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신화

전미경展 / JEONMIKYUNG / 全美景 / painting   2016_1017 ▶ 2016_1116 / 일요일,공휴일 휴관

전미경_달빛사색 7 (Moonlight meditation 7)_나무껍질, 씨앗_108×78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am~06:00pm / 일요일,공휴일 휴관

Art Gallery 2ND AVENUE 서울 서초구 방배동 796-13번지 Tel. +82.2.593.1140 blog.naver.com/gallery2ndavenue

전미경의 『프레스플라워 아트』 작업에 등장하는 재료들은 자작나무 껍질, 포도나무 껍질, 감잎, 넝쿨손, 옥수수 껍질, 청미래 덩굴, 물푸레나무 씨앗, 코스모스 씨앗 등이다. 미술표현의 미디어로 사용되는 이 재료들은 물론 작가가 직접 산과 들에서 채집해온 것들이며, 작가의 의도에 의해 자연 오브제로 다루어지면서 다양한 의미를 제공하는 기호가 된다. ● 마른 나무껍질을 화면에 펼치고 그 위에 꽃잎을 뿌리면 별자리가 생겨난다. 일곱 개의 꽃으로 된 북두칠성이나 다섯 개의 꽃인 카시오페아는 화면에 공간을 일으키고 그 화면은 어느덧 천궁으로 변화한다. 작가는 그 공간에 다시 잎사귀를 오려 붙여 집을 만들고 사이사이에 넝쿨손 드로잉을 삽입 시키니 한 폭의 풍경화가 절로 되었다. 마른 꽃과 잎과 나무껍질들이 만들어낸 풍경에는 시적 정취가 흐르고 우리들을 유년시절의 추억 속으로 안내한다. 작가의 추억이 어느덧 나의 추억이 되는 것은 그의 작업이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감성의 돌기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프레스플라워 아티스트』 전미경이 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그의 작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작품에서 끝없는 실험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실험적 생산물들에 깃든 의미의 고리들이 이전과 앞뒤로 연결되면서도 진화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프레스 플라워는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며 시적 상상력을 자극해 친근감을 준다. 메마른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미학적 즐거움이란 마른 꽃의 의미가 미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새롭게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데서 온 것이다. ●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품은 지난 전시회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이전의 작업이 마른 꽃이라는 재료적 특성에 주목하여 기호화된 꽃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일차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꽃이 작품으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의미를 자연과 생명의 은유적 메시지로 해석하려는 작가의 태도가 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에서는 마른 꽃이라는 매체의 소재적 의미는 줄어들면서 그 대신 조형의도와 표현정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미술의 세계에서 조형언어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발생시키게 된다. 그런데 마른 꽃의 조형은 꽃이라는 소재가 주는 일반적 의미와 상징 때문에 개성적인 조형방식을 만드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전미경의 경우 재료적 특성과 조형방식이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작품의 해석과 감상에 도움을 줄 것이다.

전미경_새와 나무 (Birds and trees )_나무껍질, 씨앗, 금박_40×60cm_2008
전미경_달빛연서 2 (Moonlight letter 2)_나무껍질, 덩굴손, 금박_53×41cm_2014

전미경의 근작에서 조형적 탐구의 적극성을 일별할 수 있는 것은 화면과 기법이다,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화면의 크기가 커졌다. 대형화면은 작가가 대하는 작업의 터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요소가 된다. 화면이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조형적 부담이 늘어나지만 화면 공간의 구성과 경영은 곧바로 작가의 조형능력을 드러내는 요소로 떠오른다. 한편 그것은 작가의 조형적 표현 욕구를 성취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전미경이 시도하는 화면구성은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는 전형적 구도의 보편적 도상 등 전통적 규범을 따르고 있지만, 필자는 와선형의 점선이나 대담한 면 분할 그리고 뒤에 살펴볼 불을 이용한 드로잉 기법 등에 나타나는 개성적 형식을 위한 일련의 시도들에 더욱 눈길이 간다. ● 전미경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부분은 관찰과 발견의 능력이다. 그는 자신이 채집한 나무껍질과 꽃잎 그리고 덩굴이나 씨앗에서 다양한 이미지들을 찾아낸다. 물고기나 집 그리고 항아리는 작가가 선택적으로 발견해 낸 주제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작가는 공중에 떠다니는 구름이나 잠자리와 같은 곤충 그리고 뿌려진 별자리 등과 같은 추상적이고 시적인 대상들을 자연오브제에서 발견하고 화폭에 자리를 찾아 적절히 배치시킨다. 작가의 역할은 이렇듯 마른 꽃에 숨겨진 이미지 또는 서정을 자신의 고유한 조형언어를 통해 몽환적 분위기나 이솝의 동화세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 전미경의『프레스플라워 아트』작업은 서정적이고 부드럽지만 감각의 돌기를 자극하는 맛이 있다. 넝쿨손이나 자작나무 껍질이 원래 지닌 조형적 형태와 무늬는 그 자체로 풍부한 추상적 형상을 지니지만 그것을 새롭게 의미화 시키는 것은 작가의 조형적 변주에서 온 것이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이름을 불러주기 이전에 꽃은 그저 자연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쳐 지나가는 일강과 익명의 존재들을 화면에 초대해 다룸으로서 그것의 의미를 창조적인 것으로 탄생시킨다. 가령 작가의 선택한 자작나무의 껍질이 화면을 분할하는 면들로 재탄생 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조형능력에 달려 있다. 이 때 화면의 면 분할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한 코스모스 씨앗의 선적 리듬이나 씨앗으로 조합된 곤충의 이미지는 화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작업의 조형적 특성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불을 이용한 선 이미지의 강화작업이다. 나무껍질로 오려 만든 형상의 외곽선을 불로 태움으로서 부드럽고도 회화적 느낌의 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불의 선'은 전미경이 새롭게 발견해 낸 새로운 조형적 요소로서 오려붙이기 기법이 만들어 내는 미세한 부조 효과와 더불어 화면에 회화적 뉘앙스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서 눈여겨 감상해 볼 대목이다. 또한 전미경이 시도하는 넝쿨손의 조형은 감각적인 것이다. 그것은 물고기의 눈이 되기도 하고 구름을 나타내는 추상적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특히 작가의 사인에 사용되는 넝쿨속의 조형은 감칠맛이 있다. ●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을 작가 자신을 닮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전미경은 소녀적 세밀함과 풍부한 감성을 지닌 작가다. 그러나 삭막한 현대의 사회 풍토에서 형성되는 작가의 서정성 속에는 강인한 창조의 열정과 엄격한 자의식이 함께 깃들여 있음을 보게 된다. 자연적 소재에 깃든 다양한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은 결국 이러한 자연의 매체들을 대하는 작가의 감성적이고 시적인 품성과 그것을 조형적 실험으로 변주시키는 치밀하고 억척스런 작가의 체질로부터 온 것이라 여겨진다, 모성을 지닌 자연의 속성이 그러한 것처럼... 2007.8 (전미경 개인전 3회 '별이 된 꽃' 평론) ■ 김영호

전미경_풀꽃신화 08 (A flowering plant myth 08)_자작나무껍질, 씨앗 ,나뭇잎, 금박_20×52cm_2016
전미경_풀꽃신화 07 (A flowering plant myth 07)_자작나무껍질, 씨앗, 나뭇잎, 금박_20×52cm_2016
전미경_풀꽃신화 09 (A flowering plant myth 09)_자작나무껍질, 씨앗, 나뭇잎, 금박_20×52cm_2016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 2005년 첫 개인전 이후 10년 넘게 마른풀과 씨앗 그리고 나무껍질을 매체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가 이번 6회 개인전을 위해 꺼낸 화두는 달빛이다. 달빛은 동서고금의 무수한 시인과 음악가 그리고 화가들의 창조적 영감을 자극해 왔다. 낭만과 환상의 서정을 자아내는 달의 마력은 지역에 따라 수많은 명작을 낳은 원인이기도 했다. 전미경이 꺼낸 화두로서 달빛은 이러한 역사 속에서 신화의 코드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빛이 작가의 화폭 위에서 신화가 되는 사연은 과연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작품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일까. ● 지난 10년간의 작업노정을 보면 전미경의 작품세계는 자연이라는 일관된 영역 위에 세워져 있었다. 자연물을 매개로 자연현상을 탐구하고 자연과 소통하면서 체험한 세계를 조형언어로 번안하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의 재료로서 풀꽃을 채집하고 건조하는데 바친 시간과 열정은 예사롭지가 않다. '행복한 일상'으로 자리 잡은 여행과 탐색의 과정에서 그가 쓴 채집일기는 연구서가 되어 세권의 전문서적으로 출간되었다. 계절에 맞추어 피는 다양한 풀꽃들과의 만남이 작가의 예술적 성취로 이어졌으니 일상적 삶이 곧 예술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작가의 작품에서 일련의 문학성이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 전미경의 예술이 지닌 개성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인정된다. 화면 위에 마른풀과 씨앗을 고정시키고 항구적으로 고착시키는 장치로서 '공기추출기법'이 그것이다. 화면 위에 콜라주한 자작나무 껍질과 포도넝쿨 그리고 코스모스 씨앗이 서로를 끌어안고 회화적 뉘앙스를 품게되는 것은 바로 공기추출에 의한 재료들 사이의 밀착효과 때문이다. 건조된 자연물은 유리판과 알루미늄 종이사이에 진공상태로 저장되며, 이 공정에 담긴 작가의 정성은 작품의 보존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풀꽃들이 작가의 화면에서 신화적 기호와 상징으로 전치되는 배경에는 그에 부합하는 독특한 기술적 장치가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이번 전시는 지난 개인전 이후 작업한 신작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달빛의 다양한 변주를 시리즈로 표현한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체험한 달빛의 서정을 달빛신화, 달빛사색, 달빛예찬, 달빛유희, 그리고 달빛연서라는 다섯 묶음으로 세분하여 놓았다. 이 모든 연작들은 물론 나무껍질, 씨앗, 덩굴손과 같은 자연물로부터 온 것이다. 빛의 물리적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금박이나 약간의 물감을 추가로 사용한 실험적 작품도 눈에 띈다. 달에 대한 체험이 개인적 감성과 추억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음에 인정한다면 그의 작품은 지극히 주관적 서정의 결실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달빛을 표상하는 작가의 조형방식에서 감정이입이나 추상충동과 같은 예술창조의 보편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 우선 '달빛신화'는 두 개의 시리즈로 되어 있다. 각각의 시리즈는 25개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두 시리즈 사이의 감흥은 제각기 달리 나타난다. 우선 건조한 포도나무 껍질을 가로로 배열한 작품 시리즈는 재료의 물성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화면에 겹치고 펼쳐진 포도나무 껍질의 질료적 속성은 달빛 아래 펼쳐진 산야 혹은 바다 풍경을 암시한다. 작가는 이러한 바탕 공간의 중심에 덩굴을 얹혀 보름달의 표정을 다양하게 연출해 놓았다. 한편 건조한 자작나무 껍질을 화면의 바탕으로 배열해 놓은 작품 시리즈는 또 다른 서정성을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구름이 흐르는 창공을 배경으로 떠 있는 달의 양태를 나타낸 것이다. 금박으로 처리된 달은 정확히 화면의 중앙에 배치되어 조형을 위한 작가의 의도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작가가 표상하려는 것은 달빛에 비추어진 자연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심상에 투사된 달빛의 서정성이다. ● '달빛사색' 시리즈는 달에 대한 작가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대형 화면의 중심에 자리잡은 보름달은 시골집 마당에서 올려다보며 명상에 잠기던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온 것이라 한다. 달빛사색 시리즈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코스모스 씨앗이 만들어내는 선율이다. 그것은 차오른 달의 기운이자 세상을 밝히는 달빛의 파장일 것이다. 아니면 초여름 남쪽에서 날아와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일지도 모른다. 시각을 달리하면 그것은 달에 비추어진 나룻배 혹은 의자 하나 혹은 쌍을 이루는 물고기와 학의 형상을 신화의 세계로 실어 나르는 전령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달빛예찬'은 달의 광휘를 좀 더 구체적인 형상과 색채로 표현한 경우다. 파스텔 톤의 색깔을 사용해 아카데믹하면서도 물성의 서정성을 대비적으로 강조하여 압화 영역에서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달빛유희'는 이전부터 실험해 왔던 작가 자신의 고유한 패턴을 보여준다. 자작나무 껍질을 배경으로 콜라주하고 그 위에 곤충이나 탑파 따위를 배치해 상상의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달빛연서'는 말 그대로 그리운 이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것은 아마도 자연에게 보내는 찬미의 메시지이거나 풀벌레 따위의 생명 있는 미물들에 대한 경의의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새의 형상에 자신을 이입시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향수를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달빛은 스스로 신화가 되지 않는다. 달빛이 신화가 되는 것은 그것에 빛을 제공하는 태양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과 음악가와 화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달이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듯이 달빛의 신화는 태양의 역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태양빛 아래에서 노동과 투쟁의 시간을 가져온 인간은 달빛 아래에서 비로소 휴식과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전미경의 경우 자신이 구현하려는 유희와 사랑의 신화는 합리와 교양의 삶이 낳은 결실이었다. 그의 달빛 연작에서 해질녘에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 부엉이의 신화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지혜란 역사와 신화가 함께 어우러져 생기는 산물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2015.2 달빛에 바치는 헌사) ■ 김영호

전미경_축제 (Festival)_자작나무껍질, 물푸레나무씨앗_24.5×28.2cm_2006
전미경_축제 (Festival)_자작나무껍질, 물푸레나무씨앗_24.5×28.2cm_2006

향수를 자아내는 심의적 풍경 ● 살다보면 불현듯 과거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몸은 비록 현재의 시간대에 속해져 있지만, 의식만큼은 여전히 과거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불행인지 축복인지는 모르나 인간은 몸과 의식을 일치시킬 수도 있고 분리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몸으로부터 분리된, 현실로부터 유리된 의식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흔치는 않지만 이처럼 유독 강하게 과거를 회상시키는 사건들이 있다. 내내 손길 한번 닿지 않은 채 먼지를 잔뜩 눌러쓴 책장을 정리하다가 책갈피 속에서 발견한 마른 꽃잎이 그렇다. 색 바랜 종이 위로 그 수액이 흐릿한 얼룩을 중첩시켜놓고 있는 그 꽃잎은 도대체 언제, 어떤 연유로 지금의 그 자리에 자리하게 된 것일까. 알 수가 없다. 기억해낼 수가 없다. 박제가 된 그 꽃잎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사건, 설레는 사건으로 내 삶의 안쪽으로 들어왔을 터이지만, 도무지 그 사건을 복원해낼 수가 없다. 시간도 증발하고, 사건도 잊혀진 지금 불현듯 내가 대면하고 있는 그 꽃잎은 마치 나의 형해 같고 박제 같다. 그것은 증발해버린 나의 어떤 부분, 한때 나에게 속해져 있어서 나의 인격을 형성시켰을 어떤 부분에 천착케 하는, 복원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는 낯설고 생경한 기호며 수수께끼 같다. 한갓 마른 꽃잎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만, 그것은 이처럼 결코 잊힐 수 없는 사건으로써 현재를 간섭하고 사로잡는다. 정작 돌이킬 수도 복원할 수도 없는 사건(과거)을 결코 잊힐 수 없는 사건(현재)으로써 각인시켜 놓고 있는 이 아이러니, 이 패러독스야말로 삶의 속성이지 않을까 싶다. ● 이 꽃잎을 보고 있으면 이 꽃잎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엇이든 그림의 소재(재료)가 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닐 것이다. 이 발상을 말 그대로 실천하는 작가가 전미경이다. 전미경은 마른 꽃잎으로 그림을 그린다. 아니, 엄밀하게는 마른 꽃잎뿐만 아니라 눌려서 말린 각종 식물류를 소재로 하여 이를 화면에 콜라주 한다. 자연으로부터 식물을 직접 채집해 이를 회화로 옮기는 식의, 일견 자연을 회화로 번안하는 행위에 비유될 수 있겠다. 이때 소재로 차용되는 식물은 그 종에 따라서, 그리고 그 부위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형태와 색채를 지니고 있어서 이를 이용한 회화적 재구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작용하는 문법은 다분히 회화의 생리를 따른 것인데, 이를테면 채집된 식물류를 원형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이를 자잘한 부분들로 해체해 작가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에 따라 이를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해서, 화면 속에서 식물은 그 고유의 존재성 대신 회화를 위해 복무하는, 회화에 종속되는 형식을 취한다. ●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을 보면 대략 재현적인 화면에서 추상적인 화면으로, 재현적인 풍경에서 심의적인 풍경으로 변화해온 것이 확인된다. 재현적인 화면이든 추상적인 화면이든 풍경화가 주된 장르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풍경화가 중심이 되면서, 간간히 전통적인 달 항아리를 소재로 한 것 같은 일종의 정물화로 범주화할 만한 경우들이 발견된다. ● 풍경은 작가의 작업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듯 크게 재현적인 풍경(전작)과 심의적인 풍경(근작)으로 갈린다. 이러한 구분은 세계와 주체와의 관계에 따른 것으로서, 처음에 주체는 세계의 감각적 표면현상에 천착하지만, 이후 점차 그 세계를 자기 내부로 불러들여 재차 내뱉는 과정을 거친다. 세계와 주체가 서로를 대상화하는 동떨어진 관계로부터 시작하지만, 이후 점차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서로의 지평이 상호작용하고 삼투되고 융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해서, 종래에는 주관적인 풍경, 나의 풍경으로 부를 만한 지평이 열리는데, 그 지평이 열어 보이는 비전은 세계와 만나지는 저마다의 관계나 경험이 대동소이한 탓에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보편성을 얻는다. 특정 주체에게 속한 심상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그림(엄밀하게는 콜라주 된 화면)은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건드려준다. 사람들이 저마다 머리에 그리고 있을 풍경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어떤 지점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 다시 말하지만, 그 풍경은 비록 실제 하는 풍경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종래에는 실제 하는 풍경과는 동떨어진 풍경, 나아가 일말의 비현실성마저 포함하고 있는 풍경, 즉 심의적 풍경이란 점에서 일종의 유토피아의 외화로 볼 수 있다. 심의적 풍경이란 사실상 욕망이 그려낸 풍경이며, 욕망은 현실을 치장함으로써 부정하는(적어도 현실의 이미지는 현실 자체보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심리적 기제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풍경이란, 특히 심의적 풍경이란 일종의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를 마련하는 것이며,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우리 모두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이상향에의 욕망을 실현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처럼 재현적인 풍경으로부터 심의적인 풍경으로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이 상당할 정도로 추상화되고 양식화된 화면구성에 대한 인식이 뒷받침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평면화의 경향성마저 두드러져 보이는데, 이런 조형장치들이 어우러져서 일말의 비현실성과 함께 내면적이고 관념적인 인상을 강화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 다시 소재로 돌아가 보면, 근작에서 작가는 자작나무 껍질과 코스모스 씨앗 등을 차용해 이를 재배열함으로써 회화적 화면을 구축한다. 특히 자작나무 껍질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서, 그 껍질은 비록 한 종에서 채집된 것이지만, 여러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간직하고 있어서 화면을 다채롭게 해준다. 자작나무는 종이만큼이나 얇은 껍질이 겹겹이 중첩돼 있는데(이런 겹 껍질이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는 모를 일이나, 아마도 자연의 뛰어난 재생력이나 복원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층위마다의 껍질의 색깔이며 질감이 다 다른 것이어서, 이를 재구성해 정적이면서도 관조적인 느낌의 유기적인 화면을 축조해낸 것이다. ● 이와 함께 근작에서 특히 주목되는 소재로는 코스모스 씨앗을 들 수 있다. 마른 코스모스 씨앗을 연이어 붙여 일련의 점선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문양이나 패턴을 재현해내고 있는데,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나선형의 점선 문양이 수면에 이는 파문을 연상시키며, 마음속에 이는 동요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특히 이런 파문들이 모여 있는 이미지가 기의 운동성을 떠올리게 하며, 흡사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스티치를 연상시킨다. 그런가하면 코스모스 씨앗 자체는 「씨앗에게 말을 걸다」라는, 작가가 붙인 근작의 주제와도 통한다. 근작에서의 주제는 씨앗인 셈인데, 주지하다시피 씨앗은 모든 존재의 최소단위를, 모든 생명현상의 처음사건을 의미한다. 씨앗은 말하자면 그로부터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유래하는 존재의 씨알인 셈이다.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씨앗의 문양은 생명의 번짐 현상을 표상한 것이며, 가장 작은 미물로부터 가장 큰 생명이랄 수 있는 우주와 그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를 표상한 것이다. 특히나 코스모스 자체가 우주 혹은 질서(우주의 원리)를 의미하지 않는가. ● 작가는 이런 심의적인 풍경과 함께, 이따금씩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저 홀로 동떨어져 있는 집을, 연못과 물가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그 위로 하늘하늘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들을, 그리고 공간을 부유하는 새를 포치해 정감을 자아낸다. 이 모티브들은 기본적으로 콜라주에 의한 것이지만, 작가는 이와 함께 일종의 태우기 기법과 금박을 덧입혀 화면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특히 태우기 기법은 모티브의 가장자리를 태워 거뭇한 라인이 생겨나게 한 것으로서, 이로 인한 선이 자작나무 껍질의 점선이나 코스모스 씨앗의 점선과 대비된다. 이와 함께 나무껍질의 목질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흡사 담채화와도 같은 투명하고 엷은 색조가 어우러져 감각세계 저편의 아득하고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2009.5 향수를 자아내는 심의적 풍경) ■ 고충환

전미경_황금사과(The Golden apple)_자작나무껍질,포도나무껍질,코스모스씨앗,금박_46×47.5cm_2011

나는 마른꽃잎과 나무껍질, 씨앗 등 각종 식물을 소재로 하여 화면에 콜라주 한다. 자연으로부터 식물을 직접 채집해 이를 회화로 번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른꽃잎과 씨앗은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삶을 기록하는 의탁의 대상이다. 자연과 호흡하며 얻게 된 깊은 명상과 활기찬 생명의 노래를 탐구하고 기록한다. ● 달빛 내려앉은 하얀 마당에 대한 유년의 기억은 지금도 따사로움으로 간직되어 있다. 인공적인 조명 아래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생명의 전율은 나의 끊임없는 창작의 샘터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얻어지는 자연이 주는 따스한 감성과 소중함을 기억하기 위한 몸짓이 나의 작업의 시작이며 이유이다. 자연 속을 거침없이 유영하며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자연의 질서가 주는 생명의 노래와 자연 속에서 인간이 꿈꾸는 무한한 꿈들을 시간의 궤도 위에 코스모스 씨앗은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기록한다. ■ 전미경

Vol.20161017a | 전미경展 / JEONMIKYUNG / 全美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