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ransit

이요나展 / Yona Lee / 李要那 / mixed media   2016_1010 ▶︎ 2016_1107

이요나_In Transit_혼합재료, 루프 전시장 가상설치_가변크기_2016

초대일시 / 2016_1010_월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뉴질랜드 예술위원회 Creative New Zealand

관람시간 / 10:00am~07:00pm

대안공간 루프 ALTERNATIVE SPACE LOOP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나길 20(서교동 335-11번지) Tel. +82.2.3141.1377 www.altspaceloop.com

현대인들이 주로 몸담고 있는 대도시에서는 이윤과 실용 중심의 맹목적 도시계획으로 인해 인간과의 관계성은 쉽게 배제되고 경험적 차원 또한 후 순위로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도시의 발전과 성장을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도시가 이소토피아적(isotopia) 논리로 구획되고 점유되며 파괴되었다가도 어느새 재개발, 재건축되면서 시간과 함께 켜켜이 축적된 다양한 공간과 소소한 삶의 흔적들은 일시에 소거된다. 더구나 일상적 공간은 그리 거창하지도 특별날 것도 없는 것이기에 소외 당하기 일쑤고 그 가치가 쉽게 간과된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간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공허한 기표로 부유하는 통념적, 추상적 공간보다는 삶이 녹아있으며 끊임없이 교감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삶의 공간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공간적 전회(spatial turn)'라는 시대적 요청에 조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반복적 일상의 과정에서 생산된 의미가 새겨진 공간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위치를 다잡고 익숙하지 않은 낯선 시선으로 다양한 삶의 기획들을 읽고자 하는 것은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대안적 가능성들을 들추어내고 일상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 이요나 작가는 작업에 있어 중추적인 요소로 공간과의 관계성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실천적 공간성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해 오고 있다. 본 전시에서 이요나는 올해 6월 난지창작스튜디오에서 보여준 동명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보다 확장된 규모와 진화된 구조를 보여준다. 기존에 미니멀리즘과 구성주의에 영감을 받아 추상적 선의 느낌이 강한 조형성을 부여하면서 공간에 대해 장소특정적으로 개입하여 공간과의 관계성과 신체적 지각의 변이를 다루었던 작업(Specific Objects, Line Works)과 유연한 철제와 일상의 오브제들을 빈틈없이 치밀하게 배치하여 카오스적 풍경을 구현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체험을 가능케한 작업(Tangential Structures)에서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채 일상과의 다양한 현상과 접속하여 그에 대한 또다른 방향성과 변주를 더해놓는다.

이요나_In Transit_혼합재료, 루프 전시장 가상설치_가변크기_2016

이번 신작, 「In Transit」은 루프 전시장이 지니고 있는 공간적 고유성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측량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산업적 맥락에서 전시공간의 콘크리트와 부합하는 스테인레스 스틸 프레임은 전시장 평면의 형태와 크기, 천장의 복잡한 구조, 여러 면이 만나 이루는 각도, 수직/수평, 상하 고정되는 지점 등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고려하여 치밀하게 구성된 결과이다. 주어진 공간의 물질성 및 내적 문맥과 유리된 채, 절대적 또는 독백적 위치에 놓인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간과 대화적 관계 속에서 상호 조응하며 배치된 것이다. 이렇게 설치된 공간은 1층에서 지하로 흐름이 연결되어 있어 관객의 공간 체험을 한 호흡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 작가는 이 새로운 공간을 통해 평범하고 반복적이어서 진부하기까지 한 구체적인 삶에 밀착된 공간에 천착하여 그것을 해체하고 기이하고 낯선 공간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새로운 감각적 차원의 공간을 제안하고 있다. 언뜻 익숙한 듯 하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 미지(未知) 의 장소는 실제 경험하는 물리적인 공간과 현실에서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가상의 공간들을 병치, 조합하여 그야말로 혼종의 세계를 유영하게 만든다. 공상과 현실이 정교하게 짜여 있어 어느 시점인지, 또 어떤 곳인지 혼돈을 야기하는 초현실에 소환된 듯하다. 공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 틈입에서 이요나의 이러한 이질적인 공간이 시작되는데 작가는 기존의 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수많은 사이 공간들을 재영토화함으로써 또다른 공간적 차원의 경험을 가능케 하고 있다. ● 작품 타이틀이 암시하듯, 이동성/전이성으로 대변될 수 있는 교통(운송) 수단(버스나 전철의 안전봉과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다)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일종의 통로의 기능을 하는 한시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특정 공간에도 속하지 않으며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그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통로로서의 공간은 (작가 혹은 체험자의) 현재적 맥락과 과거 혹은 미래의 경험, 현상적 일상과 내면적 풍경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여 다른 차원으로 전이/이탈시키는 일상 속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를 상징하는 의미 층위에 놓여있다.

이요나_In Transit_혼합재료, 루프 전시장 가상설치_가변크기_2016

전시장에 밀도 있게 자리하는 설치작업의 전반을 지탱해주는 프레임이 주로 전철,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이나 시설 내부의 난간이나 지지대, 안전봉 등으로 사용되는 스테인레스 스틸 파이프로 이루어진 것이 눈에 띈다. 작가는 세계 여러 도시를 경험하면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규격화된 공산품 파이프가 도시인들의 일상 공간에서의 신체 움직임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대표적인 사물임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핸드레일 혹은 가드레일로 통칭될 수 있는 이 구조물은 그 의미론적인 양가성으로 전시장 안, 헤테로토피적 세계로 인도하는 표지가 되어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구조물은 몸을 지지해 주거나 안전을 보장하는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구획, 차단, 제지, 금지하는 억압적 장애물로 쓰이기도 한다. 서로 대립되고 양립불가능한 특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핸드레일/가드레일은 미로와 같이 펼쳐져 있는 공간에서 때로는 길을 터주고(개방) 때로는 길을 막아(폐쇄) 돌아가게 만들면서 연결과 분리, 재연결을 내포하는 상이한 의미론적 구조로 얽혀 있다. ● 공간 내부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일견 입구와 출구도, 시작과 끝도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공간들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정 국가나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인 일상 풍경인 듯 보이기도 하고 소재나 오브제에서 느껴지는 한국의 전형적인 생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나, 여전히 낯설게 다가오는 공간의 불확실한 정체성은 항상 떠나지만 다시 되돌아오고 싶고 되돌아와서도 다시 떠나야만 하는 해외 이민자로서의 작가의 모호한 정체성과 묘하게 겹쳐져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고 당연하게 여겨져서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풍경들을 타자의 시선으로 재배열하는 것은 어릴 때 외국으로 이민을 갔었고 성인이 되어 국내외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의 특수한 상황이나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요나_In Transit_혼합재료, 2016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설치_가변크기_2016

전시장은 작가가 국내에서 이방인의 눈으로 관찰하며 수집한 각종 오브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매트리스, 빨래건조대, 샤워기, 샤워커튼과 같은 욕실의 물건들, 전철의 손잡이, 가로등과 실내 조명, 유원지나 편의점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라솔과 테이블, 모텔입구 가림막, 마네킹, 공사장이나 공장지대 혹은 재래시장 등지에서 자주 사용되는 파란색 방수포, 자전거 등 실내와 실외에 있는 사물들이 섞여있고 개인이 휴식을 취하거나 머무는 공간과 불특정 다수인과 마주치는 공공장소 등 서로 다른 공간들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어 더 이상 실제 일상에서 알던 그 공간이 아니다. ● 이 혼종의 공간은 사적/공적, 가족적/사회적, 실용적/비실용적, 폐쇄적/개방적, 실재/가상, 외부/내부, 광장/밀실, 떠남/머무름, 안락/긴장, 밝음/어둠 등 양립불가능한 요소들이 돌연히 병치, 중첩되어 경계가 허물어진 그야말로 헤테로토피아적 특성을 지닌 공간의 현시이다. 분명 일상적인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나 현실의 이치에 어긋나 있는 비현실적인 이 장소는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하는, 존재하나 장소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는 '반-공간(counter-sites)'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문학 장르에서 일군 '환상적 사실주의'처럼, 실제 일상적 사물과 장치로 친숙한 현실이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채 엉뚱하게 가공된 공간이 현실인 듯 자리함으로써 현실과 현실 사이에 접혀있는 공간에서 여러 구획과 경계를 넘나들며 다층적이고 복수적인 감성과 경험, 의미 생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요나_In Transit_혼합재료, 2016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설치_가변크기_2016

낯익은 오브제와 장소가 원래 맥락에서 탈각되어 기존 문법에서 어긋나 낯선 모습으로 다가올 때 느껴지는 '언캐니(uncanny)'함은 이 공간에서는 두려움과 공포라기보다 차라리 놀이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호기심과 재미에 더 가깝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뒤집혀진 파라솔이나 엉뚱하게 놓여진 테이블이며 샤워기, 실내인지 외부인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어둠을 비추는 건지 하릴없이 대낮의 빛에 파묻힌 건지 알 길 없는 조명들, 우아하고 장엄한 제의를 위해 드리워진 듯한 싸구려 방수포, 이 공간의 수호신상이라도 된 듯 위엄 있게 서 있는 옷가게의 흔해빠진 마네킹 등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판타지공간을 연상케 한다. 로즈마리 잭슨(Rosemary Jackson)의 분석과 같이 '개연성의 요구를 깨뜨리고' '경험된 질서를 구조적이고 의미론적으로 해체'시키며 '환상과 몽상, 비정상적인 상태, 기이한 행동과 말, 신체의 변형, 어이없는 상황 등'이 규범으로 작동하는 '환상예술'의 무대인 셈이다. 이는 현실에 도전하고 전복적이며 일탈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일시적으로 해방되며 한바탕 유쾌한 난장이 허용되었던 중세시대의 공적 축제였던 카니발(carnival)과도 상통한다. 신분이나 지위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괴기스러움과 패러디, 풍자, 무의미한 언행, 말장난이 난무하는 축제적 공간은 바흐친(Mikhail Bakhtin)에 의하면, '공식적인 세계 저편에' 건설된 '제2의 세계,' '제2의 삶'이며 '뒤집힌 삶'이자 '거꾸로 된 세상'의 구현인 것이다. 마치 기존 언어가 가졌던 고유한 의미가 파괴되어 어떠한 의미 체계의 규정도 비껴가는 언어유희 혹은 넌센스와 같은 이러한 판타지적 풍경은 견고하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제약에서 벗어나고 기존 질서와 규준을 엉뚱하게 위반하는 카니발적 본질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요나_In Transit_혼합재료,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설치_가변크기_2016

이요나는 공간 체험자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신체적 지각은 물론, 다양한 소통과 관계성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공간의 안정과 가독성을 깨뜨리고 혼란을 가중시킨다. 특히, 지하 전시장의 설치공간은 가장자리를 크게 돌아 들어가야 비로소 작은 단위로 구획된 공간 안으로 선택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어 거니는 동안 내부/외부, 안/밖의 위치가 수시로 뒤바뀌며 시선과 응시의 교차와 역전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가드레일의 놓여진 형태에 따라 정향으로 안내를 받거나 제한된 방향으로 컨트롤을 받는가 하면 때로는 막다른 길에 막혀 제지 당하기도 한다. 관객의 시점과 위치, 조명의 빛, 특정 오브제 등과의 관계에 따라 수직과 수평의 프레임 선들이 겹쳐 보였다가 분리돼 보이고 커튼이나 가림막 등으로 부분적으로 시야가 가려졌다가 트이기를 되풀이한다. 곳곳에 포진해 있는 조명 또한 어둠과 밝음이 시시때때 역전되는 데 한몫한다.

이요나_In Transit_혼합재료,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설치_가변크기_2016

공간의 점유자들이 우연적 지각과 상황, 사건들을 경험하는 내내 끊임없이 의미가 탈주하고 재편되는 이 설치공간에서는 시각적 감각이 모든 신체의 감각들을 촉발시키고 있어 '감각의 전이'가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특별한 장치를 통한 직접적인 제시 없이 오브제의 연상작용만으로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차가움과 뜨거움, 버스와 전철의 소음, 유원지나 편의점에서 맡을 수 있는 각종 자극적인 음식의 냄새와 맛 등의 효과가 유발된다. 이 각각의 감각들은 여러 영역, 여러 층위를 넘나들면서 전이되며 지속적으로 공명한다. 이러한 촉지적 공간은 개인에게 축적된 각기 다른 내적 시간들과 조우하면서 물리적인 공간의 좌표를 점하는 일정한 위치에서 분리된 채 다양하게 재구성되기도 한다. 이때 발생하는 시간의 탈공간화는 균일하고 선형적인 호모크로니아(homocronia)에 균열을 가하는 헤테로토피아와 끊임없이 결탁한다. 사람들이 동일한 공간이지만 저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사람이라도 동일한 장소에 대해 받아들이는 느낌이 매번 달라질 수 있는 것은 개인과 개별적 상황에 따라, 활성화되는 감각이 다르고 포착하고자 하는 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자극과 작용으로 촉발되는 감성과 그에 따른 감각적 경험에서 융기된 내면의 불연속적인 공간의 파편들은 지금-여기에서의 일련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구도에 놓이며 재공간화되는 것이다. 작가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견고하고 공고화된 호모토포스(homotopos)적인 세계로부터 매끄럽게 탈주하는 지금-여기에서의 감각경험적 실재와 상상, 현재와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예감, 꿈과 현실이 불규칙하게 공존하며 끊임없이 변모하는 미결의 열린 공간일 것이다. ■ 이정아

Vol.20161010d | 이요나展 / Yona Lee / 李要那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