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재그

김성호_김예성_김현_박미희_최윤미展   2016_1005 ▶︎ 2016_1016

김성호_THE WORLD_장지에 과슈, 아크릴채색_100×100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청림갤러리 CHEONGRIM GALLERY 경기도 광명시 철산로 36 알렉스타워 9층 Tel. +82.2.2687.0003 www.gcr.kr

5인의 작가들의 '지그'와 '재그'-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의 경계에 서서1. 만남은 의당 헤어짐으로 귀결되고, 떠남은 반드시 돌아옴으로 이어진다. 여기, 헤어졌던 5인의 작가들이 다시 모여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 한국화를 공부하기 위해 동년도에 함께 입학했던 다섯 사람은 20여 년간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이들의 행로는 때로 겹쳤다가도 어느새 멀어졌다. 마치 지그재그처럼 말이다. ● 그러다 이들은 문득 멈추어선다.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열심히 달려오던 이들을 멈추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두려움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지금까지 잘 해온 것일까. 이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까. 그 시점에 이들은 비로소 옆을 바라본다. 그들의 옆에는 천둥벌거숭이 시절을 공유하는 동료들이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다. 먼 곳에, 또 가까운 곳에. ● 더 이상 신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중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하기도 힘들다. 이들은 일종의 경계에 서 있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공간. 경계는 두려움을 낳는다. '저쪽 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런 경계를 성공적으로 넘기 위해 통과의례라는 절차를 발전시켜왔다. 이 전시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경계를 넘어 저편으로 가기위한. 그리고 그 저편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기 위한. ● 통과의례는 외부로부터 주어지기 마련이다. 절차는 이미 만들어져 있고 개인은 이를 이용하거나 이에 이용당한다. 그러나 이들의 통과의례는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통과의례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 전시는 이들이 서로를 비추기 위해 만들어낸 거울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 이 전시는 거울을 다듬고, 세우고, 화려하게 깨어버리는, 한 차례의 축제다.

김예성_Echo_혼합재료_30.5×30.5cm_2015

2. 이들은 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긴 여정을 거쳐왔다. 이들은 한국화라는 한 점에서 출발했지만 '지그재그'로 퍼져나갔다. ● 다섯 중 가장 멀리 떠난 이는 작가 김성호다. 장지(壯紙)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표면 질감을 내기 위한 선택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의 고민의 기저에는 '어떻게'보다는 '무엇'이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김성호가 선택한 '무엇'은 비단 사물이 아니다. 그는 메타-사물을 그려내고자 한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존재'와 '보편'이다. 그는 존재란 무엇인지에 대해 꾸준히 성찰해왔다. 그는 적어도 2천 5백년 이상 인류의 사상사를 지배해왔던 형이상학적 질문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 그가 '존재 그 자체'를 그려내는 방법이 바로 '보편'이다. 한 형이상학적 관점에 따르면 현상계의 모든 개별자(the particular)들은 저 너머의 세계에 있는 보편자(the universals)들의 그림자들이다. 고대의 어느 철학자는 회화가 (혹은 예술이)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므로 존재론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염두에 둔 것인지, 김성호는 과감히 그림자가 아닌 빛을, 즉 보편자를 그려내고자 시도한다. 보편자는 개별자들의 본질 그 자체인 이상(理想), 이데아(idea)다. 지금까지 이데아는 개별자를 통해서만 현시될 수 있다고 여겨져왔다. 그러나 김성호는 개별자들을 건너뛰고 이데아 그 자체를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정물은 '보편적 정물'이요, 그의 풍경은 '보편적 풍경'이다. 전통적 형이상학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겠지만, 김성호가 도전하고 이용하는 것은 존재론이 아닌 인식론이다. 김성호는 우리가 개별자를 통해 보편자를 직관해내는 과정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 작가 김현은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작가다. 아니, 드러냄과 감춤이 그의 안에서 치열하게 다툰다. 작가로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추어진 욕망을 과감하고 신랄하게 표현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그런 만큼 그는 누구보다도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작가다. 표현 수단을 극도로 정제하면서, 그는 '한국화'를 포함하여 자신을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범주들을 오히려 최대한 중립화(neutralization)시켰다. ● 그의 '비밀' 시리즈는 그런 그의 양가적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감추기 위해 표면에 천착한다. 그러나 그의 표면은 단지 사물의 껍데기가 아니다. 사과의 거죽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름지고 패는 것은 사과 자체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표면은 일반적으로 내면을 감추지만, 영원히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내면의 상처는 언제까지나 감추어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의 연약한 거죽은 어느 샌가 그 상처를 표면화한다. 김현에게 있어서 사물의 본질은 바로 그러한 변화이다.

김현_비밀 27_장지에 유채_60×60cm_2016

3. 물론 여전히 '한국화다운 것'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들도 있다. 아예 전통 한국화를 복원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고민은 대부분 '재료'로 귀결된다. 이 지면을 통해 길게 풀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대' 한국화의 공통된 본질을 찾는 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기획이다. 그러나 한국화를 자신의 뿌리로 삼는 작가들에게 적어도 재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한지(韓紙)는 한국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매력적인 소재들 중 하나다. ● 작가 박미희는 한지에서 평면적인 형태를 추출하고 그 위에 색을 입히는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박미희에게 한지는 단지 물감이나 먹이 덧입혀지는 바탕이 아니라 색과 형상을 이루는, '그림 그 자체'이다. 박미희는 한지의 가소성(plasticity)에 주목한다. 그는 백지(白紙)를 대면할 때면 언제나 표현 욕구가 넘쳐난다고 자술한다. 한지는 물감이나 먹이 덧입혀지는 바탕으로서 기능하기도 하지만, 강한 내구성 덕분에 그것 자체로도 다양한 표현을 가능케 하는 재료다. 박미희는 한지에 색을 주고 그 색들을 엮어 형태를 만든다. ● 그가 천착하는 형태는 꽃이다. 꽃은 생성과 재생을 은유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직접 '바리데기'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서 이 은유를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부드럽게 눅여진 색채는 그 생명력을 오히려 강조한다. 지나치게 화려한 아름다움은 금세 발산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지라는 소재는 바로 그런 은은한 아름다움을 구성해낸다.

박미희_Paper Flower_HARMONY_장지에 채색, 콜라주, 한지엮기_100×360cm_2015

작가 김예성의 종이는 오히려 변용을 목표로 한다. 전작에서 장지, 골판지, 순지 등 다양한 종이를 기하학적으로 콜라주하고 먹과 분채를 이용해 '복잡한' 추상을 만들어냈던 김예성은 이제 색과 형태 둘 다에서 보다 더 정제된 모습을 보인다. ● 종이끈을 강박적으로 말아 붙여 만들어진 형태는 필연적으로 원(圓)이 된다. 선을 단단하게 말아 붙이는 작업은 필연적으로 동심원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김예성은 그 동심원에 힘을 가해 일그러뜨리기도 하고 원들을 겹쳐두기도 하고 잘라내어 부분들을 떨어뜨려 놓기도 하며 제한된 형태에서도 역동성을 이끌어낸다. 이 작업을 대면한 관람자는 불가항력적으로 작가의 반복적 노동을 연상하게 된다. 어쩌면 김예성의 작품에는 눈에 보이는 최종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퍼포먼스까지 포함된다고 말해야할지도 모르겠다. ● 정제된 색과 형태는 오히려 종이의 독특하게 변용된 질감을 강조한다. 마치 섬세하게 연마한 금속의 표면처럼 보이는 김예성의 작품은 가까이 다가설 때 비로소 종이의 질감을 드러낸다. 그토록 차갑고 단단하게 보였던 표면은 어느 순간 그것이 종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관람자에게 드러내고, 그 순간 관람자는 종이의 부드럽고도 까칠한 질감과 촉감을 기억해낸다. ● 작가 최윤미의 종이는 이제 평면을 벗어나 입체가 된다. 다만 최윤미는 종이의 평면성을 유지한 채로 입체를 구성한다. 말인즉슨, 그는 평면을 위해 만들어진 종이가 입체의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겹쳐 붙여낸다. 최윤미는 한지를 찢어내는 기법을 통해 한지 특유의 제법을 작업에 반영한다. 한지를 구성하는 나무의 거친 섬유질은 그것이 입체로 붙여지면서 마치 보송한 솜털과도 같은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 이 보송한 질감은 배접된 한지가 결국 '집'의 형태를 만들어 내면서 의미를 획득한다. 한 때 한지는 집의 내장재로 쓰이기도 했다. 최윤미에게 있어서 한지는 집 그 자체가 된다. 찢겨진 한지의 보송한 테두리는 이제 집을 마치 모피처럼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 최윤미의 '집' 연작이 처음으로 전시되었던 장소는 일본의 한 폐허였다. 사람이 살던 집이 철거된 자리에 최윤미는 작고 투명한 집을 지었다. 투명하고 텅 빈 집은 이제 불투명하고 꽉 찬 집이 되었다. 듬성듬성 놓인 한지 집들은 여전히 작고 외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제 최윤미의 집은 보다 만지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최윤미_집의 생각_한지에 접착제_장소특정적 설치_2016

4. 여기 모인 5인의 작가들은 여전히 긴 여정 중에 있다. 이들의 행보는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지그'와 '재그'를 반복할 것이다. 동년도에 한국화학과에 입학하여 20년 후에 다시 모인 이들은 현대 한국화의 표본 집단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고민은 바로 현대 한국화가들의, 혹은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의 고민들을 정확히 반영한다. 그리고 이들의 작업은 그 고민에 대한 다섯 가지의 잠재적 해법인 셈이다. 수천 가지의 고민이 있을 것이고, 또 그에 대한 수천 가지의 해법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내어놓은 다섯 가지의 해법들이 얼마나 유효한지를 보려면, 또 다시 20년의 세월이 흘러야만 한다. 지금, 여기에 이 다섯 작가들과 함께 서 있는 우리는 그 고민들과 해법들을 함께 공유할 의무를 가진다. ■ 윤주한

Vol.20161005a | 지그재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