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동몽 異床同夢: 꿈 꿀 수 있는 자의 행복

2016 건국대학교 회화과 졸업展   2016_1026 ▶︎ 2016_1101

초대일시 / 2016_1026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은오_김가은_김나연_김다희_김대헌 김문비_김서희_김소연_김수진_김영서 김용권_김지은_문지수_문지환_문화연 박민희_박지현_박초롱_백성순_석민 소정희_손기쁨_연해니_오조현_유재연 이영_이옥섭_이은영_임수경_임슬지 전소현_정은진_조송아_조예림_조향재 조혜림_지현주_허혜경_황지영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꿈을 꾸지 않고 있다. 무엇을 목표로 오늘을 살아 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심지어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척박한 삶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내 스스로 어른들의 보편적 삶이라는 영역에 들어서게 된 것인지 헷갈리던 요즈음, 졸업전시 제목을 『이상동몽』으로 결정했다는 학생들의 연락을 받았다. 같은 잠자리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비틀어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삶의 방식은 다소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꿈과 목표를 가진다는 '이상동몽(異床同夢)'으로 바꾼 것일 테다. 미래가 막연한 사회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텐데 졸업을 하나의 유예된 젊음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첫 출발로 삼은 듯 하여 무척이나 반가웠다.

허혜경_Condolences space_캔버스에 유채_33×55cm_2016 전소현_같은곳에서 2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16
조송아_집중하다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6 김문비_Grow_크래프트지에 색연필_53×72.7cm_2016 정은진_치유의 욕실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16

장자(莊子)는 제물론편(齊物論篇)에서 제자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한다. 꿈 속에서 그는 나비가 되었지만 꿈에서 깨어나보니 인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면서 실재의 꿈과 꿈의 실재의 경계가 도대체 무엇인가 질문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이야기를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욕망과 이상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만물의 미세한 변화에 불과할 뿐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인생은 어차피 덧없는 것이므로 그냥 대세를 거스르지 말고 물 흘러가듯 놔둬야 한다고 염세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자의 장황하고 거창한 비유는 현실세계에 적용시킬 수 없다고 제자가 말하자 그는 덧붙여 설명한다. '우리가 땅을 딛고 서 있기 위해서는 발바닥 만한 크기의 땅만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크기를 제외한 모든 땅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우리는 서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서 있기 위해서는 딛고 있는 땅보다도 그 이외의 땅이 더 중요하다.'

김서희_창안에서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6 백성순_마르가리타 공주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6

물론 이것은 철학이나 사유가 현실에선 효용성이 없다는 제자의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 장자가 언급한 것이므로 호접몽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이 전체 대화 안에서 우리는 장자가 자신이 설정한 도(道) 개념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인간의 삶을 '목표를 성취 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극단적 흑백단계로만 나누어 설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장자에 의하면 개인의 삶이라고 해 봤자 커다란 이 세상에 비해 너무도 보 잘 것 없는 작은 것이며, 우리가 대단한 것을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만물의 입장에서 보면 쌀 한 톨만큼의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라는 논지이다. 장자의 오류는 무엇인가? 그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인간이 삶에 있어서 특정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오로지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을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더 행복한지 나비로서의 삶이 더 행복한지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삶이라는 것을 인간이냐 나비냐라는 극단의 비유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또한 어느 정도 면적의 발 디딜 땅이 나에게 필요한지 우리는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만히 주어진 대로 보고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직접 체험하고 부딪혀 봐야만 모든 것은 종국(終局)에 가서 알게 되는 것이다.

김다희_물성의 변이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16 김지은_맞추어 나가는것_캔버스에 유채_97×97cm_2016
이영_Bachalpsee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16 석민_안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16

보편적으로 꿈을 '좇는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꿈을 이룬다'라는 것이 숨어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추적하는 행위임을 설명하고 있다. 가만히 기다리며 지켜만 보고 있으면 절대 이 꿈이라는 것을 마주칠 수가 없다. 어쩌면 그것은 결코 잡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꿈(hope)을 꿈(dream)이라고 같이 해석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것을 잡기 위한 과정에서 경험한 실패와 오류, 그리고 깨달음은 기다리기만 했더라면 결코 얻지 못할 소중한 교훈이다. 막상 그 꿈이라는 것에 근접하여 결국 성취하고 났을 땐 어쩌면 허무해 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닫게 될 것이다. 목표를 달성해서 얻는 행복보다 그것에 근접해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조향재_Plenty of life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6 소정희_ROSE_캔버스에 유채_97×97cm_2016
유재연_웨이팅_장지에 채색_40×107cm_2016 이옥섭_책가도가리개병풍_비단에 천연석채, 금니_163×130cm_2016 황지영_흔적2_장지에 채색_116.8×80.3cm_2016

학생들이 꾸는 꿈이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특히나 모든 졸업생들이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될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슷한 문제에 당면하여 지난 4년을 힘겹게 극기(克己)하며 버텨 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대인 관계의 단절, 정체성의 상실, 기댈 곳 없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외로운 현실, 불투명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고단한 삶. 이것들은 비단 우리 학생들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모두 마주하고 있는 처절한 현실이다. 이러한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인간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는 거의 유일한 학문이다. 사진기가 발명 되었을 때도, TV가 각 집안에 설치 되었을 때도, 그리고 미디어 아트가 현대미술을 지배할 때도 그때마다 대중은 말했다. '순수예술은 끝났다.' '회화는 죽었다.'. 그러나 차가운 심장을 지닌 기계장치들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상처받은 영혼과 감성을 치유하기 위해 그들은 다시 예술 앞으로 돌아오곤 했다. 예술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문지수_풍악내산총람_비단에 천연석채_104×71cm_2016 김가은_木下_장지에 채색_145.5×97cm_2016
김영서_아무것도 나는_장지에 채색_72.7×90.9cm_2016 이은영_떠다니는 상상_장지에 채색_97×130cm_2016

불멸의 학문을 앞으로 계속 연구할 여러분들은 존경 받아 마땅할 것이다. 여러분이 단단히 서 있기 위해 어느 정도의 땅덩이가 필요 한지 직접 찾아 내 봐야 한다. 나비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체험해 봐야 한다. 장자의 도(道)는 따르지 않기로 하자. 우리는 신선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욕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한낱 인간에 불과하므로. 나는 우리 학생들이 도저히 스스로가 감당해 낼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허황된 꿈을 목표로 삼길 바란다. 하지만 그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진 못하겠다. 다만 그 꿈을 힘차게 좇아라. 꿈을 좇는 것이야 말로 삶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 윤상훈

Vol.20161026d | 이상동몽 異床同夢: 꿈 꿀 수 있는 자의 행복-2016 건국대학교 회화과 졸업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