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ra Matsuda_DORRIT NEBE_김근태展   2017_0301 ▶︎ 2017_0318

Akira Matsuda_As a Word_패널에 종이, 연필_2016

초대일시 / 2017_03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 마지막 날은 01:00pm까지 관람 가능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조류독감과 정치적으로 나라안이 시끄러운 이때에 때아닌 철새처럼 노마드를 지향하는 일본 독일 한국의 중견작가 세 명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작가 Akira Matsuda의 연필드로잉 작업과 독일 작가 DORRIT NEBE의 드로잉과 오브제 작업이 김근태의 담론시리즈의 유화작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 세 명의 작가가 모두 전업작가로 지내온 지 30년 이상 되는 중견 작가이다. 한국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외국 작가의 작업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본다. ● 일본작가 Akira Matsuda는 종이에 연필을 사용하여 작업하고 있는데 수평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력을 느끼며 수직적인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기도처럼 간절한 자신의 원하는 바를 표현하기에는 연필이 가장 적당한 재료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과하지 않은 이유로 연필을 택하고 있으며 모노크롬의 화면에서 생명의 호흡을 느끼면서 작업하고 있다. 일기시리즈는 동북아 지진 이후 생존에 대해 미안함과 추가로 삶을 산다는 생각으로 날마다 작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DORRIT NEBE는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다시 미술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한 이력 탓인지 작가의 작업에는 사람들의 해체되었다가 재구성되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입체와 드로잉 작업에서 다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김근태의 회화작업은 작가가 일관되게 작업해온 모노크롬풍의 그림으로 어떤 형상을 찾기는 어렵다. 오랜 시간 속에 퇴색해버린 시간의 켜를 간직한 백자와 같은 느낌, 혹은 분청사기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맛을 작가는 캔버스 위에 유채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는 세 명의 신작 8점씩 24점 가량이 전시될 예정이다

Akira Matsuda_Diary_종이에 연필_각 18×18cm_2016

Akira MATSUDA ● 모방이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제작 스타일은 이미지의 원점을 완성시키기 위해 크기에 투영시킨 것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지지대가 되는 기존의 캔바스의 틀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Akira Matsuda다. ● 일반적은 미술이 생겨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검정이란 색은 항상 변하지 않는 존재감을 가져왔다. 검정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어떤 색과도 다른 차원의 힘이 있어 삼원색이 갖는 근원적인 힘보다도 오히려 더 근원적이라고 할 수 있다. Goya와 Motherwell과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다른 작가들이 검정이라는 색에 의해 자신의 화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냈다고 하는 사실이 검정이 가진 다면적인 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을 토대로 해서 볼 때 Akira Matsuda는 검정이라는 색을 자신의 예술의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이다. ● 그의 예술은 역설적이지만 예술이 그곳에 미니멀리즘이라는 풍부한 색과의 만남, 선과 색칠된 회화의 만남, 색칠된 그림과 입체조각의 만남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런 것 모두가 세련된 위트를 가지고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노장들이 검정을 사용하고 있는 때에는 그 안에 애수를 품은 침잠하고 있는 측면을 이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Matsuda는 좀더 사람이 뭔가 특별한 기회에 검은색 옷에 입은 것처럼 그 축전적인 측면을 이용한다. 또한 이 작가는 Ad Reinhardt가 항상 화면 어디간에 사각형을 보이는 것처럼 보는 사람에 대해서 항상 약속한 조건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관람자에 대해서 자기 작품의 느낌을 받기 위해 약간의 힌트를 주는 것뿐이다. 그림의 표면 한 구석을 마치 유성처럼 흰 선을 두 세 개쯤 흘려서 흰 반점이 반딧불처럼 여기저기서 반짝이고 있다. 가장자리 부분의 탄 흔적의 색은 주저하듯이 떠오르는 일출의 빛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해석을 하는 것이 허락되는 열린 관대한 작품인 것이다. ● 이 작가의 기술은 일견 간단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커다란 아르슈지를 몇 장이라도 보드에 고정시키는데 그것은 그것 자체가 단순한 장방형으로 그곳에 다른 장방형의 붙여서 작업한다. 그렇게 하는 것에 따라 종이의 흰 정도를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Matsuda는 그것을 몇 개의 점과 선을 제외한 나머지를 목탄으로 채운다. 그렇게 한 것에 의해 종이의 흰색의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된다. 태운 것 같은 색 조합은 보드의 색으로 그 부분부분이 항상 예에서 구분된다. ● "As a word…." 라는 제목은 화가의 생각으로 작품은 보는 사람을 곤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과 마음을 소통하는 것임을 전달하는 것을 확실히 하면서도 그럼에도 감 잡기 어려운 것도 있다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을 보충해 주고 있다.

DORRIT NEBE_plush_피규어 모델링 클레이_40×20×15cm_2014
DORRIT NEBE_drawing 3_종이에 수채, 연필, 잉크_30×20cm_2014

Dorrit Nebe의 작품에 대하여 ● 독일작가 Dorrit Nebe는 다소 기이해 보이는 사람의 두상을 제작한 후 물감으로 색을 입힌다. 그리고 자주 찾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봉제인형의 몸체, 작은 조형물, 혹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작은 조소상과 이 두상을 결합시킨다. 이러한 조형과정의 결과물은 콜라주의 형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은 다른 형태로 변화시켜 이용한다. 작가는 이러한 재구성 과정을 통해 다소 특징적이며 다양한 형태를 창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을 여러 번 들여다 볼 경우 무언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런 느낌을 받는다! ● 작가의 작품은 유희적(playful)이며, 조형작품이나 드로잉 모두 임의의 기준에 의하면 개방적이고 적절해 보인다. 종이작업을 시작할 때 물감얼룩이나 흐릿한 선을 이용하며 이는 작업과정을 통해 다층적인 인물이나 형태를 드러낸다. 작업과정 마다 임의의 형태와 고정된 형태 사이의 형태가 드러난다. ● 작가의 작품은 – 조형작품이든 드로잉이든 – 명확한 해석대신 모호한 상태를 유지한다. 어떤 주관적인 해석이나 해답은 스스로의 관점과 정신을 바탕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김근태_담론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16

김근태 : 윤진섭은 김근태에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김근태의 작업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시간성이다. 시간의 축적과 추이는 그 자체 하나의 과정으로써 그의 작업의 요체를 이루는 것이지만, 그는 시간이 배태한 켜를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는다. 오랜 세월 풍화된 흙벽이나 암벽, 분청사기의 질박한 느낌, 오래된 건축물이나 석탑에서 맡아지는 고졸(古拙)한 정취 등등은 김근태 회화의 특징을 이룬다. 그는 근본적으로 관념적일 수 밖에 없는 이 시간성을 모티브로 삼아 그것을 현재화한다. 그의 회화가 지극히 개념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그의 그림은 붓질을 통해 반복된 그의 행위와 물감이 빚어낸 또 하나의 관념이 아닌가. 분청사기의 작은 반점을 연상시키는 김근태의 텅 빈 단색의 화면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연상을 통해 서로 교호(交互)되고 있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미적 경험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그 계기로서의 시간이 관념적으로 만날 때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그의 단색 화면에 나타난 반점은 분청사기의 표면에 존재하는 그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관념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름 모를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간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 앞에 숨이 탁 막히곤 한다." 고 썼다. 그는 벽에 부딪쳤다. 따라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에서 그를 구한 것은 오히려 바람소리요, 구름 한 점이었다고 들려준다. 나는 그의 회화가 바로 이러한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천 길 절벽 위에서 질끈 눈을 감고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 김근태의 회화는 사념(思念)의 장(場)이다. 그것은 경험의 축적으로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본, 감각의 총화이자 그러한 현상을 넘어서 오직 '물자체(Das Ding an sich)' 즉, 사물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가려는 의지의 소산인 것이다. 무명(無名)을 넘어서 30년간 추구해 온 그의 회화가 수련의 도정으로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져 있지 아니한가? ■ 갤러리 담

김근태_ 담론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16

나는 백자의 색이 좋다 ● 백자를 보면 나의 마음을 보는 것 같다. 마음의 실체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실체가 보이지도 않거니와 듣지 못하겠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더욱이 눈이나 귀로 듣는 것 이성적으로 알 수 없음의 밑바닥에 있을 때를 백자는 표현한 것 같다. 그 모습과 색에서 종일 날라도 흔적 없는 새를 본다. 나의 작업에서 조형성은 무의미해지고 사유의 그 끝에 있을 때까지 가본다. 그 끝에서 흔적이라면 흔적이랄 색이 삐져나옴을 나두기도 하고 마무리를 못하기도 한다. 텅 빈 산 ● 텅 빈 가운데 실체가 있고 고요한 가운데 숭고함이 있다. 텅 빈 그릇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의 쓰임새가 있듯이 화면을 채우기보다는 비워냄으로써 지극한 곳에 이른다. 한 생각 일으키면 또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한다. 일체의 견해를 내려놓는 길 외엔 없다. 무의 입장에서 보면 버리고 말 것 없는데 무엇을 버리고 말 것 인가? 애써 버리지 않는 것은 물론 취하려고도 하지 않는 텅 빈 산이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 작업실에 인접해 있는 북한산 암벽은 나를 부르는 장소이다. 언제부터 저 커다란 암벽이 나를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그 암벽은 알 수 없는 세계로 초대한다. 이름 모를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간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 앞에 숨이 턱 막히곤 한다. 소동파의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란 글귀를 떠올리다 보면 나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커다란 암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 갈수도 뒤로 물러 설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바람소리와 구름 한 점이 그 알 수 없는 처지를 벗어나게 하고는 한다. 글귀에 빠져들고 모양에 속는 어리석은 모습이 그 벽 앞에서 형태 없는 형태로서 한줄기 빛으로 나타난다. 그 경계를 선과 색으로 옮겨 보았다. 적정 ● 어느 날부터 조금씩 삶 속에서 사물의 두께가 보이기 시작한다. 심각함과 엄숙함의 관념적인 상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사물 그 자체가 갖고 있는 표현양식에 눈을 돌리면서 점차 사물은 내게 새로운 인상으로 스며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동안 내가 찾고자 했던 사물의 객관적 리얼리티 혹은 베베른의 우주에서의 모든 순간과 단편의 미학적 평등은 새롭게 질서를 찾았다. 결국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나 혹은 나의 심증에 담긴 것으로부터 단 하나도 멀어지게끔 강요 받지 않는 그런 구성을 창조하는 것에 몰두 한다. 점차 안에서 개념적 사유나 양식적인 패러다임은 풀어지고 열리며 일상적인 삶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조형언어와의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의 언어는 수다스런 소음에 대항하는 담론이며 막다른 길에서 다시 찾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나의 질문 혹은 문제제기는 저녁 어스름한 황혼의 시간, 상황들에 제기된 그 모든 주변을 감지한다. 역설적이게도 심성의 일루전에서 벗어나 조형언어가 객관적이 되어갈수록 내 그림에 있어서의 무조의 평면은 점차 깊이를 갖게 되었다. 점차 화면과 감정이입간의 일체 가 되어간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이러한 변화는 서양화로 시작한 그림이 점차 내면적 아름다움과의 만남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나에겐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오래된 건축의 빛 바랜 벽이나 석탑의 꺼스한 색깔, 분청사기의 소박한 질감이나 문양, 미륵의 미소가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얼핏 얼핏 드러나는 공간에 살아 스며드는 빛깔이 단색 톤에 조금씩 끼어든다. 여기서 숙련된 형태를 찾기보다는 일그적거리는 짓거리에 불과하다. 형상은 아직 이미지로도 기호로도 완성되어 있지 않다. 형상화 하려는 순간순간 속에 늘 나의 그림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막다른 길목의 끄트머리에서도 나의 그림은 늘 존재의 생성을 멈춘 적이 없다. ■ 김근태

Vol.20170302f | Akira Matsuda_DORRIT NEBE_김근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