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2cm

2016_1004 ▶︎ 2016_1007 / 주말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민하_김수정_김정훈_남예지_신화영_이신혜 이지원_이한솔_장유정_최민금_허찬미_Hege beate stokmo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 휴관

경성대학교 제1미술관 KYUNGSUNG UNIVERSITY 부산시 남구 수영로 309(대연동 314-79번지) Tel. +82.51.663.4926 ks.ac.kr

지상에 온전히 발을 디디고 살 수 없는 우리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된다. 예술가는 그런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시야를 다르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모든 학문과 기술이 그러하겠지만 작가로 사는 삶은 그리 만만한 삶은 아닐 것이다. 지상에 온전히 발 디디지 못한 불안한 걸음을 연속하는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그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들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찰나의 작업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음에도 세상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그것을 놓칠 수 없기에 어쩌면 그 사소함의 역할을 예술가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전시이다. ■ 경성대학교 미술학과

강민하_가득_장지에 먹_8.5×25.5cm_2016

나의 작업에서 번데기 ● 번데기는 나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감정을 직접적으로 끌어 올려 투영된 대상으로 작업위에 존재하게 된다. 불확실한 미래 즉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한 두려움 또한 이야기하고 있다. 온전하게 의식계로 떠오르지 못하는 나의 기억들을 봉인하는 갑옷, 나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 중 투사가 작용 되는 것 또한 번데기의 의미와 같다. 번데기의 딱딱한 껍질은 과거 상처받은 나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도록 보호하고 가둬둔다. 그 속에 깃든 연약한 속살은 나의 상처받기 쉬운 영혼과도 같고 또한 나의 가능성, 그리고 진실성의 내재하고 있다. ■ 강민하

김수정_말했다._시트지 커팅 출력, CRT모니터, 영상_5m 이내 가변설치, 00:30:05_2016

말은 침묵을 부수어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낸다. 깨진 침묵의 틈새로 퍼져나가는 말들은 때때로 불편함을 야기시킨다. 불편함은 곧 마주하기 어렵거나, 인식되지 않는 상황들이다. 현상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말들은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봉합하려 들지만 그것마저도 외부의 소음으로 인해 제대로 들리지 않거나, 왜곡된다. 그렇게 불편함을 터놓기도 전에, 불편한 상황들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그 무엇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 김수정

김정훈_탈구_mattress_200×100cm, 가변설치_2016

사적영역 안에 존재하는 시스템의 모습은 어떠한가? 탄성을 해체하고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존재의 역할이 아닌 존재함의 의미로써 바라본다. ■ 김정훈

남예지_표상하다_거울, 물감, 영상_140×180cm, 가변설치_2016

우리는 자라오면서부터 매 순간 언어로 덧칠해진다. 덧칠이 두꺼워짐에 따라 주체를 표현하는 언어적 방법과 이해할 수 있는 타자의 욕망에 대한 영역 또한 넓어지게 된다.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타자의 욕구가 언어를 통해 요구가 되는 것을 인식하게 되며, 그 간극에서 오게 되는 욕망에 대한 개념 또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한 시간을 거쳐 자신의 욕구 또한 언어를 통해 요구로 향해가는 과정과 함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신을 자연스레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타자의 언어가 타자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과 꼭 일치하지 않는 것까지도 알게 된다. 우리 개개인은 주체로서 타자에게 주체의 모든 것을 다 표현하지 않으며, 그것은 타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도 결국에는 타자의 규칙을 수용하는 것이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그 사회가 추구하는 큰 욕망의 틀에서 벗어날 시 도태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저변에 포함하고 있다. 숨기고 싶은 것. 말할 수 없는 것. 말하기 싫은 것. 언어로서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주체와 언어의 간극, 주체와 타자의 욕망간의 간극, 타자와 언어의 간극. 이러한 언어의 간극들 사이에서 언어로서 표현될 수 없는 욕망들은 과연 언어적 형태를 가지고 갈 수 있을까. ■ 남예지

신화영_마음의 지옥_우레탄비닐, MDF합판, 페인트_가변설치_2016

사람과 사람의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은 감정에서 시작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 잔여 감정이 개인의 마음에 연결고리가 되어 남게 된다. 삶은 온통 평범함으로 들어찼고,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문제는 대단한 사건이 아닌 일상의 해프닝에서 발생하는 작은 감정들이다.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감정들은 잠깐의 휴식으로 이원화 되지 않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부정적의미를 쌓아놓고 있다. 본인도 모르게 작용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불편함으로 남아있고, 남아있는 감정들은 결여라는 텅 비어있는 나로 남아있다. ■ 신화영

이신혜_드러내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80.3×116.8cm_2016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격한 기준이 존재하며, 그 기준을 따르도록 요구된다. 그런 억압에 저항하면서도 순응하는 모순적인 모습. 타자화된 인체는 끊임없는 평가의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성적 대상화가 되는 것은 고맙 게 여겨야하지만 주체적인 욕망은 금지된다. (그네들의 기준에)아름다우면 찬양받고 추하면 매장된다. 불쾌하다, 불쾌하다, 불쾌하다. 불쾌함에 분노하면서도 제 발로 불길을 향해 걷는다. 나의 인체를 끊임없이 검열하고, 비교하고, 치장하고, 숨기고, 또 그런 자신을 혐오한다. 나는 누구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가. 그들은 욕망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본다'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그렇기에 매 순간 현혹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욕망은 무엇으로 시선을 이끌까. ■ 이신혜

이지원_poser의 태도_비단에 채색_53×45cm, 가변설치_2016

'poser'의 태도 ● 인간이 시선을 통해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그 시선을 통해 주체가 객체화되면서 사물화 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이 머무르는 얼굴의 표정은 인간의 의식이 가장 가시화된 부분이다. 그러나 과연 그 표정 또한 자기 본래성의 모습일 수 있는가? 이 의문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환경의 범위 안에 만들어진 습관으로 인해 항상 을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본인은 타자가 보는 대로, 타자가 보는 것과 같이 나의 모습을 그대로 연기하려 들고, 또 그 타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스스로를 타자화시켜 익숙지 않던 얼굴들을 직면하고, 그것을 중첩된 이미지로 형상화 하여 실체를 파악하는 시도를 하고자 한다. ■ 이지원

이한솔_보이지 않는 먼지-태운 재_의자, 먼지, 비닐, 페인트통_가변설치_2016

성과사회에서는 쓸모없는 것으로 가치 판단이 내려지면 존재사실을 탈락시키고 생략한다. 그러나 바닥과도 같은 열등감과 무기력함은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는 사회의 룰의 엄격한 커트라인이 적용되면서 무쓸모로 가치판단 내려지는 무의미한 존재들에 대한 질문을 한다. ■ 이한솔

장유정_Emptiness 1_연필, 판화지_35×46.5cm_2016

기억조직망 ● 의식너머의 무의식 또한 기억을 통해서 형성되어지는 곳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속 기억조직이라 말한다. 나는 그 조직이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아주 촘촘하게 엮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면의 조직망은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기억과 외부로부터 받는 압력으로 매번 바뀌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단단히 굳혀진 부분도 존재한다.(어린 시절의 기억) 우리가 인지는 하지만 실제로 볼 수 없는 구간으로 어떠한 구조로 되어있는지도 알 수 없다. 기억의 선들로만 존재하고 있는 미지의 세계. 공간너머=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엔 내 불안을 잠재워줄 무언가는 없었고 허무할 정도로 공허한 공간만 존재한다. 기억조직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가고 있음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 경험의 한 부분은 되지만 불안을 감싸줄 수 있는 방패는 되지 못한다. 슬픔과 공허함은 무뎌지기 보다 더 큰 허무함을 안겨줄 뿐이다. ■ 장유정

최민금_피어나다 2_비단에 수감채색_83×77cm_2016

공작새는 암컷을 향해 구애의 행동으로 화려한 날개깃을 펼쳐 보인다. 나는 세상을 향해서 구애의 날개를 펼치려 한다. 누구누구의 아내, 또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작가 최민금 으로 우뚝 서기위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려한다. 공작새의 꼬리는 평상시엔 크고 무거워 짐스럽지만 깃털 하나하나 정성스레 다듬고 가꾸어서 화려한 위상을 드러내고 결국엔 목표하는 것을 성취한다. 나는 그런 공작새에게 매료 되었다. ■ 최민금

허찬미_울음_버려진 신발들, 해체된 신발장_가변설치_2016

방안의 휴지통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속에 남겨진 잔여물과 나와의 동질감을 느낀 순간이 있다.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 남겨진 찌꺼기들은 매일을 살아내야하는 나와 같았다. 그 동질감은 내 존재에 대한 울음이었으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는 어쩌면 '운다'라는 행위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증거이자 호흡이 아닐까. 이러한 물음들로 나는 찌꺼기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행위, 아니 원래 숨쉬고 있는 찌꺼기들을 다시 재조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찌꺼기가 숨쉬는 방법이 결국 내가 숨쉬는 방법이자, 찌꺼기를 숨쉬게 하는 것이 나를 숨쉬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허찬미

Hege beate stokmo_"Not exactly safe on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5×80cm_2016

For as long as I can remember I have had an interest in a decisive part of being human: our feelings. These feelings often determines how we think and act, they are like a human steering wheel, and that is why they are interesting to identify. In my daily life I often focus on how we communicate or release our feelings, and I try to see the connections between feelings, cognition and actions. I am attempting to depict the human feelings through my art. My paintings are made from a psychological perspective, through a semi figurative expressive visual language. In this series of paintings I am expressing the feeling of loneliness. Loneliness is an universal human phenomenon most people experience through their lives, and an emotional response when a need to connect to others is not satisfied (Svendsen, 2015). The loneliness I will present in this paper is based on my own experiences through the journey of my life. I have often felt lonely, and in my work as a mental health nurse I have felt loneliness through other people. After moving with my family to Korea I found myself in a completely new environment, culture and language. The native language has become a barrier for meaningful communication, and the feeling of loneliness has visited me again. In the following artworks this feeling is being presented visually through images. I communicate through the universal language of visual art, through expressionistic, semi abstract figures, people and rabbits, in different environments. Some of them have a simple background, as a symbol of the "missing" context. The rabbit symbolize a childhood feeling of loneliness. Loneliness from the past. The material being used is mixed media: acrylic paint and crayons, painted on canvas or paper. The painting has been applied in many thin layers on top of each other, to make a transparent impression. ■ Hege beate stokmo

Vol.20161010f | 지상에서 2cm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