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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릴레이전展 & 오픈스튜디오 The 8th Artists-in-Residence of Yeongcheon Art Studio Relay Exhibition & Open Studio Part1-허지안_노기훈展 / 2016_1208 ▶ 2016_1212 Part2-정혜민_김수진展 / 2016_1214 ▶ 2016_1218 Part3-최경진_김교진展 / 2016_1220 ▶ 2016_1224 Part4-조미향_송미진展 / 2016_1228 ▶ 2017_0101
관람시간 / 10:00am~06:00pm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YEONGCHEON ART STUDIO 경북 영천시 왕평길 38(교촌동 298-9번지) Tel. +82.(0)54.330.6062 bbmisulmaeul.yc.go.kr
□ 최경진展 / 틈, 얼룩, 그런 풍경들 cracks, stains, such landscapes 남겨지거나 버려진 것에 대한 사유 ● 텅 빈 공터, 공사장 구석에 있는 다양한 물건들, 바람에 굴러다니는 종이조각, 골목길 구석에 버려진 우산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스치듯 마주하는 풍경들이다. 최경진 작가는 이런 풍경을 자신의 작품에 담는다. 대개 이러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은 우리에게 감성적 미학을 전달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쇠락하고 어둡고 오래된 낡은 이미지는 낭만적이지는 않다. 그 이미지들은 후미지고 으슥하여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은 공간에 덩그러니 있는 사물들이다. 짐작하건대, 그 사물들은 오랜 시간 버려진 채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로 보인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퇴락한 이미지에서 보이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이나 감성적 미학과 거리가 멀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들의 이미지는 우리가 꺼리거나 싫어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의 작품은 우리의 감성에 스며들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자극한다. 그 자극은 불편하다. 그것은 마치 일상의 작은 틈 사이에 파고드는 공포 같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쓸모를 다하고 버려지거나 잊혀져 아무도 찾지 않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일상의 틈을 조금씩 조금씩 파고 들고 있는 것 같다.
최경진은 이 틈을 주목한다. "현금인출기 위에 무심히 놓여 있는 목장갑, 나무 자재 위에 가지런히 모아진 운동화 한 켤레, 가로등을 마주하고 있는 수풀 속 나무 한 그루, 비어있는 듯한 컨테이너 박스와 이제는 유휴지가 된 듯한 논가의 공중화장실 등, 어디에나 있는 사람의 흔적이기도, 우연히 그렇게 공존하고 있는 자연 풍경이기도 하다. 나는 그러한 풍경에 주목한다." (최경진, 작업노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지친 하루를 쉴 때, 그녀는 사진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그 고요한 시간에 드러나는 삶의 본질을 온전히 담으려 한다. 버려진 사물이나 모두가 떠난 일터의 흔적은 고스란히 사진이나 영상에 담기거나 드로잉이나 회화로 그려진다. 그 이미지들은 쓰레기더미일 때도 있고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풍경 아래에 놓여진 사람들의 흔적일 때도 있다. 그냥 그저 그런 우리의 일상 풍경일 때도 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그런 풍경에서 그녀는 사람의 흔적을 읽고 삶을 생각한다. 대단하지 않은 그 풍경은 누군가에게 간절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버려진 것들은 누군가의 생계가 되기도 하고 남겨진 것들은 다음날 다시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노동과 함께 했던 장갑, 운동화는 그 공간에 존재했던 사람의 흔적인 동시에 생활이자 삶의 일부이다. 그 존재적 가치가 지금은 상실되었더라도 그 사물들은 공간, 사람, 시간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그 사물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서 실존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버려지거나 남겨진 사물들의 존재에 물음을 던진다. 과연 그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우리의 일상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이 물음과 함께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물음의 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삶의 지평이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그녀의 작품 안 이미지는 흔들리고 불안하다. 또한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 그것은 그녀의 작품에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우리의 삶이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녀 자신도 담겨 있다. 20대의 불안한 청춘, 전공과 다른 길의 선택(최경진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경제적 불평등, 비틀거리는 우리 사회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다양한 변수는 오늘의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불안과 겹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얽혀 그녀의 작품에 녹아있다.
탐욕과 화려함으로 치장한 도시의 한 켠에,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한 켠에, 고요한 자연의 한 켠에도 그녀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존재한다. 쓰레기 같은 그 이미지들은 불쑥 불쑥 우리의 시선에 들어온다. 마치 그 이미지가 우리의 모습인 것처럼 우리의 틈에 파고 든다. 최경진의 작품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그렇게 들어온다. ■ 서희주
□ 김교진展 / 1937 여학생 일기 역사의 가정(假定)은 상상력인가?-김교진 개인전에 부쳐 ● 당연한 말이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는 것. 역사는 기본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일이기에 물리적 시간의 흐름이 완결된 후에는 수정이 불가하다. 수정의 욕망은 SF 영화의 주된 소재일 뿐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와 같은 수정의 욕망을 품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붓질 한 번의 행위, 힘있게 내어 찍는 깎기, 사진기 셔터를 한 번 누르는 행위 등 모든 '미술적' 행위는 행위와 동시에 과거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을 '관람'하는 것은 '과거'의 영감(靈感)과의 조우일지 모른다. 관람은 그 수정의 욕망을 확인하는 행위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김교진이 영천 예술창작센터 입주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해 내놓은 작업은 확실하고 객관적인 '과거'라는 역사를 소재를 현재의 시선으로 해석한 내용을 담고있다.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묻다』(한철호 외 지음,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3)의 공동필자로 참여한 오타 오사무는 이에 수록된 「중일전쟁 시기-대구 조선인 여학생의 학교생활-K양의 일기에서」라는 논문을 통해 『여학생일기』에 기록된 K양의 행적을 분석했다. 일제 치하 학교에서 일괄 구입된 『여학생일기』는 일기를 기록하는 지침을 일갈하는 내용과 함께 그의 식민통치 하 국민의 행동양식을 강제하는 내용을 당연히 포함하고 있다. 공백에 쓰인 일기는 일본어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당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여성의 수가 한정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일기의 필자는 나름 유복한 생활을 영위한 엘리트 계층이라 평가받았다고 추정된다.
작가는 이렇게 획득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여성의 학교생활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우선 일기에서 지정한 장소를 방문했다. 대구역, 그리고 학교 등교시간과 당시 생활권에 대한 기술을 바탕으로 K양의 집을 특정했다. 또한 K양의 행적도 추정했다. 이 과정은 한 인물의 탄생을 일궈내는 '조용한' 과정이었다. 여기서 '조용한'이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는 작가의 집요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집요함은 감정을 최대한 이입하지 않으려는 인내(忍耐)어린 것이다. 그래서 일기를 기록했던 실재의 인물은 작가가 객관적 시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재가공된 다른 인물이다. 실재했으나 허구의 인물이 되어버린 픽션, 이른바 팩션(faction)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 가공의 인물은 전시를 통해 보이듯 작가가 특정한 공간의 사진, 목탄 회화, 설치 그리고 텍스트로 탄생한다. 사진은 작가가 특정한 대구의 특정 지점이며, 목탄화는 '그림일기'처럼 텍스트가 주는 정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텍스트는 어떻게 보면 이 요소들을 이용한 '연극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의 집합체가 바로 주인공, K양이다.
이러한 작업은 어느 날 느닷없는 작가의 태도와 표현방법, 주제선택의 급진적 변화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단서는 그의 옛 작업을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작가는 아주 건조한 일상의 단면을 그 어떤 감정의 온도감 없이 바라보는 인내를 발휘했다. 「한진아파트」(2013), 「성대입구사거리」(2013), 그리고 「공무원 성인의 T셔츠」(2015)는 '의식없는 바라봄'의 개념을 드러낸다. 이러한 행위를 스스로 '명상(冥想)'이라고 밝혔듯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가장 건조하게 이미지화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바로 이런 과정의 현재까지의 결정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관람객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과연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선생'으로 상징되고 매개되어 표출되는 일제 치하 굴욕적인 검열에 대한 수치심? 관음증적 시선으로 구체화되는 제국주의의 변태적 폭거행위에 대한 고발? 그 고난의 시절에도 존재했던 소녀의 낭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작가의 발언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을 너무 특정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작업을 꽤 오래 구상했고, 지속할 것이지만 아직 온전한 맥락화에는 도달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김교진은 지금 역사를 가정하고 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역사의 맥락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잠시 지켜볼 요량이다. 그 흐름이 생성되면 밤을 새워 이야기 나눠볼 생각이다. ■ 황석권
Vol.20161220a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릴레이展 & 오픈스튜디오 Part3-최경진_김교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