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수족관 파이프

2017_0408 ▶︎ 2017_0415

초대일시 / 2017_0407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은수_이정은_임지원_장윤희 정서윤_정지_지호인_최수빈_최이다

주최 / 대학문화네트워크 후원 / 축제행성

관람시간 / 11:00am~07:00pm

행화탕 Haenghwatang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19길 12(아현동 613-11번지) www.facebook.com/haenghwatang

화면 보호기/스크린 세이버는 어원적 의미를 따져볼 때 스크린의 화소를 위험으로부터 구하는, 그럼으로써 그 수명을 연장시키도록 고안되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사실 스크린 전원을 끄는 것보다 에너지 절약이나 화면 보호에 있어 매우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만약 정말로 화면 보호기에게 화면 보호라는 목적이 최우선이라면, 가령 윈도우 98의 '3D 미로 탐험'과 같은 현란한 이미지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그저 스크린에 지속적으로 다른 이미지들이 떠다니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능이 충분하다면, 무엇하러 유저가 이 미로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끔 만들었던 것일까? 화면 보호기에는 보호라는 목적 외에도 기왕이면 보기 좋으면서 즐겁게 만들고자 하는, 다소 불필요하고 잉여적인 장식과 재미가 들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흥미롭고 예쁘다 한들, 화면 보호기는 임시적이다. 스크린이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순간 화면보호기는 사라진다.

정지_거실의 남매_합판에 유채_39.4×54.5cm_2015
정지_빈 방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6
김은수_Headlineeffects on/off_폴리에스터에 유채_73×61cm_2016
김은수_Fire.toggle on/off_캔버스에 유채, 폴리에스터_123×104cm_2016
최이다_할의비밀 HAL's Secret_단채널 영상, 사운드_00:06:53_2016
최이다_유제 Entitled_단채널 영상, 사운드_00:08:21_2015
이정은_Hood_캔버스 보드에 아크릴채색_30×30cm_2017

행화탕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본체로부터 희미한 전원만 공급받는 스크린이다. 그럼에도 행화탕은 어떤 면에서 탕으로서 건재하다. 이 공간은 제 목적을 잃었지만 다시금 어떤 목적이나 형태에 의해 '새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자신이 탕이었음을 상기시킬 것이다. 행화탕의 구조가 갖는 울퉁불퉁하고 뒤죽박죽인 모양새, 시간이 덧칠한 벽돌들과 물이 왕래하며 깎아낸 외관은 탕으로서 이 공간이 기능했던 시절을 끊임없이 불러온다. 아무리 이 공간을 그것의 시간과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새로운' 공간으로 마주하겠다 한들―어차피 행화탕을 탕으로 이용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공간이지만―본기능과 역사성/시간성에 대한 부정은 반대로 그것을 불러올 뿐이다.

정서윤_Layers towards perfect white_캔버스에 유채, 스프레이_60.6×60.6cm_2017
정서윤_Layers towards perfect black_캔버스에 유채, 스프레이_60.6×60.6cm_2017
지호인_Kandinsky's Writing_종이에 타이프라이터_29.7×21cm_2017
지호인_Painting_데님_27.3×45.5cm_2016~7
임지원_밤 Night_단채널 영상_00:25:00_2015
최수빈_The imperfect tense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장윤희_덫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6

'폐허'라는 용어는 행화탕을 편리하게 분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공간과 잘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행화탕은 버려진 공간보다는 그 이전의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보다 넓은 가능성을 품은 소우주에 가깝다. 그것이 현재는 경험하지 못하는 지난날에 대한 판타지이건, 씻어내고 싶은 낡은 속성이건 행화탕은 애초에 하얀 캔버스나 화이트 큐브 마냥 중립을 지향하며 의미나 이미지를 부여받고자 한 곳이 아니었다. 탕이었던 덕분에 행화탕이 가질 수 있었던 매력들이, 더 이상 탕일 필요가 없는 이 공간―탕으로서 체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재해석 거리로 가득찬 곳으로 만든다. 행화탕이 지닌 저만의 기능과 역사가 없었더라면 이 공간은 오히려 관심을 덜 받았으리라. 결과적으로 전시라는 화면 보호기는 스크린이 예전에 충실했던 기능들을 잠시 가리기만 할뿐, 아예 지워내지는 못한다. 잠시동안 행화탕이라는 스크린을 차지하는 작가들은 오직 임시적으로 작동할 화면 보호기, 일종의 스킨을 제작한다. 작가와 작가들, 나아가 행화탕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를 잇는 희미한 연결고리는 잠시나마 공유되는 스킨이라는 표면이다. 여기에는 파편적인 이미지가 부유하며 그리는 불안정한 형태의 성좌가 있다. 이 불안정성은 행화탕이 공간으로서 갖는 잠재성 혹은 가능성, 즉 언제든 이 스크린이 다른 스킨으로 표면을 갈아입을 수 있음을 비춘다. ■ 최이다

Vol.20170408d | 벽돌 수족관 파이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