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y green

노석미展 / NOHSEOKMEE / 盧石美 / painting   2017_0406 ▶ 2017_0428 / 월요일 휴관

노석미_Very Green 02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8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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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미 블로그_nohseokmee.com

초대일시 / 2017_040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소격동 125번지) Tel. +82.(0)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멀리 있는 산 ● 남향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밭, 논, 집 등을 지나 멀리 있는 산이 보인다. 내가 사는 곳을 기준으로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기도 하므로) 사방이 산이지만 남쪽 방향으로는 산이 멀리 보인다. 강원도의 설악산처럼 수려하지 않은 산, 크지 않고 둥글둥글 소박한 산이다. 가끔 그 소박한 산이 내겐 갓 구운 빵처럼 보인다. 나는 이곳에 와서 '멀리 있는 산' 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꽤 그렸다. '멀리 있는 산, 빛나는 얼굴'

노석미_Very Green 08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8cm_2016
노석미_Very Green 03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8cm_2016

창문 ● 폭풍이 불던 날 밤 나는 잠을 잘도 잤다. 최근 얼마간 이래저래 피로가 많이 쌓여있었던 모양이다. 간밤의 소요는 사라지고 평온함이 이른 아침의 창문 앞에 찾아왔다. 무엇들이 그 어지러운 밤새 살아남았을까? 내가 안전한 네모 박스 안에서, 안락한 이부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색색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그 폭풍 속에 잔혹하게 짓밟힌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싸우다가 어쩌면 가장 귀중한 것을 내어주었을 지도 모른다. 간밤에 사라졌을 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살아있다는 것은 나의 숨소리를 느끼며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는 것.

노석미_Very Green 09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8cm_2016

창을 열자 바람이 살짝 실내로 불어 들어온다. 나는 언젠가부터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꿈꾸었던 많은 어떤 이미지와도 같이. 나는 서울의 어느 변두리에서, 네모 박스 안에서 야생동물, 벌레, 산과 들, 꽃과 나무, 풀, 이슬, 별이란 단어를 책에서만 보며 자랐다. 성인이 되고, 여행을 떠났다. 막연하게 초록이 보고 싶어 도시를 벗어나는 버스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달려갔으며, 비행기를 타고 먼 이국의 지평선을 보고, 설산도 보고, 사막을 보고, 인도양도 보았다. 이국인의 신비로운 빛깔의 눈동자를 보고, 다른 질감의 피부조직을 보고 다양한 삶에 대해 신기해했다. 나는 이제야, 강가에 서서 아까 흐른 물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것을 자각하고 있는 이 찰나 역시 계속 다른 찰나로 교체된다는 것을 배운다. 곧 과거가 될 지금 또한 나의 과거의 소망이었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비와 눈과 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있고, 소박한 작은 네모난 창이 있는 집안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간다. 창밖엔 언제나 생경한, 내 것일 수 없는, 그래서 항상 신비로운 자연이 있다. 초록이 있고. 그것들은 숨을 쉬고 있다.

노석미_Mackerel tabby cat_종이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17

베리 그린 very green; 매우 초록 ● 드라이브를 간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저 멀리 동해까지 가서 바다를 한번 휘 둘러보고 오기도 하지만 잠깐의 시간밖에 낼 수 없는 때는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으로 길을 나선다. 친구가 놀러 와서 함께 갈 때도 있지만 나 홀로 길을 나설 때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경기도 양평의 동쪽 끝자락이다 보니 강원도가 그다지 멀지 않다. 친구들은 놀러와선 여기가 어디 경기도이냐. 강원도라고 말해라. 하고 종용하기도 할 정도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경이다보니 산들이 많다. 경기도의 아담하고 동글한 산과 강원도의 뾰족하고 크고 우렁찬 산의 경계쯤으로 보이는 산들이 즐비하다. 내가 주로 하는 드라이브라는 건 그 산들 사이로 난 작은 지방도로를 천천히 달리는 것이다. 산과 논, 밭, 작은 개울, 조금 큰 강, 그리고 드문드문 집들이 놓여있다. 어디가나 이것들의 순열조합이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다르다. 계절마다 다르다. 날씨마다 다르고, 내 마음 따라 다르다. 그러니 질릴 수가 없는 풍경이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혹은 그 옆에 가만히 서 있기도 한다. 이곳에서 산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언제나 산을 그리고 싶었는데 어느 날 산을 그리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나 다 유니크하고 아름답다. 특히 여름의 산길을 드라이브 하다보면 거대한 초록색이 뚝뚝 내게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매우 초록. 그 쾌감은 엄청나다. 길들에는 거의 인적이 드물다. 도의 접경 지역들은 대개 그런 것 같다. 지형이 험하고 사람이 모여 사는 면내 같은 거점지역으로부터 거리가 있다. 사람이 귀하게 보이고 그만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가까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연도 멋지다. 작은 집들, 일하고 있는 농부들, 축사등과 함께 인삼밭, 옥수수밭, 보리밭 등이 드넓게 펼쳐진 논과 함께 잘 어울려 있다. 거기에 작은 강, 작은 길 등이 조화를 이루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 길에 작은 트럭이 털털털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네모난 틀 안에 잘 넣어보려고 하지만 항상 내 세계는 그것에 비해 초라하다. (2017) ■ 노석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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