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CODE 2017 바코드 산수화

오현영展 / OHHYUNYOUNG / 吳現泳 / printing   2017_0216 ▶ 2017_0226 / 월요일 휴관

오현영_Barcode 2016114 여름_실크스크린_115×70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코드화된 현대인의 삶을 반추하는 바코드 산수화 ● 자연을 인간의 의지로서 포착하고자 했던 서양의 풍경화와는 달리 동양의 산수화는 전통적으로 자연에 대한 동경과 이상향을 담고자 했다. 동양인에게 산은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가 구현되는 장소이고, 탈속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산수화는 물리적으로 산과 물로 이루어지지만, 철학적으로는 음(물)과 양(산)을 각각 상징한다. 음양오행의 법칙 속에 무한히 변화하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는 세속적 집착과 경직된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어왔다. 동양에서 산수화는 풍수가 좋고, 음양오행이 잘 조화된 명산을 여행하면서 감각을 열어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취하고, 마음의 찌듯 때를 정화시키기 위한 수행의 방법이었다. 이처럼 살아서 생동하는 자연은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코드화되기 이전의 본모습이고, 산수화가들은 그러한 자연의 기운을 생생하게 포착하고자 했다. 동양화론의 육법 중 첫 번째 덕목인 '기운생동(氣韻生動)'이란 코드화되지 않은 자연의 생생한 생명성과 순환성을 포착하는 것이다. ● 그러나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디지털문명은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모든 것들을 코드화시킴으로써 점차 자연과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그 중 바코드는 검은색 막대(bar)를 코드(code)로 삼아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요즘 나오는 상품들은 대부분 바코드가 찍혀 있다. 검은 막대와 흰색 공백을 조합하여 만든 바코드를 이용하면 물건의 가격을 일일이 입력할 필요가 없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금액과 판매량 등의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집계하기 때문에 관리와 유통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코드는 그러한 현실적 필요와 편리를 위해서 복잡한 실재를 단순한 수직선의 막대로 압축한 것이다.

오현영_Barcode 2016115 가을_실크스크린_115×70cm_2016
오현영_Barcode 2016116 겨울_실크스크린_115×70cm_2016

오현영의 근작들은 바코드를 조형의 기본 요소로 삼아 전통 산수화를 재현한 이른바 '바코드 산수화'이다. 산수화에서 산이나 암석을 그리는 표현방법을 준법(皴法)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개 지형적 환경이나 암석의 특징에 따라 정해진다. 부벽준, 피마준, 우점준 등 전통 산수화에는 30여개의 준법이 사용되고 있고, 어느 준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한 전통에서 볼 때 오현영의 산수화는 기존의 준법들과 달리 막대 모양의 바코드를 준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흥미롭다. 일상에서 전혀 미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계산대에서만 사용되는 바코드는 오현영의 작품에서 자연을 재현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 출품되는 오현영의 작품들은 한국의 진경산수화 중에서 가장 많이 그려졌던 금강산을 소재로 하고 있다. 민족의 영산 금강산의 절경은 단원 김홍도나 겸제 정선, 그리고 소정 변관식 같은 진경산수화 작가들이 즐겨 그렸던 곳이다. 지금은 남북분단으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오현영은 선배 화가들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차용하여 자신의 독특한 바코드 준법으로 재현하였다. 기하학적인 수직선이라는 단순한 형태를 갖고 있는 바코드는 무수히 결합되어 실크스크린 판화 기법으로 찍히면서 기암괴석과 물이 있는 거대한 산의 형세를 갖추게 된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와 숫자들이 적혀 있다. 이 낯익은 글씨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물건을 살 때 주고받는 영수증의 내용이다.

오현영_Barcode 2016117 봄_실크스크린_115×70cm_2016
오현영_Barcode 2016135_실크스크린_91×180cm_2016

오현영은 오래 전부터 영수증을 소재로 작업을 해왔다. 그는 주부로서 매일 주고받는 영수증을 알뜰하게 모아왔고, 여기에서 알게 모르게 젖어 있는 도시인들의 생활상과 정서를 관조한다. 영수증에는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사고,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고 물건을 대가로 얼마를 지불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그에게 영수증은 어린 시절에 쓰던 일기가 코드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일기에는 사건의 기록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소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영수증은 감정이 탈각된 건조한 사건과 물질적 가치로 코드화 되어 있다. 과거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가격을 깎아주고 덤으로 얹혀주기도 하며 오갔던 따스한 정(情)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모든 것이 코드화된 오늘날의 대형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오현영의 작품에서 트레이드마크처럼 등장하는 바코드와 영수증은 그러한 삭막한 도시인의 삶 속에서 편리함의 명분 속에 차갑게 코드화된 정과 자연의 생명력을 은유한다. 또한 인정이 메마른 도시적인 삶 속에서 모든 가치를 계량화하고 코드화시키는 디지털 문명을 비판적으로 반추하게 한다. ● 금강산의 형세에 따라 수직준법(겸제준이라고도 한다)을 만들어 사용했던 겸제 정선의 산수화는 오현영의 작품에서 기하학적인 막대의 바코드 준법으로 변형된다. 원래의 물건에서 떨어져 나온 바코드들은 다시 수많은 결합을 통해 산이 되고 물이 되며 웅장한 산수화로 변모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바코드 산수화는 자연을 코드화한 것과 반대로 코드화된 기호를 자연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사실 생동하는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아무리 사실적인 재현의 기술이 있다고 해도 변형과 코드화를 피할 수 없다. 자연은 그림으로 고정되는 순간 이미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산수화가들이 회화의 이상으로 추구한 기운생동이란 자연을 코드화시키지 않고 생생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이지만, 이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코드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오현영_Barcode 2016151 봄_실크스크린_130×65cm_2016
오현영_Barcode 2016154 겨울_실크스크린_130×65cm_2016

바코드 산수화의 예술적 전략은 그런 불가능한 노력 대신에 코드화된 현실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탈코드화시키고 다시 재코드화하는 방식으로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다. 들뢰즈가 미학적 개념으로 사용한 코드화는 생동하는 실재를 어떤 기호적 규칙 안에 가두는 것이고, 탈코드화는 그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재코드화는 탈코드화 이후에 다른 종류의 새로운 규칙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고유의 영토를 원한다면 기존의 코드화된 규칙에서 벗어나 자신의 스타일로 재코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 바코드로 그려진 오현영의 산수화는 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재코드화된 자연과 원래의 자연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간격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자연의 외양을 엄청난 집념과 노력으로 재현하고자 하는데도 아날로그적인 자연스러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기하학적인 딱딱함이나 비재현적 경직성이 남아 있는 것은 바코드 준법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바코드 산수화는 자연이 아니라 도시의 빌딩 숲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재현의 한계가 진부화고 고리타분한 전통 산수화에서 벗어나는 신선한 지점이고, 새로운 시대성이 반영된 고유한 표현양식이 되고 있다.

오현영_Barcode 2016156_실크스크린_130×65cm_2016
오현영_Barcode 2016157_실크스크린_130×65cm_2016

결과적으로 바코드 산수화의 특징은 한 화면에 자연과 도시, 코드화된 현실과 탈코드화의 노력이 공존한다. 여기에는 모든 가치가 코드화된 도시적인 삶에 대한 작가의 저항의식과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지향의식이 함축되어 있다. 오현영은 이러한 방식으로 동양에서 뿌리 깊은 역사를 지닌 산수화에 현대적인 옷을 입혀 전통과 현대를 공존시키고, 도시와 자연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고 있다. ● 바코드 산수화의 미학적 전략은 바코드나 영수증 같은 하찮은 것들을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삼음으로써 고급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팝아트에서처럼 하나의 일상적 오브제를 전면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조형의 문법이 되는 요소들을 바코드나 영수증 같은 미적으로 전혀 검토된 바 없는 하찮은 일상적 요소들로 설정함으로써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간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바코드와 영수증은 단지 화면을 구성하는 평등한 요소일 뿐, 정보가 주는 어떤 개별적인 의미가 중요하지 않다.

오현영_Barcode 2016167_실크스크린_108×95cm_2016

오현영은 이러한 하찮은 존재들은 모으고 집적시키는 과정을 통해 사계절과 기후의 정취가 느껴지는 제법 운치 있고 웅장한 산수화로 탈바꿈시킨다. 이것은 고급과 저급, 고상한 것과 하찮은 것, 귀한 것과 버려진 것 같은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이분법적 잣대와 우열의 관계에 균열을 만들고, 자연의 평등한 조화관계로 복원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한국인 특유의 해학적 정서에 입각하여 전통 산수화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지난 번 개인전에 비해 한층 숙련되고 세련되어진 바코드 준법의 미학적 가능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최광진

Vol.20170216a | 오현영展 / OHHYUNYOUNG / 吳現泳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