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und of Rainbow

김병주展 / KIMBYUNGJOO / 金秉柱 / printing   2016_1019 ▶︎ 2016_1025

김병주_The sound of Rainbow-Amaryllis_에칭, 애쿼틴트, 디지털 프린트_58×29cm×7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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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1019_수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6:00pm

세움 아트스페이스 SEUM 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Tel. +82.2.733.1943 www.seumartspace.com

침묵 속에서 구축한 소리, 만개한 울림1. 거친 듯 빗발치는 선들이 부유한다. 커다란 꽃과 화사한 빛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면을 가르는 빗살은 대기 중 수증기가 찬 공기를 만나 식어 땅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지만 실은 혼란스러운 어떤 것에 대한 심상의 표현이다. 화면의 중심에 자리한 꽃은 고온다습 조건에서 잘 생육하는 다년생 꽃 아마릴리스(Amaryllis)로, 이는 작가 자신을 은유한다.1) ● 또한 밝고 청명한 무지갯빛 색깔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이 모든 것들은 일상에서 발견하고 느끼며 감각하는 것들이다. 이를 쉽게 정리하면 그의 그림들(드로잉, 동판화 등)에 산포된 조형요소들은 들리지 않음을 들리게 하는 합주(合奏)이며, 일상미학이 외양화된 삶과 연계된 기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외견상 그의 작품들은 시각 중심의 두터운 결만큼이나 역동성과 율동감을 갖는다.2) 판화의 주도면밀함과 회화적 형식이 겹쳐지면서 일정한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이를 작가의 말로 대신하자면 "빗소리의 리듬을 타고 황량한 사막을 걷기도 하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오로라와 같은 자연을 만나기도 한다. 상상 속에서, 환상적인 만남들을 만들어 나간다."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김병주_The sound of Rainbow-Amaryllis_에칭, 애쿼틴트, 디지털 프린트_58×58cm×4_2016
김병주_The sound of Rainbow-Lily flower_에칭, 애쿼틴트, 디지털 프린트_58×90cm_2016

기법은 간접성, 복수성을 특징으로 삼는 판화임에도 회화성이 두드러진다. 판화라는 다소 딱딱한 매체에 그치지 않고 직접 물감을 덧대는 페인팅이 가미된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유로운 선, 화사하나 부드러운 색감, 작가의 자아와 정체성을 관통하는 뚜렷한 화업의식이 판화의 규칙성과 건조함, 섬세함과 상생함으로서 판화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를 '회화적 범주 내에서 판화만의 장점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 그러나 김병주의 근작에서 눈여겨봐야할 부분은 기법에 앞서 작품의 모태가 되는 지점이 무엇이냐에 있다. 고운 색채3)와 오랜 세월 쌓은 역량이 투영된 제작방식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귀에 들리진 않으나 (내적으론)침묵을 통해 통상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과 (외적으론)세상과 반응하는 지점은 어디인지가 보다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필자는 이를 절대 상실 속에서 자란 존재성에 대한 탐문에서 찾는다. 그렇기에 꽃은 사각의 프레임처럼 내외가 단절되거나 또는 갇혀 있는 자신에 대한 시선이며, 빗줄기는 복잡한 세상 속 한 구성원으로서의 한 단면을 가리킨다. 무지갯빛 배경은 근원적으로 외형의 재생이 아닌, 또한 탄성체를 매질로 전파되는 파동자체를 가리키기 보단 작가 내면에 안주하고 있는 그 '침묵'으로부터의 해방되어 고유한 목소리를 대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4)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심상이 담긴 판은 "재탄생의 의미와 새로운 작업에 대한 출발"을 지정한다.

김병주_The sound of Rainbow-Lily flower_에칭, 애쿼틴트, 디지털 프린트_90×58cm_2016

2. 사실 외로움과 고독, 어떤 특정한 사물을 계기로 비롯되는 기억이나 감정, 삶의 계곡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회상과 존재에 대한 질문 및 여정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보고 생각해봤음직한 인생의 필연적 조건들이자 부채감-부담이다. 때문에 너와 나의 일상, 나아가 우리 모두의 평범한 생활사처럼 발화되는 김병주의 작업에서 메시지란 특별할 게 아닐 수도 있다. ● 하지만 상실 속에서 자란 존재성에 대한 탐문,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평화와 안식, 사랑과 행복에 대한 자문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미지-그 가능성의 열람이면서 동시에 간과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이질화 되거나 융화되며 가는 일상이지만 내면성에 천착하는 시간은 많지 않은 것 또한 틀림없다. 그러니 그 특별하지 않을 것은 오히려 특별해지고, 시각으로 거둬들인 이미지는 절하될 까닭이 없다. ● 더구나 김병주 작가처럼 특수한 환경 아래에서라면 쉽게-일반적으로 예단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경험하지 않고서 내뱉는 것들은 허무하고, 체화되지 못한 언어들은 가볍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내 안에 있는 무엇(something that is in my mind), 즉 예술적 발화의 근간으로 자신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되묻고, 그 삶이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작가의 보이지 않는 주문 또는 독백은 충분히 의미적이다.

김병주_The sound of Rainbow-Amaryllis_에칭, 애쿼틴트, 디지털 프린트_30×85cm_2016
김병주_The sound of Rainbow_에칭, 애쿼틴트, 디지털 프린트_10×10cm×3_2015

물론 여기서의 의미란 존재하는 것은 자아이며 미적 욕구와 맞닿아 있는 스스로의 진정성과 연계된 것이랄 수 있다. 미로와 같은 길에서 하루하루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담담하게 맞닥뜨리며 살아가지만 내재된 무언가는 끝내 해소되지 않는 의문, 인생사에 관한 고뇌, 매 순간마다 다가서는 감정의 복선들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실상 그의 미적 표현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인지도 모른다.) 특히 소리를 소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침묵'이 지배적인 작가의 입장에선 더욱 짙게 다가오는 명제임에 틀림없다.5) ●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그림들은 보다 명료해지고 소재들 또한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꽃들, 자연물들이 주를 이루지만 아마릴리스(Amaryllis)와 같은 일부로 일원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 동기화 역시 덜어냄이 뚜렷하다. 특히 단순히 외형을 재현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해석의 첨가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전 작업들과의 거리감을 낳는다. 이를 달리 말하면, 침묵 속에서 건진 세상과의 반응을 거름망처럼 걸러내어 나와 우리가 공히 체감할 수 있는 형태와 색채로, 자신만의 순수한 감각으로 조화롭게 안착시키고 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나아가 그의 작품들을 보다 엄격하게 분석해보면, 감성을 통해 순수한 형체를 지향하고 감각체계를 모두 동원함으로서 조형적 방법론을 구축한다. 공간구성에 대한 관점에선 구성주의를 연상토록 하며, 색채는 그만의 의도에 걸맞는 상징적 사용에 의해 마침내 그 구성주의를 성취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여기에 꿈처럼 비춰지는 여운(다분히 추상적이지만 하나의 특성으로 읽을 수 있는)과 현실이 착종(錯綜)됨으로서 공상적, 몽환성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알고리즘이 모여 김병주 작업의 특질을 완성한다.

김병주_The sound of Rainbow-Iris rossii baker_동판에 혼합재료_49×34cm_2016

3. 한편 얇은 도록에 들어갈 내용치곤 비평을 길게 작성하긴 했지만 조금 더 보태자면, 작가의 작품은 어쩌면 그저 자신 마음속에 담긴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반응한 결과를 뚜렷한 감정이입 아래 일기 쓰듯이 펼쳐놓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예술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흔적들을 이상과 현실의 거리감 안에서 쓰고 지우며 다시 쓰고자 하는 듯싶기도 하다. 그 방법으로 경험과 주관적 의식을 작품 속에 투사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한다. 반면 다양한 감정과 충동이 현실이라는 외계와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그림으로 소화하려는 게 아닌가 싶은 인상도 없진 않다. 물론 그의 그림 속에 담긴 스토리가 종착으로 하는 지점은 궁극적으로 '나'라는 존재성의 검증에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말이다. 즉, 세상에서 전달하는 다양한 소리로부터 거세된 현실을6), 침묵(沈黙)의 고요함을, 밖으로의 질주를 내적으로 치환한 채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의 작품 제목들이 온통 「The sound of Rainbow」, 「The sound of Rainbow-Amaryllis」, 「The sound of Rainbow-Lily flower」 등인 이유에서 확연하게 읽힌다. ■ 홍경한

1) 가장 격정적으로 만개 혹은 발화하고픈 작가 자신의 입장을 담은 기호, 그 역설의 의미에서의 꽃인 셈이다. 2) 청각의 불편함을 시각이 상쇄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정열적으로 드러난다. 3) 그의 작품엔 빨강, 노랑 외에도 금색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차적으론 대기에 부유하는 빛과 조화, 확산의 효과를 작품에 나타내기 위함이며, 이차적으론 색깔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마음속에 똬리를 튼 고독함과 그에 반하는 분출, 아름다움, 슬픔, 행복 등의 여러 미묘한 감정들이 자신을 구동시키는 에너지와 힘의 기표이기도 하다. 4)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무지개 소리(The sound of Rainbow)」 시리즈이다. 「무지개 소리」 연작은 침잠한 자아를 일깨우는 수단이면서 표현에 대한 욕구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작가의 내적 상태와 변화들을 주관적 아름다움으로 대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떻게든 침묵에서 벗어나 소리를 내어 세상과 '소통(疏通)'하려는 몸부림이자, 자기 자신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활기찬 움직임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5) 침묵과 소리는 사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The sound of Rainbow-Rose」나, 「The sound of Rainbow-Cosmos(2008)」, 「The sound of Rainbow-Iris(2008)」 등과 맞물리는 주제다. 그 이후에도 「The sound of Rainbow.라는 주제는 유효하다. 이들 작품은 약간씩 다른 기법과 형태, 공간의 운용이 다르게 적용되고 있지만 '침묵으로부터의 소리'라는 점에선 교합(交合)을 이룬다. 침묵 속에서 구축한 소리, 그 커다란 소통의 울림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6) 이와 관련해 필자는 지난 2011년 평론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바 있다. "작가 김병주는 자신의 작업실 입구에 둥지를 튼 아기 산새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주택 뒤편에 유유히 흐르는 냇물의 쪼르락거림, 맑고 청량한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음파들 역시 명확한 자극으로 감지해 내지 못한다. 청각장애인인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상대의 입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다. 더욱 주의 깊게 반응해야 하고 시각에 보다 많은 의존을 해야만 한다. 이처럼 그는 많은 이들이 누리는 혜택 아닌 혜택인 '소리'의 자유로움으로부터 거세된 현실에서, 침묵(沈黙)의 고요함을 끌어안은 채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공평한 조물주는 그에게 누구보다 예리한 눈과 재주를 주었다. 귀청을 울리는 진동에 약한 대신 시각과 촉각을, 말(言)을 이해하고 정확한 내용을 인지하기 위해 남들보다 오히려 깊게 사고(思顧)하는 습관을 선사했다. 그런 점에서 작가 김병주가 주요 화두로 삼고 있는 '소리'란 오히려 창작의 본질이자, 상실된 세계에 대한 이상을 함의한다."

Vol.20161020d | 김병주展 / KIMBYUNGJOO / 金秉柱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