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 觀察者

백진展 / BAEKJIN / 白珍 / ceramic   2017_0412 ▶ 2017_0425

백진_NeuRoses_자기_150×150×8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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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통인화랑 TONGI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2(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Tel. +82.(0)2.733.4867 tonginstore.com

내재율을 발산하는 하얀 흙의 영토 - 기다림과 채집의 과정 ● 백진은 하얀 흙으로 결을 만든다. 그의 작업은 석고틀에 하얀 흙슬립을 부어 얇은 도판을 만드는 일로 시작된다. 그리고 틀이 흙물의 습기를 머금어 흙이 꾸덕하게 되기를 기다린다. 적당한 때에 작가는 도판 위에 눈을 고정하고 자와 칼을 쥔 손에 똑같은 힘을 주어 최대한 반듯이 그리고 동일한 간격을 유지하며 수직과 수평의 선들을 내리 긋는다. 도판에 결을 일으키는 이 일을 단지 구조의 일부로서 작은 파선들을 마련하려는 기초과정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화면의 동일함과 동질성을 파편화, 개별화시키는 과정이며 그렇게 만든 세세한 부분들로 다시 거대한 화면을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발화하고 결정되는 중요한 공정이다.

백진_NeuMe_자기_13×130×8cm_2014

작가는 자른 결들을 스폰지나 마른 천위에 하나씩 겹치지 않게 눕혀 말린다. 몸 뉘였던 장소를 옮기고 공기 중으로 수분을 날리는 과정에서 흙의 결들은 이리저리 뒤틀리고 접히고 말린다. 일정한 두께, 일정한 크기의 것을 만들려 시작한 일이나 애초에 자연에게 정형화된 무엇을 기대하고 관철시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흙은 자연이다. 젖은 흙을 말리는 주체도 바람이고 열이다. 그들은 인간 의지 바깥에 있고 인간의 노력과 의지와 무관한 독자성과 자율성이 있다. 게다가 액체같은 흙물이 얇고 말랑말랑한 막(膜)이 되기까지는 절대적 시간과 조건도 필요하다. 그리고 작가가 긴 기다림 끝에 얻는 흙의 상태는 계절과 온도, 날씨, 재료의 상태에 따라 매번 다르다. 이 속에서 작가가 할 일이란 자신이 지난 흙을 만지고 기다려온 수많은 시간 속에서 터득한 흙과 불에 대한 이해를 더듬고 결과를 예측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노력하는 것이다. 때문에 백진의 작업과정에서 '기다림'과 '인내'는 매우 중요한 작업태도라 볼 수 있다.

백진_A Drop_자기_180×600×8cm_2014

그렇다고 해서 백진의 작업이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것만은 아니다. 백진은 액체처럼 흐르고 젖어 있는 흙물이 건조와 소성의 과정을 거쳐 금속처럼 단단한 존재로 거듭나기까지 모든 변화의 과정을 집도하고 목격한다. 그렇게 얻은 결과들을 눈과 손으로 헤집고 채집하여 재구성한다. 다른 도예가들이 초기 성형단계에서 흙으로 형상을 빚어 자신의 미적감성과 의지를 부여하는데 반해, 백진의 조형의지는 자화된 백색조각들을 대응시키고 구조로 전치시키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백진_Untitled_자기, 유리 테이블_131×300×90cm, 각 51×5×5cm_2013

작가는 금속처럼 낭창하게 굽은 자화(瓷化)의 조각을 가지고 화면을 채워간다. 흙 조각 마다 달리 지닌 고유의 매스와 선이 수평으로 몸을 포개면서 융기하거나, 수직 아니면 사선, 직각으로 포개어진다. 단지 조각, 개별 단위에 불과했던 백색의 결들은 평면을 지지 삼아 출렁이듯 융기되고 균열되며 분출되다 다시 수렴한다. 줄음질 치고 때론 얇은 만곡선을 그리면서 공간을 수없이 가른다. 서로의 몸을 포개고 부딪치며 율동을 이룬다. 결이 융기하고 질주할수록 무형은 유형으로 채워지고 부재하고 광활하던 공간은 세밀하고 복잡하게 구획된다. 그 자리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축적의 땅 즉, 균열과 응축을 드러내는 조형적 화면이 태어난다.

백진_Hanging Garden_자기_131.2×91.2×10.6cm_2009
백진_Connection_자기_131.2×91.2×10.6cm_2014

백색구조의 추상성 ● 백진의 백색 구조는 언뜻 1970년대 이후 한국미술이 자연에 귀일함으로써 물성의 범자연적인 결정체로서 추구했던 화면-모노크롬회화나 서구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리 미술에서 모노크롬은 신체의 행위, 물성의 본질, 행위와 물성의 전일성을 천착시킴으로써 주체를 소멸시키고 무명(無名)으로 돌려 범자연성(pan-naturality)을 확보하려던 정신과 자아 찾기의 화면이다. 그러나 백토의 물성, 흙이 불의 격렬한 조응을 채집하고 화면으로 재구성하는 백진의 작업은 사물로서보다 '행위'를 중시하고 그림을 그리는 내내 계속적인 자기해체의 과정 속에서 근본을 묻는 모노크롬의 지향과는 다르다. 백진의 작업은 작은 항들 간의 만남이며 그렇게 구축된 구조는 일종의 추상성을 지닌다. 또한 작은 항들의 구조가 반복성을 띄면서도 그 안에 서 천차만별 다른 개별의 물질성이 개성을 잃지 않고 하나의 화면으로 함축되는 것이야말로 백진 작업의 중요한 특질이다. 이러한 특질이 백진의 추상성을 모노크롬이나 서구 미니멀리즘의 세계가 지닌 추상적 징후와 유사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이유로 짐작한다. 그러나 백진의 작업에는 '나를 털어버리는 과정'-무위(無爲)가 부재하고 행위의 흔적에서 자아를 확인하는 정신의 과정도 희미하다. 오히려 작가는 순간의 판단에 의지해 구조의 올을 엮으며 평면(plane surface)속에서 신축성 있는 리듬구조를 창조하고 끊임없이 자유와 물성, 새로운 구조를 포착하고 소유하는 즐거움에 몰입한다.

백진_NYLON_자기_81.2×81.2×10.6cm_2009

작가는 그림자를 통해 자신의 화면이 평면의 일루전이 아닌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입체조각이자 하나의 장소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누인 화면을 세우고 조명을 드리운 순간 하얀 화면은 잠재적 일루전을 방사한다. 물질의 분절과 통합으로 이룬 화면을 시간과 공간 속으로 이동시킴으로써 형상적 입체구조가 품은 감춰진 실상을 드러내고 직면하게 하는 방법이다. 오랫동안 작가가 색이 부재한 하얀 화면을 고수하는 것 역시 자화된 단단하고 얇은 결들이 지닌 볼륨과 선형 그리고 그것이 3차원 공간에서 관계 짓는 반복운동을 그림자로 하여금 더욱 명징하게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백진_Caffeine_자기_51.2×51.2×10.6cm_2015

자연에서 발췌하는 내재율 ● 자연재료의 특성에 의지해 조형적 화면을 구현하는 작가의 역할은 결국 '무엇을 창조하는 자'가 아닌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자' 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화면이라는 장소에 잠재되어 있던 내재성 즉, 그때그때 새롭게 또는 우연히 나타나는 일루전을 기대하고 발견하고 창조하는 일은 오랫동안 미술이 지향해왔던 일이자 매우 근원적 일이며 늘 새로움을 수반하는 일이기에 지루하거나 끝이 있을 턱이 없다. 애초 작가의 일이 자연을 재현하기 위함은 아니지만, 자신과 타인의 눈을 통해 문득문득 화면에 스치는 자연의 환영들 예를 들면 자연스럽게 출렁거리는 수면(水面), 연이어 겹쳐 늘어선 산의 능선, 거대한 광야의 굴곡, 바람부는 대로 몸을 눕혔다 일어나는 풀숲, 기류에 따라 모양을 바꾸며 흐르는 구름 등을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창작의 즐거움과 가능성 중 하나일 것이다.

백진_CHAOS_자기_45×45×44cm_2015

결국 작가가 상승과 비약, 불규칙한 매스들의 응집구조로 만든 다양한 형상들은 백색조각들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겉모습이 아닌, 자연의 재료로 자연의 법칙에 준하여 작업하는 내내 긴 기다림과 감각으로 찾아낸 독자적 체험과 사유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자연의 재료를 매일 만지고 자연이 물질에게 행하는 미세한 변화를 목도하고 채집하며 사는 자가 자신의 의지와 감각, 조형적 사고를 동원해 자연이 지닌 내재율과 본질을 삭임질하는 것은 당연한 의욕이자 경로다. 그것은 자연의 재료로 작업해온 많은 작가들이 오랫동안 염원하고 해 온 일이기하다. ■ 홍지수

Vol.20170412a | 백진展 / BAEKJIN / 白珍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