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Hour

정보영展 / JEONGBOYOUNG / 鄭寶英 / painting   2016_1027 ▶ 2016_1124 / 일요일 휴관

정보영_Looking through windows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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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102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미고 GALLERY MIGO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298번길 24 팔레드시즈 2층 Tel. +82.(0)51.731.3444 www.gallerymigo.co.kr

빛을 주무르는 화가 ● 건축, 조각, 회화는 조형예술 또는 3종 예술이라고 불린다. 이 가운데 건축과 조각은 빛의 지배를 받고, 회화는 빛을 지배한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화가 안티필로스는 꺼져가는 숯에 입김을 불어 불씨를 살려내는 소년을 그렸다고 한다. 이를 기록한 플리니우스의 서한집에 시각적 상상을 덧붙이자면, 안티필로스의 소년은 고대 모자이크에 흔히 등장하는 바람의 신들처럼 두 뺨을 잔뜩 부풀리고 불씨가 잦아드는 숯덩이에 입을 가까이 대고 입김을 뿜었을 것이다. 입김을 쏘인 불씨가 삽시간에 무르익는 순간, 소년의 얼굴도 덩달아 불기에 익어갔을 테고, 화가 안티필로스는 눈이 반짝거리는 소년의 밝은 얼굴을 시커먼 뒤통수와 대비시켜서 붓으로 그렸을 것이다. 흔히 모네의 「해뜨기 인상」을 자연이 구사하는 빛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한 최초의 인상주의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만약 안티필로스의 작품이 남아 있었더라면 미술의 역사를 바꾸어 썼어야 했을 것이다.

정보영_Looking through windows_캔버스에 유채_72.7×100cm_2016
정보영_Blue hour_캔버스에 유채_181.8×227cm_2016
정보영_Blue hour_캔버스에 유채_45.5×60.6cm_2016
정보영_Blue hour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6

정보영 작가는 빛을 가지고 논다. 공간을 짓고 시간을 멈추어 세운 채 빛을 제 맘대로 주무르며 감상자의 시선을 환영의 경계 안팎으로 밀고 당긴다. 창조주가 지은 하늘과 땅 대신에 작가가 조립한 벽과 바닥과 천장의 인위적 공간이 있다. 우리는 작가가 설계한 기하학적 구조 속에 유배된다. 일찍이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연옥과 천국을 자연으로, 지옥은 잘 설계된 도시의 형태로 상상했다. 신음과 비탄을 쏟아내는 영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 정보영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유리구는 제주도 해녀들이 사용했던 도구라고 한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가 처음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로마의 격언 '호모 불라'(Homo Bulla 인간은 물거품과 같은 존재)에서 물거품이 조형예술의 소재로는 비눗방울 그리고 유리구로 바뀌어 흔히 등장하는데, 여기서 둥근 구의 형태는 대개 알레고리와 상징의 의미차원에서 완전함, 영원, 무한, 운명, 기회, 변덕 등의 뜻으로 읽는다. 하나의 중심을 바라본다는 유일점을 향한 지향성과 예측불가의 방향으로 굴러간다는 점에서 그런 것 같다.

정보영_Disappearing_종이에 파스텔_46×63cm_2016
정보영_Lighting up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4
정보영_Vertical time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5

한편, 그림 속 창문은 그림 속의 그림, 안팎의 구분, 세상과의 소통, 빛의 형이상학적 메타포, 시각피라미드 이론에서 재현주체와 재현대상을 매개하는 종단면으로서의 회화 등으로 풀이된다. 그림 속의 사다리도 흥미롭다. 가령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 판화에도 해안 마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각형 석조 구조물에 사다리가 기대어 있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야곱의 사다리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마돈나의 계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굳이 여기서 의미를 붙이라면 잠든 인간들을 깨우기 위해 산 속에서 도시로 내려온 또는 바다의 심연 한복판에서 뭍으로 올라온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갖다 붙이고 싶다. ● 만능천재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빛의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바티칸 코덱스 가운데 무려 한 권 분량의 내용이 빛과 그림자 실험에 할애되어 있다. 일광과 월광의 차이, 광원이 하나 또는 여럿일 때, 빛의 직진을 간섭하는 장애물이 하나 또는 여럿일 때, 반사광이 하나 또는 여럿일 때, 사물이 뿌리는 그림자가 하나 또는 여럿일 때 등 무수한 상황의 조합을 직접 실험하고 스케치로 그리고 또 기록했다. 레오나르도에 따르면 빛이 투과해서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나뭇잎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관찰을 남긴 수기 기록에서 빛과 어둠을 이렇게 정의한다. "빛은 어둠의 부재이다." "어둠은 빛의 부재이다."

정보영_Lighting up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5

30년 전, 레오나르도의 두툼한 회화론을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러 숨이 턱 막혔던 기억이 난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종교와 윤리적 관점에서 빛을 찬미하고 어둠을 배척했다. 제단화가들은 빛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어둠을 배경의 조력자로 활용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에 이르러 빛과 어둠은 종교, 사상, 터부의 편견에서 벗어나 과학의 영역에 발을 딛는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제 2판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인간은 한때 창조주의 학급에서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가, 이제 드디어 창조주를 증언대에 세우고 심문하는 재판관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 근대의 탄생 또는 근대적 인간의 탄생은 빛과 어둠의 참된 본질을 정의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작가는 레오나르도에게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혹시 아나, 작가는 이미 그의 작품으로 레오나르도의 세계관을 현현하며 빚을 갚고 있는지. ■ 노성두

Vol.20161030i | 정보영展 / JEONGBOYOUNG / 鄭寶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