해 트인 정자다. 후스마가 닫힌 공간의 질서라면 만대루는 열린 공간의 질서다. 박현주의 작업은 장소에서 곧바로 공간으로 도약하는 점에서 만대루를 많이 닮아있다. ● 공간에는 빛이 없다. 현상을 벗어난 곳에 빛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박현주의 작업은 왜 공간을 향한 내면의 빛인가. 그건 장소의 물질이 물성의 상태를 털어내고 공간으로 향하는 프로세스에 빛의 입자가 등장할 거라는 암시를 하기 위함이다. ● 박현주의 작업에는 바림이란 기법이 등장한다. 스펀지 롤러가 사용되었다. 바림질로 인한 그라데이션은 물성이 점점 희박화하면서 빛의 입자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케 하며 필경에는 투명한 공간으로 우리를 다다르게 한다. ● 금박 후스마에와 종교적 금박 템페라화가 제시하지 못했던 균질공간의 조형적 구조인 엄정한 기하학을 박현주는 작품 속에서 제시했다. 그러나 박현주는 동시에 장소를 지각하고 있다. 장소와 공간은 서로 별개의 영역이다. 결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같이 동떨어진 이 둘을 한방에 묶을 수 있는 방편이 있다면 그건 박현주의 작업이 될 것이다. ■ 황인

박현주_two beings(b)_종이에 아크릴채색, 금박_44×74.5cm_2016

Inner Light, Inner Space ● The main subject of Hyunjoo Park's art installation is simply "light." This is not the light of a place that is visible to the naked eye, but rather the light of a space that is visible to the mind's eye. ● Homo sapiens are the first species of humans endowed with the ability for introspection—the ability to close our eyes, yet still see. If we close our eyes, the light of a place immediately vanishes. It is supplanted by the light within ourselves—the light of infinite space. Space is the unbounded territory discovered and comprehended through introspection. Place is bounded by that which can be physically perceived; or in other words, the territory to the most distant vanishing point that our open eyes can see. Space, the infinite world beyond that vanishing point, is the territory of extra-physical perception. Awareness is a capacity that unfolds when we close our eyes and quiet our senses. Park's art seems to be broadly connected to this realm of awareness. ● Some art increases the viewer's perception in the dark, which is an exquisitely disadvantaged standpoint. An apt example is gold leaf paintings on fusuma folding screens. ● Park studied at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During her time there, she took part in the annual trip, called Kobiken, that students made to study ancient art. The group toured historic shrines and temples in Kyoto and Nara to learn about traditional art. The trip was an occasion for Park to cultivate a special interest in subtle lighting and gold leaf adorning folding screens that create visible hues even in the dark. ● At that time, Park was in the Oil Painting Technique and Material Department at Tokyo University of the Arts studying tempera painting while replicating Fra Angelico's Madonna and Child on gold backgrounds. Of course, gold leaf is used in both gold leaf tempera painting and in gold leaf folding screens. Golf leaf is a material that emits light in the dark. It guides us out of the darkness to a sacred brightness. ● Traditionally, Japanese houses were comprised of a single, sprawling room. Later, folding screens were added to separate space and, in time, houses came to have multiple rooms. The larger the number of screens, the deeper the shadows that were created. Folding screens are vertical dividers. They function simultaneously as both doors and walls. With a greater number of dividers, there was a greater number of devices, such as paintings, to give shape to the new space, akin to what would be done to decorate a white cube. The number of paintings adorning the insides of homes increased, though the interior became darker at the same time. In a period without electric light, screens with gold leaf were a suitable and effective style for such places. ● Meanwhile, dividers brought forth the concept of space. When houses were one single room, the house and the room were nothing more than one large place. However, as houses were proportionally divided, they began to be intervened by space that had consistency and order. Vertical dividers are an artificial, spacial concept foreign to nature and the like. Dividers interrupt our line of sight seeking out the terminal vanishing point of a place, and therefore elicit space. When perception directed toward a place is interrupted, the mind's eye is engaged instead of the naked eye that sought to peer outside. This gives rise to awareness directed toward space. Similar to how place greets one's open eyes while space spreads out in response to closed eyes, opening fusuma screens widens one's line of sight directed toward a place, while closing a screen stimulates inner vision and directs one's awareness toward space. ● To the extent that dividers make place more narrow and shadowed, awareness of space expands. And space occupied by inner sight expands in proportion to the breadth of that awareness. Shadowed space in Japanese architecture is formed amidst this type of awareness. Stated differently, fusuma screens serve a dual purpose in that their shadows draw out our physical vision to its fullest extent and emphasize place, while stimulating inner vision by interrupting the line of sight and leading our minds toward space. ● Fusuma paintings are an artistic style that developed within this environment of shadowed space. These paintings, however, do not ultimately progress toward infinite space. They only suggest the virtual, limited place of the painting. Fra Angelico's Madonna and Child on gold background is a religious depiction; they do not suggest infinite space through distinctive shapes. ● What Park first examined in tempera and fusuma paintings was gold leaf material. Gold leaf unveils the pattern of place to the extent that it subtly modulates luminosity. ● However, Park went one step further and examined space. As used here, space refers to universal space extending equally in all directions. It is infinite space only detectable through inner vision. As it implies, uni-verse has only one direction and is a realm of perception with uncomplicated logic. Uni-verse includes the text of uncomplicated logic or geometrical shapes like circles and squares imagined only within awareness. In this context, all things and matters revert to simple shapes and take on rigid, solid structure. Park's artwork is primarily composed only of circles and squares because she is seeing this type of transcendent, universal space. ● Unlike space, place is di-verse and multi-directional. Space and place cannot intersect as they belong to different horizons. The former is the realm of awareness, while the latter is the realm of perception. Fusuma screens react delicately and diversely in dark places according to the verses (directions) of light and body. Within places with diverse directionality, all is like liquid, graced with rich modulations. Changes are frequent in shapes, angles, and atmosphere, corresponding to their verses (directions). ● Fusuma screens do not follow the Cartesian definition of transcending the infinite distance to the vanishing point and imagining a space beyond place, but rather interrupt sight and draw in space at close proximity. Hence, the original nature of place is still valid. To say that place is still valid means that the prior phenomenal states are maintained. ● Artists who simultaneously handle space and place include Tadaaki Kuwayama, who is active in New York and has worked with minimalist artist Donald Judd. Kuwayama studied Japanese painting and made works using gold leaf in his early years, as Park does now. The commonalities between Park and Kuwayama are geometrical shapes, a metallic feel (gold leaf in the case of Park and titanium in the case of Kuwayama), and the placement of their works in a manner similar to an installation. The shape of semi-three-dimensional art and the subtle surface modulations vary according to the direction of the viewer's body. While taking on a structure of universal space, the works do not sacrifice their elements of place. Kuwayama's assertion that he is absolutely not a minimalist applies to Park as well. ● Park demonstrates elements of Neo-Confucianism’s a priori knowledge endowed at birth. Neo-Confucianism encompasses an awareness of space that differs from the stark emptiness asserted by Western concepts and also differs from the philosophy of temporality that is mainstream in northeast Asia. This spatial philosophy involves moral training such as emptying oneself, diluting the ego, and confronting space. We could trace a connection between training oneself to be empty and the rigidity of geometric shapes that endeavor to obey the order of the universe, rather than the character of the individual. Neo-Confucian spatial awareness and moral training are expressed by the repeating geometric grids in Park's art. ● A signature Neo-Confucian architectural example is Donald Judd's beloved Mandaeru Pavilion of Byeongsan Seowon (seowon are privately run Neo-Confucian academies). The arbor, opening toward empty space, employs order through extremely simple, repetitive structures and openings. If a fusuma screen employs order through closed space, Mandaeru Pavilion employs order through open space. Park's art has a close resemblance to Mandaeru Pavilion in the sense that it leaps from place to space. ● In space, there is no light. There is no point in having light in a realm removed from phenomena. Which begs the question, "How is the inner light of Park's art directed toward space?" The clue lies in how the substance of a place strips away physical properties and in how light particles emerge in the process of confronting space. ● This brings us to Park's use of shading techniques in her work. Her chosen implement is a sponge roller. The gradations created from shading show viewers the gradual attenuation of physical properties that are then translated into light particles. Perceiving this, we are eventually led to a transparent space.  In these works, Park has expressed a rigid geometry of universal space that no gold leaf screens, nor gold leaf tempera paintings of religious icons, could express. Furthermore, Park is simultaneously perceptive of place. Place and space are separate, incompatible realms. They are so detached that one would think they could never meet, yet if there were a way to join the two, it would be found in Park's art. ■ Ihn Hwang

* English translation : Matt White

Vol.20160930i | 박현주展 / PARKHYUNJOO / 朴昡姝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