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된 계절 Sealed Season

이인희展 / LEEINHEE / 李仁姬 / photography.mixed media   2016_1022 ▶︎ 2016_1028 / 월요일 휴관

이인희_봉인된 계절_유채_162×390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107f | 이인희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전예술가의집 Daejeon Artist House 대전시 중구 중앙로 32(문화동 1-27번지) 7전시실 Tel. +82.42.480.1081~8 dah.dcaf.or.kr

기억의 틈에 숨겨진 숨 ● 이인희작가는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사물을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에서 버려진 것들, 즉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생선비늘을 손수 닦고 말리고, 자신이 예전에 입던 옷이나 구두에 생선비늘의 패턴으로 이식해 나간다. 그리고 더 이상 쓸모가 없이 버려진 뼈 조각들을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성탑처럼 만들고 대지 위에 그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이인희의 기억과 관계가 있다. 그 동안 현실 속에 살면서 복잡하게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손질된 일상, 봉인된 기억'으로 작가는 모든 감정을 감내하며 사물들과 함께 세상을 파고드는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다. 이인희는 봉인된 기억으로부터 출발해서 손질된 일상을 매개로 세상을 끝없이 파고드는 '숨'으로 보다 근원적인 생명의 상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전에는 마치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각기 다른 매체를 손질하고 이식하며 '숨'을 불어 넣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에서는 그 단계를 뛰어 넘어 기억의 끝자락에 서서 자신을 다시 바라봄으로서 현실과 자신의 기억이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은 견고하게 짜여 진 일반적인 현실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 실체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전혀 다르게 보인다. 매일매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일상의 모습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이 세상을 채워나간다. 그 일상들이 자연적으로 발생을 한 것이든 아니면 인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든 크게 상관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 것은 이 모든 일상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인희 작가는 이와 같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 닮아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어 자신만의 숨으로 쓸모없이 버려진 사물들에 호흡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치유의 공간에 봉인한다.

이인희_봉인된 계절_사진_111×119cm_2016
이인희_봉인된 시간-이방인_말린 배추잎_30×30×25cm, 설치_2012
이인희_봉인된 시간-이방인_캔버스에 유채_72×60cm_2013
이인희_봉인된-계절_유채_90×73cm_2016
이인희_봉인된-시간_말린배추잎_설치_2012

「통증의 섬」작품을 보면 세상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물들의 상처까지 직접 치유하려는 듯 자신의 기억 속에 잠재된 애잔한 감성으로 성의 형태로 재구성하며 숨을 불어 넣은 다음 같은 제목으로 다시 회화작품을 제작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모든 회화작품에서 수평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수평선들은 마치 자신이 수집한 오브제들의 안식처와 저 멀리 있을 것 같은 미지와의 조우를 수평선이라는 경계로 의도적으로 설정해 놓고 그 관계 속에서 현실과 자신의 기억 이외에 어디에선가 존재할 같은 초현실의 세계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 세계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가공하고 만들고 그려내고 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치유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봉인해 놓은 비물리적 안식처와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성의 가운데에 있는 선과 수평선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작가가 정육점에서 잘려진 소의 뼈를 보면서 느꼈던 모순적 절망감, 그 속에 마지막 생명에 대한 선을 부여한 것처럼 보이며, 이 수평선과 의도적으로 연결시켜 놓은 것은 생명에 대한 작가의 마지막 헌신이며 애잔한 위로인 것이다. 그리고 뼈로 구성된 회화작품의 휘어진 곡선과 초원 위 길의 곡선, 그림자의 곡선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각각의 대상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복잡한 관계망이 직감적으로 감지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여기에 미지의 세상을 상징하는 구름과 삶을 상징하는 대지를 대칭시켜 전체적으로 화면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 속에 봉인한 이젠 입을 수 없는 옷들 또한 「통증의 섬」과 같은 방식으로 사진과 오브제, 회화를 넘나들며 「봉인된 계절」시리즈로 표현하고 있다. 「봉인된 시간-이방인」은 말린 배추 잎으로 만든 옷과 구두이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배추 값 파동으로 수확을 포기하고 뒤 엎을 수밖에 없는 배추밭에서 배추 잎을 직접 채집하고 작업실로 갖고 들어와 손질하고 말려서 자신의 신체사이즈에 맞게 옷과 구두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 또한 「통증의 섬」처럼 세상에서 쓸모없이 버려진 사물들, 즉 배추 잎에 대해 위문공연을 하듯 작업을 하고 자신의 대지 위에 봉인하고 있다. 2012년도에 제작한 「봉인된 시간-감성적수평선」은 영상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해변에서 이젤을 설치하고 바다를 향해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리는 풍경은 바다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이다. 수평선 저 너머 실제 존재할 것 같은 자신만의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이 영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안해진다. 왜냐하면 자꾸 밀려오는 밀물에 의해 작가의 발이 바닷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자신의 풍경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내 발목까지 물에 잠기게 되는데 수평선과 물에 잠긴 발목의 라인이 수평으로 일치되면서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마치 발목으로 옮겨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가 반복적으로 파도치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밀물은 프랙탈(프랙탈 : 인간의 지문이나 해안선의 모양, 숲에 나뭇가지가 뻗어있는 모양들처럼 세부 구조들이 끊임없이 전체 구조를 되풀이하는 '자기유사성'을 갖는 구조. 명확하고 질서정연한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복잡해 보이지만 나름의 규칙성을 가진 구조이다.)과 같은 시간의 반복성과 자기유사성을 갖는 규칙성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작가가 연출한 이 퍼포먼스는 앞서 본 다른 오브제, 회화, 사진 작품들처럼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이인희_통증의 섬_캔버스에 유채_77×92cm_2013
이인희_통증의 섬_유채_133×162cm_2015
이인희_통증의 섬_소의 다리 뼈_18×12×8cm, 설치_2011

이인희는 자신의 기억과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현실 사이의 중간지점, 즉 기억과 현실의 경계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틈 속에서 '숨'이라는 자신만의 표현 언어로 세상을 파고든다.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축척된 기억들의 끝자락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숨은 현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있다. 또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관계들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또한 하루하루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끝없이 뒤엉키고 반응하며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기억도 필요에 의해 스스로 편집되고 각색된다. 그동안 살면서 뇌에 기록된 기억들은 서로 반응하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뛰어 넘어 재구성된다고 한다. 그 것은 기억이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가령 자신의 옛날 사진을 오랜만에 볼 때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은 자신의 뇌에 각색된 기억과 다르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기억의 존재방식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반응하며 변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인희의 작품에서 보이는 모든 대상들은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 대상들이 원래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이미 과거라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에서 되돌아간다고 해도 완전히 되돌아 갈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안식처에서 계속 봉인되면서 상처가 모두 치유되기를, 그리고 그 세상이 영원히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 김민기

Vol.20161022f | 이인희展 / LEEINHEE / 李仁姬 / photography.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