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계측 Morphometry of Coincidence

용환천展 / YONGHWANCHEON / 龍煥千 / drawing.sculpture   2016_1021 ▶ 2016_1106 / 월요일 휴관

용환천_우연의 계측_종이에 잉크_63×94cm_2016

초대일시 / 2016_102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성북구 성북로 49 운석빌딩 2층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시계를 본다. 11시 11분. 괜히 신기하다. 하루 중 시계가 11:11을 가리킬 확률은 2:45, 9:02, 4:47을 가리킬 확률과 정확히 일치하지만 우리는 11:11, 4:44같은 숫자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많은 이들은 이런 경험 이면에 현상 이상의 어떤 필연적 의미가 들어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필시 운이 좋을 거라는 암시다.' '왜 하필 지금이… 이건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날 기세다.'

용환천_우연의 계측_종이에 잉크_94×63cm_2016

그것이 그저 수많은 시간대 중 마주친 의미 없는 우연이라고 생각할 때도 묘연한 감각의 동요가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건 우리가 꿈에 반응하는 모습과도 유사하다. 우리는 꿈 속 체험이 비연속적이고 우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정작 거기에 개연성이 훨씬 부족한 해석을 들이대고 싶어한다. '해몽'이라 불리는 것이다. 실상 꿈은 각자의 기억의 일부로서 무엇보다 자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간을 지시하는 숫자든 꿈 속에서 본 신비로운 파란 꽃 한 송이든 그것이 나타난 연유와 거기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역으로 추적해 들어가면 모든 건 결국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향한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1'이나 '4'가 길하거나 흉하다고 여겨지는 수비관이 지배적인 문화권 출신이거나, 11:11이 일과 중 시간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간대에 속한 시간일 것이다. 꿈 속에서 처음 봤다고 착각한 파란 꽃은 비슷한 오류를 범했던 프로이트의 측근에 관한 책 속 이야기에서 본 것을 유난히 인상깊게 새겼던 것이고.

용환천_여섯개의 삼각면_세라믹_50×80×2cm_2011

우연인 줄 알았지만 필연이었고, 필연이라고 믿었지만 우연에 불과했던 것들을 체험하는 주체는 자신이며 그것을 자각하는 것, '그렇다고' 믿는 것도 자신이다. 기실 삶을 이루는 전부가 그렇다. 우연은 필연과 엉켜있고, 필연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결국 모든 건 '나'와 '나'의 선택을 반영한다.

용환천_우연의 계측_종이에 잉크_94×63cm_2016

용환천의 『Morphometry of Coincidence』는 바로 이런 우연과 필연의 결합과 그 사이 존재하는 매우 얇은 경계를 탐색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도조와 드로잉 작품들은 작가가 초기부터 보여줬던 반복과 기하학적 형태를 연장한 작품들로서 점조한 선과 면, 입체가 서로 마주칠 듯 비껴가며 드러내는 우연한 효과들을 실험하고, 의도하지 않은 부분과 의도치 않은 부분이 맞닿는 지점들을 탐구한다. 작가는 무수한 선이 면을 이루고, 면이 교차하며 입체가 되거나, 덧입힌 색이 평면에 입체성을 드러내는 작업 과정에서 수학적인 직관에 의존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형태나 효과가 나타날지는 우연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한 점에서 시작한 단순반복적인 선의 오고 감이 전혀 뜻밖의 결과를 야기한다. 마침내 작품이 어떤 두드러진 형태를 드러냈을 때 우연의 실체가 시각화되기 시작한다. 우연과 필연의 조우와 엉킴에서 단순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형태, 색과 질감이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우발적 효과는 필연이 되고, 예측 가능하다고 여겼던 부분은 우연으로 흡수된다.

용환천_9.20am_세라믹_60×125×2cm_2011

우연을 끌어들이는 작업 방식은 작가가 재료를 취사하게 된 연유에도 적용된다. 도조로 출발했지만 재료를 흙에 국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흙의 물성에 대한 강박도 없었으며 항상 아이디어가 우선했다.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재료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재료에 대한 이런 유연한 접근법은 필연이고, 그로써 와이어, 잉크와 같은 색다른 재료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유학할 당시 양질의 도조 재료를 구할 수 없었던 가운데 우연히 들어갔던 한 점포에서 다양한 색상의 잉크와 펜촉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일면 아프리카미술을 연상시키는 반복되는 형태의 세련된 기하학적 모티프를 평면 도조에서 먼저 시도한 터였고, 이래 종이 위에서 다양한 형태와 조형을 자유롭게 실험해왔다. 입체적 도조에서 출발해, 평면으로, 와이어 작업으로, 드로잉 작업으로 자유로운 매체의 전환이 이루어지며 작가가 추구하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미감의 조형은 더 높은 순수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것은 매체 사이 위계가 없는, 어떤 매체나 형태로 전환되어도, 여기서 좀 더 급진적인 표현을 써서, 단순한 점, 선, 면의 가장 단순한 형태로 '번역'되더라도 작가의 고유성이 더 잘 드러나는 과정이다.

용환천_시작과 끝_세라믹_60×60×2cm_2010
용환천_시작과 끝_세라믹_60×60×2cm_2010

요컨대 우리는 『Morphometry of Coincidence』전에서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우연의 실체가 구현된 지점이 어디부터인지, 필연을 소거하면서 따져 들어가보는 것이 첫 째다. 이것을 가려내는 것은 작가만의 독점적 영역이 아닌,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의 몫으로 기하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으로 점, 선, 면의 접합부분을 추론해 보는 수학적 추리가 될 수도 있고, 한 작가가 평면에 구축한 우연의 공간에 각자의 해석을 가하며 또 다른 우연의 공간을 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각자가 욕망하는 공간이나 체험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둘 째는, 도조와 드로잉이라는 두 가지 매체 간 동일한 조형과 감수성이 어떻게 상호하며 각기 독립된 형태로 번안되었는지 천천히 음미하는 일일 것이다. ■ 유대란

Vol.20161021g | 용환천展 / YONGHWANCHEON / 龍煥千 / draw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