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양생 下部養生

강현아_김도희_김현주_홍이현숙_김민지+전명은展   2017_0106 ▶ 2017_0120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7_0106_금요일_04:00pm

협력 / 성북문화재단 www.sbculture.or.kr

관람시간 / 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미인도 서울 성북구 동선동 3가 22-6번지 미아리고개 하부공간

1966년 건설된 성북구 미아리 고개 고가도로에는 빠른 차들이 쉴 틈 없이 오간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도시의 흔한 풍경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한국전쟁과 해결되지 않은 근대화의 상처가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아리 눈물고개'라는 익숙한 구절처럼 말이다. 본 전시가 열리는 미인도(미아리 하부공간)는 고가도로의 시작점 바로 아래, 콘크리트 고가도로와 등이 붙은 듯 동시에 태어났지만 죽은 공간에 다름없던 하부에 간단한 벽을 세워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머리 위 천정을 달리는 자동차의 미세한 진동, 콘크리트 벽 곳곳에 뼈마디처럼 드러난 철근, 누수자국에 달라붙어 종유석처럼 자라는 석회물질을 탐지하자면, 이곳은 도시의 하부를 제 등으로 받치고 웅크린 거대한 생물의 검은 아가리 같다. ● 강현아와 홍이현숙은 하부공간을 생체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강현아는 건축술의 하나인 콘크리트 양생법을 양육과 생육의 관점에서 공부하고 그 흔적을 남겼다. 물질을 다루는 기술임에도 생장술을 연상시키는 전문용어와 작가의 손을 거친 콘크리트 양생은 하부공간에 피가 돌 듯 온기를 불어넣는다. 홍이현숙은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몸 되기의 기술로서 사자후를 해석하고 수행적 양생술로 사용했다. 작가의 ~되기는 다른 신경과 감각을 몸 속에서 빚어내어 현실을 새롭게 하려는 애씀일 것이다. 김도희 역시 이 곳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다차원을 꿰어 맬 수 있는 초월적 공간으로 상정했다. 재건축 현장에서 주워 온 동강난 단풍나무에 동절기 보온용 짚옷을 입혀 거꾸로 세워두니 스스로 부활해 면류관 같은 뿌리 휘날리며 걷는 목신이 되었다. 또한 전명은은 그래픽 디자이너 김민지, 중도실명한 시각장애 노인들과 함께 '금곡의 기억'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라져 가는 이미지에 빛을 비추듯 상기하여 기록한 결과물을 보자면, 거대한 무의식에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같은 기억의 편린들이 시어들처럼 조잘거린다. 그렇다면 달로현주는 완전히 끊어진 것 같은 연결고리를 다시 잡아매려는 주술을 걸고 있는 것일까? 인물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빈 집에서 주워 모은 잡동사니에 말을 걸다보면 잊힌 기억들이 곧 방언을 쏟아낼 것도 같다. 이때의 하부공간은 신호나 호명을 기다리는 예민한 진공관이라 할 것이다. ● 6인의 작가들은 미인도를 상징적 하부공간을 드러내는 하나의 매체로 보았고 그 물리적 조건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 하부공간이 지닌 시공의 흔적과 공간의 맥락을 발견하고 더듬어 저마다의 양생법을 펼친다. ■ 하부양생

강현아_Con'c 양생육(養生育)_콘크리트, 양생포, 모판, 복합매체_190×720×220cm_2017
강현아_Con'c 양생육(養生育)_콘크리트, 양생포, 모판, 복합매체_190×720×220cm_2017

강현아 ● 콘크리트를 굳은 무표정의 감각 없는 재료라 오인했던 것으로부터 관계는 시작된다. 재료에 대해 알아가던 중 콘크리트 타설 후 얼마간 보호받는 시기에 관한 시공법이 내게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 양생(養生)이라고 하는데, 한의학에서는 보다 더 자생적 의미로 몸을 다스리는 예방의학의 한 방법으로 같은 용어를 쓰고 있다. 작업자들은 위태롭고 연약한 콘크리트를 보살피기 위해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방법들을 적용한다. 이 시기를 잘 통과하면 콘크리트는 양생 이후 고강도의 삶으로 살아 갈 수 있게 된다. ● 양생과정에서 쓰이는 용어들과 민감한 콘크리트의 화학 반응들은 흡사 유기체적으로 해석되어지며 작물의 생육(生育)을 연상케 한다. 양생(養生), 양육(養育), 생육(生育)이 맴도는 가운데 이 작업은 콘크리트 재료의 물성을 재인식해보는 과정이며, 메모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구현해보는 시도이다. * Con'c는 건축/건설/토목 용어에서 Concrete의 줄임말로 사용됨. ■ 강현아

홍이현숙_사자자세_단채널 영상_00:01:03_2016

홍이현숙 ● 이 작업은 만물의 모양과 습성과 그 주위를 눈을 확장시켜 꼼꼼히 관찰하고, 그것이 있는 장소를 상상하고 나의 몸으로 받아들여 나의 신체를 움직이는, 속도와 강도, 감응을 바꾸어, 이제까지 해왔던 작업의 관성을 넘어 또 다른 작업을 하려는 시도이다. ● 나는 몇 년전부터 동네에서 요가를 하고 있는데, 사자자세를 배운지는 얼마 안된다. 내가 알기로 요가에서 자세(asana;메뚜기 자세, 코브라자세, 원숭이 자세, 송장자세 등)는 아주 중요한 테제인데, 어떤 자세를 통해 나 이외의 다른 그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자자세는 요가에서 소리를 내는 거의 유일한 자세다. 입에서 항문까지 관통하는 통로를 하나의 튜브로 만들어 최대한 큰 소리로 사자의 포효를 연습한다. 몸을 하나의 관악기로 사용한다. ●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라는 테두리를 인간에서 다른 동물, 식물 균류, 나아가서 어떤 물질들로 확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種간의 경계를 넘나드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具體)와 수행(修行)성의 탐구', 즉 일종의 '신체 양생'으로도 볼 수 있겠다. ■ 홍이현숙

김도희_부활 나무_나무, 짚단_260×190cm_2016

김도희 ● "이 곳에서 죽은 것도 산 것이오, 멈춘 것도 움직이는 것이라오, 나무는 뿌리로 하늘을 이고 가지로 땅을 걷고 있소." 집장사에게 헐값으로 넘어간 뒷집의 철거 공사가 시작되었다. 다음날 아침이면 40년가량 된 단풍나무가 하루아침에 동강나 폐기된다고 하였다. 그날 밤 나무를 데려왔다. 동강난 나무를 역순으로 이어 붙여 거꾸로 세웠다. 그리고 잠복소(보온용 짚단)를 감아 주었다. '상부공간' 이 납작한 이미지로 축소된 개체들의 세계라면, '하부공간'은 다차원적인 우주의 역학과 구조가 숨쉬고 있는 풍요로운 세계일 것이다. 사람은 머리가 땅을 향한 채 거꾸로 태어난다. 다리 밑의 탄생에 관한 은유처럼, 미아리 고가 아래가 새로운 탄생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나와 나무, 생과 사, 움직임과 멈춤이라는 개체적 '점'들이 부활나무를 통해 서로 겹치고 다각도로 연결되는 차원을 펼치고자 했다. ■ 김도희

김민지+전명은_금곡의 기억_단채널 영상_00:03:00_2016
김민지+전명은_금곡의 기억_책(70p)_27×21cm_2016
전명은_금곡의 기억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1×27cm_2016

김민지+전명은 ● 「금곡의 기억」은 경기도 금곡동의 시각장애 노인들과 함께한 프로젝트이다. 시력을 잃기 전에 본 것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빨간 단풍, 눈 쌓인 골목, 강바닥의 실뱀장어, 혹은 동굴 벽면에 비친 불빛 등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그려내는 문장을 추려보았다. 문장을 구성하는 것은 여러 개의 문자들이다. 그리고 여러 개의 문자들을 조합하고 배열하는 타이포그라피 작업은 문장이 그려내는 이미지가 더욱 강렬하게 시각화되도록 도와준다. ● 청각장애가 말의 기억을 지우고 언어장애를 일으킨다면, 시력의 상실은 자연스럽게 시각적 기억의 상실을 동반한다. 시각장애인들은 말한다. "그걸 봤다는 걸 기억한다." 그러나, "뭘 봤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게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우리는 망원경 렌즈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까만 밤하늘을 탐색하는 것처럼, 머릿속에 남겨진 희미한 장면들을 헤집어보았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이 들려준 '봤던 것'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이 '살았던 삶'에 관한 담담한 기억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았나요?" 라는 질문은, "살아있었나요?" 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었다. ■ 전명은

김현주_도리도리 道理 道理_단채널 영상_00:08:14_2014
김현주_막막우주寞寞宇宙_점토에 먹, 와이어_가변설치_2016

김현주 ● "검정 두루마기 부엌칼 녹슨 망치 부적 열쇠들 톱 향 깨진 거울 벽지 위에 붙여진 장미꽃 // 나비 스티커 그리고 호랑이 연고 / 살았거나 죽었거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작거나 크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가볍거나 무겁거나 쓸모 있거나 쓸모없거나 / 도리 도리 도리 道理 道理 道理 불아 불아 불아 불아 弗亞 弗亞 弗亞 弗亞 질라아비 훨훨의 秩羅呵備 活活議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 사람이 살다 버리고 간 집. 사람 대신 사람의 이야기, 기억을 품고 온전히 쓰레기가 되어 망자가 되기를 기다리는 사물들을 만난다. 공간은 현재 존재하는 곳임에도 시공간을 떠나 과거의 시간을 품은 어떠한 무거움의 살-덩어리들의 잔해가 가득한 곳이었으며 헐벗고 위약한 욕망들과 나무랄 수 없는 무난한 모험들이 흑백으로 삶의 지배에서 이탈된 동굴을 연상케 한다. 제한된 나의 모호한 세계 속에 정신들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시상을 낚듯 타인의 흔적으로 가득한 식칼과 망치, 열쇠, 두루마기 등을 더듬어 응시하기로 한다. 무명시가 되버린 사물들을 응시하며 나는 '도리도리'를 하며 '불아불아'를 부르며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사물들과 대화한다. ■ 김현주

Vol.20170106d | 하부양생 下部養生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