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free from yourself?

김승영展 / KIMSEUNGYOUNG / 金承永 / installation   2016_1030 ▶︎ 2017_0402 / 월요일,1월1일 휴관

김승영_Are You free from yourself?_네온, 나침반,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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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료 / 1,000원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1월1일 휴관

향촌문화관 HYANGCHO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중앙대로 449(향촌동 9-1번지) Tel. +82.53.661.2331 hyangchon.jung.daegu.kr

작품이 설치된 기획전시실 'Time Frame'은 우리 근대화 과정의 역사를 증언하는 보존 현장으로서, 이곳은 1912년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이었던 선남은행 시절부터 그 뒤 한국상업은행의 폐점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동안 귀중품과 현금을 보관하는 은행 금고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과거 향촌동의 추억과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은행 건물의 금고 전시실에서 설치미술가 김승영은 우리가 많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소중한 가치들을 새겨 넣은 금괴 벽돌을 설치,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표출되어, 종종 상대방과 소통이 되지 않아 갈등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의자에 앉아 상대방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어색하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불편함을 잠시 넘어섰을 때 말을 걸어볼 수 있는, 그럼으로써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Are you free from yourself?' 방향을 잡기위해 계속해서 움직이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행복의 길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색하는 인간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향촌문화관

김승영_감정의 괴_벽돌에 도색_248×397×24cm_2016

아무 것도 아니거나, 혹은 그 전부이거나 ● 언젠가부터 미술 작품이 여느 물건들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음에도 버젓이 전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 미술의 창의적인 일에 관여하는 작가나 큐레이터들은 새로운 임무를 떠 앉았다. 그것은 미술을 미술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가려내는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가장 빈번한 경우는 사람들에게 미술가로 불리는 누가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가져와서 미술 작품처럼 꾸며놓는 것을 솎아 내는 판정일거다. 일정한 수준에 못 미치는 미술가와 기획자들은 자신들이 벌여놓은 흉내 내기를 설치 예술이라고 자부하며 스스로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이런 자기기만은 가령 어떤 화가가 대상을 사실성 있게 묘사하는 것만을 진짜 미술이라고 보는 시각이나, 모니터와 영사기에 이미지만 비추면 미디어 아트인 줄 아는 것만큼이나 순진하다. ● 현대 미술가 김승영은 좀 다른 길을 택했다. 내가 볼 때 그 길에서는 소모적인 노동에 비하여 세속적으로 옅은 보상이 이루어 질 때가 많았다. 그가 자초한 길, 아무튼 지금 걷고 있는 길에는 세월이 흘러 이끼 낀 벽돌이 깔려 있다. 길옆으로는 꽃들이 인사를 건네고 있고, 수면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렁인다. 작가는 공간에 포개어진 시간을 돌이키며 기억에 남은 사람들 이름을 불러내고, 또 그들과 엮인 감상까지 되새긴다. 지금 내가 생각난 작품들만 이야기하니까 그렇다. 내가 직접 못 봤거나, 이야기 안 한 작품들까지 통틀어 볼 때, 그의 길은 '장소와 기억'에 관한 성찰로부터 시작되었다. ● 만약 관람자가 이 글을 전시가 벌어지는 향촌문화관에서 접한다면, 건물 바깥벽에 설치된 작가의 이전 작업을 함께 확인하는 기회를 운 좋게 얻은 셈이다. 붉은 벽돌이 쌓인 벽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이름이 드문드문 새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이름은 과거에 상업은행 건물로 쓰이던 이곳 향촌동 일대와, 더 나아가 대구 문화 예술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것이다. 작가는 거기에 본인의 사적인 기억을 겹쳐서 이방인이 바라보는 대구의 과거와 현재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한 이 작업은 매년마다 크기와 그 속에 담은 이름을 불려가며 역사적인 건물의 외부를 모두 덮어버릴 변증법적인 지점을 향하여 열려있다. 그리고 바로 이 곳, 특별한 공간. ● 김승영의 작품이 공개된 특별전시실은 예전에는 현금과 귀중품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다. 말하자면 커다란 금고였다. 작가는 이 금고 안에 예술 작품을, 그것도 보통사람들이 보기에는 과연 미술인지 아닌지 쉽게 분간할 수 없는 인스톨레이션을 펼쳐 놓았다. 사실, 분간이니 뭐니 하는 것도 의미 없다. 이곳을 찾는 관객들 중에 많은 수는 미술을 감상하러 온 게 아니라 대구 중구 도심재생프로젝트가 일궈놓은 갖가지 스펙터클을 체험하러 왔다. 시민들은 김승영의 설치 작업을 보면서, 앞서 이야기한 작가와 큐레이터들처럼 예술/비예술의 이중 코드를 구분해야 하는 숙제를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시가 더 흥미롭다. 한 작가 개인의 성취를 우연히 접한 대중의 반응은 어떨까? 작가는 그들로부터 돌아온 여러 반응을 다음에 어떤 식으로 피드백 할까? ● 우선,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 눈길이 먼저 닿는 곳은 창살 속에 잔뜩 쌓인 금괴 벽돌 작업이다. 작품 「감정의 괴」의 금박을 입힌 벽돌 위에는 건물 외벽에 진행한 작업처럼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단어와 문장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옮긴 것이다. 감정의 단어들은 철창 안에서 보호받고 있고, 달리 보면 격리되어 갇혀 있기도 하다. 이건 인간과 사회에 관한 탐구에서 적절한 상징이 될 수 있다. 막스 베버의 케케묵은 이해사회학부터 조지 허버트 미드의 상징적 상호작용론을 거쳐 최근의 감정사회학이란 표제로 연구되고 있는 일련의 학제 속에서도 현대인의 감정 억제는 사실로 밝혀졌다. 우리가 늘 움직이는 근육만 쓰듯이, 감정 또한 겉으로 드러나도 괜찮은 것들만 표출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느낌과 정서를 한 단어 속에 표준화시켜 넣은 것은 벽돌을 찍어 만들고 쓰는 일과 비슷하다. 작가는 자신의 갖가지 감정을 하나씩 불러내어 금괴 벽돌 속에 안착시킨다. 영원히 가슴 밑바닥에 숨어있었을 감정은 존재를 드러냈다. ●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가면 우리는 화려한 빛에 이끌려 또 다른 철창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Are you free from yourself?' 넌 너 스스로에게 자유롭냐? 음, 자유롭지 못하지. 금괴 벽돌에서 캐낸 우리의 감정을 다시 한 번 되묻는 네온사인으로 제작된 작품 「Are you free from yourself?」가 이곳에 있다. 이 설치 작품은 작가의 의도에 따르면 1층 금고 속에 있는 '행복'한 감정을 네온사인에 충만하게 담은 선언적 의미가 된다. 은행 서류를 보관하던 여기에 종이에 쓴 글 대신 전기를 쓰는 네온사인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네온사인도 이젠 지난 시대의 표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 일고 있는 복고(retro) 경향에 힘입어 젊은 감각의 기호로 다시 해석되고 있는 네온사인은 향촌동의 성쇠를 반영하는 시간의 되새김이기도 하다. 환락의 형식과 순수한 글귀 사이에 망설이는 그 시간은 갇혀 있다. 우리 옛 지식인들은 텍스트 가운데 중요한 단락을 서예를 통해 따로 독립된 전시 가치를 부여했지 않나. 이처럼 말뜻을 돋우고 따로 새기는 방법은 네온사인에도 통한다. 서예든 네온사인이든 그 뜻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분명한 편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처럼 비개인적인 의사소통은 누구 눈치를 볼 것 없이 말 자체의 울림을 격상시킨다. 철창 속에서 유배당한 채 고독한 말은 더욱 그렇다. ● 네온사인 아래의 나침반은 위에 있는 작업과 하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침반의 인스톨레이션은 다른 곳에서 벌어졌던 설치에서 아주 방대한 스케일로 보여주며 독립된 작업으로 보는 편이 낫다. 먼저 언급했던 '행복'조차 우리는 하나의 감정으로 묶기 힘든 가치가 아닌가. 행복을 찾아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이 여기에 담겨있다. 가장 넓은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건 두 개의 의자다. 검정색 돌이 바닥에 깔린 위에 빨간 의자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데, 의자에 꼭 앉아보길 권한다. 따뜻하다.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과의 머쓱함을 덮어버리는 따뜻함은 작가 김승영이 가지는 예술의 본질적 관심에 닿아있다. 이는 우리의 정서적인 면을 건드리지만, 더 나아가 굉장히 개념적인 예술이다. 미디어 아트는 예컨대 소리를 얹어서 공감각의 효과를 꾀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었고, 어떤 작업은 냄새를 뿌려놓은 시도까지 등장하는 게 요즘 설치 미술이다. 김승영 작가는 촉감의 한 가지인 온기를 끌어들였다. 따뜻함은 의자 사이에 텅 빈 공간에 다른 아무 것도 필요 없는, 오로지 현존하는 감정 표현의 촉매제다.

김승영_의자_의자에 전기장치, 돌판_가변크기_2016

좀처럼 관객의 눈에 띠지 않는 작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작가 김승영을 스스로 표상하는 데 있어서 공개된 모든 작품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하더라도 부당하지 않다. 막대기 작업이 그것이다. 「서다」는 긴 나무 둥치를 두 동강내어 기둥처럼 세운 게 전부다. 난 이게 0과 1의 조합으로 펼쳐지는 디지털 세계에 대한 저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일련의 영상 작업을 실행하면서 디지털 매체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쌓은 작가가 그런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은 적다. 내 말은 미디어 작가 김승영이 해온 작업의 핵심이 과거 회고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구시대적인 장치와 첨예한 예술적 자아가 결합한 이 작품은 사람들 관심의 중심에 결코 설 수 없을 것이다. 이 의도된 실패가 곧 현대 예술이다. 두 개의 탑은 다만 그 자체로 존재하며, 결코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작업, 예술이 아니라면 쓸모없음으로 곧장 이어질 기념비다. ● 작가가 의도한 미완성의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글 자체를 완결 짓고자하는 내 태도는 이율배반에 가깝다. 하지만 이 텍스트가 작가론이 아닌 하나의 특별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장소성을 염두에 둔다면 이야기는 분명해도 좋을 것 같다. 핵심은 미술과 미술이 아닌 다른 것들 사이의 경계를 가이드라인 없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작가의 고민이다. 예컨대 '유명 미술가 아무개의 초대전'이라고 조악하게 적은 현수막을 걸어둔 아래에서 이루어질 전시가 아니라면, 작가는 어떤 방법을 동원했을까? 결론처럼 쓰자면, 그것은 반짝이는 금빛, 아련한(blue) 그 자체인 블루, 따뜻한 기운, 뭐 그런 것들이다. 설치 미술은 어쩔 수 없이 지나온 작업의 축적된 과정을 밟아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기획자의 간섭, 관객의 낯설어 함, 비 상업성 등 설치미술가들을 둘러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서 끝내 한 탕(one take)을 보여주는 작가의 고집은 또 이렇게 실현되었다. ■ 윤규홍

Vol.20161031j | 김승영展 / KIMSEUNGYOUNG / 金承永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