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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40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30 (통의동 6번지) 이룸빌딩 2층 Tel. +82.(0)2.730.7707 palaisdeseoul.com blog.naver.com/palaisdes
사회학적 시선으로 본 신도시의 사람들 ● 철새(migratory bird)는 매년 철 따라 움직인다. 적절한 번식지와 월동지를 찾아서 날아간다. 철새 중에는 지구의 반을 날아가는 새도 있다. 이 모두가 생존과 종족의 번성을 위한 행동이다. 생존과 번성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사람도 철새와 크게 다르지 않다. ● 수 만년전 부터 인류는 보다 나은 삶의 터를 찾아 이주해왔다. 날씨와 토양과 환경이 인간의 이주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보다 복잡한 요소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요소가 인간들이 삶의 터를 고르는데 중요한 요소가 됐다. ● 한국사회에서 인구의 이동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1945년 해방 당시 서울의 인구는 90만 여명으로 채 1백만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15년 후인 1960년에 이미 244만 여명에 이른다. 특히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던 1970~80년대에는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한다. 1970년의 543만 여명의 인구는 80년대 말에 그 두배에 이르는 1천만명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해방 40년 만에 서울에서 태어나거나 이주(移住 ; Migration)한 인구가 900만명을 상회했다는 뜻이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 즉 이촌향도(移村向都) 현상은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 두루 나타났다. 너도나도 서울로, 도시로 이주했다. 이는 곳 전통적 농촌사회의 공동화와 해체를 의미했다. 동시에 과밀화되는 도시에서의 삶은 지나친 경쟁사회, 즉 생존 자체를 위한 악다구니 삶을 의미하기도 했다. 농본사회의 전통은 뿌리부터 뽑혔고, 도시민들은 계속 주거지를 옮기는 이주민의 삶으로 변하고 있었다. 1977년 주택은행의 통계는 도시민의 77퍼센트가 1년에 1회 이상 이사하고, 같은 해 청주시민의 22퍼센트가 1년에 2회의 이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 이렇게 유목민처럼 변한 도시민의 삶은 새로운 말들을 탄생시켰다. "쪽방", "달동네", "옥탑방", "이삿짐센터" 같은 주거와 관련된 말이 생겨나는가 하면 "공돌이", "공순이"처럼 직업을 하대하는 말과 "날품팔이" 같은 하루 단위의 고용방식을 뜻하는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때, 이러한 사회현상과,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는 예술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문학이 활발히 그러한 새로운 삶과 환경을 다루었고, 연극과 영화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미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년을 전후해서 그동안의 서정적 풍경과 인물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추상미술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 후에는 내용이 배제된 채 형식의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추상미술에 대해 반발이 일어난다. 즉 80년대에 들어 사회적 현실과 그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미술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앞선 60년대의 '서정'이 아니라 80년대의 '서사'를, 그리고 역사와 현실을 담아내고자 하는 새로운 미술의 등장이었다. 이른바 "민중미술"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이종희작가가 그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부터 변화하는 세계를 해석하는 사회학적 관점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이종희전의 제목은 "떠다니는 섬들(The Floating Islands)"이다. 이종희의 작품에 나타나는 형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인가를 위해, 어딘가로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 사람들은 대게 자동차나 배 같은 운송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그들은 무엇인가에 집중한 채 서둘러 어딘가로 가고 있다. 결국 작품의 주제는 여기에서 저기로 바삐 움직이는 도시민의 모습이다. 그런데 도시민들은 여럿이 같이 있어도 섬처럼 고독하다. ● 작품들의 제목에 '이사' '이동' '이주', '달동네' 같은 단어가 동원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작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주로 경제적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뭔가 정치적인, 혹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런 경우 어딘지 경직되어 있고, 은근히 비밀스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 이처럼 작가가 '움직이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과거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장했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 마다 한번씩 이사와 전학을 해야 했다고 한다. 작품 중에 유난히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또한 고교생부터 신혼살림살이까지 서울 주변 여러 달동네를 전전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흥미있는 것은 그 달동네의 체험이 작품에 결코 부정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 풍경은 예외없이 긍정적이며 낙천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형태와 색채에서 모두 그렇다. ● 가장 최근에 제작된 작품 「러쉬아워」와 「버스 종점」은 그동안의 달동네 시리즈에서 벗어나 신선한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 모두 통나무의 가운데를 비워낸 후 그 안에 작은 인물상과 소도구들을 세워놓아 특정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시커멓고 커다란 파이프 형태는 인간적 공감이 불가능한 공간, 즉 우리가 사는 거대 도시를 상징하고 있고, 거기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걸어나오고 있거나 서있는 인물들은 감정마저 탈색된 시민들로 보인다. ● 나는 이 작품들을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디오라마(diorama)로 해석해본다. 이는 작가가 새롭게 시도하는 일종의 실험작일 것이다. 앞으로 이 작품들이 섬세한 장치와 함께 보다 큰 규모로 결합한다면 관객들에게 매우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이태호
Vol.20170405i | 이종희(들로화)展 / LEECHONGHOE / 李鍾熙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