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6 프로젝트

노승복展 / ROHSEUNGBOK / 盧承福 / photography   2016_1004 ▶︎ 2016_1111

노승복_1366_피그먼트 프린트_300×100cm×4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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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www.spaceikki.com

한나 ● 반짝이는 은색 스타킹. 지문 하나 묻어 있지 않은 검정색 에나멜 하이힐. 엉덩이 위로 올라갈까 조마조마한 미니스커트. 브라선 위로 살집 하나 비집어 나오지 않은 매끈한 등선. 이마에서부터 곡선 가르마를 타고 내려온 탈력 진 웨이브 머리칼. 한 올 한 올 뭉치지 않고 올라간 마스카라. 한 듯 안 한 듯 과하지 않은 액세서리.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한나의 모습이다. 그녀의 이름은 나한나.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한나라고 소개한다. '나'라는 글자가 그녀를 귀찮게 한다. "거꾸로 해도 나한나네요?" "네…" 이런 지겨운 대화라니. 그래서 그녀는 그냥 한나다. 한나예요. 그런 그녀의 입이 새초롬하다. 그러나 그녀가 한나라고 불리는 곳은 흔치 않다. 학습지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아이들의 집을 방문한다. 말끔한 구두에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중력의 힘을 덜 받는 듯하다. 행여나 보도블록 틈새에 힐이 끼지 않을 까 조심하며 허벅지에 힘을 주고, 발목에는 힘을 빼고 마치 날아오르듯 걷는 것이다. 상처는 좋지 않다. 그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상처는 나쁜 것이다. 학습지 교사는 아이들에게 상처 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직업이다. 한나의 걸음걸이는 아이들에게서도 발휘된다. 아이들의 틈새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필요도 그들의 생활에 관여할 필요도 없다. 한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스타킹을 마음껏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정색 무난한 것부터 빨강, 노랑, 은색까지 한나의 스타킹은 한나의 기분을 대신하는 것 같다. 스타킹 색이 눈에 띄도록 되도록이면 짧은 스커트를 입는다. 물론 아이들 집에 방문할 때 치마 길이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단정하면서도 빛나게 아름다운 외모가 치마길이 따위에 눈살을 찌푸리지 못하게 한다. 15분 동안의 학습코칭과 교재전달이 끝나면 그 누구도 아쉬워하는 일 없이 한나는 구두를 신는다. 그런데 어느 날. 왜 만날 스타킹을 신어요? 라고 한 아이가 물었다. 아이의 엄마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매일 늦는 것 같다. 처음 방문한 날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다. 한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의 질문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는 이골이 나 있다. 추워서. 하고 역시나 새초롬하게 답하고는 학습지에 무수히 반복되는 문제 중 세 개를 아무렇게나 골라 동그라미 쳤다. 풀어. 아이는 두 문제를 풀 다 말고 추운데 왜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어요? 그냥 바지를 입거나 긴 코트를 입으면 되잖아요. 근데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한나. 성은요? 그냥 한나야. 시간 다 됐다. 다음에 보자. 배 안 고파요? 한나는 아이의 이런 행동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됐다. 이 집은 한나가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으로 다른 집 일정이 밀리는 바람에 이미 저녁 8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안 고프다고 말함과 동시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것 만 같았다. 한나 선생님, 저랑 라면 먹을래요? 저 학교 갔다 와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너무 배고파요. 미안. 혼자 먹어. 난 가봐야 해. 하지만 전 혼자 가스 불 못 켜요. 저번에도 혼자 라면 먹으려다 집에 불 낼 뻔 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 먹어요. 밥도 없고요. 엄마는 내가 잘 때나 들어오세요, 괜찮아요. 한나는 그냥 나가려다 엄마가 늦게 들어온다는 말에 다시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미 저녁 시간이 한 참 지난 때였다. 가스 불을 켜고 라면 두 개를 끓이는 데 아이가 냉장고에서 달걀 두 개를 꺼내왔다. 한나는 달걀을 먹진 않지만 아이를 위해서 아무 말없이 깨 넣었다. 순식간에 먹어치운 둘은 어느새 친해진 기분이다. 그러나 한나는 아이들 틈새에 끼지 않는다.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선다. 따뜻해진 몸이 찬바람을 쐬니 부르르 떨린다. 아이는 아마도 푹 잘 수 있겠지 하고 한나는 생각하다 곧 도리질을 한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스타킹을 벗었다. 맨다리에 정성스럽게 로션을 바르고 새 스타킹을 신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의 틈새에 끼어 아이의 말이 생각났다. 꿈에서 아이는. 왜 스타킹을 신고자요? 추워서. 거짓말 ...(이하생략) ■ 피서라

노승복_1366_피그먼트 프린트_50×50cm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노승복_1366 프로젝트展_스페이스 이끼_2016

1366은 여성폭력 긴급 상담 전화번호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에 관한 작업으로 남편에게 매 맞은 여성의 몸을 찍은 사진을 이용하였다. 이 사진들은 매 맞은 여성들이 이혼을 할 때, 가정 폭력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법적 증거 혹은 자료로 사용하던 사진들이다. 나는 '여성의 전화' 단체에서 자원 봉사로 일한 경험으로 이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스캔 한 다음 멍을 확대하였다. 크게 확대한 사진은 아픈 내용을 담고 있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내용과는 달리 표면적으로 영롱한 색상을 띤 아름다운 추상적 '회화사진'이 되었다. 색은 보라, 핑크에서부터 노란색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색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폭력의 결과를 찍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과 생명력이 넘치는 이미지로 보이게 한다. 즉 폭력을 은닉 시킨 것이다. 이 사회에는 들어나 있는 폭력보다 가려진 폭력이 더 잔인하고 심각하다. 따라서 1366 프로젝트는 아름다움, 사랑, 화려함, 행복의 표면에 숨겨진 폭력을 의미한다. (작업노트 중) ■ 노승복

Vol.20161004i | 노승복展 / ROHSEUNGBOK / 盧承福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