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행술

The art of not landing展   2016_1117 ▶︎ 2016_1211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6_1117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영글_이미래_이제_정희승_양윤화+이준용

기획 / 조은비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계 프로그램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여성철학자, 서울시립대 HK 교수) 강연 2016_1126_토요일_04:00pm 협력 / 도서출판 들녘 신청 / goo.gl/Fsqsj8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케이크갤러리 Cake gallery 서울 중구 마장로3길 28(황학동 59번지) 솔로몬빌딩 6층 Tel. +82.2.2233.7317 www.cakegallery.kr

"언어는 의미가 놓일 수 있는 장소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언어의 힘, 언어의 적절성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향한 언어의 도달에 있다." (토니 모리슨, 1993) 말 많은 세상이다. 이제는 그 '말'로 세상을 다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말의 생산과 유포, 전파가 빠른 시대에 문장은 짧아지고, 단어는 '우물가(井)'를 맴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검색창에 '문장'을 써넣지 않는다. 조합된 문장보단 파편적인 단어가 더 많은 검색 결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웹서핑은 물음을 '키워드'로 환원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애초의 질문은 제쳐둔 채 검색 목록과 연관 검색어를 늘려가는 것이다. 뉴스를 덮는 뉴스와 타임라임을 밀어내는 타임라인이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새로운 단어를 쉼 없이 우리의 눈앞에 띄워보낸다. 그러므로 키워드가 지나간 트래픽의 수면 위에서 포말처럼 부서지는 건, 우리의 시간뿐만이 아니라 '물음' 그 자체이다.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는 대통령(?)의 단언은, 그의 말이 대개 그러하듯 번역하기 난감한 말이었다. 외신들은 이 발언 속 '대박'을 제각기 다르게 번역하기 시작했고, 결국 정부는 이를 '통일'시킬 말로 '보난자'란 그럴싸한 단어를 골라냈다. '보난자(bonanza)'는 미국 서부의 채굴꾼들이 '노다지'를 일컬을 때 사용하던 단어인데, 통일을 오로지 경제적 가치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발언의 의도와 노골적으로 상통한다. 이처럼 환원은 "사유를 통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성을 반복" 하는 정치적 레토릭이자 권력의 오랜 통치술이다. 보난자라는 명명(통일=대박=노다지)이 통일에 관한 여타 다양한 층위의 논의의 가능성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최근의 혐오 발언은 또 어떤가. 통치자는 통치 대상을 분류하고 '딱지'를 붙인다. 무슨 녀, 무슨 충과 같은 언어적 낙인,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몇 개의 '키워드'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환원이며 본질 실종이다. 이러한 언어적 규정과 환원의 순환 고리는 대상과 사건을 —환원, 편견, 혐오와 같은— 언어적 '손때'가 묻어 있는 하나의 '키워드'로 대체해 그 이면을 너무나도 쉽게 망각으로 이끈다. 이 전시는 이처럼 '키워드'가 대상의 표면에 완전히 들러붙기 전에, 이미지와 캡션이 서로 단단히 달라붙기 직전에, 그 사이로 침투하여 얇은 '막'(veil)을 치고자 한다. 마치, 일식(日蝕)을 육안으로 관찰하기 위해 필름으로 눈 앞을 가리듯이 말이다. 하늘과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이 불투명한 '막'은, 외려 흰 태양과 검은 달의 윤곽을 눈 앞에 드러낸다. 이는 무언가를 직시하기 위해 도리어 그 앞을 가려야만 하는 역설의 은유이자, 확신에 찬 단언 앞에서 다급히 외치는 '판단 중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전시는 상황과 인물, 사건 사이에 개입해 이야기의 유동성을 보존하고, 언어의 필연적인 실패에 '불확정성'으로 대꾸하고자 한다. 물론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팀)의 작품이 실제로 언어적 작용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업들은 '자극적인 말' 옆에서 침묵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물음은 즉답되지 않고, 행위는 일정 자세를 유지하고, 사물은 미완에 머무른다. 하나의 '언어'에 '안착(landing)'하지 않고 기표와 기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함으로써 말의 어리석음 또는 오류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규정되지 않는, 그럼으로 미지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불확정적인 것들은, 한 가지 해석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스스로 배태하고 있기에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 복행(復行)은 항공기가 착륙 직전에, 행로를 뒤집어 다시 날아오르는 조작을 의미한다. 이 전시에서는 안착하지 않고 우회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복행술'이란 조어를 만들었다.

복행술The art of not landing展_케이크갤러리_2016
정희승_'Untitled' from Tender Button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016

정희승은 사진 매체의 한계와 그 가능성을 특유의 조형성을 통해 탐구해왔다. 이 전시에서 선보이는 「부드러운 단추」 시리즈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1914년에 발표한 동명의 책에서 작품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 물건, 음식, 방이라는 세 가지 챕터로 구성된 이 짧은 에세이는 뚜렷한 주제나 내용을 포착하기 어려우나 언어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평범한 대상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습관적 방식을 새롭게 한다. 정희승 작가의 사진적 행위 역시, 사진 속 사물들이 기호의 익숙한 도식성에 반하고, 상투성에서 벗어나 모호하고 낯선 감각을 촉발시킨다. 이때, 작가 자신이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려는 그 '사이의 감각'을 포착하는 순간, 표면에 드러난 이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와 같은 그 '배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이로써 이미지는 기획된 의미 속에 사물을 고정해버리는 시선에 반하여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제_웃는 여자_캔버스에 유채_193.5×130cm_2010

이제는 그림 속 풍경과 인물에 내재한 풍부한 '정동'을 완결된 명사 혹은 형용사적 묘사가 아닌 '동사형'으로 그려낸다. 「더미」(2012)에서는 도시 개발 현장의 폐허 더미에서 생명을 잉태한 부푼 배를 상상하고, 임신한 여성의 초상 「웃는 여자」(2012)에서는 도상이 나타내는 생명, 희망, 기쁨과 같은 전형성을 내던지면서 그와 정반대로 심리적인 불안과 막막함을 서늘하게 표현한다. 이미지에 대한 익숙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 이면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작가에게, 세상의 모든 풍경은 양가적인 역설을 품고 있다. 신작 「공생 연구」(2016)는 작가가 처음 흙으로 빚어 만든 다양한 크기의 '알'에서 출발한다. 둥글게 부푼 '알'의 형태는 저마다의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숨구멍이자 '입'을 은유하며, 다양한 여성들의 숨소리이면서 발화의 (실현) 가능성을 내포한다. 세 작품 모두가 공통적으로 둥근 표면 안쪽에 '빈-공간'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이 동그란 것의 '비정형성'은 형태적인 유사함을 넘어 원형적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제의적인 성격을 띤다.

이미래_뼈가 있는 것의 케이크 갤러리 운동_철, 유토, 모터 장치 및 혼합매체_가변크기_2016

이미래는 작업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자재(시멘트, 각목 등)를 토대로 다양한 매체를 혼합해 물성의 조형적 변주를 실험해왔다. 특정 상황을 구성하고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은, 이 전시에서 키네틱 작업 「뼈가 있는 것의 운동」, 「뼈가 있는 것의 케이크 갤러리 운동」(2016)을 통해 주어진 공간적 조건에 개입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공산품에 가까운 철골 구조물 "뼈가 있는 것"에 '유토'를 입힌 작가의 형태적 관심은 '유사-의인화'(pseudo-anthropomorphic)를 지향한다. 이 작품은 풀리지 않는 무언가에 '살(피부)'을 입히고 물리적 운동감을 주어, (풀리지 않아) 답답한 감정적 상태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모습을 고안한 것이다. 이는 무슨 생각인지 짐작하기 어렵거나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단어, '띵'(thing)이 포괄하는, 어이없지만 그럼에도 갑작스레 단순화되는 순간을 직관적인 표현으로 은유한다.

김영글_해마 찾기_단채널 비디오_00:08:00_2016

김영글은 작업을 위한 개념적인 장치로 텍스트를 사용하면서 '미술가의 글쓰기'를 작품 전면에 내세워왔다. "해마가 사라졌다."는 작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해마 찾기」(2016)는 해마에 대한 반복적인 묘사를 통해 어느 순간 그것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여기서 '해마'는 인간의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관이면서 동시에 바다 생물 '해마'를 지시한다. 작가는 해마에 대한 상상적 묘사를 통해 그에 대한 실체적 규명을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대입해 그 존재감을 계속 변형시킨다. 내레이션과 다양한 스틸, 영상 이미지를 선택적으로 재배열해 이루어진 이 작품은 집단적 망각과 퇴행의 징후들을 우화적으로 드러내며, 오늘날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양윤화+이준용_무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울까?_두 권의 책_2016

양윤화+이준용은 (작품 제목이기도 한) "무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이메일을 교환해왔다. 그리고 서신의 마지막 문장에 달린 마침표를 도려내어, 이를 동그란 종이 조각으로 변환시켰다. 이 실루엣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시 이어지는 이 작업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각자의 오브제'를 감춰둔 채 상대의 실루엣을 자신의 오브제에 적용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때문에 '두 오브제'는 상대방의 실루엣과 기묘하게 어긋나고 닮아가는데, 작업 과정이 완전히 끝나면 처음의 마침표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 (전시장에서 비로소) 서로 확인하게 된다. 동일한 공간도 안팎으로 나뉠 수밖에 없듯 '불가능한 동일화'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타자의 위치에서 서로에게 파악 불가능한 '달의 뒷면'을 남겨두면서 추측과 상상, 상호교환의 과정을 거친다. ■ 조은비

Vol.20161118e | 복행술 The art of not land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