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도 靜物圖

이지숙展 / LEEJISOOK / 李芝淑 / ceramic   2017_0317 ▶︎ 2017_0508 / 주말,공휴일 휴관

이지숙_정물도-파초와 사피엔스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140×103×1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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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317_금요일_05:00pm

후원 / 한국예탁결제원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 사전 예약시 휴관일에도 관람 가능

KSD갤러리 KSD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4길 23 한국예탁결제원 1층 Tel. +82.(0)2.3774.3314 www.ksdgallery.kr

그 여자의 사물들 — 관찰과 사색의 풍경 ● 어느 날 익숙한 사물이 시선의 범주 안에 불현듯 들어와 낯설게 말을 걸어올 때, 작가는 사물이 갖고 있던 감춰진 이면(裡面)을 잡아채고 그 속에서 자신의 단편을 인지한다. 이지숙이 매일 새롭게 응시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대상은 일상의 소소한 물건들이다. 작가의 어느 하루를 그대로 이미지로 떠낸 듯 이지숙의 정물도에는 책, 문방구류, 과일이 담긴 그릇, 꽃이 담긴 화병, 차, 자개, 장식품, 화장품 등 다양한 기물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구성과 차분한 색조, 핍진(逼眞)한 묘사가 매력적이다.

이지숙_엄마의 방-강의와 삼작노리개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85×90×6cm_2013

이지숙은 자신이 매일 보고 사용하며 어루만지는 것들을 단순히 보고 애정 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응시를 흙을 주무르고 깎고 새기고 나아가 세필을 쥐고 그리는 지난한 과정으로 시각화한다. 작가의 물건은 대부분 자신의 엄마에게 물려받았거나 자신이 사용해온 소소한 사물들로 시간 속에서 독특한 고유의 언어와 온도, 역사를 지니게 된 물건들이다. 모든 사물들의 태생은 다수를 위한 혹은 타인의 것이었다가 어느 날 어느 인연으로 나의 삶으로 불현듯 들어와 나의 것으로 명명되고 각인된 것들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삶과 오랫동안 동행한 사물들에는 새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함과 특별함이 있다. 물건이 곧 주인장의 성격이고 취향이며 살아온 인생이다. 이것은 단순한 객관적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 속에서 한 사람의 애정과 삶의 방식 그리고 추억을 덧입은 것들이기에 충분히 물건 주인의 실체와 면모를 가늠하게 해주는 물질적 기표로 기능할 수 있다.

이지숙_부귀영화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6

화면은 다양한 사물이 서가 혹은 다보각(多寶各)이나 다보경(多寶格)의 광대하고 밀폐된 격자형 구획 속에 배치되는 옛 책가도의 화법과 닮아있으면서도 서양의 정물화처럼 열린 구조 속에서 놓여있다. 때문에 혹자에 따라서는 투시도법에 따라 형상이 비틀리는 오묘한 구성, 책거리 풍경 특유의 고아한 정취, 그리고 은은하고 빛바랜 오방색 색채를 근거로 이지숙의 작업을 옛 민화나 혹은 책가도, 기명절지화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과 연관 짓기도 할 것이다. 실제 평소 책을 가까이하고 주변 지인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문화적 감흥 나누기를 즐기는 작가가 그려낸 책이 있는 정물풍경은 조선시대 늘 생의 근거리에 책을 놓아두고 생활화하며 고매(高邁)하게 살고자 세워두었던 선비들의 책가도와 묘한 접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원근법이 지워진 평면적인 세계에 오랜 시간 씻겨 퇴락한 그러면서도 화려한 색조가 흙의 피부 깊숙이 흡착되어 있는 이지숙의 책가도는 학문을 숭상하고 예술을 즐기던 옛 선비들의 고아한 취향과 지적세계를 향한 향유와는 분명 다른 화면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 문화적 향기를 탐닉하는 감미로운 감성 그리고 손 때 묻은 오래된 물건들에서 생의 안락을 꿈꾸는 한 여자의 나르시시즘이 물씬한 풍경이다.

이지숙_찬란한 일상에 대하여-모란부채가 있는 필통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30×23×10cm_2015

그러나 매일 안락과 평안, 정주를 갈구하면서도 숙명적으로 생자필멸(生者必滅) 매일 유동하고 맥동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과 사유의 숙명성을 반영하듯 화면 속의 사물 풍경은 권태롭고 어색하다. 물건들은 하나같이 주인의 성과 성정, 취향을 반영하듯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지만 그 이면에 여성으로 짐작되는 물건의 주인이 지닌 생의 고독과 쓸쓸함도 동시에 감지된다. 화면 속에는 현실과 달리 한 여자가 딸, 아내, 엄마인 한 여자가 투쟁하듯 치루고 해결해야 하는 생의 고락(苦樂)도 부재하다. 사물들은 모두 원근법에 맞지 않고 그림자도 없이 공중에 부유하듯 붕 떠 있다. 같이 한 공간 속에 존재하면서도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이지숙의 사물 표현은 옛 그림의 역원근법(逆遠近法)과 다시점(多視點)의 세계를 차용하려는 의도나 미숙한 재현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잔잔한 일상의 평안과 고요 속에서 늘 그림자처럼 동거하는 불안이야말로 어딘가 도사리고 있는 우리 현실의 위태로움과 그늘일 수 있음을 시각화하는 일이자, 우리의 삶과 존재가 늘 희망적이고 긍정적이길 바라는 우리의 강렬한 생의 희구가 한낱 환상이자 착각일 수 있음을 일깨우려는 작가의 방법이다.

이지숙_정물도-무화과와 담론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70×50×7cm_2016 이지숙_정물도-참외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68×54×7cm_2016

평면에 실재하는 사물들을 한데 모아 허구적 구도를 구성하는 옛 책가도와 달리, 이지숙은 흙으로 원근법이 지워진 평면적인 부조를 마련한 후 구운 거친 테라코타 화면을 사포로 정리한 후 아크릴물감으로 세필(細筆)한다. 완전히 자화되지 않은 테라코타(Terracotta)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이지숙의 작업은 흙과 불의 조화와 물성적 감성, 유면의 깊이를 추구하고 중시하는 현대도예의 오랜 가치기준을 적용한다면 열외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매체와 개념이 포용되는 현대예술의 표현의 확장 일로를 감안할 때, 흙을 깎고 문지르고 조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성, 도구와 손, 붓질이 지나간 궤적과 순서를 고스란히 노출하는 물질성은 오히려 오랜 도자예술의 미학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흙으로 타진 가능한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 돌이켜보는 계기로 작동하며 새로운 현대도예의 방법론을 묻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 작가가 무수한 사물, 대상을 만나고 소유하고 접속하면서 수시로 생성된 감성과 자각을 표상하는 것을 작업의 핵심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높은 온도와 유약의 시유로 발생하는 응축과 변형은 오히려 장애일 수도 있다. 작가는 오랜 고민 끝에 자화(磁化)의 단단함과 유약의 얇지만 깊고 뭉근한 세계 대신 수분을 흡수하고 옅게 색을 머금는 테라코타의 특성을 선택했다. 사포질과 색을 갈고 덧입히는 반복의 과정 속에서 까칠하고 푸석했던 흙의 표면은 무/반광택유와 다른 질감으로 매끈해진다. 빛의 각도에 따라선 마치 오로라처럼 반짝이기도 한다. 이것은 사포로 문질러 닳고 문드러진 흙의 표면을 무조건 감추는 것이 아니라 물먹은 여러 물감의 층위로 촘촘히 쌓아올린 것으로 이 흔적들은 우리 생의 아련한 상처, 소멸하기 직전의 것들이 지닌 경이로운 시간 그리고 감정의 퇴적과 닮아있다. 그것은 오로지 흙의 형상성, 감각적인 붓질과 물감의 질료성으로 이루어진 도자회화의 가능성 안에서 도출 가능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지숙_정물도-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53×53×2cm_2017

결국 이지숙의 정물도는 우리 옛 이미지의 수법을 감각적으로 차용해 오래된 것들이 발산하는 매혹적인 구성과 색채를 가져오되 한국 전통회화의 미의식의 본질을 구현하거나 그와 자신의 작품을 잇대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과 관련된 질감과 색채를 지닌 질료들을 감각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발아한 정서와 사유를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매우 내밀한 화면으로 보인다. 작가의 작업과정은 단순히 물질 속에서 형태를 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득 자신의 일상 속에 자리한 비근한 사물들을 통해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정념을 포착하고 표상하는 긴 자기성찰의 여정이라 할만하다. 그러한 자기탐색의 경험은 작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면의 형상, 색, 질감 그리고 작가의 삶에 대한 관조가 매혹적으로 다가올수록 그것은 화면을 바라보는 이에게 작가의 것 즉 타자의 것이 아닌 바로 나의 것일 수 있다는 동조와 강한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킨다. 그 순간 화면에서 비로소 평소에 짐작하지 못한 자신과 삶의 특질을 길어 올리고 대면하게 된다. 작가의 노동과 삶의 애정, 자아의 성찰로 이루어낸 범상하면서도 생경한 풍경에 대한 응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삶에 대한 반추와 정념을 불러일으키면서 머리와 가슴에서 잔상처럼 맴돈다. 이것은 예술이 우리에게 행하는 바이자 존재해야할 이유다. ■ 홍지수

Vol.20170318a | 이지숙展 / LEEJISOOK / 李芝淑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