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보이게 하는

곽요한展 / KWAKYOHAN / 郭耀翰 / painting   2017_0415 ▶ 2017_0425

곽요한_우리 모두 가만히 있었다_장지에 펜, 아크릴채색 및 기타 재료_97×162.5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0916e | 곽요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415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30pm

예술공간 서:로 ARTSPACE SEO:RO 서울 용산구 신흥로 36길 6 blog.naver.com/seoro-art

우리는 모두 가만히 있었다, 세상은 모두 가만히 있었다 ● 곽요한은 작업노트에 이렇게 적고 있다. "2013년까지 10대 사망원인의 1위는 역시 자살이었다. 하지만 2014년 10대 사망원인의 1위는 운수사고였다. 2014년 4월 16일은 이렇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304명이 죽고 9명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세월호는 이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고이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상처가 되었다. '304'는 우리 신체에 새겨진 주홍글씨다. ● 세월호가 가라앉던 그날 아침, 우리는 어디에 있었나, 무엇을 했던가? 우리는 배가 가라앉은 시간동안, 죽음을 생중계하는 TV앞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전원구조'라는 재난방송에 안도하면서, 곧이어 재난방송이 또 다른 재난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에도 설마하면서, 그리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발을 구르면서. 그렇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 그러나 세월호가 가라앉던 그날 아침, 진도 앞바다 사건의 현장에 무엇이 '함께 존재'했던가? 생명보다 화물이 중요했던 자본의 탐욕이 있었고, 자본에 봉사하고 국민에 무관심했던 국가의 무능력이 있었으며, 자본과 권력의 야합을 은폐하는 언론이 있었다. 그리고 ··· 이러한 탐욕과 야합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우리의 무감각한 일상이 있었다. ● 아이들은 세상에게 죽고, 우리는 아이들을 잃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죽은 그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아이들을 '가만히 있으라' 했던 재난방송과 이 세상에 눈감고 '가만히 있었던' 우리의 부끄러움은 그대로 겹쳐진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그날 아침 사건의 현장에 함께 했으며, 누구도 그날의 사건현장에 부재증명을 할 수 없으리라. 곽요한의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게 하는』은 이 사건에 대한 공모의 기록이자, 우리의 존재증명인 셈이다.

곽요한_악의와 미로_장지에 아크릴채색 및 기타재료_73×91.33cm_2017
곽요한_재난방송 재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2cm_2016

"다른 것을 못 그리겠다" 우리의 감각을 긁어대는 세월호 의지 ● 곽요한은 작업동기에 대해 "다른 것을 못 그리겠다"고 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다른 것을 그리지 못하게 했을까? 시간은 모든 것을 잊게 하고 침묵하게 한다. 시련의 상처도 상실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그래서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제-능력이자, 한편 돌이켜야 할 감각을 무디게 하는 망각-무능이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3년이 지났고, 세월의 먼지가 세월호 위로 쌓이고 있었다. ● 그런데, 우리를 망각에 잠들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무능을 내버려두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밥을 먹다가 우리를 울컥하게 하고, 수다를 떨다가 말을 멈추게 하고, 꿈속에서도 수면을 방해하는 신체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 의지는 우리의 정신이 아니라 신체에 작용하는 것이어서,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느닷없는 장소에 출현한다. 우리의 감각을 긁어대고, 우리의 시간에 들러붙은 그것은 '세월호의 의지'였다. 언론으로 하여금 그것을 쓰게 만들고, 작가의 상처를 헤집으며 다른 것을 못하게 만드는 차가운 의지. ● 곽요한의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의 의지를 드러내는 회화적 재현이다. 물 속 아래 보이지 않는 세월호의 차가운 의지는 신체의 리듬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온한 감각이다.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보내오는 무수한 주파수들은 우리의 감각을 긁어댄다. 「□□들이 □명 □□를 입었다는데」, 「□□는 □□의 업무죠」. 검은 침전물로부터 새어나오는 다양한 환영들은 우리의 시간을 끈적거리게 한다. ●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불온성은 봉합할수록 새어나오고 억압할수록 되돌아오고 은폐할수록 선명해진다. 세상은 세월호의 주파수에 교란되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끈적거리는 침전물은 모든 사물에 들러붙는다. 이제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망각의 침묵을 깨고 떠오른 세월호는, 촛불의 함성으로 범람하고 마침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으로 이끈다. 물 속 아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의지가 모든 것을 삼키고, 세상이 검푸른 물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곽요한_□□들이 □명 □□를 입었다는데_장지에 펜, 아크릴채색 및 기타재료_162.5×97cm_2016
곽요한_□□는 □□의 업무죠_장지에 펜, 아크릴채색 및 기타재료_97×162.5cm_2016
곽요한_Blue ho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5×30cm_2017

상처는 어떻게 재현되고, 슬픔은 무엇으로 드러나는가? ● 곽요한은 세월호의 상처와 슬픔을 정면에서 보고, 회화적 방식으로 추상한다. 피사체와 그의 시선과의 거리에서 세월호는 사건화된다. 이러한 사건화는 세월호를 정신적 트라우마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감각으로 새기는 방식이다. 상처를 상처로 그리고, 슬픔을 감정으로 재현하는 것은 내러티브의 역할일 것이다. 상처를 재현할 때 상처는 표면에 머물고, 슬픔이 흘러넘칠 때 슬픔은 신체에 각인되지 않는다. 그는 상처를 깊게 그리기 위해 사실적인 형상을 추상하고, 슬픔을 신체에 새기는 방식으로 색채를 추상한다. ● 먼저, 형상을 제거하고 상처를 재현하는 기하학적 도형들. 그의 캔버스는 삼각형, 사각형, 원, 선으로 채워지고, 어떤 사실을 암시하는 것들도 형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상처가 치명적일수록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구체적인 형상을 계속해서 지워냈고, 결국 그의 캔버스는 단순한 도형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도형에서 재현되는 날카로움은 구체적인 사실보다 깊다. 검은 표면 위에 그려진 사각형「□□들이 □명 □□를 입었다는데」과 검은 표면 아래 그려진 사각형「□□는 □□의 업무죠」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세월호의 시간을 목격한다. 그리고 사각형 안에 갇힌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사각형을 들을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 또한, 형상을 흐리는 반복되는 레이어들. 그의 도형에는 삼각형에 사각형, 사각형에 원이 덧씌워지거나 불규칙한 선들이 끊임없이 가로지른다. 단순한 도형조차 그 자체로 선명하게 드러나기보다 다른 레이어에 의해 가려진다. 그러나 형체를 흐리는 반복되는 레이어의 교란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가릴수록 드러나는 Fact에 대한 불안이다. 레이어는 진실을 은폐하는 동시에 진실에 대한 불안을 드러낸다. 진실을 가릴수록 진실에 대한 불안은 커진다. ● 다음, 감정을 제거하고 슬픔을 추상하는 차갑고 투명한 검정들. 그는 목탄을 덧칠하는 반복작업을 통해 목탄의 물성에서 나오는 정서를 캔버스 위에 올려놓았다. 목탄의 검정과 번들거림에서 느껴지는 투명함으로, 그의 캔버스는 심연이 되고 우리의 슬픔도 함께 가라앉는다. 세월호에 대한 탄식, 안타까움, 배신, 분노의 감정은 오히려 이성적인 표현이다. 차가운 검정은 우리 신체에 내려앉은 거대한 슬픔이다. 우리의 슬픔이 단일하지 않듯이 슬픔은 겹겹의 회색-검정을 관통하여 끝없는 심연을 향해 투명해진다. 세월호를 겪은 신체는 바다를 푸른 것이 아니라, 차갑고 투명한 검정으로 기억할 것이다. ● 한편, 거대한 슬픔을 증폭시키는 희고 붉은 것들. 농담을 달리하는 검정 가운데 간혹 보이는 창백한 흰색이나 불안한 붉은 색의 난입이 있다. 세월호를 둘러싼 언론보도나 뉴스속보처럼, 희고 붉은 것들은 검은 바다를 밝히는 조명탄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를 집중시키는 조명탄의 창백함은 그것 이외에 모든 것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눈을 가린다. 따라서 거대한 암흑 위에 난입한 희고 붉은 것들은, 선명할수록 어둠을 깊게 드러내거나 이내 검정에 녹아들어 일부가 된다. 진실은 검정 속에 있고, 심연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게 했던 것들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 류재숙

곽요한_은폐를 노출하다_장지에 아크릴채색 및 기타재료_72.5×60.5cm_2016
곽요한_은폐를 은폐하다_장지에 아크릴채색 및 기타재료_91.3×73cm_2017
곽요한_보이지 않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2cm_2017
곽요한_보이지 않게 하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2cm_2017

본인은 일상의 형상들을 변주하여 삶의 단편을 포집하는 것을 작업의 방향으로서 삼고 있다. 독립된 개인으로 겪고있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의 일부이자 관망자로서, 혹은 피해 당사자이자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많은 풍경을 재조립하며 작업을 완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조, 혹은 집단, 혹은 개인의 트라우마, 감정적 상태들이 가지는 관계들을 미술적 재료와 물질들을 통해 말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 상징체제들을 통해 앞서 말한 것들을 선적인 형태와 기하학적인 형태로 해석, 또는 번역하여 말하는 과정을 가진다. ●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본인 작품의 대주제로 존재한다. 어둠속에 가라앉은 배를 찾기 위해 터트렸던 조명탄은 오히려 진실을 보는 눈을 가렸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위에 덧대어진 발언과 보도, 혹은 행위들은 흡사 불투명한 레이어와 같이 작동했다. 덧대어질수록 시야는 흐려졌고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물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해 손발을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남는다. 나의 작업은 세 가지가 엉켜있는 현실에서 헛-소실점을 향한 뒤엉킨 표시판으로서 이야기하고 있다. ●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게 하는'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17년에 많은 것들을 호명하여 수면 위로 끌어올려 시야 밖에 침잠해있는 것들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 곽요한

Vol.20170415e | 곽요한展 / KWAKYOHAN / 郭耀翰 / painting