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 THEWESTERLIESWINDCOMESANDGOES

임영주展 / IMYOUNGZOO / 林榮住 / mixed media   2016_1004 ▶ 2016_1022

임영주_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展_스페이스 오뉴월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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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페이스북_www.facebook.com/youngzoo.im

초대일시 / 2016_1004_화요일_07:00pm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행중인 SeMA 신진미술인 전시지원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후원 / 서울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11:00am~06:00pm

스페이스 오뉴월 Space O'NewWall 서울 성북구 선잠로 12-6(성북동 52번지) 1,2층 Tel. 070.4401.6741 www.onewwall.com

임영주는 종교, 믿음, 신비주의 등 현대미술이 보통은 기피해온 주제를 대담한 언어로 다루는 작가이다. 그 중에서도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와 같이 제도화된 거대 종교가 아니라, 흔히 '미신'으로 단정되고 배제된 종교문화 현상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간다. 그녀는 일단 '미신'이라고 불리는 행위가 부패한 컬트집단이나, 혹세무민하는 종교인의 악행으로 단정되기 이전에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며 오래된 것이고, 합리적인 사고나 과학적인 태도에 의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의 정신적인 생활에서 '미신'(또는 믿음)이 성립하는 아주 복잡하고 깊은 동기들이 그녀의 관심사이다. ● 임영주는 최근 발표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서 미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미신을 포용하려 한다. 우리는 여기서 '미신'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미신이라고 하면 바로 무속문화를 떠올리며, 나아가 신흥종교나 '유사종교'나 이단종교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미신이라는 말은 근대에 들어와 쓰이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의 유교문화, 일제 강점기의 반민족정책, 그리고 새마을운동 등의 근대화 과정과 기독교 문화의 급속한 확산을 지나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개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미혹하는 종교적 무지나 맹신, 광신 등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는 매우 심각한 사회악이기도 하다. 결국 미신과 종교, 또는 미신과 신앙 사이에 어떤 경계를 그을 때, 어떻게 역사 속에서 형성된 편견에서 자유로운 동시에 미신의 맹목성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임영주는 무당이었던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최근까지도 다양한 종교를 편력해왔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은 그녀의 생애와 분리될 수 없는 심각한 주제이다.

임영주_석력_단채널 기록영상_00:01:50 loop_2016
임영주_테스트_물질_단채널 기록영상_00:00:59 loop_2016

작가는 믿음을 진실로 설득하려는 과도한 노력의 양태들을 오히려 강조한다. 그녀는 마치 믿음이 허구적인 대상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느 정도는 알고 느낀다 하더라도, 어쩌면 그 부풀려진 허구성 안에서 어떤 욕망의 밑바닥이랄까 인간적 진실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또 그런 한에서 진실인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진실의 잣대로 허구의 문제점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허구가 오히려 어떤 진실을 드러내는, 또는 그 허구 자체가 진실성이 되는 국면이 그녀에게 주된 관심거리로 보인다. 임영주의 작업에서 자주 나타나는 '근거 없는 믿음', 또는 억지로 믿음의 근거를 찾아내고 합리화하려는 행위들은, 오히려 첨단과학기술이 이끌고 나가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재고하게 하는 하나의 유력한 시각을 제공한다. ● 따라서 그녀의 작업은 현대 한국 사회의 종교문화만이 아니라, 공식적인 삶의 양태들, 현대 기술미디어의 속성, 그리고 동시대 문화의 가치나 존재방식에 대해 격렬하게 엇갈리는 이미지를 풍부하게 제공하게 된다. 임영주 작업의 파괴력은 종교, 사회관계, 직업 등의 모더니즘적 외연이 보기보다 훨씬 더, 유약하고 엉뚱하며 전근대적인 세계들 위에 서 있거나 그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특히 최근작 「돌과 요정」(2016)에서는 운석과 사금을 찾는 사람들과 동행하면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그들의 말을 영상과 소리로 전하는 형식을 취한다. 인물들은 약간의 과대망상과 강박증 환자처럼 보이면서도, 의외로 평범한 이웃들로 그 캐릭터가 반전된다. 이 인물들이 어떤 정신적인 심연을 감추고 있는 독특한 믿음의 소유자로 보이는 대신, 작가는 이들을 소박한 믿음을 따르며 재미있게 살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사람들로 묘사한다. 이 사람들의 안내로 미신과 종교와 과학의 애매한 경계들로 흘러 다니면서, 임영주는 미신을 결국 하나의 '제도'로 정의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미신이라 단죄하는 것과, 사람들이 어떤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소망이나 믿음을 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임영주_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展_스페이스 오뉴월_2016
임영주_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展_스페이스 오뉴월_2016

미신을 포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떤 사람이 만약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해 이를 이계의 메시지로 확신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성취할 수 없는 간절한 소망을 바위에 대고 빈다면, 우리는 이를 쉽게 미신으로 단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비합리성을 권력자나 상인들은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상술에 더해서, 아마도 최신 최대의 조직적 미신은 유무선으로 이어진 대중매체 네트워크에서 조장되고 있을 것이다. 이 세계에 들어서면, 사실 무엇이 미신이고 무엇이 아닌지 잘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폭발적인 정보량만이 아니라 정보의 출처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믿는 정보나 생각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많아진 듯하다. 우리는 물론 미신과 같은 비합리적인 믿음을, 주체가 어떻게든 선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행위와 구별할 줄 안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점점 더 성가신 지적 노고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미신을 포용한다는 것은 그래서 일견 문제로 보인다. 진위 구별과 합리적인 판단도 턱없이 모자란 상황에서 미신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까? ● 임영주는 비합리적인 믿음을 진실이라고 강변하거나 설득하는 방식과 반대로 가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것의 비합리성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히려 과학과 합리적 정신의 편견이나 그것이 초래한 불확실성을 하나의 통속적인 소극(笑劇)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택한다. 현대 종교와 현대 과학이 똑같이 도달한 것으로 보이는 '불확실성의 확실성'을 탐구한다. 달리 말하면 미신을 포용하는 것의 미학적인 합리성을 찾고 사회윤리적인 여유를 기대하는 것이다.

임영주_달은 인간을 갉아먹고 인간은 달을 가린다_기록사진_37×24cm×9_2016
임영주_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展_스페이스 오뉴월_2016

『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 전시(2016,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과학 실험과 유사한 행위를 영상으로 만든 작업들은, 믿음이나 미신과 같은 문제에 접근하는 앵글을 뒤집어 과학 자체에 내장된 '미신적인' 요소를 찾아내려 한다. 작가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유사종교와 유사과학을 삽입해서 종교와 과학의 절대적인 권위에 의심을 품게 한다. 작가에 의하면 초중등 과학교과서에 흔히 보일 법한 실험 매뉴얼, 이를테면 '사물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자.', '무엇을 볼 수 있는가?'라든가 '알코올램프로 3분간 가열해보자.', '어떻게 되는가?' 등등의 지시어가 듣기에 따라서는 명상의 언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가열 중인 돌에 손을 대고 있거나(「테스트_물질」(2016)), 돌을 반복해 쓰다듬으며 돌 안에 넣어둔 마이크로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는 「석력」(2016)은 과학 실험 같기도, 동시에 명상 비디오 같기도 하다. 『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라는 전시 제목도 '편서풍이 불고 개인다'는 일기예보의 과학과 '불고개이겠다'는 불길한 어감의 결합이다. 작가의 주장에 의하면, '오늘의 날씨'와 '오늘의 운세'를 정반대의 예측방식으로 구분한다고 해도, 두 가지 모두 예측대로 되는가를 볼 때 그 결정적인 차이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한다. 아마도 일기예보가 운세보다는 객관적이며 적중률도 높겠지만, 기상 관측과 사주명리학 사이에 절대적인 차이와 우위를 결론 짓기 위해서는 아마도 엄청난 양의 지식과 데이터, 가치 경쟁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임영주_물체 발견_기록영상_00:01:24 loop_2016
임영주_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展_스페이스 오뉴월_2016

이렇게 자명한 믿음을 의심하고 '불확실한 믿음'을 자명한 것으로 위치 이동하는 것 이외에, 작가가 취하는 또 다른 하나의 방향은 믿음과 욕망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것이다. 『오늘은편서풍이불고개이겠다』에 나온 「테스트_물질」이나 「석력」과 같은 비디오 소품들은 「돌과 요정」(2016)의 부산물들이다. 이 부산물에서는 과학 실험을 모방해 진/위의 제로 그라운드를 보이려 하는 반면, 「돌과 요정」에서는 '신비주의'를 사람들의 생활 속에 살아 있는 활력으로 보도록 안내한다. 「돌과 요정」에 등장하는 운신님, 모노님, 대물꾼님, 오두님, 해심명님 등은 운석과 사금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망상에 포획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즐김은 직장 생활에서 벗어난 주말의 나들이로도, 숭고의 체험으로도, 또 에로틱한 엑스터시와 유사한 감정으로도 나타난다. 임영주는 예의 비디오, 오디오 기술의 '싸구려' 효과를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종교적 믿음과 금욕주의가 강하게 결부되어 있는 한국의 지배적인 종교 문화–유교, 불교, 기독교와 대치되는 태도를 보인다. ●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임영주의 작품이 성(性)을 매우 노골적으로, 반복해서 등장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대부분 작업에서 성적인 상징, 이야기, 상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의 종교적인 성장 배경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무녀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한국 무속문화가 지닌 성(聖)과 속(俗)의 자유로운 교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통 굿판에는 음담패설이 자주 등장하고, 속된 욕망을 맘 놓고 드러내다가도 신이 내리거나 신을 접대할 때는 금방 엄숙해지는 종교문화적으로 독특한 역학이 있다. 감정을 수직적으로 고양시키는 '고급종교'의 숭고미학과는 달리, 무속에는 민중의 솔직한 정서와 문화가 배인 수평적인 공감의 연극 또한 강력하게 존재한다. 「돌과 요정」에서는 운석이나 사금과 같은 비종교적인 대상에 대한 믿음을 다루지만, 그 믿음을 다루는 방식은 무속의 다이내믹스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금을 캐는 사람들에게 금은 금이기도 하고 '요정'이기도 하다. 또 「애동(愛東)」(2015)에 보이는 촛대바위는 전형적인 남근석인데,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성들의 비손의 대상일 때는 성스러운 바위이다. 이 비디오 작품의 제목 '애동'은 '야동'을 살짝 비튼 말이기도 하다.

임영주_돌과 요정_기록영상_00:45:30_2016

임영주의 비디오는 여정을 보여주는 '여행 다큐'가 많다. 「술술술 아파트」는 신용산역에서 동대구로 향하는 기차의 플랫폼에서 시작해 명곡리로 향하는 버스로 이어진다. 이 여정에서 차창 밖의 풍경이나 공사중인 건물 등은 '아무런 느낌 없음' 때문에 이상한 느낌을 준다. 「미완성효과_화면」에서는 종교시설들 중간에 갑자기 모텔 건물을 비추는 당황스러운 점프 컷이 있다. 「돌과 요정」에서는 운석과 사금을 찾아가는 여로에서 이런저런 소리와 풍경이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저 먼 우주에서 하필이면 지구로 떨어진 물체를 찾아가는 이 성스러운 행로에, 목적지를 안내하는 내비게이터의 경상도 사투리 기계음이 분위기를 깬다. 이 비디오에는 혜성이 떨어지는 장면이 찍힌 영상도 편집되어 있다. 이 영상 클립들은 차 안에 설치된 카메라에 찍혀 블랙박스에 저장된 것이라 한다. 이렇게 부조리한 점프 컷은 도처에 있다. ● 우주는 무한히 크지만, 달에서 가져와 대한민국 국민에게 전달된 쌀알 만한 월석(月石)의 크기는 그 정치적 행위의 바보스러움을 스스로 비유하듯이 작다. 임영주는 요즘 ASMR 영상을 자주 보고 듣는다고 한다. 마이크를 살짝 긁거나 비비거나 두드리는 소리로 청각신경을 간지럽히는 이 신종 미디어는 아주 섬세한 소리로 우주의 신비를 알려주는 것만 같고, 또 동시에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기벽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보여준다. 임영주의 우주여행이 지구에서 별로, 별에서 별로, 작은 곳에서 무한한 곳으로, 속세에서 신성함으로의 단순한 여행일 때는 아마 그다지 재미없을 것이다. 대신에 시골 모텔, 바둑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 '파란란닝구님', 무극·구봉·임천의 금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황혼 속의 촛대바위, 허름한 굿당 등등이 의외로 평범한 장소이며 의외로 보통의 사람일 때조차도 신비로운 것일 때, 더 우주여행 같은 우주여행, 흥미로운 점프 컷들로 이루어진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여행 다큐가 된다. 이런 태도는 무엇인가를 바로잡으려 하는 온갖 절대권위의 추구와 잘 맞지 않는다. 사실 미신, 이단, 오컬트는 이들 자신에 대한 공포와 한 쌍이다. 임영주의 작업은 그에 대한 공포를 희화화하면서, 강박적인 '미신' 관념에서 힘을 빼낸다. 이 나머지 미신은 미신이기보다는 차라리 평범한 신비감 같은 것이다. 그런 평범함의 여유 속에서 간절한 소망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자라날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신비하게 빛나는 사물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처럼 정치든 종교든 과학이든 광신과 맹신이 춤추는 곳에서는 특히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임영주의 우주여행' 부분 발췌) ■ 박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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