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 - 그림

이명미展 / LEEMYUNGMI / 李明美 / painting   2017_0320 ▶ 2017_0422 / 일요일 휴관

이명미_동물그리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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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320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동덕로 36-15(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Tel. +82.(0)53.426.5615 www.bundoart.com www.facebook.com/gallerybundo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에 나왔던 김유택의 소설 『어메이징 그라스』는 소를 키우며 순박한 삶을 사는 한 목부의 이야기다. 주인공 신지하씨에게는 외양간에서 힘든 일을 하며 늘 입에 달고 흥얼대던 노래가 있었으니 그게 어메이징 그라스인데, 노래 제목이 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걸 어느 날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단편을 쓴 소설가는 주인공의 아주 개인적인 에피소드 외연에 1980년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복잡하게 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우습고 동시에 슬프다. 예로부터 문학은 이런 감정의 분출 매개를 페이소스라고 이름 지었고, 근래에는 '웃프다'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명미_화분그리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cm_2016

화가 이명미의 그림을 페이소스 같은 식의 설명을 붙이면 내가 너무 넘겨짚은 티가 날까? 그 소설이 월간 『소설문학』에 1986년에 실렸고, 문학과 지성 출판사에서 책으로 묶여 나온 걸 내가 읽은 해가 1993년이었고, 우리 미술현장을 나만 잘 몰라서 그랬지, 그때 이미 이명미 선생은 어느 단계에 올라 선 화가였다. 1970년대에 콘템포러리 아트를 그 자신이 가진 조형적 상상력의 틀에 맞추어 이리저리 실험했고, 결국 가장 하고 싶던 이미지를 작업으로 원숙하게 드러내기 시작하던 때가 그 즈음이었을 거다. 그 이후 미술계에 들어와서 이 전시서문을 쓰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난 화가 이명미의 작품에 관하여 참 많은 글을 썼다. 그리고 내가 쓴 것보다 더 많은 다른 평론이나 레퍼런스를 읽었고, 또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생의 작품을 직접 보아왔다.

이명미_동물그리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7cm_2017
이명미_WOLF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7cm_2016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는 두 번째 개인전으로 기록될 『그리다-그림』은 지금까지 내가 마주해오던 선생의 그림에서 좀 더 진전된 이미지가 주류를 이룬다. 진전이라는 말, 한 걸음 더 나갔다는 뜻보다 어쩌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뭔가를 덜어내고 비우고 날렵해졌다. 독립큐레이터들이나 평론가들이야 가치자유에 입각해서 이런 미세한 변화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하겠지만, 갤러리에 소속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다소간의 불안함을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튼 홀가분해진 화면 구성은 전시 공간 안에서 그림들이 각자 제 자리를 잡아갈 단계에서도 훨씬 정돈된 모습으로 드러났다. 크게 보아 꽃과 네발 달린 짐승이 각각 1층과 2층 공간을 나누어 점유하고 있고, 2층 별실에는 세 점의 인물상 소품이 특별부록처럼 공개되었다. 소설 어메이징 그라스를 이끄는 세 가지 단초가 그라스(풀밭)와 소들과 주인공인데,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배치한 소재도 얼추 비슷하게 짜여졌다.

이명미_화분그리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7

단순해지면서 도리어 더 선명해진 조형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림 그리기가 어린 아이 장난처럼 수월하게 보이는 측면을 부각시킨다. 이는 물론 지금까지 작가가 붓 터치의 자유분방함이 가지는 호불호를 유머와 상투성이 비벼진 페이소스로 본인만의 시그니쳐로 삼는 방편이 되어왔다. 어찌되었든 간에, 화가 이명미의 예술이 진지해지는 시점은 그 그림을 글이나 입으로 바꾸어 2차 설명하는 순간부터다. 아무리 아카데믹하고 치밀한 논증의 비평이라도 그 대부분은 작가가 펼쳐 낸 유머를 제도권 미술의 중심에서 달아나지 않도록 묶어두는 목줄 같은 도구다. 작품을 둘러싼 언급이 적을수록, 그리고 침묵할수록 환한 웃음을 더 불러오는 아이러니는 내 생각으로는 이명미 미학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짧은 글조차 선생의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거추장스러운 옵션이 될 수 있다.

이명미_SA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17

그래도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한 가지는 짚고 마무리하자. 작품의 외양으로 드러나는 것과 다르게, 선생은 자기 자신을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주변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예술적 기예를 그 시대에 투영시켜 온 작가다.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갖가지 도상은 그녀가 관찰한 세상으로부터 나온 직접적인 산출물이 아니라 천진난만함을 되돌아가려는 우리 각자의 마음 한 켠을 흉내 내는 일종의 선언이다. 이 선언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함축된 기호로서의 소재, 적절한 강조나 생략을 통한 이미지의 돋움, 미리 계산된 순진함, 그리고 이 모든 요소를 가려버릴 정도로 강한 원색의 톤이라는 수단을 마련했다. 이번 새로운 작업은 밝은 원색의 대비를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그 대신에 같은 톤 내지 이질적인 색들의 은근한 조합이 그림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건 정말 중요한 사실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작업의 생애사적 결산을 향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 공개된 이 패턴이 도상의 전형으로 온전히 남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방향은 우리에게 암시한다. 그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자신들만의 특징을 새겨 넣기 위해서 복잡한 과정을 개입시키는 추상단색화풍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단순함에의 의지다. 작가가 표제로 선택한 '그리다, 그림'이라는 일종의 선언문은 더 이상 그리기가 무의미해지는 그 지점을 향하는 역설을 기꺼이 감수한다. ■ 윤규홍

Vol.20170320a | 이명미展 / LEEMYUNGMI / 李明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