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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1026_수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30am~06:00pm
세움 아트스페이스 SEUM 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Tel. +82.2.733.1943 www.seumartspace.com
전쟁이나 테러 보도사진들 속 사람들을 그리는 일에는 언제나 거리감이 수반된다. 보고 수집하고 그리는 대부분의 과정이 그렇다. 건물의 잔해, 차가 폭발한 현장, 똑같은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찍힌 사진들을 계속해서 바라보면 그들 한명 한명, 사건들 하나 하나는 서로 뒤섞이며 하나의 '희생자'라는 익명적인 집단으로 묶인다. '희생자'들은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여 인지되고 그렇게 그들의 이미지가 소비된다.
「피-빨강-피」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 자연히 드러나게 될 것은 이 거리감이다. 추상화된 '희생자'와 사진 너머 구체적 개인 사이의 거리감이 나의 작업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이 거리감 때문에 나는 사진들을 보면서 경악과 슬픔, 연민, 무기력함을 느끼고 손상된 육체에 대한 관음증과 비극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끌리며, 인과가 애매한 죄책감을 느낀다.
거리는 나와 나의 그림 사이에서도 생겨난다. 「희생자」, 「시체들」 시리즈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보도사진 속 희생자 이미지의 소비, 그리고 이와 관련한 개인적 감정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관찰하고자 한 그림들이다. 거리감이 생산해낸 또 다른 거리는 때문에 화면 속에서 구체적인 사실들을 제거해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연민과 죄책감, 관음증과 호기심은 탈색된 화면을 이루는 이미지의 논리 속에서 설명된다. ● 나의 작업에서 '희생'이라는 단어는 종교적 숭고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희생'은 부조리한 현실을, 타인의 육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폭력을 쉽게 설명해버린다. 다만 연민만을 남기며 고통과 폭력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원본의 처참함은 나의 현실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희생'은 맺음말이다.
희생자 위에 덧입혀지는 기독교 종교화의 이미지, 금색 후광, 흘러내리는 분홍 물감, 선명한 붉은 피,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검은 사선 등. 희생자 이미지 위에 층층이 올라가는 여러 요소들은 하나의 명확한 방향을 향해 통합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서로서로 조금씩 어긋나 있다. 두 눈과 피부색을 잃은 회색의 희생자 위에 유일하게 색을 유지하는 붉은 피에도 그것의 충격을 반감시키는 장식성이 있다. 마치 연민과 관음증, 경악과 매혹처럼 이들은 뒤죽박죽인 채로 공존한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혹은 그러고자 했던 화면에는 약간의 균열이 생긴다. ● 「피-빨강-피」의 붉은 그림들은 이 틈을 벌려 그 안의 어떤 것을 가장 표면으로 끌어내려는 시도이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보고 수집하고 그리는 과정들에서 생기는 거리를 줄이고 싶었다. 붉은 그림들의 붉은 색은 '피—」빨강—」피'를 순차적으로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가장 마지막 단계의 피이다. 그림의 빨강은 단순한 빨간 물감이 아니라 누군가가 실제로 흘린 피임을 암시한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의 '피'의 거리가 좁혀지길 원한다.
그리기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니, 그리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업은 언제나 의심스러운 질문의 과정이다. 좁히고 좁혀서 도달하는 결론은 그림을 그리는 나를 매개로 하여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림들은 결국 자화상이다. 밖을 향했던 시선은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 이보람
Vol.20161026e | 이보람展 / LEEBORAM / 李보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