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이 필요한 시간

허은오展 / HUREUNOH / 許銀午 / painting   2017_0111 ▶︎ 2017_1117

허은오_窈_혼합재료_53×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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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1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Tel. +82.(0)2.734.1333 www.ganaartspace.com

허은오- 자연의 상징화 ● 광활한 창공과 광막한 바다를 배경으로 화려한 색채로 치장된 새와 꽃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허은오의 그림이다. 새와 꽃은 흠사 도감처럼 사실적인 묘사로, 재현술에 입각해 꼼꼼하게 그려 넣었고 하늘과 물로 여겨지는 배경은 다소 추상적인 처리( 단색조의 색채와 붓질로만, 암시적인 흔적으로만)로 배경을 그려놓았다. 구체적인 실경이 현실적인 소재로, 실측의 시선 아래 취해진 게 아니라 관념의 장소가 상상력에 의해 설정되었는데 그로인해 어딘지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분히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작가에 의해 상상되고 조합된 이 아름다우면서도 낯선, 환상적인 풍경은 아마도 숭고하고 신비하며 고요한 자연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에서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늘과 바다(바다 속), 새와 꽃의 각 이미지를 조합해서 결합 한 일종의 콜라주에 해당하며 그것들의 다양한 배치를 통해 이상적인 풍경, 공간을 만든다.

허은오_靜_혼합재료_50×50cm
허은오 _靜_혼합재료_50×50cm

자연은 매혹과 두려움의 양가적인 공존을 지닌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이른바 숭고미의 핵심이기도 하다. 숭고미란 인간을 파괴할 정도로 위협적일 수 있는 두려운 현상에 대해 느끼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일컫는다. 이 숭고미는 인간을 압도하는 스케일로부터 연유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숭고미의 공통점을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상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자연이 바로 그렇다. 자연을 그린 모든 그림의 이면에는 숭고미에 대한 매혹이 자리하고 있다. 허은오에게도 자연은 신비함과 숭고함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자연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타자인 것이다. 두려움과 신비스러움이 공존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의 근원이면서도 친근하고 동시에 경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또한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나 작가는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통해 그러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체감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어지럽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안도감과 편안했던 그 '신비로운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깊은 바다 속 공간이나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물의 움직임을 형상화하고 그 위로 다양한 생명체들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모습으로, 또한 광막한 창공이나 광대하고 고요한 하늘 공간을 뒤로 하고 자리한 아름다운 새와 꽃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우선 이런 장소성은 작가에 의하면 '본연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고요한 장소'이다. 그 공간에 불현 듯 작은 생명체가 약동하고 피어난다. 한 쌍의 새들이 날개 짓을 하고 있고 화려한 꽃 들이 피어있다. 또는 새와 꽃이 한 몸으로 얽혀있다. 하늘, 바다, 새, 꽃들이 불연속적으로 연루되어 완전한 침묵을 거느리는가 하면 절대적인 고요 속에, 불변하는 영원한 순환의 자장 안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허은오_窈_혼합재료_72.7×91cm

원경에서 조망한 바다나 깊은 바다 속 심부,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늘 등의 의도적인 배경처리는 공간을 무한하게 보이게 하고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이 같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우주 자연)에 유한한 새와 꽃이 놓여있다. 화면 속의 화조는 주위공간과 교감하는 듯 하다. 한 쌍의 새 역시 서로 조응하고 응시한다. 작가에 의하면 이 두 마리의 새는 조화롭게 소통하는 모습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자를 일종의 사유의 공간으로 이끄는 통로가 된다. 그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요함에 침잠하는 경험을 유인하려는 의도이다. 그렇다면 그림은 일종의 토로, 매개가 된다. 전통회화가 바로 그러한 매개로서 기능했음을 연상해 본다.작가는 관자들이 자신의 그림을 완상하면서 고요한 침잠과 심리적 안정, 정신적인 여유를 체험하기를 원하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복시키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 그림의 의도이다. 그림 안에서 자연을 상징물로 다루는 의도이기도 하다.

허은오_窈_혼합재료_각 60×50cm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예술가들은 꽃과 새를 하늘의 이치를 드러내는 존재로 여기고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여기서 꽃은 생성과 소멸이 윤회하는 자연의 순리를, 새는 하늘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전달자를 상징한다.그러니 이런 그림은 하늘 즉 '도'와 소통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서사를 구현한다. 작가에게 있어서도 새와 꽃, 물과 하늘이란 것은 모종의 상징적 언어들이며 자기 식으로 번안된 나름의 화조화인 셈이다. 그림 속의 화조라는 물상 또한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적 세계를 드러내는 매개, 고도의 상징적 언어인 셈이다. 동양의 전통회화에서 다루어진 자연의 상징물들, 다시 말해 새나 꽃(화조화), 나아가 산수나 사군자 들은 모두 자연을 의도적으로 상징화한 것들이다.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거나 자신의 관념체계 안에 수렴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인간은 자연과 문명 사이의 분열을 견디지 못해 자연을 상징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 수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징이란 '알 수 없는 험한 것을 의미와 표상의 차원으로 끌어들여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기술'이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자연물을 상징물로 쓴다는 것은 자연물을 매개로 하여 사고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위협적인 자연을 상징체계로 끌어들임으로써 뭔가 다룰 수 있는 것, 인식할 수 있고 파악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그것은 달리말해 자연을 '실용적으로만 아니라 의미의 차원에서도 길들이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다루어진 자연물의 상징성은 당대인들의 삶과 문화, 세계를 해석하는 연결고리를 한 중요한 매개로 작동했던 것들이라면 오늘날 자연물의 상징성은 기능의 담지체로 전락했고 단순하고 공허한, 닫힌 상징성에 머물고 말았다. 자본의 도구화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을 자신의 삶과 세계를 해석하고 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상징화하는 여러 전략, 흔적들을 우리는 예술 안에서 만난다. 허은오의 그림 역시 그런 맥락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 의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의 상징화를 통해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하려한다는 것이다.그것은 자연이 여전히 인간에게 위안과 치유를 줄 수 있는 거대한 장소성을 제공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오늘날 전통회화가 새롭게 해석되고 계승된다면,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회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면, 나아가 자연이란 공간이 무엇이며 그것의 상징화는 무엇일 수 있느냐 하는 여러 문제를 허은오의 그림을 통해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 박영택

Vol.20170111g | 허은오展 / HUREUNOH / 許銀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