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머 : 한 "사병"눈에서 본 지정학적 국제 전망

선징동展 / SHENJINGDONG / 沈敬東 / painting   2016_1025 ▶︎ 2016_1106 / 월요일 휴관

선징동_长鼻子I_40×30cm×6_2015

초대일시 / 2016_1025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한국공예관 Cheongju Korean Craft Museum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7 Tel. +82.43.268.0255 koreacraft.org/

"국제 유머"라는 것은 중국어에서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농담의 정도가 매우 큰 것으로, 매우 황당무계하거나 결과가 너무도 심각함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농담의 범위가 매우 넓은데, 심지어 일부 국제적인 문제까지 파급되기도 한다. ● 농담, 또는 해학, 유머는 줄곧 선징동(沈敬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고, 이런 농담의 가장 중요한 수법은 신분의 위치 전도로 인하여 일어나는 황당함, 조소를 통한 야유, 평민화된 정치의 풍자이다. 세계적인 범위에서 본다면, 선징동의 작품 수법과 비슷한 예술 형상으로 Jaroslav Hasek의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모험」이 있고, 또 스페인 작가 Miguel de Cervantes Saavedra의 「돈키호테」가 있다. 선징동의 작품은 위의 두 문학작품과 함께 이끌어낸 공감이 한편으로는 속세화를 이용하여 허위의 고전적임과 맹목적인 숭고함을 해체시키고 조롱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농담의 뒷면에 웃음 속눈물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신앙주의의 종결을 알렸다. 이러한 예술 수법의 영감은 그 스스로의 진실 된 심리적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선징동_吉普_200×300cm_2011
선징동_小海_55×45cm_2015

선징동의 인생 이력이 막 시작했던 단계는, 그와 같은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한 단계들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린 시절은 현지의 소년 궁 미술 학원에서 소묘와 색채를 공부하였고, 문화혁명 이후에는 운이 좋게도 전문적인 예술 학교에 입학하여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그의 인생 궤적에 희극과 같은 변화가 발생한 것은 난징 예술 학교를 졸업한 뒤, 난징 군사 정치부 전선의 문화 선전 공작단에서 무대 예술 업무에 종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군대에서의 문예 단체 또는 전사에서 소위 말하는 "문예병"은 많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물론, 그 시대의 많은 중국사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이는 당연히 아주 좋은 이상적인 직업의 선택이었고, 안정적인 경제적 수입이 있을 뿐 아니라, 영예로운 사회적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또 그럴듯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전공을 종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예병은 또 하나의 특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작전부처럼 그렇게 엄격한 군사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고, 평상시에는 평상복을 주로 입어도 되었다. ●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대부분의 군인은 이러한 황제와 같은 문예 신분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선징동은 자신의 신분이 어쩌다 한번 우연하게 온 기회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그들이 있었던 문화 선전 공작단에서 한 연극을 리허설 했을 때, 그의 많은 동료들은 재미를 위해서 평상시에 입기 어려운 군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선징동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사진을 현상한 뒤에 그는 자기가 알지 못했던"자신"을 발견하였고, 정치화되고 부호화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이 후로, "도대체 전사인가 아니면 예술가 인가"라는 문제가 생겼고, 어떻게 이 둘의 관계를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할지라는 부분이 줄곧 그에게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는 신분에 대한 곤혹이었을 것이다.

선징동_英雄_60×50cm_2016
선징동_包-英雄_100×80cm_2015

그가 몸담고 있었던 난징에서 85신조 이래에 줄곧 훌륭한 실험 예술이라는 전통이 있었고, 관념성의 예술적 표현이 특히 좋았으며, 이 후의 예술 시장에서 크게 확장한 부호화된 작품과 서로 비교했을 때, 난징의 예술계는 일종의 문학적 상징성의 집단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아마도 강남(江南) 지역의 오래된 인문 전통이 내재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선징동의 작품을 만난 것은 2002년 난징의 한 전시회에서인데, 그가 참가한 작품은 녹화의 방식으로 행위 예술을 나타냈다. 이 작품의 명칭은 "꾸아 꾸아 꾸아(gua gua gua)"인데, 전신을 노출한 선징동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몸의 모든 체모를 긁어내게 하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선징동은 당시 전시장에서 나에게 작품의 배경을 소개하였는데, 거의 본인의 감정에 대한 경험과 관련되어 있었다. 상술한 난징의 관념 예술의 범위에서, 나는 당시 그렇게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의 내적 심리가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표면적 의미는 남녀의 정으로 포위된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더욱이 심층적인 심리적 동기이며, 아마도 줄곧 그를 괴롭히는 잘못된 신분의 위치와 모순이다. 그리고 이 예술적 행위는 마치 그 장기적으로 스스로를 곤혹하는 신분에 대한 근심에 결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곧 베이징으로 이주하여 직업 예술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비록 그때 그는 아직 군 퇴역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당시 내가 TOM.COM 예술 동맹에서 편집자로 있을 때, 호주인 Brian Wallace가 베이징에서 진행한 홍문 화랑 계획으로 전 세계에 예술가를 모집하였는데, 이 소식이 미술 동맹에 발표된 이후로, 선징동은 첫 번째로 선택된 예술가였고, 이로 인하여 그는 베이징에서의 예술 창작 경력을 시작하였다. 나는 이 것이 선징동의 인생 경력에서 그의 인생 궤도 변화에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선징동_睁大眼睛_150×150cm_2016

그가 아직 베이징에 오지 않았던 몇 년 동안, 나는 그가 아직 제때에 자기의 적당한 창작 방향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몇 년간의 작품에서, 그는 여전히 순수 관념성이 있는 "난징 전통"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변화가 발생한 것은 그가 2003년 만들었던 한 도자기 작품에서 인데, 그 작품은 오래된 군복을 입은 군인의 반신상이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정직하고 선해 보이는 눈매에는 한 가닥 교활함이 보이기도 하였는데, 여기에는 분명하게 그의 개인적인 형상과 성격이 돋보였다. 확실한 것은 이 후에 자기에게 거대한 명예를 안겨 준 작품 창작은, 바로 이 작은 작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이 작품이 언어적인 표현의 입장에서는 아직 허약함이 있다고 생각되고, 작품은 일방적인 방향에 맞추어져 있으며, 더 풍부한 언어적 의미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 전기는 그의 이 도자기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형식의 전환을 이루어낸 것에서 시작되었고, 유화에서의 언어가 화면으로 이동되었을 때였다. 이는 결코 많은 예술가가 한 것에서 나타난 것처럼 서로 다른 매체를 이용하여 자기의 작품에 대한 언어적 부호를 끊임없이 복제한 것이 아니라, 정 반대로, 도자기의 조형 방식과 질감에서 출발하여 유화의 언어적 진행 전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결과를 선징동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작품은 더 선명해졌다고 할 수 있고,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재창조의 과정이라고 가리킬 수 있겠다.

선징동_望远镜_200×200cm_2015

먼저, 도자기 원작의 3차원 입체 방식은 형상의 주체를 실재적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하였으며, 그 환경적인 배경은 허구적인 것이다. 하지만 평면 회화에서는, 그 조형적인 언어가 곧 허구적이다. 때문에 이러한 형상의 조소는 극대하게 재창조의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동시에 화면에서는 배경이 또 구체적이고도 현실로 만들 수 있는데, 비록 선징동의 작품에서는 대다수의 형상 배경이 단색으로 된 평면의 공간이지만, 색채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심리적인 의의를 가리켰다. 이처럼 평면 회화의 조형으로 전환한 이후에, 먼저 작품 형상의 시니피앙과 지시 대상의 관계는 더욱 더 풍부해지고 다차원적으로 변했다. 다음으로는 회화 언어에서, 그는 또 진일보하여 도자기 재료 표면에서의 광선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시각 효과를 강화시켰다. 이렇게 하여 그의 작품 언어 체계에서 속세 화되고 희극적이며 풍자하는 성격의 특징이 더 강화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그의 개인 작품의 부호가 만들어졌다. 셋째는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써, 도자기 원형을 가지고 대상으로 하는 회화의 방식인데, 이것이 나타내는 것은 더 이상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완제품"식의 인형이다.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범식, 유형, 복수 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것들이 예술 이론 체계에서 정식의 술어는 아니지만, 선징동의 작품에서는 오히려 깊이 있는 그의 작품 속 내포된 수단이 되었다. ● 이로 인하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선징동의 성숙된 창작 단계 중 작품 속에 나타난 복조씩 텍스트 구조와 잘못된 위치의 형상과 의의를 병렬하는 수법의 심리적 근원은 일찍이 그를 괴롭혔던 다년간의 신분의 잘못된 위치와 근심이다. 장기간의 사회적 경험의 누적과 예술 언어의 실험을 통하여, 그 신분에 대한 재난은 결국 그의 풍부한 창작의 원천과 작품의 개 정화된 특징으로 만들어졌다.

선징동_80×60cm_2015

앞서 말한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가 다시 그의 「영웅」시리즈와 「포장」시리즈를 볼 때, 가벼운 코미디식의 웃음 방식이 줄곧 그의 작품 속에 가장 주된 것으로 드러남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그의 작품 속에는 일부러 명확한 가지적인 판단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화면에서는 무고하고도 정직한 인물의 형상을 보였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일종의 "숭고"한 것을 연기할 때에는, 유머와 교활한 면도 나타났다. 이것이 곧 희극의 힘이고, 그 형상과 장면은 곧 황당무계한 성격을 가지며, 조소하는 식의 무료함, 세속화되고 소인물적인 야유와 반어적인 풍자는 가벼운 농담 가운데에서 국가 의지의 주도 하에 단체적인 무의식의 고전적인 것과 숭고함을 순식간에 붕괴시킴을 나타냈다. Hasek가 조소해낸 착한 병사에서, 그는 더욱 더 노력하여 열심히 "착한 병사"라는 역할을 연기할 때 "착함"의 가치가 전체적인 황당함을 보였다. 그래서 이러한 표면적으로 무고한 "엄숙함"이 가져다주는 희극적인 반어적 풍자 효과는 더욱 더 강렬해졌다. 동시에 선징동작품 속에서의 인물 형상도 돈키호테처럼 잘못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정확한 이성적인 가치 판단을 고집스럽게 이행하고자 했다. 비록 그의 전체적인 행위 방식은 황당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웃음으로 눈물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신앙주의 시대의 종결을 홍보하는 방식이 심리적인 기초에서 보았을 때 그 근원이 중국의 전체적인 사회 문화가 상업적 소비화로 전환이 되는 과정임을 나타내고, 드러나지 않는 국민의 내적 심리를 각각의 서로 다른 상실감으로 나타낸 것이다. ● 이상한 점 한 가지는 선징동이 작품에서 개인 형상의 특징을 지닌 조소를 사용하였는데,이는 영리하게 자기를 평범하고, 어리석은 대중의 일원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릇 그의 작품 속에서의 시니피앙과 지시대상의 범위 내에서 언급이 조금이라도 되는 사람은 결코 뚜렷한 침범을 느끼기 못한다. 반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의 집단적인 즐김의 방식으로 그의 작품에 참여하여 해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일종의 심층적인 풍자이기도 하다.

선징동_角色(左)_150×150cm_2016

화제를 다시 그가 이번에 한국의 공예 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로 돌아와, 작품에서 배치한 언어 환경에서 변화가 생겼는데, 선징동은 결코 이전의 창작 작품을 일회성으로 간단하게 나열하는 식의 전시를 하지 않았고, 환경적 배경의 변화에 따라, 전체적인 전시의 논리적 프레임과 배치 방식을 하나의 새로운 작품 창작의 과정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원래의 농담식 작품 창작의 개성을 기초로 하여, 전시 장소와 지역의 사회 역사, 그리고 국제적인 정치 구조에 따라 그는 민첩하게 동북아의 복잡한 국제적인 정치 구조 하에 지연정치의 역사와 현상이 바로 그의 이번 전시에서 이용해야 할 자료 중 한 가지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신분에 대한 경험과 결합한다면, 그는 "사병"이라는 시각에서 관찰하고, 사고하는 것을 바랄 것이고, 또 이러한 지연정치의 안과 밖이라는 논리적인 관계를 나타내고 싶어 할 것인데, 이것이 바로 "국제 유머"이라는 생각의 근원이다. ● 동북아의 현재 정치 현황은 상세기 세계 냉전이라는 구조가 남겨놓은 결과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시에 근래의 수많은 해를 지나오면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테러 등의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고, 경제 세계화의 정도도 더 깊어졌으며, 오래된 냉전의 구조는 극대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오늘날의 세계는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면서 적이고 친구라는 다각적인 관계인데, 아마도 이미 일종의 국제 정치 관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상태가 된 것 같다. 구체적으로 동북아의 정세에 달하면, 물론 냉전 사고의 습성이 이어져오고 있지만, 동시에 대국의 정치적 힘과 문화가 오가는 등의 국제 무역의 순, 역조 균형 등의 이러한 요인은 지역의 구조 변화를 제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이다. 군사의 대항도 여전히 국가와 국가 간의 모순된 극단으로 표현되지만, 오늘날에서 보면, 경제적인 제재, 문화의 보이콧, 심지어는 텔레비전 및 온라인 매체의 시각화로 심리전을 갖는 방식은 모두 풍부하게 전통적인 지연 정치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경제 전쟁, 무역 전쟁, 화폐 전쟁, 문화 전쟁, 매체 전쟁은 이미 일종의 국가와 국가 간의 모순을 나타내는 상태가 되었는데, 군사력은 오히려 모습을 감추고 있는 위협의 수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사병"으로서, 그는 어떻게 오늘날의 지연정치 구조 하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바라보는가? 그 역시 돈키호테부터 Hasek까지처럼 직면한 것은 아닌지, 자신이 처한 신분의 위치와 사회적 시대의 변화 사이에서 거대한 허무감과 황당함이 나타나진 않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선징동의 개인 전시에서 사병들은 일부러 전통적인 국가의 힘과 민족의 엄격한 상징적인 역할을 연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기는 이미 점점 대중매체의 시각적 소비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것은 "사병" 하나가 오늘의 대중 소비 사회에서 직면한 신분의 잘못된 위치이고, 이러한 잘못된 위치는 거대한 황당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선징동_表情之二_150×150cm_2016

선징동의 작품에서, 농담과 유머의 방식은 줄곧 그의 가장 뚜렷한 예술 개성화의 특징이었다. 이런 예술 언어 방식의 형성은 그가 일찍이 경험한 사회적 신분의 잘못된 위치에서 가져 오게 된 곤혹과 관련이 있다. 그의 예술이 성숙되어 가는 단계에서의 창작은 일찍이 겪은 이 경험을 기초로 하고 있고, 중국의 "홍색"시기까지 연장이 되었으며, 몇 대의 중국인이 경험한 집단적 무의식의 사고였다. 그의 작품에는 황당무계한 조소와 반어적 풍자가 가득했지만, 이러한 희극화의 황당함과 허구의 배경에서 중국인은 가장 진실 되게 어떠한 감정을 경험하였다. 이번 한국의 전시에서, 선징동은 한 걸을 더 나아가 이러한 농담과 유머의 방식을 국제 정치 관계 속의 지연 정치 구조에까지 확대하였고, 이를 통하여 앞으로의 냉전 시대 배경 하에 상업의 세계화와 세계라는 범위 내에 있는 대중 소비 및 전통적 군사의 대항 수단 간의 서로 의존하면서도 또 풍자와 황당함이 가득한 시대적 상황을 자세히 살피고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 우홍

Vol.20161025a | 선징동展 / SHENJINGDONG / 沈敬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