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숨 날숨 Breathe in Breathe out

권영석展 / KWONYOUNGSUK / 權寧奭 / painting   2016_1123 ▶︎ 2016_1128

권영석_Marching on green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4

초대일시 / 2016_1123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인사아트센터 GANA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권영석 회화의 '들숨 날숨' ● 화가 권영석이 첫 개인전을 연다. 그는 40대에 그림을 시작한 늦깎이 신인이다. 사연이 있다. 원래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오랫동안 의류 사업에 몸을 담았다가, 그림으로 '전향'한 것이다. 오늘날 시각예술 전반에 걸쳐 장르 파괴 현상이 널리 퍼져 있다. 컨템포러리 아트신에서는 건축, 디자인, 음악, 패션, 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 등을 다양하게 넘나드는(cross over) 학제적 영역횡단적 활동이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권영석이 자신의 조형 분과를 바꾼 일이 결코 일탈로 보이지 않는다. 패션이란 옷과 장신구에 관한 디자인 및 미학의 응용 분야. 실용성을 전제로 삼지만, 기본적으로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처럼 심미적 가치를 구현하는 시각 예술의 종(種)이 아닌가. 권영석은 바로 이 패션의 체험을 조형의 자산으로 삼으면서도, 디자인 너머의 조형 세계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일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첫 무대를 올린 것이다.

권영석_Patterns 2016-B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6
권영석_Blue flowers-A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4

권영석이 첫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품은 추상이다. 색면 추상, 서정적 추상, 서체적 추상, 액션 페인팅 등 폭넓게 추상표현주의로 아우를 수 있는 여러 조형의 유전인자들이 섞여 있다. 서구적 조형 어법에 견준다면, 20세기를 장식했던 미술사적 유산들과 가족유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좋다. 권영석은 이 추상의 세계를 자신의 회화 이력의 첫걸음부터 끌어들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학도들의 조형 과정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진화하는데, 이 점에서 권영석은 대단히 예외적인 출발을 보이고 있다.

권영석_Fade out F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5

권영석은 2013년에 사각의 색 면을 기본 단위로 화면을 구성한 일련의 추상을 제작했다. 일정한 크기의 구성인자들을 반복 연속 나열하는가 하면, 사각의 단위를 크기에 따라 해체, 집중, 교차, 구축하는 작품이다. 패션디자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원단의 문양 혹은 무늬에 대한 감각, 이른바 패턴(pattern)의 조형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삶의 이력은 어쩔 수 없이 화면에서도 꿈틀거린다. 돌이켜 보면, 권영석은 일찍이 대학의 패션 디자인 전공 시절부터 데 스틸, 아르 데코, 구성주의, 바우하우스에 이르는 1920, 30년대 유럽 모더니즘의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 감각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권영석_Red bull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6

그런데,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권영석은 바로 이 디자인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또 다른 조형을 회화 작품에서 찾아 나섰다. 결국, 디자인의 감성에서 벗어나는 일, 디자인의 감성을 뛰어넘는 일이 권영석 회화의 일차적인 지표였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디자인의 감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쉽게 말하면 '회화적인 것(painterly)'의 대극에 있다. 미술사에서는 붓 터치가 일렁이는, 뜨거운 감성이 실려 있는 작풍을 '회화적'으로, 윤곽선이 명확하고 마티에르마저 매끈한, 차가운 이지적 성격의 작풍을 '선적(linear)'이라고 부른다.(하인리히 뵐플린,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이 개념을 자신의 이론이 끌어들인 바 있다.) 이러한 이분법에서 보면 디자인은 확실히 '선적'인 특성에 가깝다.

권영석_United 2016-B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16

권영석의 발걸음은 곧바로 '회화적'인 작품으로 이행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는 서정성이 강한 추상, 색채와 마티에르를 보다 중시하는 전면 균질(all-over)의 추상으로 작품을 펼쳐 나간다. '구성'에 치중했던 초기 작품은 이제 색채 뉘앙스 분위기, 일종의 숭고(sublime)에 방점을 두는 작품으로 바뀐다. 땅이나 하늘 혹은 석양 같은 풍경, 은하수 같은 우주, 이름 모를 행성의 지표, 기시감(旣視感, deja-vu)처럼 불쑥 떠오르는 어떤 자연의 흔적을 떠올리는 작품이다. 화가 스스로도 그림을 통해 '마음의 정화(catharsis)'를 이룩했다고 고백하듯이, 깊은 내면에서 감성의 촉수가 끓어올라온 작품이기도 하다.

권영석_Going back 2016-A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6

권영석의 최근작은 붓 터치가 살아있는 '표현적인' 작품이 많다. 이전 작품이 잔잔한 감성의 이미지에 호소했다면, 최근작은 화가의 거친 호흡, 신체 리듬이 보다 강조된다. 그리는 행위, 이른바 손의 복권이야말로 '회화적' 작풍의 필수 요건이다. 이 부류의 작품은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의 작품 군은 큰 붓 터치로 글씨를 쓰듯이 과감한 속사(速寫)로 제작한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대단히 짧지만, 한 번 미끄러지는 붓의 궤적으로 작품이 결판나는 만큼 에너지를 총력 집중해야 하는 작품이다. 권영석은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검도(劍道)를 수련하듯이 화면과 맞붙는다. 붓은 죽도(竹刀)처럼 민첩하게 화면을 찌른다. 붓은 바람을 일으키고, 붓은 구름을 띄우고, 붓은 폭포를 세운다. 또 하나의 작품 군은 짧은 선으로 낙서하듯이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이다. 탈방향의 선들의 교집합, 그 페티시적 반복 행위는 미궁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중심을 결여한 구도, 이 혼돈속의 질서(chaosmos)의 틈새에서 삐져나오는 저 꿈틀대는 미세한 뉘앙스가 매력이다.

권영석_Dancing in blues B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5

사실, 이 두 부류의 작품은 정반대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호흡의 강약, 감정의 온도, 시간의 장단이 서로 다른 그림이다. 그럼에도 권영석은 이 극단의 성격 양쪽 모두를 오가는 그림 세계의 긴장을 즐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에지(edge)를 좋아한다." 한가운데서 가장 먼 모서리는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그 모서리를 즐기는 일이야말로 '삐딱이 근성'이라 하지 아닐 수 없다. 그 모서리에는 외줄을 타는 곡예 같은 짜릿함이 살아 있다. 위험하지만 동시에 모험과 도전이라는 실로 가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이 서식하는...

권영석_In & out 2016-A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16

권영석은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들숨 날숨(Breathe in Breathe out)'으로 내걸었다. 산소를 들이마시고(들숨),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날숨) 에너지 작용, 이것을 '호흡'이라 일컫는다. 호흡이란 생명 현상 그 자체다. 그리고 보면, 그가 꽃이란 소재를 줄기차게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이 호흡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이 결국 호흡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는가. 호흡이란 사상(事象)의 질서다. 권영석은 이 질서를 자신이 일상과 호흡을 맞춰 가는 일, 그 긍정적인 삶의 힘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화가에게 호흡이란 그림을 통한 정신적인 치유(healing)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나아가 그 호흡의 의미를 확대하자면, 사람끼리의 소통이나 사회적 소통 등 더 큰 이야기로도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

권영석_Coexist B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5

이제, 권영석에게 그림은 확실히 그가 좋아하는 '에지'의 삶, 들숨과 날숨을 구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화가의 내면적 충동, 앙양, 긴장 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근원적인 인간의 감정, 삶의 감춰진 의미... 그리하여 화가 권영석의 그림은 오늘도 들숨과 날숨을 쉼 없이 쉬고 있다. "근육이 편안해 보이면서도 스타일리쉬한 포즈의 모델!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화가 권영석이 건강한 호흡으로 그려낼 내일의 그림 세계가 자못 기대된다. ■ 김복기

Vol.20161123c | 권영석展 / KWONYOUNGSUK / 權寧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