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실 Room

권선주_김희승_문명기_이승한_정용국展   2017_0310 ▶︎ 2017_031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7_0310_금요일_06:00pm

난지후속지원사업(프로젝트 지원) NANJI Follow-up Support Program展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 NANJI RESIDENCY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108-1 난지전시실 Tel. +82.(0)2.308.1071 semananji.seoul.go.kr

1987년, 냉장고가 집으로 들어왔다. 하얀 직육면체의 위엄이 갈색 박스로부터 드러나면서 우리 모두는 탄성을 내질렀다. 전쟁 기념관에서 보았던 미니멀한 기념비가 집 안으로 들어온 듯 하여, 가슴을 펴고 웃음을 참으며 큰 숨을 콧구멍 밖으로 쉭쉭 뱉어냈... 농담이다. 사실 난 냉장고보다 내 몸만한 박스 하나가 생겼다는 것에 더 흥분했다. 박스를 거실 한 가운데 두고는 칼과 가위로 문과 창문을 내고, 출입구 옆에는 내 머리통만 한 글자로 '출입금지'를 써내려갔다. 허술하고 삐뚤삐뚤한 박스의 작은 창 안에서 바라본 나 이외의 식구들은, 관람의 대상인 동시에 '객(客)'이었다. ● 2017년, 객실에 대해 말하고 싶다 했다. 손님을 거처하게 하거나 접대할 수 있도록 정해 놓은 방. 이라니. 가상과 증강현실을 옆에 두고 탈공간과 동시대성을 요구하는 지금, 안과 밖을 경계짓고,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참여 작가 모두가 실제하는 공간을 기반에 두고 연출한 설치작업이라니. 소환한 복고인지, 더 날을 세운 예민한 현실 접근인지를 골똘히 생각해보다, 언제부턴가 익숙했던 이원적인 풀(pool)에서 빠져나오니 메마른 연결고리가 보인다. ● 몇 해 전, 통의동의 쿤스트 독에서 보았던 문명기의 개인전을 들추어 본다. 『공상과학적 공황상태 SF_PANIC』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그는 달이 지구로 추락한 이후에 일들을 상상하며 이전부터 주목해오던 사라짐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관람객은 비닐 장막으로 둘러싸인 좁은 통로를 거쳐 곳곳에 설치된 작품을 봐야만 했는데, 그것은 마치 외계인이 접촉한 장소에 설치된 커다란 군사 임시 실험 캠프를 방불케 했다. 전시의 개념과 네러티브에 충실한 연출방법이었지만, 난 그보다 투명하지도, 불투명하지도 않은 이 길이 작가의 위장胃臟처럼 느껴졌다. 신체를 공간의 외부라 하면 공간의 내부는 내장기관과 같다. 외피는 인식 가능하나, 내부의 골격 및 근육, 그리고 장기의 구조는 볼 수 없으며 개개인의 성향 및 습관에 따라 그 모습과 비중을 달리한다. ● 기획자 문명기는 –모든 미술가가 그러하듯 – 숱한 공간 이동을 해오면서 다음의 거처를 결정하기 위해 미리보기 하였던 타인의 공간이 전시의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공간과 그곳을 점유하고 있는 주체 사이에 나를 개입시키며 그곳의 낯선 공기를 공유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타인의 체취와 습관이 미세하게 남겨져 있는 텅 빈 객실을 나의 공기로 대체해 나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즉 객실은 열려있는 공간으로, 타자의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으로, 그리고 다시 타자의 공간으로 연속되는 비워냄과 채움의 반복이다.

김희승_슬픔 없는 방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김희승은 「슬픔없는 방」을 통해 비어있음과 채움의 간극을 무심하게 보여준다. 관객이 마주하는 작품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나선형의 붉은 길과 바닥과 공중에 부유해있는 텅빈 반사체 뿐이다. 하지만 특정 관객이 바닥에 위치한 사각형에 올라서게 되면, 이내 무수히 펼쳐진 자신의 발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사각의 기반 밑에 설치된 특수 카메라를 통해 정면의 스크린에 자신의 발바닥이 여과없이 영사되고, 화면을 둘러싼 네 면의 반사경은 자신의 발바닥을 복재해내는 것이다. 발바닥(sole)은 고독(solitude)으로 은유되는데, 한번도 정면으로 조응하지 못한 자신의 신체부위 발바닥을 응시하는 체험은, 나의 말단과 말단이 마주하는 공간, 사유와 무의식이 대면하는 시간으로 확장된다.

권선주_이기적인 ㅁ_혼합재료_240×360×360cm_2017

권선주와 정용국은 각자 사적인 공간에 있던 생활용품, 가구 및 집기들을 전시장으로 끌어온다. 권선주는 「이기적인 ㅁ」를 통해 자신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각각의 오브제에 우선순위를 매긴 후, 그것에 비례하여 만든 조각을 전시한다. 원래의 기능은 상실되고 고유한 형태만을 간직한 오브제는 개인의 선호도와 작은 기원을 반영하는 모습에서, 조각품인 동시에 주술적인 도구로의 확장을 보여준다.

정용국_일인분의 이사_생활용품_240×360cm_2017

정용국은 자신의 작은 작업실에서 20여년간을 함께 해온 개인의 생활용품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바닥에 라인 테이프로 구획해 놓은 사각형 안으로 그의 역사를 함께 해온 오브제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특이한 점은 지속적인 이동과 생활을 거치면서 그 안의 생활용품 또한 미니멀한 경향을 띠는 가운데, 이와 무관해보이는 평면 작품 하나가 껴있다는 것이다. 「나의 시선이 시간과 공간 저 멀리로부터 다다랐을 때 –박명래 作」 라는 작품이 그것인데,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 자신의 작품도 아닌 것이 - 갖가지 생활집기와 같이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 기간 동안 우리는 정용국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을 목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원래의 기능을 포기하고 미술품으로 변이된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 중 유일하게 예술을 목적으로 한 하나의 납작한 오브제만이 정체를 감추고 숨어있다.

이승한_B/W ½_가변설치_2017

이승한은 10여년간 흑백필름의 사진작업에 몰두해왔다. 발표하지 않은 채 켜켜이 쌓아온 흑백사진과 어디에도 이동되지 못하고 원통형의 방에 갇혀 지낸 필름들은 무엇을 담아냈는지,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 모른다. 작가는 이와 더불어 반지하에 머물렀던 예전 기억을 결합시킨다. 「B/W ½」 은 필름이 빛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이미지를 만들어 가듯, 자신이 반지하의 공간에 머물며 외부적인 빛과 이와 상응하는 – 때로는 무관한 - 내부적인 명암을 기억해내며 만든 작품이다. 관객은 검은(어두운) 방과 하얀(밝은) 방 사이를 오가며 관람할 수 있고, 두개의 방 사이를 가르는 벽의 구멍을 통해 자신이 위치한 곳과 상반되는 공간을 관찰할 수 있다. 작가는 공간을 선회하고, 이 안에서 저 너머를 목격하는 과정을 통해, 흑과 백이라는 명백한 양단兩端보다 그 사이 무수히 존재하는 회색의 다양한 반열에 집중하는 듯 하다.

문명기_DELETE_소형환풍기_240×390×390cm_2017

문명기의 작품 안에서 비로소 나는 사라진다. 환풍기가 빼곡히 둘러싸인 큐브 안에서, 나는 지워지고 공간 외부가 나로 채워져 나간다. 안과 밖의 물리적 속성을 단순한 기계 장치로 전복한 작업은, 체험을 통해 신체와 의식의 상호 연결과 단절을 연상하게 만든다. 의식의 단절 이후 육체만이 머무르는 장소와 그곳을 배회하는 남겨진 자들. 이와 같이 내부와 외부, 머무름과 떠남을 통해 우리는 매일같이 사적인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오고간다. '객실'이 타자를 위한 거처일 뿐 만 아니라, 본인의 내밀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은 배회하는 스스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정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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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70310e | 객실 Room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