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Paradise(두개의 낙원)

최영展 / CHOIYOUNG / 崔榮 / photography   2016_1214 ▶ 2016_1220

최영_일차가공 #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최영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6_1214_수요일_06:00pm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순수사진전공 석사학위청구展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 라메르 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26(인사동 194번지) 라메르빌딩 1층 Tel. +82.(0)2.730.5454 www.gallerylamer.com

최 영의 『두 개의 낙원』은 테마파크를 촬영한 사진을 '일차 가공 이미지'와 '이차 가공 이미지'로 나누었다. 이미지는 그것이 그림이든, 사진이든, 상상력이든 간에 모두 인위적인 것으로 '가공'이란 말을 덧붙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그러나 작가가 '이미지'란 단어 앞에 특별히'가공'이란 말을 결합시킨 것은 작업의 내용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그는 현대사회가 테마파크의 환상처럼 자신을 망각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가공된 이미지에 불가하다는 것을 두 개의 낙원을 대비시켜 효과적으로 설득한다. 먼저 '일차 가공 이미지'인 테마파크 장면은 모든 것이 정지된 모습으로 낯설다. 반면 '이차 가공 이미지'는 마치 평면그림 같다. 두 이미지는 모두 비현실적이고 모호하다. 만약 이 작업을 따로 때어놓고 보면 각각 상투적인 사회비판 의식과 나르시스 감정에 호소하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이 두 개의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상호배치효과로 그 위험성에서 벗어났다. 두 개의 유토피아를 이질적으로 비교분석하도록 제시한 설정방식이 곧 작품의 충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영_일차가공 #4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최영_일차가공 #1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테마파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간이 현실에 건설한 낙원처럼 현대사회가 만든 유희공간이다. 유토피아의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그것은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여기서 이미지와 실체의 차이는 현실공간의 존재 유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이미지의 세계는 현실에 없는 가공된 인위적인 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하며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가공된 이미지의 환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이 만든 디스토피아의 운명을 타고났다.

최영_일차가공 #14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최영_일차가공 #17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우리는 이미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이미지는 언제나 여기에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제다. 이미지는 단지 환상과 환영만을 주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지의 긍정적 힘은 인간이 잃어버린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만든 문화적 대상물과 모든 문명의 건설에 있다. 문제는 바로 인간의 욕망이 구축한 그 문화적 대상물이 애초에 꿈꾸었던 그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로 변질되었을 때에 있다. 최 영이 테마파크를 왜'일차 가공된 이미지'로 부르고 있는지 이제 자명하다. 테마파크는 다름 아닌 실현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현실공간에 건설하면서 잉태한 디스토피아이기 때문에'가공 이미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영_이차가공 #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최영_이차가공 #4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그렇다면 '이차 가공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는 테마파크장소에서 유토피아로 위장된 환상의 실체인 디스토피아를 보았다. 동시에 그 곳에서 환상에 저항하여 실제로 현실화된 자신만의 유토피아 공간을 찾았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행위가 수반된 자신 만이 꿈꾸는 공간이다. 미셀 푸코는 이를 유토피아에 맞서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라고 부른다. 이 공간은 실제 장소를 갖고 있지 않는 본질적으로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와는 다르게 실제로 현실화된 장소들이다. 그것은 공동체 사회에서 유토피아로 착각하는 획일화된 장소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으로 찾아낸 현실 안에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다. 이것은 자신만이 느끼는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편안하고 행복했던 근원적인 낙원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헤테로토피아 공간은 누구와도 공유될 수 없는 개인적인 특수성을 갖는다.

최영_이차가공 #9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75cm_2016
최영_이차가공 #10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75cm_2016

최 영이 '이차 가공 이미지'라 부르는 사진들은 모두 '일차 가공 이미지'인 지옥 (테마파크 장소)에서 탈출해서 만든 낙원공간이다. 그 결과 사진 이미지는 마치 구체적인 테마파크 장소성은 사라지고 환상적인 '색면추상' 공간이 되었다. 그가 '이차 가공 이미지'라 부르게 된 것도 이해가 된다. 헤테로토피아 공간은 유토피아가 실현된 것이 아니라, 개인이 현실에서 되찾은 잃어버린 낙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또한 '가공 이미지'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만이 현실 속에서 되찾은 낙원은 이 사회가 디스토피아인줄 모르고 건설하려는 그 모든 유토피아적 환상에서 깨어나도록 경고한다. 최 영이 찾아낸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 공간인'이차 가공 이미지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 이영욱

최영_이차가공 #20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75cm_2013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마파크에서 일상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아낌없이 즐긴다. 여기에는 비일상적인 유토피아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테마파크 기획자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받은 인상은 획일화된 요란스러움으로 단장된 디스토피아의 모습이었다. 이 작업의 첫 부분에서는 유토피아를 추구하면서 시뮬라크르로 존재하는 테마파크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 이후 나는 복제물로 구성된 테마파크의 공간을 거닐면서 원본이 부재하여 만들어진 마음 속 공허를 보았다. 내가 테마파크에서 디스토피아의 느낌을 갖게 된 이유도 원본이 사라져버린 장소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 속에 간직되어있는 낙원의 모습을 테마파크 안에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나의 마음 속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낙원의 모습은 누군가로부터 든든하게 보호받아 평화롭고 포근했던 어머니의 자궁 속과 같은 무엇이다. 이 작업의 두 번째 부분에서 나는 테마파크에서 흔히 발견되는 파스텔 톤의 색채를 매개체로 삼아 그러한 공간을 표현해보기로 하였다. 이러한 나의 행동은 낙원의 모습을 획일적으로 제시한 테마파크의 풍경 속에서 내 자신만의 낙원을 찾아 헤매었던 몸부림이었다. 즉 1차 가공된 낙원을 내 나름의 시각대로 2차적으로 다시 가공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 아마도 다른 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낙원의 모습은 나와 다를 것이기에 내가 제시한 이미지가 어째서 낙원인지 의아해하고 의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낙원의 모습을 대체한 테마파크의 모습도 무조건 낙원이라 받아들이지 말고 각자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원본의 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 마음속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낙원의 이미지는 어쨌든 테마파크와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을 테니 말이다. ■ 최영

Vol.20161215h | 최영展 / CHOIYOUNG / 崔榮 / photography

@ 우민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