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NATURE

박희섭展 / PARKHEESEOP / 朴喜燮 / painting   2016_1028 ▶︎ 2016_1117

박희섭_AFTER NATU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글로스 바니쉬, 자개_194×61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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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102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가나아트 UNTITLED Gana Art UNTITLED 서울 종로구 평창31길 5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박희섭의 열네번째 개인전, '장생'과 '유토피아'에 대해 성찰하다. ● 박희섭은 자개의 생명력을 활용하여 '무병장수' 에 대한 염원을 담는 작업을 한다. 동국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오랫동안 전통 주단집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 색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릴 적 집 주변 산재해 있던 자개공방에 대한 관심이 성장 후에도 이어져 자개를 작업의 기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2001년부터 자개작업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동양의 전통적인 원림의 구성요소인 괴석, 나무를 소재로 전통의 현대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 공예재료로 여겨지던 나전을 주체적으로 회화로 접목시켜 독창적인 회화양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 "박희섭의 작업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걸쳐 환경과 자연이 진화하듯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겪었던 많은 일들이 새로운 작업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박희섭의 작업에서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의 작업에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에서 구상과 추상의 사이에서 그리고 익숙함과 낯설음의 중심에서도 예술적 본질을 잃지 않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은주, 캔파운데이션) ●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대 미술시장의 견본인 798 옆에서 보낸 만 8여년간의 시간 동안의 경험을 응축시켜 전시작들에 녹여냈다. ■ 가나아트 UNTITLED

박희섭_AFTER NATU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글로스 바니쉬, 자개_70×70cm_2016

박희섭의 회화 ● 가령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라 한다면, 일반적인 예술의 '안정성' 또는 '지속성'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인가? 확실히 예술과 비예술의 사이 지점에는 새로운 평가와 서술이 끊임없이 요구되며, 정태적이거나 뚜렷한 한계는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예술의 특성이자 그 본연의 동력은 바로 모든 공간을 정복하는 것에 있는데, 이는 종종 철학과 같이 외부에 존재하는 문제를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작가란 공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예술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다시 말해서 비예술을 예술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회화의 한계에 대해 즐겨 논한다. 혹자는 '종말' 또는 '사망'이라고도 표현한다. 필자 개인적으로 전통 회화의 폐막에 관심이 있지만, 종말 선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더욱 많은 작가들이 폐막과 종결 사이에서 어떠한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 길을 집요하게 걸어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작가 박희섭 또한 그 중 하나다.

박희섭_AFTER NATU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글로스 바니쉬, 자개_50×50cm_2015

박희섭은 '자연에 따라서'를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 나는 어느새 창작자의 일부가 되어 그의 화면 속으로 흡수되었다. 심원한 단색조의 배경에 간결하고 소박하게 놓아진 익숙한 이미지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도록 이끈다. 다름 아닌 늘 보아오던 나무와 기암석 같은 것들인데, 무엇이 그토록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가 해답은 각각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외재적인 구도나 색채, 선묘 등의 조형 요소는 작가가 정식 아카데미즘 미술교육을 받았기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작품 속의 형상이 유난히 풍기는 깊은 운치와 멋은 그가 일찍이 전통 수묵화를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희섭이 보여주는 고전적인 화면의 정취에 눈길이 가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흔들린 진짜 이유는 기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명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뒤로 하고 박희섭이 사용한 재료의 특수한 성질에 주목해본다. 재료와 화면의 시각적인 느낌이 거의 동시에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따로 떼어보았을 때, 재료가 지니는 특별함이 보다 더 강조된다. 만일 그 둘의 느낌만 놓고 본다면 자개를 조합하여 예상 밖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는 통속적인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품이 내포하는 '상망'의 이미지는 도리어 우리를 서로 관조하도록 자극한다. 다시 재료의 물성을 논하자면, 현대미술의 주요 재료로서, 박희섭의 화면에 존재하는 자개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시간'의 함의이자, 유년 시절의 기억 깊숙한 곳으로부터 거슬러 온 것이다. 또한 외적인 것을 회화 속으로 가져오는 과정은 박희섭 작품의 세 번째 특성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오랜 제작 과정을 통해 개념을 해석하고 향유함과 동시에 자신을 다시 그 개념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둔다. 비예술 또는 예술을 초월하는 방식을 추구하며, 서로 겸용될 수 없는 모순을 만들어내는 분석적인 작업 과정은 회화의 닫힌 범위를 사고하지만 그렇다고 회화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쉽지 않은 과정은 바로 박희섭의 예술과 삶이 향하는 여정이 되었다.

박희섭_AFTER NATU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글로스 바니쉬, 자개_194×366cm_2016

동시대 예술에서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삼는 예술 작품이란 무엇보다 문제의식을 가장 우선시하기 마련이다. 박희섭의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기암괴석, 나무와 물을 대상화하는데, 그 주제는 다름 아닌 동양 문화권에 유구히 존재해온 '장생'이다. 2001년 첫 개인전 『장생의 꿈』 부터 「자연에 따라서」 시리즈까지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언급한 '장생구시', 박희섭은 그 속의 '장생'을 생명을 활성화시키는 욕망이라고 보았다. 동양 정원의 구성 요소 중에서, 어째서 나무와 수석은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인가? 천인합일이라 일컬어지는 수석, 꽃과 나무 등은 영혼의 안식처로써, 또 영원을 대표하며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마음을 대변한다. 한편 박희섭은 자비와 연민으로, 또 구조주의자의 존재론으로 동양 정신에 대해 반문한다. 현대 사회에서 유입되는 정보량이 점점 더 빠르게 범람할수록, 천천히 되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 박희섭이 사용하는 자개는, 비록 그 생명을 끝내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세상에 존재한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영롱히 빛나는 세월의 빛을 머금었을 뿐 아니라 생장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해왔다. 작가는 특히 자개와 밀접한 환경에 둘러싸여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전통 자개 공방이 즐비한 동네에서 살며, 일상적으로 유리장에 진열된 자개 공예품을 볼 수 있었다. 길상문, 장생문, 수복문 등으로 영롱히 수놓인 자개는 유독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생존의 경험이 가장 먼저 자개에 입혀졌고, 그 후 '본 것'이 '말하는 것'에 선행하여 덧입혀졌다. 어린 아이는 우선 봄으로써 식별하고, 그 이후 말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러나 보는 것이 언어에 선행한다는 논리는 또 다른 의미를 품을 수 있다. 우리는 보는 것에 의해 자신이 둘러싸인 세계를 인식하고 언어를 통해 이 세계를 해석한다. 그러나 언어가 영원히 환원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즉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와 알고 있는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쉽게 확정 지을 수 없다. 이처럼 회화를 연구하며 습득한 전통적 언어의 방법은 작가에게는 그저 외적인 전달 방식이라 느껴졌다. 박희섭의 시선이 다시 '자개'로 돌아왔을 때, 드디어 그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생명 저편에 깊이 내재하는 기억은 마치 자신의 경험과도 같았다. 개인의 기억은 전달 과정에서 타자의 전기적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하지만 진실은 쉽게 증명할 수도 없고, 꼭 증명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삶 자체이다. 박희섭은 자개가 품은 생존의 기억과 성장의 경험을 통해 예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회귀했다.

박희섭_AFTER NATUR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글로스 바니쉬, 자개_70×70cm×2_2016

박희섭의 작업을 보며 '장인 정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작업 과정을 자아 수행의 한 부류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이 가져오는 최후의 깨달음이란 굳이 어떠한 수식어로써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담백한 것이다. 자개를 통해 찾아낸 심연의 필치, 이는 화선지에 처음 붓을 올렸을 때처럼 잊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나전으로 가공된 자개를 세심히 자르고, 화면에 붙이는 기법으로 천천히 '그려낸' 작품. 그는 지루할 만큼 나릿나릿 한 과정을 반복하며 처음 그가 붓을 잡았던 초심으로 돌아간다. 여러 번 쌓아 올리는 공필화처럼 신중하게 호흡조차 자중해야 하니, 큰 폭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가늠하기 힘든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이렇듯 화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떠한 설치 작품보다도 더욱 그 시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을 비우고, 하나의 생명체로써 물상의 에너지를 표현해낸다. 이는 수행의 의식이자 생명력을 전환하는 과정으로써, 생명의 일부분을 작품화할 뿐 아니라 자연의 위대한 에너지를 화면 위에 흐르는 '영생'으로 응고해내는 것이다. ● 박희섭 작품의 표면에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인내의 기다림으로 가득하다. 박희섭이 예사롭지 않은 냉정함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집요하게 찾아낸 것은 바로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그는 선택한 재료와 상징에 무위적인 평행 방식으로 스스로를 내면화했다. 작품 속 자개가 내뿜는 오색찬란한 빛, 기암괴석과 나무 같은 형상들이 잔잔하게 말을 건네온다. 그의 작품은 마치 또 다른 선언이듯, 현실의 각계각층에 모두 유효하다. 세간의 모든 것은 자연의 구성 법칙을 따르기 마련인데, 멀찍이 떨어진 사물들이 화합과 단결을 향하는 듯한 은유적 표현은 곧 우주의 공시성과도 상응한다. 조물주를 대신하여 작가가 만들어내는 영혼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영혼의 관계 속에서 절대 고립된 것이 아니다. 박희섭이 분리된 공간을 하나로 잇는 순간, 마치 하나의 활로 두 현을 함께 켜는 듯한 화음이 풍성하게 울려 퍼진다. ● 박희섭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과 예술의 관계를 새롭게 묘사하고 평가하며, 일상의 균형을 맞추어왔다. 작품이 응축하는 생명력은 그가 고집해온 생활 방식 자체이자, 육체가 환멸 하는 찰나의 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한 줄기 영원한 빛이다. ■ 천스 위엔

Vol.20161028d | 박희섭展 / PARKHEESEOP / 朴喜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