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작가 릴레이전 - 오픈스튜디오

The 9th Artists-in-Residence of Yeongcheon Art Studio Relay Exhibition - Open Studio   2017_0322 ▶ 2017_1212

권영성_강산과 도심지의 관계 그래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454.6cm_201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권영성展 / 2017_0322 ▶ 2017_0326 Eiji Okubo(G-Group)展 / 2017_0816 ▶ 2017_0830 서상교 / 2017_1027 ▶ 2017_1031 김영진_김와곤 2인展 / 2017_1115 ▶ 2017_1119 정민제_양하윤 2인展 / 2017_1124 ▶ 2017_1128 오동훈_정효정 2인展 / 2017_1201 ▶ 2017_1205 조성현_김형태 2인展 / 2017_1208 ▶ 2017_1212

관람시간 / 10:00am~06:00pm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YEONGCHEON ART STUDIO 경북 영천시 왕평길 38(교촌동 298-9번지) Tel. +82.(0)54.330.6062 www.yc.go.kr bbmisulmaeul.yc.go.kr

권영성展 / 2017_0322 ▶ 2017_0326 수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수치단위는 규격을 만들고 규격은 또 다른 규격을 만든다. 규격화된 인공물에서 생활하며 규격품을 사용하며 살고 있다. 비슷한 프레임의 공산품들, 비슷한 높이의, 같은 간격, 면적에 심어진 가로수들, 똑같이 나열되어있는 건물옆면, 그 안에 규칙적인 창, 벽돌로 쌓여진 벽면, 규격화된 도로, 인도, 그 위의 차와 사람들의 방향성도 서로 저쪽이 아니면 반대쪽일 뿐이다. 사실 이런 대상은 그다지 유기적으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각각의 필요성만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때로는 하늘과의 경계선을 복잡하게, 물길을 일정하게 만들고 산의 능선을 자른다. ● 나의 그림은 이런 대상들을 개별적인 수치를 통해 자의적인 관계를 맺는 작업이다. ● 그래프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2개 이상의 서로 관계가 있는 수량의 상대값을 쉽게 이해시키는 그림이다. 나는 이런 그래프의 형식을 빌려 내 눈에 보이는 정경과 상황을 조합하여 그릴 뿐이다. 그러나 실재로는 아무런 수치적이나 비율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나의 시각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머물고 살고 있는 곳에 대하여 조금의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권영성

Eiji Okubo(G-Group)_영천의 기(한자삽입-기운기)_혼합매체_가변크기_2017

Eiji Okubo(G-Group)展 / 2017_0816 ▶ 2017_0830 영천, 작가에 의해 발견되다 ● 작가의 행위는 그 자체로서 예술적인 의미를 지닌다. 결과로서 작품이 작가가 가진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한정적 정의는 이미 철지난지 오래다. 미술의 흐름이 표현과 주제의 변화와 함께 매체와 공간의 확장으로 광폭의 행보를 보임에 따라 작가의 행위 그 자체도 미학적 성과를 띠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작가의 몸 그 자체가 매체 혹은 예술의 재료로 대상화된 것을 확인했고 몸의 움직임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작가의 행위는 작업 그 자체로 미학적 문법체계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작가는 행위를 하는 자신을 대상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자신을 익숙한 장소나 분위기로부터 축출하여 낯설고 불편한 그 어딘가로 보내 그곳에서 행하며 만나는 대상을 통해 투영하는 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 영천예술창작센터 9기 단기 입주작가 전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영천을 직접 걷고, 주변을 탐색한 지난한 과정에서 얻어진 자연의 재료로 표현한 일종의 보고행사인 셈이다. 여기에는 1990년대부터 「유라시아프로젝트」를 통해 대지미술가(Earth Art, Land Art)로서의 면모를 굳건히 한 오쿠보 에이지(Eiji Okubo)를 위시해 토모이 신이지(oto Shinich Tomoi), 나가타 히로시(Hiroshi Nagata), 마루오카 아키코(Akiko Maruoka) 이렇게 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익히 알려졌듯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작가는 오쿠보 에이지다. 미니멀 아티스트로서 그는 1990년 대 이미 한국을 비롯, 인도, 몽골 등을 여행하며 익숙하지 않은 현지의 자연과 문화를 탐구하고 땅을 캔버스 삼아 보여주려 했다. 그의 작업의 맥락은 이번 전시에서도 드러난다. '걷기'라는 행위는 그의 작업의 근간이 되는 행위로 이를 통해 그는 영천에서 그의 작업의 맥락을 견지하는 대상을 발견했다. 그것은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그것이 뿌리박고 있었던 흙, 돌 등이었는데 이것들은 오랜 시간 영천의 역사 그 자체이자 목격자인 셈이다. 따라서 그 자신이 밝혔듯 오쿠보의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은 위치가 바뀐 재료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에 함유되어 있는 시간, 그리고 걷기라는 행위의 알리바이다. ● 이러한 오쿠보의 인식은 함께 전시에 참여한 다른 작가에게도 발견된다. 토모이 신이지는 영천에서 발견한 대상에 종이를 대고 '긁는(frottage)' 작업을 선보였다. 이와 함께 그 대상의 좌표를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행위와 그것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오쿠보의 맥락을 공유한다. 어떻게 보면 토모이의 작업은 사진 촬영이라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는 바, 대상과 그것의 목격자가 동시에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마루오카 아키코의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은 자연에서 채집한 나뭇가지, 작은 꽃, 나뭇잎 혹은 작은 풀잎, 돌 그리고 누군가가 흘리고 갔을 인공의 물건 등이다. 그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은 이러한 대상물은 이곳 영천과 그리 연관이 없었던 '이방인'에게 '발견된 것'으로 이곳을 걷는 행위를 통해 재해석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박물관의 유물로 여기게 만든다. ● 그렇다면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들이 낯선 곳에서 발견한 대상을 열거하는 내용일 뿐일까? 왜 작가는 별 의미없어 보이는 행위를 '별 의미없어 보이는 익숙한 대상'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걷기와 거기에서 발견한 대상을 취합하는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 누군가에겐 익숙한 영천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이처럼 익숙한 의미가 새로움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요란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어떻게 보면 쓸모로부터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지만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하는 예술의 본질과도 닿아있다고 하겠다. 원래 본질은 그렇게 단순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 황석권

서상교_삶-무게_닥죽, LED_가변설치_2017

서상교 / 2017_1027 ▶ 2017_1031 각자의 삶 자체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인생의 뒤안길 쳐져 늘어진 가마니처럼 무기력해지는 나이가 되고 갈라지고 찢겨진 가마니이지만 그 속을 헤아릴 수 없지만 빛으로 희망과 미래를 밝혀 보고싶다. 닥죽의 섬유질이 빛에 의해 선명하게 얽혀있는 모양들이 뒤섞인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다. ■ 서상교

김영진_38번건물_포맥스, 좌대_종이에 유채_가변크기, 59.4×42cm_2017

김영진_김와곤 2인展 / 2017_1115 ▶ 2017_1119 파편의 경치(이상이 1931년 7월에 「조선과 건축」 지에 발표한 시의 제목): 광장으로부터 도망친 자의 기록 ● 김영진 작가의 개인전 『38번 건물』은 작가가 1년 동안 영천 레지던시에서 생활하며 한 건물 안에서 수집하고 기록한 다양한 텍스트, 소리, 드로잉 등을 시각물로 모아 선보인다. ● 이번 전시는 그가 지금까지 탐구해 온 다양한 주제들 속에서도 무엇보다 공간과 그 공간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현상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 「38번 건물」은 그의 2014년 설치 작품인 'Nygjnoiu(Nygjnoiu는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조합하여 만든 애너그램(Anagram)이다. 애너그램(Anagram)은 단어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철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문장이나 단어를 만드는 놀이이다. 이처럼 제목을 결정하는데도 분해와 조합 그리고 놀이의 개념이 들어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Straße. 333 Gebäude 1'(Nygjnoiu Street 333 building 1)를 원형으로 한다. 'Nygjnoiu Straße. 333 Gebäude 1'은 상상 속 건물을 한 권의 책으로 압축시켜 놓은 작업으로 이 책은 특정 공간의 물리적 정보를 담은 단순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 속의 '12층 중앙홀 네 번째 복도 오른쪽 세 번째 문'과 같은 무색무취의 설명들은 각각의 페이지에 나열되어 있고 따라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 진다. 관객은 이 문장들이 이끄는 대로 안내되어 가상의 세계로 진입하지만 결국은 개개인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보이지 않는 건물 안을 헤메이게 된다. 이처럼 김영진 작가는 형체와 구조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지만, 동시에 수 없이 많은 이정표가 세워진 기이한 장소를 제시한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 전시되는 비디오, 드로잉, 입체물은 자기가 세워둔 안내문을 따라 이동하지만 정작 자신도 예상치 못한 장소에 다다르게 된 작가의 경험과 그곳에서 목도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대한 관찰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의 장소에서 발견한 감각의 잔해를 미적 요소를 통해 다시 또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고있다. ● 이전의 작품들보다 더 자유로워진 형태의 변형과 넓은 범위의 색채 사용은 이러한 재창조 과정을 하나의 유희적 행위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단순한 언어로 미지의 공간을 지칭하던 이전 작업과 달리 적극적으로 시각 요소를 끌어들인다. 그는 원래의 공간을 색과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하는 일이 어린아이들의 레고 놀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을 분해하고 그 잔여물을 다시 재조립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몽상과 유희의 국면이 어떻게 초래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 ▽이여 ! 나는괴롭다나는유희한다 (이상, 「파편의 경치」 中) 위의 이상의 시 「파편의 경치」 일부에서 드러나는 상황의 전복은 김영진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발견된다. 이상의 시에서 쉽게 발견되는 주인공들의 고립된 상태와 그로인해 발생하는 탈주脫走 행위는 김영진 작가가 일정한 공간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곳에서 비가시적 안식처를 생성하여 홀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의 초기 비디오 작업들 속에 드러나는 고립된 인물의 초상은 이후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유희하는 인간의 모습에 이른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공간을 끊임없이 관조하는 작가의 행동은 공유된 환경에서 떨어져나와 자신만의 세계를 건축하는 개인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게 된다. 스스로 광장으로부터 도망쳐나와 사방이 둘러싸인 껍질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자극없는 권태 속에서 직접 역동적인 환경을 만들어내는 개인의 생존 과정이 김영진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한다. 이렇게 한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밀접하지만 온전히 분리된 모순적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강박적인 관찰 행위가 끝내 미적 놀이로 승화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안과 밖이라는 개념을 때때로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은 그러한 안과 밖의 변증법적 경계가 완전하게 붕괴되고 해체된 형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분리된 벽과 기둥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안과 밖의 규정에 의구심을 일으킨다. 과연 안은 어디에 있는가? 밖은 어디에 있는가? 파편화된 공간의 흔적들로 작가는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지만 그 형상들조차 온전하게 안과 밖이 따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 대립 개념을 언급한다는 것은 작품 자체가 작가 개인의 내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안과 밖은 단순한 실내와 실외의 관념을 넘어서 한 인간이 공간과 맺는 관계에 따라 정의되며 내부에서 내부로 파고들 때 끝없이 분해되는 무한無限의 양면兩面이다. 그리하여 작가가 특정 장소안에서 겪는 변화와 심리적 상태는 다층의 면과 색채들로 은유되고 결국 한 인간의 정신의 공간을 시각화하기에 이른다. 비디오 작품에서 더 두드러지는 크고 작은 변형들은 한 공간의 미세한 부분이 사적인 시간과 역사마저 담아내어 한 개인의 내밀한 심상의 도시를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자이라(자이라는 책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도시이다.)의 현재를 묘사할떄는 그 속에 과거를 모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도시와 기억 3 中) 이렇듯 작가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색상과 모양들은 필연적으로 작가 개인의 해석과 연관되어 있지만 동시에 하나의 시각물로서 작가가 개입한 흔적을 차단한다. 그렇기에 관람자의 입장에서 「38번 건물」은 해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체험해야 할 새로운 세계가 된다. 즉, 관람자는 김영진 작가가 흩뜨려 둔 온갖 몽상의 조각들을 또 다시 분해하고 조립하며 작가가 작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경험한 정신적 놀이를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이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수많은 면과 색으로 축조된 공간의 틈새를 이리저리 오가며 작가가 경험한 유희 행위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이 한번도 가보지 않았으나 이미 자신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파편의 경치를 마주하게 되길 기대해본다. ■ 정수

김와곤_환영을통해본자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2×132cm_2017

물체가 물에 떨어지면서 만든 파편의 형상 ● 김와곤의 "환영을 통해본 ... " 연작은 1980년대 말에 인체와 사각형의 틀을 사용한 작품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약 30년 가까이 진행 되었다. 처음에는 검은색을 중심으로 하는 무채색 작품에서 출발하였으나 1990년 '미술대전'에서 색상을 넣어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색상이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환영' 연작을 표현해 나갔다. 그동안 '환영' 연작에서는 남.녀의 인체, 꽃, 산, 들판, 바다, ... 물, 물방울 등 소재들은 바뀌어 왔으나 초현실적 기법은 변함없이 독특한 표현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 근래 들어 김와곤이 작품을 제작하는 주제는 '물'이다. 물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전에는 물방울을 표현하였는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영롱한 물방물을 표현했을 뿐 아니라 물방울 속에 경치를 담아 마치 물방울이 섬처럼 보이는 풍경과 맑은 물이 있는 풍경들을 보여주었다. ● 물은 투명하고 외형 형태가 자유롭게 변화하는 특성이 있는데 김와곤이 최근 들어 관심 갖는 장면은 물에 사물이 떨어지면서 튀겨지는 모습과 그 파편들이다. 그리고 김와곤은 물의 표면이 튀겨져 나가는 파편들의 모습을 마치 카메라로 빠르게 포착한 것처럼 그려내고 있다. 물이 튀겨진 형상은 어떤 물체가 어떤 방향으로 물의 표면에 닿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물이 튀겨나가고 파편과 물방울이 생긴다. 여기서 튀겨 나가는 물과 물방울 그리고 파편들은 어떻게 포착하여 그렸는가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물이 형상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듯이 물에 튀겨져 나오는 물과 물방울 그리고 파편들은 자유로운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김와곤은 물방울이 튀겨져 나오는 형상을 약간의 연출을 통하여 포착한다. 얼음을 물에 떨어지게 하여 물이 튀겨져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기도 하고, 투명한 유리제품이나 구슬 등을 물에 떨어지게 하여 물이 튀겨져 나오는 순간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때 물이 튀어 나오면서 왕관 같은 형상을 지니기도 하지만 보다 세밀하게 관찰하거나 빠른 속도의 카메라로 포착한 형상처럼 물방울이 튀겨져 파편화된 형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이 튀겨지는 것을 표현한 이유는 물이 형상은 있으나 정해진 형상이 없이 주변 여건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 ... 물과 튀겨진 물방울들을 화면에 가득 채워 그리면서 맑고 깨끗한 세상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싶다. 그리고 '환영을 통해본 자연'이라는 제목으로 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생명성의 모습을 표현해 보고 싶다. 근래의 작품들은 극사실의 기법으로 표현을 하였는데 물의 표현을 보석처럼 반짝이며 생명의 근원으로 빛을 발할 수 있게 형상화 하여 담아 두고 싶다. 그리고 한 방울 두 방울 물이 튀겨져 나가는 형상을 통하여 자유와 변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다. " 라고 말한다. 여기서 극사실 기법을 사용하면서 물방울이 튀겨 나가고 파편화되는 형상을 그렸으며 이는 생명의 근원과 자유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인류는 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다. 인류의 원시생활도 물이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물은 생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화나 신앙 등 우리 문화에서 볼 때 생명력과 풍요를 나타낸다. 그리고 물은 정화를 의미한다. 나아가 자연과 세계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섭리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순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 물은 인간들에게 생활의 풍요로움을 주었고 문화를 만들어 주었다. 탈레스는 물을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만물의 근원은 땅, 물, 공기, 불이라고 하였다. 김와곤은 물의 연작과 물위에 떨어지면서 튀겨져 만든 파편의 작품을 통하여 물을 생활문화를 넘어 그림으로 예술문화에 접목 시키고 있다. 그리고 물의 소중함을 넘어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메신저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 오세권

정민제_어쩌다엄마_종이에 혼합재료_43×32cm_2017

정민제_양하윤 2인展 / 2017_1124 ▶ 2017_1128 정민제 작가의 패브릭과 바느질, 그리고 여성적 공간 ● 정민제 작가의 작품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는 늘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 그 밖에 주변의 여성들에게 집중된다. 그들은 모두 한 가정의 엄마로 살면서 외부와 차단된 일상 속에서 공통적으로 화초를 가꾸고 키워내는데, 작가는 그들은 이러한 모습에 집중했다. 흥미롭게도 주변의 여성들은 여러 식물들을 키우고 가꾸면서 자아를 찾아가기도 하고, 마음속 응어리를 덜어내기도 하고, 식물을 통해 치유받기도 하며 그녀들의 손아래 식물들을 키워나갔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를 작가는 「화분」 연작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작가의 작품 「이모네 베란다 정원」, 「순자의 비밀화원」, 「숙이네 베란다 정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 「화분」 연작에서 작품의 소재로 사용된 패브릭과 바느질은 작가의 삶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뜨개질 하시는 엄마, 바느질 하시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에 이러한 소재는 늘 작가에게 친숙했다.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 고분 분투한 작가에게 패브릭과 바느질은 운명처럼 자연스레 연결되어왔다. 또한 패브릭과 바느질에 의해 작가의 작품은 인간적인 감수성과 여성적 취향이 한껏 강조되고 있다. ● 「화분」 연작을 만들 때 사용된 패브릭은 처음에는 원단을 구매하거나 작가의 어머니가 직접 구해다 주신 것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패턴이나 재질이 다양하지 못해 한계를 느꼈다. 이후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위해 부산 국제시장에서 직접 고른 구제 의류를 사용하게 되면서 다양한 패턴과 재질을 얻을 수 있었다. 작가는 "쓰고 있는 패브릭은 이미 한 번 삶을 산 구제 옷의 천을 사용하는데, 자식들 키우느라 자신에겐 돈 한 푼 못 쓰는 옛날 엄마들의 인생과 방식이 잘 맞물린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공수한 패브릭을 다시 세탁해서 필요한 부분을 제단하고, 손수 바느질해서 「화분」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의 개념과도 자연스레 이어지며, 「화분」 연작에서 식물의 줄기와 잎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 2016년에 제작된 작품 「그녀들의 인생 설계도」부터는 적극적으로 인물 드로잉을 그려낸다. 이 작품은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지와 같은 장소에서 그동안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온 친구들의 이야기와 꿈을 드로잉으로 풀어내며, 그날의 분위기를 담았다. 종이위에 펼쳐진 인물들과 식물의 드로잉은 단순하면서도 시선을 끄는 개성이 있다. 종이위에 연필, 크레파스뿐만 아니라 천과 바느질로 즉흥적으로 구현하였다. 이는 절묘한 미적 감각을 내비치며, 관람자의 심리적인 몰입을 유도하고 있다. ● 이렇듯 주변의 여성들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작가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작가는 "「어쩌다 엄마」 연작은 결혼 이후 엄마가 되고, 생각지 못한 변화에 스스로 놀라고 감당 못하면서, 그 변화에 적응하고 가치를 다시 찾아내려고 노력해온 나의 이야기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작품 「그녀들의 인생 설계도」부터 등장한 인물은 「어쩌다 엄마」 연작에 주요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의 언급처럼 이는 본인의 모습이자 주변 여성들의 모습이며, 고진감래 자식을 키워낸 모든 엄마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이 인물은 엄마의 모습으로 오히려 무표정으로 관람자를 관조하고 있다. 인물은 갖가지 식물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이는 이전의 화분 작업에서 여성의 입장이 반영된 경험적인 공간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작가의 얼굴이자 이야기가 된 「어쩌다 엄마」 연작은 종이와 벽에 느슨하고 분방하게 드로잉하거나, 패브릭과 바느질을 접목시킨 입체적인 조형물로 만들어냈다. ● 이렇듯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펼쳐졌던 여성 혹은 엄마의 세계는 적재적소하게 작품으로 재해석되어 관람자가 있는 전시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의 소재와 표현은 여성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며, 이는 남성 작가들은 쉽게 경험할 수 없고, 섬세하게 표현해 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작가는 그동안 추상적이거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성을 작품으로 구현하였고, 이 과정에서 패브릭과 바느질로 만들어낸 수많은 화분과 다양한 드로잉 등의 여러 분야를 통해 예술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 고재령

양하윤_달을낚아(Moon hunter)_삼베에 혼합재료_90.9×72.7cm_2017

운명은 예술이 된다 ● 서양화가 양하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드러내려 한다. 회화 양식의 오랜 역사 속에서 그림은 그 안에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관계의 여러 가지 경우를 담아왔다. 예컨대 화가들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개인의 표정과 동작, 의상과 구도가 다른 인물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벌이는지 묘사하려고 애써왔다. 현대 미술이 품은 추상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재현된 인물상을 때로는 간략하게, 때로는 모호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는 극단적으로는 하나의 기호처럼 제시된다. 양하윤의 회화도 이와 같은 범주에서 시도되었다. 그녀의 그림은 관계의 기호를 점 선 면 색 도형과 같은 회화 구성 요소를 화면 속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형상을 나타내는 그림 속 관계 묘사에서 대상들이 점유하는 구도는 추상 회화에서도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있다. ● 양하윤의 회화 또한 이러한 전형성을 가진다. 작가가 어쩌면 조망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의 그림이 서양 회화의 스타일이 진화해온 궤적 위에 있는 한 구간에 자신의 이력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관찰한다. 20세기 미술의 주요한 한 가지 경향이 그림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덜어내는 것 아니었나? 양하윤도 그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그림들은 온전한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점과 선을 지워가고 있다.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던 수개월 전에 작가는 그처럼 거추장스러운 요소를 비우면서 남은 부분을 색으로 보충하려는 심적 상태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나의 결과로써 우리 앞에 제시된 작품은 그런 색마저도 전체적으로 톤을 가라앉힌 이미지로 남는다. ● 이 과정 끝에 작품의 외형은 바로 작가가 실재의 삶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궁금증을 만드는 매개가 된다. 그림으로 표현된 그 삶 속 관계는 앙상하고 동시에 사려 깊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불안을 암시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그녀가 공식적인 언술을 통해서 밝힌 것은 그렇게 양적으로 풍부하지 않다. 다만 족히 짐작이 가고, 한 개인의 특별한 일로만 볼 수 없는 게 뭔가 하면, 미술 대학 학부와 대학원을 거치면서 지금껏 그린 작품들이 자기를 진실하게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이런 성찰은 화가 지망생으로서, 또는 신인작가로서 지난 십 수 년의 시간이 방향을 잘못 잡았을 수도 있겠다는 반성이며, 그렇다면 지금 와서 무엇을 재편해야 옳은 일인지에 관한 불안을 그려내지 않을 수 없다. ● 이 조바심 내지 불안은 그녀의 그림 속에서 반복되는 붓질과 창백한 색조를 드러내는 동기일지도 모른다. 사실 모든 예술가들이 본인이 맞닥트린 상황을 그런 위기로 규정하면서 작업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미술은, 특히 추상회화는 뚜렷하고 단정적인 보고서나 증거물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쉽게 포착되지 않으며, 간단히 평가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몰입하면 작가 양하윤이 원래 가졌을 이 세계에 대한 미적인 파악과는 엉뚱하게 멀어지는 쪽으로 향할 수도 있다. ●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작가는 자기가 준거된 이 세계에서 스스로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지점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사실 이건 그 어떤 예술가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비슷하게 인식하는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정상적(비예술적)인 관계로의 복원을 원할까, 아니면 고립된 현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까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측면이 있다. 주변과의 고립은 또 다른 세계와의 통로다. 미래가 보장 안 된 채 현재에 갇힌 현 시점 자체가 미래에 빛을 밝힌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한은 현재를 풍요롭게 만들고, 자신을 높이는 방편이 된다. 양하윤도 그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가가 되어간다. ■ 윤규홍

오동훈_Flying Horse_스테인레스 스틸_240×240×120cm_2016

오동훈_정효정 2인展 / 2017_1201 ▶ 2017_1205 충돌과 확장 ● 오동훈의 버블맨은 비누거품을 단위형태로 삼아 넘어질 듯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나 움직이는 동물의 모습으로 생명력과 동세를 드러낸다. 동심을 자극하는 거품, 움직이는 사람과 동물의 친근한 형상이지만 정작 작품은 기이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 비누거품은 비정형이며 무게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 오히려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보인다. 또한 대기의 흐름에 따라 모양을 바꿔가며 빠른 속도로 바람이 불거나 거의 불지 않는 잠잠한 대기 속에서도 거품은 제 페이스로 공중을 유영한다. 작가는 이러한 비누거품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다. 그래서 버블맨은 육중한 무게감을 상상하게 하며 표면은 차갑고 형태는 불변의 것으로 보인다. 버블과 스테인리스 스틸의 이질적인 조합은 충돌의 기운을 발산하기에 어린아이의 악몽 같고, 팀 버튼의 영화 같다. ● 작가는 자신이 조율하고 제어할 수 있는 조건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초기작에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함과 엄격함이 작품의 물성과 조형성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버블맨 시리즈에서도 계속 된다. 언뜻 보기에 형상과 색채가 달라지고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고 치밀한 설계가 전제된다는 점은 유사하다.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정한 비례를 고려하여 버블의 크기를 결정하고, 그 크기에 정확하게 맞는 연결부위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정밀함을 감추고 고정불변의 형태를 유연하고 가변적인 것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을 통해 충돌의 에너지를 작품 내부에서 외부로 꺼내어 확장시키고 있다. ● 작가는 이러한 확장을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블맨의 구성요소로 사용되었던 버블이 「White Bubble」(2017)과 「Human Bike」(2017)에서는 오브제와 분리되어 존재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버블만이 아니라 2D 영상으로도 버블이 등장한다. 작가는 버블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의 물성을 덜어내고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 작품의 내부에서 외부로, 그리고 작품에서 분리되어 공간으로 확장하면서 충돌은 다른 밀도와 성격의 에너지를 얻는다. 내재율이 외형율로 바뀌면서 자율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버블맨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 이계영

정효정_body as a shape of soul_단채널 비디오_00:02:14_2017

정효정 작가의 작업은 소소한 일상의 관찰에서 비롯된다. 그때의 느낌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떠오르는 단편적인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나열한 산발적인 기록들을 정리한 뒤, 내러티브가 갖춰지면 스케치나 드로잉, 사진 등의 물리적인 형태로 작업을 이어간다. 작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완성되기도 하지만, 사물과 재배치하여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내어 원본과는 또 다른 서정적인 느낌과 감성을 자아낸다.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이미지로 접했을 때 섣불리 이해가 어려워 그 내밀한 감정을 엿보고자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작가는 일상의 대상에 감추어진 시각적 가능성을 예민하게 선별하여 단순한 선과 색으로 표현한다.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지 않지만, 그것에는 개인적 감성과 정서의 흔적이 이미지화되고 중첩되어 작가의 삶과 기억,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작업의 주제는 '영혼의 언어로서의 몸'이다. 몸 자체가 모티브가 되기도 하지만 작가는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는 '매개체로서의 몸'에 주목한다. 개인의 일상이 투영된 그녀의 작업에서 파편적인 단어와 문장이 영혼이라 한다면, 이것을 담아내는 물리적 매체는 몸이라 할 것이다. 작업의 매체는 캔버스 대신 종이에 유화와 색연필, 오일파스텔 등을 사용하여 무심한 듯 최소한의 언어로 대상에 대한 설명을 배제하고 압축적으로 단순화하여 몇 개의 요소들로 요약하여 구성한다. 표정 없는 움직임, 단순한 선과 색의 실루엣은 내면을 바라보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현실 공간에서 사물과 함께 사진 또는 영상으로 촬영되어 중첩된 레이어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실재하지 않는 내적인 요소에 현실감을 주는 장치이다. 인도에 덩그러니 놓인 가방, 먹다 남은 토마토와 숟가락 같은 일상에서 접하는 친근한 사물이 작품에서는 모호한 상태로 지시되고 암시적인 요소를 던져주어 보는 이의 반응을 지켜본다. 구체적인 대상에서 출발하되 그 대상의 물질성 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녀 작업의 묘미는 이러한 익숙함과 낯설음의 공존에 있는 듯하다. 이 익숙하고도 낯선 감정에 대한 환기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연관되어 있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일상의 흔적과 현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질문하고 사유한다. 때문에 시각화하고자 했던 대상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과정을 거쳐 작품 내에서 또 다른 문맥으로 드러나게 되어 저마다의 해석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녀의 작업 대상은 무심한 듯 꾸밈없이 단순화되어 있지만, 때문에 더더욱 존재의 본질과 가치를 고민한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의 작업은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시각적인 시'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주관석으로 인식하고 해석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감성에 충실한 본인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그녀의 작업은 작가 스스로의 모습을 지극히 닮아 있다. ■ 이민정

조성현_세트의미소_혼합매체_91×73cm_2017

조성현_김형태 2인展 / 2017_1208 ▶ 2017_1212 익숙한 이미지, 복잡한 세부, 정교한 선, 화려한 색은 조성현의 작품의 첫인상이다. 영화 속 캐릭터, 투탕카멘의 데드 마스크(Deadr Mask), 새, 악어 등이 그려진 이미지에서 더 많은 이미지로 끝없이 들어가야만 그의 작품 전체가 비로소 완전히 이해가 된다. 그의 작품은 이미지 속에 또 다른 이미지들을 그려 놓음으로써 이중적 이미지를 표현한다. 서로 의미가 없거나 의미가 있기도 한 이미지들이 만나 일어나는 충돌은 시각적 착시와 함께 작품에 대한 흥미로 이끈다. 작품 안에 있는 이미지들을 꼼꼼히 보면서 작가가 기울인 노력과 그 결과물에 감탄하게 된다. 하나하나 그어진 가는 선들의 집합은 작품에 몰두하는 작가의 성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작품을 제작하는 작업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만의 우주가 된다. 이것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작품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세밀하고 치밀한 계획안에 구축된 이미지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으로 탄생된다. 그는 이미지 중독자 같다. 작품의 등장하는 무수한 이미지들은 긴 시간 동안 그려나가는 집착과 인내의 시간의 산물이다. 일기나 일지를 작성하는 기록 행위 같은 그의 작업은 곧 자신의 "공상을 담을 그릇"을 빚는 행위와 유사하다. "전통적이며, 신화적이고 판타지 한 것"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그 이미지를 토대로 그릇을 빚고 그 그릇에 다시 이미지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 조성현의 작품이 이미지 안에 이미지가 그려 있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이중화와는 다르다. 김동유의 '얼굴-이중 이미지 연작'과 같이 멀리서 보는 이미지와 가까이서 보는 이미지가 다르고 두 개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화면으로 보이게 하는 작품과는 다르다. 또한 서로 관련 있는 인물이 다른 하나의 인물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방식과 다르게 관련 있는 이미지 또는 전혀 관련 없는 이미지가 뒤엉켜 이미지 안에 그려져 있다. 그의 작품에서 어떤 것도 유추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작품은 과연 어떤 이미지가 숨어 있을까 하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작품에 집중하게 한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하나하나의 개체를 유의해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 작품 안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그의 작품은 개별 이미지를 다각적으로 결합하는 독특한 조형 어법을 구사한다. 이러한 조형 방식은 작가의 현실인식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독자적인 서사 구조로 풀어가면서 작품 전체의 서사를 완성한다. 주제에 따른 소재를 작품 안에 적절히 배치하고 그것을 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 일련의 서사구조를 가지고 그 서사를 전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뒤엉켜 있는 이미지가 우리 자신의 헛된 욕망을 하나의 서사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욕망은 에로틱하거나 다양한 패턴이기도하고 은유적 표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에로틱한 몸짓의 여성 이미지는 고뇌하고 외롭고 소외되고 파편화된 익명적인 존재들의 이미지와 중첩되고 다양한 패턴은 복잡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 뒤엉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수백 개의 개체가 모여 하나가 되어 있는 그의 작품은 꿈틀되는 헛된 욕망을 가두고 있는 신비로운 상자 같다. 이 헛된 욕망은 곳곳에서 모순을 양산하고 슬픔을 생산하고 비극을 잉태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헛된 욕망 즉 우리 사회의 부조리, 기회주의, 물신주의 등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비판적 시각이 이미지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여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평범한 시각과는 다른 특별한 사유를 덧붙이고 있다. 악어의 눈물, 세트의 미소 등의 작품에서 비판하고자하는 사회의 부조리는 제목, 그려진 이미지, 이미지 안에 그려진 작은 이미지들이 서로 결합되어 현실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보여지는 이것은 다시 정교하고 복잡한 이미지로 우리를 돌아가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악어의 눈물이라는 작품은 위정자를 빗대어 말하는 통속어에서 작품 제목을 가져왔다. 이 말은 악어가 먹이를 잡아먹으면서 먹히는 동물의 죽음을 애도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패배한 정적 앞에서 흘리는 위선적 눈물을 가리킬 때 쓰인다. 작가는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을 이미지화하고 이것을 우리 사회에 곳곳에 있는 위선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제목에 집중하지 않으면 복잡한 물고기의 이미지에 단순히 몰입하게 된다. 그래도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작품 주제의 표현이 비교적 직접적이지만 다른 작품들은 제목 만으로 작품 주제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제목만으로 작품의 주제를 단순히 파악할 수 있는 것 만은 아니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비판적 거리 두기이다. 그의 작품이 정교하고 복잡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오늘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조성현은 이미지 안의 이미지, 정교하고 복잡한 묘사,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한 서사적 전개 등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서구의 신화와 판타지적 이미지를 연구했던 그는 최근 우리의 전통적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전통적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 현실의 담론을 담아가는 것이 더설득력있고힘있는작품이될것이라는것을알았기때문이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우리의 전통적 이미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더욱 힘찬 열정도 기대해 본다. ■ 서희주

김형태_복개미_캔버스에 유채_33×90.9cm_2017

서정적 초현실주의로 표현하는 내면풍경 ● 화가 김형태를 처음 만난 건 20여년전이다. 오랜 세월이 말해 주듯 필자는 그에 대해 꽤나 많은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원고를 정리하며 내가 아는 김형태는 어디까지인지 새삼 반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영천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만난 그의 작품 앞에서 다시한번 그가 생각하는 예술적 원천과 삶의 가치관에 대해 나는 제대로 알고 있었느냐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구시내에서 미술입시학원을 오랫동안 운영했으며, 그 즈음에 필자와 같은 미술서클에서 작품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당시로선 전업작가라는 막연한 직업의식이 성숙해지지 못한 탓에 서클발표회는 그저 화단에서 자기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역할로만 거치고 있었으며, 작가 스스로 자존감을 확인하고 화단 선후배간 교류의 장으로 활용될 뿐이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이어진 서클발표회와 모임은 비슷한 또래의 작가들의 잦은 교류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한적 할 때면 가끔씩 찾았던 그의 작업실은 새내기 작가로서는 제법 근사한 작업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작업실 이젤 위에 놓인 작품들은 자연을 모방하고 표방한 구상화풍이 즐비했고, 구상회화의 진솔함이 제법 중량감을 더 해 주었다. 젊은 작가의 예리한 시각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표출한 다채로운 작품경향들은 고착화된 대구화풍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필자가 미술행정과 평론활동을 시작하며 미술서클에서 만남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말았다. ● 20여년의 세월은 오랫동안 창작활동에 몸담았던 그에겐 꽤나 긴 여정이었나 보다. 풋풋했던 구상화풍은 이제는 현실과 이상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자신의 내면을 작품 속에 지긋이 담아내고 있다. 현실은 우리의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가 요구하는 수많은 규율과 규범을 조율하며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더불어 완벽하지 못한 불안감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소박하고 충실하게 종속되길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본질적인 자유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현실은 또 다른 완벽함을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는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꿈과 이상의 세계를 화려하게 실현해 냄으로써, 예술이 가지는 창의성 이상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결국 극사실주의 기법을 혼용해 그려내는 비현실적인 화면구성은 현실과 비현실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예술의 광의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 김형태의 근작들은 삶의 경험에서 겪게 되는 작가의 현실, 소소한 일상 등 그곳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작가의 내면적 이상을 담고 있다. 대구를 떠나 영천에 정착한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치열했던 대도시의 미대입시학원은 자신의 자유의지와 욕구의 표출을 억제하는 현실의 커다란 장벽이 되었고, 낯선 환경변화와 새로움에서 비롯된 긴장과 기대감은 회화가 주는 재현적 묘사기법에서 벗어나 신비로움과 이지적인 환상이 내재된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변화를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내면적 풍경을 다룬 작품들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의 삭막했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이 주는 특징 중 하나는 유채가 주는 재료적 관념에서 벗어나 마치 수채화 기법으로 묘사하듯 엷은 채색기법을 통해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되어 반영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두터운 질감에서 오는 투박함과 안료의 밀도감이 주는 무게에 벗어나려는 의도가 깊이 작용하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단색바탕에 몽환적 화면구성이 자아내는 서정적 회화양식 역시 초현실적 기법에 의한 작가의 내면의식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한편의 동화 속 깊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장면처럼 문학적 감수성마저 느끼게 해주며 자연과 연관 된 일상적인 소소한 모습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청색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노란색과 흰색이 가미된 화면과 녹색이 가득한 화면 이미지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적인 색채이미지는 이성적이어서 차갑게 느껴지게 마련인데 반해 순화된 비현실적인 색채이미지는 현실적인 감각을 이탈함으로써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은 현실감각을 차단하는 시각적인 효과로 인해 몽환적이고 환상적 감정을 더욱 극대화 시키고 있다. 강압적인 성향을 의미하는 빨간 색 계열이나 반항적인 성향의 노란 색 계열에 비해 순종적 느낌이 강조되는 파란색과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녹색 계열이 주종을 이루는 작품들에서 비현실성이 주는 의식의 자유로움을 감지해 낼 수 있다. ● 미술사를 관통하며 보여주었던 조형성의 실험은 곧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 김형태의 내면에 내재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온순한 작가정신을 기반으로 무의식적인 미적 감성에 대한 표현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새롭고 창의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시대정신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는 무작정 시대적 트랜드만을 쫓아가기 보다는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과거 회귀에 의한 진보로 이어진다면 이 또한 새로운 조형성의 실험이라 생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인문학적 미학적 사유의 깊이가 내재된 예술이 진정한 시대정신의 표상이다. ■ 김태곤

Vol.20170321h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작가 릴레이展 - 오픈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