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방, 넓은 들 The small room, A wide land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亨珍 / painting   2016_1121 ▶︎ 2016_1130

박형진_계획에 없던 풀_장지에 먹, 채색_25.5×25.5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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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1122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아트팩토리 ART FACTORY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5(통의동 7-13번지) Tel. +82.2.736.1054 www.artfactory4u.com

바리케이트와 잡초, 그리고 녹조의 시대 - 바리케이트 너머의 풍경 ● 풀이 무성한 풍경 한가운데로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다. 무성한 잡초들 마냥 고인 물의 색도 푸르나, 불투명한 물은 도무지 내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수상한 푸른 물이다. 물 주변으로 퍼져나간 잡초는 삐죽삐죽한 모습으로 공간을 메운다. 세필로 그려진 얇은 잡초들 뒤로 기다란 벽 하나가 슬며시 드러난다. 바리케이트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작가는 창문 밖을 보다가, 길을 걷다가, 뉴스나 기사를 보다가도 수없이 이 질문을 마주했을 것이다. 최근 작업한 '푸른 물'(2016)은 스튜디오의 창밖으로 보이는 가벽 뒤로 가려진 풍경을 추적한 것이다. 행인의 시선을 가린 바리케이트 너머의 풍경은, 앞서 묘사하듯 잡초들이 가득한 모습이다. 그러한 한가운데 탁한 푸른색의 웅덩이가 비밀스레 자리 잡은 것은 수상스런 일이다. 벽 앞으로 튀어나온 물 호스는 무언가 이곳에 유입되거나 빠져나가고 있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가려진 장막 뒤로 잡초와 탁한 물이 정체를 알 수 없이 쌓여간다. 폐수와 잡초가 서로 기이하게 공존하는 이 풍경은, 2015년의 한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형진_주인있는 땅_송현동48-1_부분
박형진_푸른 물_디테일 컷_장지에 먹, 혼합재료_130×162cm_2016
박형진_주인있는 땅_송현동48-1_장지에 먹, 채색_145×136cm_2015

정면에 견고한 담장을 두고, 그 뒤로 커다란 땅덩어리가 펼쳐진다. 대지의 형태를 따라 기하학적으로 잘라진 이 공터 안으로 잡초들이 가득하다. 여기에는 건물이 없다. 건물터의 자취와 땅 중간에 사라진 길의 모습만이 옛 거주의 흔적을 내비친다. 이 작업은 과거 미국 대사관의 숙소였다가, 현재는 방치된 공터를 그린 '주인있는 땅_송현동48-1'(2015)이다. 이곳은 안국역 부근 큰 대로변에 있는 돌담장, 바로 바리케이트 너머의 풍경이다. 담장에 가려진 빈 땅을 '푸른 물'에서처럼 잡초가 장악했다. 높은 담장으로 인해 잠입할 수 없는 사람들 대신 잡초들이 터를 잡았다. 그것도 야생적으로 점유한 모습이다. 외부로부터 통제된 공터에 자연이 침입한 것이다. 방치된 자본의 영역을 점유한 잡초들의 생명력이 끈질기고 강하다. 자본의 모순으로 인해 빈 장소, 도심 한가운데서 장소의 기능을 상실한 비장소(non-place)에 야생의 잡초들이 범람한다. 도시로부터 추방된 자연, 즉 잡초는 야생의 생명력으로 자본의 틈새를 점유한다.

박형진_잘 가꾸어진 나무_장지에 먹, 채색_56×43cm_2015
박형진_화합의 광장_장지에 먹, 혼합재료_91×146cm_2016

땅이 아닌 땅 ● 땅은 더 이상 옛날의 자연이 아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자연을 끊임없이 지배하고 점유해 왔다. 빼곡한 도심 속 담장 너머의 공터는 건물보다도 자본가, 땅주인, 자본의 구조를 더 분명하게 지시한다. 방치된 빈 땅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 이를 유심히 관찰해 온 박형진의 작업에서는 자본의 통제와 자연의 야생성이 팽배하게 서로 맞선다. 세밀한 필치로 그려진 잡초들의 무성함은 반자본, 반통제, 반개발 등 자본에 맞서는 자연의 힘이다. 도시의 빈 장소뿐만 아니라 구축된 자연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여러 작품들에서 드러난다. 산의 나무들을 밀어내고 장묘를 구축한 '좁은방 넓은들'(2016)은 철저히 자본화된 장묘와 이로부터 파해 쳐진 자연 환경이 담긴다. 빼곡한 산은 장묘산업을 위한 넓은 들이며, 이곳에는 주검을 위한 좁은 방들이 줄줄이 배치된다. 여기서는 자연이 바리케이트의 도구로 사용된다. 산 속의 장묘는 지리적인 좌표가 없는 장소로, 도시 밖으로 밀려난 시체들을 위한 헤테로토피아이다. 자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을 파해지며 인간을 위한 환경, 이보다는 자본을 위한 환경을 끊임없이 재구축한다. 나무가 가득한 숲을 도려낸 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바리케이트로 하여, 비밀스런 자본의 거래를 이곳에서 실현한다. 얇은 선으로 가볍게 그려진 장묘는 진행 중인 욕망의 필치를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스윽스윽 기계적으로 반복된 그리기에는 환경을 점유하고, 자본을 증식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불온한 욕망이 담긴다.

박형진_무더위와 잡풀_모눈종이에 녹색펜_17.7×26cm_2016
박형진_현수막 다툼과 비둘기 아저씨_장지에 먹 채색_73×51cm, 45.5×53cm_2016

8cm 녹조 층의 두께 ● 인간의 욕망은 지형 곳곳을 전유하며, 도시, 산, 강 따질 것 없이 전체적인 생태권에 걸쳐 환경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한다. 박형진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녹조 드로잉_강은 다시 흘러야합니다'(2016)는 땅에 얽힌 자본의 모순과 욕망의 폐허를 강으로, 그리고 생태계로 확장시킨 작업이다. 스튜디오의 한 벽에 걸린 수십여 장의 드로잉에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오염된 강의 녹조가 '진행 중'인 풍경으로 담긴다. 여기서의 녹색은 자연의 초록이 아니다. 인간의 폭력적 난개발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에 등장한 혼탁하고 기괴한 녹색이다. 작가는 녹조로 몸살을 앓는 강을 방문해 강물을 플라스틱 물병에 수집하고, 이를 강의 지형도에 따라 분리하여 관찰해 오고 있다. 플라스틱 병에 응축된 녹색의 덩어리는 환경오염으로 생성된 이물질이다. 강물을 장악한 둔탁한 녹조 층은 수십여 장의 드로잉에서 각각 다른 장면으로 연구된다. 이 작업은 우리에게 일반화된 초록이라는 환경, 자연의 전통적 관념을 허물어트린다. '녹조드로잉'을 통한 작가의 '녹조 연구'는 동시대의 풍경을 그리기로 접근하는 '회화 연구'이자 '시대 연구'이다. 아크릴박스에 8cm 높이로 쌓인 드로잉은 작가가 기사에서 접한 8cm의 녹조 층을 은유한 것으로, 자연에 누적된 욕망의 기형적 현상을 대변한다. 파괴된 강물에 누적된 이물질의 두께마냥 얇은 트레팔지 모눈종이에 그려진 녹조 드로잉들이 한장 한장 쌓여 8cm를 이룬다. 이는 수많은 물고기와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은 죽음의 두께이기도 하다. 누적된 인간의 욕망은 실제의 자연을 우리의 환경으로부터 축출시키며, 점차적으로 환경을 괴물화시켜 나간다. 강은 산보다도 더하다. 주검조차 머무를 수 없는 강에는, 녹조의 두께만이 강을 점유하며 초록의 자연을 변이시켜 나간다.

박형진_녹조드로잉_강물은 다시 흘러야 합니다_모눈종이_각 21×29.7cm_2016
박형진_녹조드로잉_강물은 다시 흘러야 합니다_모눈종이_21×29.7cm_2016

기형의 시대를 성찰하는 그리기 ● 현대사회가 자연을 점유하는 과정과 욕망 사이의 모순, 부조리, 불협화음은 우리의 삶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상적 풍경이다. 작가는 도시 안에서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변형된 장소와 기형적 상황을 주시한다. 신문기사로 보도된 적이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사이 '화합의 광장'(2016)을 그린 작업은 그 부조리함의 실체를 드러낸다. 주민 간 화합을 강조하며 마련된 별모양의 광장은 아파트 분양가 문제로 인해 현재 두 동강이 난 상태이다. 작가가 그린 광장의 패턴은 절반만이 무수히 작은 알갱이로 바닥을 메워진다. 빼곡한 절반의 패턴과 비어진 절반의 패턴은 화합될 수 없는 사회, 주민들 사이의 이익분쟁을 드러낸다. 작업의 초기부터 작가는 모눈종이에 선을 긋듯 조밀하게 그리는 드로잉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다. "작은 것들이 모여 응집되다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의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그리기 방식은 자기 수행적인 그리기나 미적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치적인 태도와 맞닿는다. 무수한 작은 잡초들, 절반이 난 바닥의 패곡한 패턴, 그리고 강물을 덮은 녹조들의 빼곡함이 발언하는 것은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이다. 이와 관계해 하나의 작업 '현수막 다툼과 비둘기 아저씨'(2016)는 다소 의미심장하다. 입속에 있는 뻥튀기 과자를 내뿜은 한 남성에게 몰려든 비둘기 때는 완전히 통제될 수 없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생관계를 드러낸다. 흩뿌려진 과자 파편들은 변질된 세상을 향해 내뱉은 한 개인의 광기를 연상시킨다. 박형진의 그리기는 이렇듯 인간과 환경 사이에서의 부조리와 모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발언해야하는 이질화된 영역이 담긴다. 그의 풍경화가 오늘날의 '시대 연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형의 시대를 성찰하는 그리기로부터, 작가가 내뿜을 다음의 풍경들을 기대해 본다. ■ 심소미

Vol.20161121g | 박형진展 / PARKHYUNGJIN / 朴亨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